설교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행해져야 할 사업의 한 작은 부분이다. 하나님의 영은 죄인들에게 진리를 확신시켜 주며, 그분은 그들을 교회의 팔에 안겨 주신다. 목회자들이 그들의 임무를 다할지라도, 그들은 그 교회가 해야 할 사업을 결코 행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가 믿음과 경험이 어린 사람들을 양육하기를 요구하시며, 험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에게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은” 말을 해주기 위하여 그들에게 찾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 모두는, 여러 다른 마음을 가진 자들을 지혜롭게 다루는 방법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참된 그리스도인 생애를 하도록 도와주는 일에 우리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위하여 품성과 태도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성경을 읽어야 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을 일시적인 것으로부터 영원한 관심사로 이끌어야 한다. 그분을 위한 선교사가 되고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친숙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의무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유혹을 받아 비틀거린다면 그의 형편을 조심스럽게 고려하여 현명하게 취급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영원한 관심사가 위험에 처해 있으며, 그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위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가 되든지, 사망에서 사망으로 이르는 냄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신중하게 연구해야 할 일이 생긴다. 당사자에게 그의 진상을 보여주고 그 자신의 기질과 성미의 괴벽함을 이해시키고, 그의 약점을 보게 해주어야 한다. 그는 지혜롭게 다루어져야 한다. 만일 그가 감동을 받고, 그의 심령이 이런 지혜롭고 참을성 있는 수고에 의해 접촉될 수 있다면, 그는 강한 줄로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인도될 것이다. 아, 이런 일이 행해진다면, 온 하늘 궁정은 바라보고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 고귀한 영혼이 사단의 덫에서 구출되어 사망에서 구원되었기 때문이다! 아, 영혼의 구원을 위해 지혜롭게 일하는 것이 보상을 받지 않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지불하셨다. 그런데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우리는 우리 주님과 연합하여 일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우리 구주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의 가치를 인식하지 않을 것인가?
사업에 있어서 어린이들의 관심을 이끄는 몇 가지 노력이 이루어졌으나 충분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안식일 학교는 보다 흥미로워야 한다. 일반 학교들은 최근에 그들의 교수법을 대단히 발전시켰다. 실물 교훈들, 그림들, 그리고 칠판 등이 어린이들의 마음에 어려운 과목들을 분명히 알려 주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이처럼 현대 진리도 단순하게 되어 활동적인 어린이들의 마음에 큰 흥미를 주도록 제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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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부모들을 자주 그들의 자녀들을 통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안식일 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진리를 가르칠 수 있으며, 그 다음에는 이 아이들이 이것을 가정으로 가지고 간다. 그러나 소수의 교사들만 이 분야의 사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 학교에서 사용하여 성공을 거둔 교수법은 안식일 학교에서도 사용하여 유사한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며, 아이들을 예수께로 이끌어 성경 진리로 가르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것은 생기자마자 사라져 버리는 감정적 성격의 종교적 흥분보다 훨씬 더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직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성취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업에 있어서 더 많은 믿음이 필요하다. 보다 더 많은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수고가 올바른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최선의 유익을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사려 깊고도 기도하는 연구가 있어야만 한다. 신중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리 중에는 사용되기만 하면 발명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두뇌를 가진 자들이 있다. 잘 지도된 지혜로운 노력에는 위대한 결과가 따를 것이다.
기도회는 개최되는 것 중에 가장 흥미 있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종종 형편없이 운영된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 집회에는 참석하는데 기도회는 소홀히 한다. 이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모임이 흥미있고 매력적인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하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은 생명의 양식에 주려 있다. 만일 그들이 이것을 기도회에서 발견한다면,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거기에 가게 될 것이다.
길고 지루한 말과 기도는 어떤 때나 어울리지 않으며, 특히 기도회에서 그러하다. 나서기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수줍어하고 나서기 꺼려하는 자들에게 간증할 틈을 주지 않는다. 허식적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할 것이 많다. 그들의 기도는 길고 기계적이다. 그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천사들과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우리의 기도는 짧고 요점이 뚜렷해야 한다. 길고 지루하게 탄원할 필요가 있으면 골방에서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그대의 심령 안에 들어오도록 하라. 그러면 건조한 모든 형식주의는 일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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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선을 위해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배의 분야에 있어서 이것을 최선껏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노래는 일반적으로 즉흥적으로 불리워지거나 특별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불려진다. 어떤 때에는 노래하는 사람들이 실수하므로, 음악은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에 적절한 효과를 주지 못한다. 음악은 아름다움과 비애감과 힘을 가져야 한다. 찬양과 헌신의 노래로 목소리를 높이자. 할 수 있으면 기악을 함께 사용하여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는 예물로 영광스러운 화음이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도록 하자.
