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양심적으로 주님의 축복을 구할 수 없는 어떤 일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 나의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자신들의 의복을 입는 쓸데 없는 일에서 깨끗한 양심을 느끼는가? 가장자리 주름 장식, 나비 넥타이, 리본 등으로 마음을 혼란케 하고 있으면서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노력에 축복해 달라는 기도로 영혼을 하나님께 상달시킬 수 있겠는가? 이런 방법으로 사용된 시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그대들 스스로의 정신을 계발시키는 데 바쳐졌어야 한다.
우리 자매들 중 많은 사람들은 훌륭한 재능을 가진 자들이다. 만일 그들의 재능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었다면 그들은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업의 부담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들의 능력을 활동 불능으로 만들고 위축시킨 의복의 사치와 이 세상의 염려가 없었다면 구원할 수도 있었던 영혼들에 대하여 책임이 없겠는가? 사단은 여자들이 의복 문제에 너무도 전념하여 다른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도록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유행을 고안했다.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도록 어머니들에게 지워진 의무들은 의복에 대한 현재의 태도가 고수되는 동안 수행될 수 없다. 그들은 진리를 이해하여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할 시간이 없다.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지식이 날마다 증가되는 것이 모든 사람의 특권일 뿐 아니라 의무이다. 그러나 마음을 너무 사로잡아서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게 할 어떤 것을 사단이 고안할 수만 있다면 그의 목적은 이루어진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과 종교적 행사에 가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다른 것들에 바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복 문제에 있어서 세상을 본받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선한 행실로 그들의 빛을 비춤으로 그들이 도와주었어야 할 영혼들은 이 외관만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순된 태도로 말미암아 불신 가운데서 강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매들이 산뜻하고 단순한 옷을 입고 주님의 사업에 열렬히 임하는 것을 보기를 기뻐하신다. 그들은 능력에 있어서 부족하지 않다. 만일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올바로 사용할 것 같으면 그들의 능률은 크게 증가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지금 쓸데없는 일에 사용하고 있는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데 바쳤다면, 그들 스스로의 정신은 진리의 보화로 풍요로워지고, 우리의 믿음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때문에 힘을 얻고 존귀해졌을 것이다. 우리의 자매들이 양심적인 성경상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영혼들이 그들의 자아 희생적 노력만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매들이여, 모든 사건들이 저울에 달려지는 날에 그대들의 생애를 뒤돌아보고 기쁨을 느끼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영혼의 내적인 아름다움은 거의 완전히 등한히 한 반면에 외적인 사람의 아름다움을 구했다는 것을 느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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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매들은 성경의 토대 위에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세울 충분한 열성과 도덕적 용기가 없는가? 사도는 이 점에 관하여 가장 명백한 지시를 했다.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여기서 주께서는 당신의 사도를 통하여 금으로 단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말씀을 분명히 하신다. 경험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모본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이 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하여 깨달아야 한다. 그대들의 손가락을 두르고 있는 반지는 매우 평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 없는 것이며, 그것을 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미친다.
특별히 목사의 아내들은 의복에 관한 성경의 분명한 교훈을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명령들은 너무 구식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유의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 명령을 제자들에게 하신 분께서는 우리 시대의 의복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위험을 이해하시고 우리에게 경고의 음성을 보내셨다. 우리는 그 경고에 유의하여 현명해질 것인가? 의복의 사치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그 끝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 유행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으며, 우리의 자매들은 때와 비용에 상관없이 그 자취를 따르고 있다. 많은 액수의 재물이, 주신 분이신 하나님께로 돌려져야 할 때에 의복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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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가난한 계층의 평범하고 산뜻한 의복이 때때로 좀더 부요한 그들의 자매들의 의복과 현저한 대조가 되어 나타나고, 그 차이는 가난한 측에 흔히 난처한 감정을 일으킨다. 어떤 사람들은 보다 부요한 그들의 자매들을 본받고자 노력하고, 의복에 있어서 가능한 한 그들에게 가까이 접근해 가기 위해 열등한 질의 물건에 가장 자리의 주름을 잡고, 잔주름을 만들고, 장식을 한다. 노동의 대가로 한 주일에 2불 밖에 받지 못하는 가난한 처녀들이, 생활비를 손수 벌 책임을 지지 않는 다른 사람들처럼 옷을 입기 위하여 모든 동전을 다 쓸 것이다. 이런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곳간에 바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시간이 그들의 자매들의 의복처럼 유행을 따른 의복을 만드는 데 철저히 바쳐지기 때문에 그들은 정신의 계발과 하나님 말씀의 연구와 은밀한 기도와 기도회를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 그들의 정신은 그들의 자매들처럼 보이는 방법을 고안하는 데 완전히 빼앗긴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건강은 희생된다. 행복과 하나님의 은총이 유행의 제단 위에 놓여진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의복이 모양과 장식에 있어서 그들의 그리스도인 자매들의 의복과 너무도 다르게 보인다는 이유로 안식일에 하나님의 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자매들이 이런 것들을 그들처럼 생각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그들의 영향을 충분히 깨달을 것인가? 그들 스스로 금지된 길을 걸음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불순종과 타락의 동일한 길로 인도한다. 그리스도인의 단순함이 외적인 과시에 희생된다. 나의 자매들이여,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사단의 사슬에서 스스로를 회복할 것이며, 유행의 종으로 우리를 붙들어 맨 사슬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낭비된 기회들을 회복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의 능력이 건강하고 활기찬 활동을 하게 할 것인가? 오직 한 길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우리의 삶의 법칙으로 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열렬하게 활동하고, 깨어 기도하며, 오랫동안 등한히 해 온 십자가를 지고,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말씀하신 분의 경고와 명령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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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리스도인 자매들이여, 하나님의 율법인 거울을 들여다보고 첫번째 네 계명들에 의하여 그대들의 행위를 시험해 보라. 이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분명하게 규명한다. 그분은 완전한 애정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정신을 빼앗기게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그것을 분리시키는 어떤 것은 일종의 우상의 형태로 간주된다. 진실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은 생각과 마음에서 밀려나고 영혼의 성전은 여호와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김으로 더럽혀진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고 계명은 말한다. 마음을 살피고, 생애와 품성을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에 비추어 우리의 잘못을 고치고자 부지런히 노력하자.
두 번째의 여섯 계명은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람의 의무를 명시한다. 여기서 소위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매일 짓밟는 엄숙한 의무들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깨우침을 받은 자들, 거룩한 가족에 입양된 자들은 주님의 사업에서 언제나 어린아이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이 받은 바 은혜를 현명하게 이용할 것 같으면 그들의 능력은 증가되고 그들의 지식은 더욱 넓어져 그들은 더욱 많은 분량의 하나님의 능력을 위탁받게 될 것이다. 그들의 동료 인간들을 진리의 지식으로 이끌기 위한 열렬하고 잘 지도된 노력을 하는 가운