그러나 때때로, 기도와 권면하는 습관을 개선하기보다는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을 질서 있게 일하도록 하는 것이 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일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충고를 거절한다. 그리고 지도를 받게 될 때 참지 못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잘 짜여진 계획이 필요하다.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데는 상식이 매우 훌륭한 요소이다. 사고력은 그리스도께 성별되어야 하며, 그분을 최선껏 섬기기 위하여 방법과 수단들이 고안되어야 한다. 진리대로 살기 위해 애쓰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하나님의 교회는, 만일 그들이 여호와의 영에 의해 훈련을 받는다면 세상에서 하나의 능력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영원을 위해 부주의하게 일해도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서로에 대한 공감대와 사교성이 없음으로 많은 것을 잃는다. 독립을 주장하고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가 있도록 계획하신 그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행복을 위해 서로 서로 의존하고 있다. 하나님과 사람들의 요구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이생에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가 형제들을 동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 노력함에 있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사교적 본성을 적절히 계발함으로써이다. 하늘의 행복은 거룩한 존재들의 순결한 교제 속에, 축복 받은 천사들과, 자신들의 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고 자신들을 희게 한 구속받은 자들과의 조화로운 교제의 생애 속에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되어 있을 때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혼들을 구주께 인도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다른 이들을 해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도 해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한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도 축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한 행위의 감화는 우리 자신의 심령에 반사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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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도와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우리가 언제나 사랑스럽고 온화한 사교적인 그리스도인들과만 접촉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그들의 품성은 뒤틀려 있으며, 그들의 마음은 강퍅하고 우락부락하며, 모든 면에서 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이들을 도와서 그들의 결점을 보게 하고 고치게 하는 한편, 우리는 우리 이웃들의 결점에 대해 인내하지 못하고 신경과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공언하는 사람 중에 호의적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이 따르는 그분의 온유함과 부드러움을 얻기 위한 일에 부지런히 힘쓰게 된다면, 그리스도인 은혜의 아름다움은 그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동역자! 얼마나 고귀한 자리인가! 이런 큰 도시 안에서 자아를 희생하는 선교사들을 어디에서 발견할 것인가? 주께서는 당신의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필요로 하신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시간을 도적질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고, 성경을 정통으로 익히고, 우리 동료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함으로 우리 자신과 그들을, 우리에게 맡겨진 위대한 사업에 적합하게 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귀한 시간을 빈둥거리며 보내거나 몸치장에 바치며 또한 어리석은 목적에 사용하는 데 대해 두려워해야 한다.
어머니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아름답게 하는 옷에 불필요한 노력을 기울인다. 자녀들이 멸망을 초래할 의복에 대한 사랑을 배양하지 않도록 유의하는 한편, 그리스도인 은혜를 계발시키도록 노력하고 불필요한 장식이나 자수나 과시를 피하여 평범하게 옷을 입고 자녀들을 아담하게 옷 입히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 중에 아무도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주께서 우리에게 행하도록 남겨 두신 사업을 우리가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흠 없이 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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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위한 선교사들, 의무를 회피하지 않을 성실한 남녀들이 필요하다. 지혜로운 수고가 좋은 결과를 성취할 것이다. 이루어야 할 진정한 사업이 있다. 진리는 온유함과 지혜를 겸한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에게 신중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들을 동료 인간들로부터 격리시킬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우리 자신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고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가정 안으로 빛을 가져 가서 부드럽고 온유한 정신으로, 그들에게 제공된 고상한 특권을 받아들이도록 간청할 수 있다. 그리고 적당하다고 생각될 때에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은 표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마지막 때를 위한 거룩한 진리를 조심스럽게 소개할 수 있다.
우리 백성들 중에는 기도하기 위한 집회보다 노래하기 위한 집회가 더 많다. 그러나 이런 모임이라 할지라도 매우 경건하고 즐겁게 진행함으로 훌륭한 감화를 발휘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너무 많은 익살과 무익한 대화와 험담이 교환되므로 유익하고 사상을 고상하게 하고 태도를 세련되게 하는 기회가 되지 못한다.
선동적인 부흥회들
_____ 에는 관심이 너무도 많이 분열되어 있었다. 새로운 흥미거리가 생길 때, 잘못된 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남녀들은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광범위한 기만이 예상되면, 방어를 해야 한다. 어떤 새롭고 이상한 것들을 보고 듣기 위해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영혼의 대적은, 이 대도시에서, 호기심을 불붙이고,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위대하고 성화시키는 진리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
만일 모든 변덕스런 종교적 흥분이, 그것들이 존재함으로 인해 끼치는 영향 때문에 인기가 없는 진리를 믿고 있는 소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일을 소홀히 하도록 할 것 같으면, 힘이 있어야 할 교회 안에 아주 큰 연약함이 있게 될 것이다. 사단은 그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인기 있는 종교의 가면 하에, 우유부단하고 경솔한 사람들을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힘을 분열시키는 데 많은 것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이 변덕스런 부흥의 흥분은, 조류처럼 왔다가 밀려가며, 많은 정직한 사람들을 기만시켜서 그것을 참된 하나님의 영이라고 믿게 만드는 기만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회심자들을 양산한다. 흥분하는 기질의 사람들, 연약하고 복종을 잘하는 사람들이 이 깃발에 떼지어 몰려든다. 그러나 물결이 물러가면, 그들은 해변에 좌초되고 만다. 거짓 교사들에게 속지도 말 것이며, 헛된 말로 이끌림을 받지도 말 것이다. 영혼의 대적은 모든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즐겁게 해 주는 우화가 가득한 요리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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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떠오르는 번쩍이는 별똥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남긴 꼬리는 속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흑암은 그것이 있기 전보다 더 깊은 것처럼 보인다. 일화를 말하고 기발하고 괴상한 것을 보여 줌으로써 야기된 이러한 선동적인 종교적 흥분은 모두 피상적인 일로서, 이 섬광에 매혹된 우리 믿음의 소유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사업을 세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가장 사소한 핑계로 그들의 영향력을 즉시 철회하고, 영혼을 약화시키고 마음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들려 주는 그러한 집회에 참석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유인한다. 하나님의 사업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업에 대한 이러한 관심의 철회이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견고해야만 한다. 우리는 요동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율법에 드러난 진리의 빛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비추고 그들을 어두움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사업이 우리 앞에 있다. 이 사업은 성공하기 위하여 단호하고 꾸준한 활력과 확고한 목적이 요구된다.
교회 안에는, 흥분의 수면 위에서 표류하거나 충동으로 움직이는 대신에 믿음의 기둥을 붙들고 반석의 토대 위에 정착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 안에는 영적 소화불량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만든 병자들이다. 그들의 영적인 쇠약은 그들 자신이 요동한 결과이다. 그들은 교리의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 저리 불려 다니며 전적으로 감정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종종 혼란에 빠지고 확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은 선동적인 그리스도인들이며, 무엇인가 새롭고 다양한 것에 굶주려 있다. 이상한 교리가 그들의 믿음을 혼란시키므로 그들은 진리의 사업에서 가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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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견고하며, 든든한 목적을 가진 남녀, 위기와 시련의 때에 믿을 수 있는 사람, 영원한 산처럼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진리 안에서 터를 잡은 사람,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는 사람, 똑바로 나아가며 언제나 옳은 편에 서는 사람을 부르신다. 종교적인 위기의 때에 거의 언제나 대적의 대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만일 그들이 어떤 영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편에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언하는 진리에 그들의 모든 힘을 쏟아야 할 도덕적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상을 받을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구주를 위해 거의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영적인 힘을 거의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계발시키고 증진시키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질병이 자연법을 범한 결과인 것처럼, 영적인 타락도 하나님의 율법을 계속적으로 범한 결과이다. 그리고 바로 그 율법을 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고 있다고 공언할 수 있다.
우리는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며, 자신을 하늘과 더 가깝게 연결시키고, 일상 생활의 가장 사소한 행동에 있어서도 율법의 원칙을 수행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에게, 게으르게 묻어 버리거나 낭비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도록 능력과 달란트를 주셨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빛과 그분의 뜻에 대한 지식을 주셨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우리는 빛의 산 통로가 된다. 만일 우리가 영적인 힘을 활용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고 누워 있음으로 사지가 연약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쇠약하게 될 것이다. 힘은 사용함으로 생긴다.
병들고 좌절한 사람들을 방문하여 돌보고 그들을 도와 빛을 보게 하며 예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해주는 것보다 더, 영적인 힘을 크게 해주고, 열성을 증가시키며 정서를 깊게 해주는 것은 없다. 마음에 내키지 않으나 누군가가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을 행하지 않으면 영혼들은 멸망하도록 방치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들이 아무리 달갑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 의무를 행하는 데서 축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순결하고 비할데없는 영광의 장소를 떠나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죄악과 반역과 불법으로 마비되고 어두워진 이 세상에 오는 내키지 않는 일을 취하셨다. 그분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것을 행하셨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사랑과 비할데없는 은혜를 입은 자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안일한 생애를 핑계거리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노력할 때 실망과 거절을 당할 것이라고 해서 영혼들이 흑암 중에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고 자신의 취향을 따라 쾌락의 길을 택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구속을 위해 무한한 값을 치르셨는데도, “주여, 나는 당신의 포도원에서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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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시온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자들에게 일어나 일하도록 부르신다. 그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을 것인가? 그분은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릴, 기도하는 심정의 신실한 일꾼을 원하신다. 이렇게 수고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단호하게 견딘 시련들을 통하여 믿음이 굳세어지고 용기가 새로워짐을 깨닫게 될 때 놀라게 될 것이다. 겸손한 순종의 길에는 안전과 능력, 안락과 소망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침내 상급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연약한 손은 전능하신 분을 붙잡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쇠약한 무릎은 역경의 날에 서는 데 실패하게 될 것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과 그리스도인 일꾼들은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될 것이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들어 와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재정을 묶어 둠
심령에 하나님의 사업을 품고 있는 _____ 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다. 우리 자매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속주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자원해서 드리는 헌금은 그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도들의 너그러운 모든 행위를 주시하고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예배드리는 집을 준비하는 데에는 하나님에 대한 큰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 사업상 거래에서 아무런 모험도 감행해 보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향상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위한 사업에 있어서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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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가난할 때는 그들이 가진 적은 것으로도 너그럽지만, 부를 얻게 되면 인색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적은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번영할수록 앞으로 전진하지 않고 희생을 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제도에서는, 여호와께 먼저 헌금을 드리도록 요구되었다. 추수 때나 포도 수확 때에 밭의 첫 열매-옥수수, 포도, 기름-는 여호와께 대한 예물로 성별되었다. 이삭들과 들판의 구석진 곳들은 불쌍한 자들을 위해 남겨졌다.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양털을 깎을 때 그 첫 털과, 밀을 타작할 때 그 첫 번째 것들은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져야 했으며, 가난한 자, 과부, 고아와 나그네들은 그들의 축제에 초대되었다. 한 해의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였는가 그리하지 아니하였는가에 대해 엄숙한 서약을 해야만 하였다.
이런 규례는 사람들에게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이 첫째가 되셔야 한다는 것을 새겨 주기 위해 여호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런 헌물 제도에 의해 그들은 그들의 은혜로우신 조물주께서 그들의 밭과 양떼와 가축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되시며,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파종기와 수확기에 햇빛과 비를 내려 주시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그분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만 했다. 모든 것은 여호와의 것이며, 그분께서는 그들을 그분의 재물을 맡은 청지기로 만드셨다.
성막을 만들고 성전을 세우는 데 있어서 유대인들이 나타낸 너그러움은 그 후 어느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필적할 수 없는 헌신의 정신을 보여 준다. 그들은 애굽의 오랜 속박에서 이제 막 자유롭게 되어, 광야의 방랑자가 되었다. 서둘러 여행을 떠난 그들을 뒤쫓아 온 애굽의 군대로부터 구원을 받자마자 여호와의 말씀이 모세에게 이르러 왔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 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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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백성들은 적은 재산만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불어날 기쁜 전망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여 성막을 짓는다는 한 가지 목표가 그들 앞에 있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들은 그분의 음성에 순종해야만 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되, 늘어난 수입의 특정 부분을 드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의 대부분을 드렸다. 그들은 기쁘게 전심으로 여호와께 바쳤으며, 그렇게 함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렸다. 그것은 전부 그분의 것이 아니었는가? 그분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주시지 않았는가? 만일 그분이 이것을 요구하신다면, 빌려주신 분에게 그분의 것을 돌려 드리는 것이 그들의 의무가 아니었던가?
압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요구된 것 이상으로 가져왔으며, 중단하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미 필요한 그 이상의 양이 모아졌기 때문이었다. 성전을 지을 때도 재정에 대한 요구는 다시 한번 마음에서 우러나는 반응으로 충족되었다. 백성들은 마지못해서 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집이 세워진다는 전망 속에서 기뻐하였으며, 그 목적으로 쓰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헌신하였다. 다윗은 모든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였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다시 그의 기도를 통하여 다윗은 다음과 같이 감사하였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다윗은 그의 모든 헌물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잘 이해하였다. 오늘날 구주의 사랑 안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것이며, 자신들을 부요하게 하고 만족시키기 위해 인색하게 간직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피조물을 빌려 주신 모든 것에 반박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교회증언 4권 pp. 6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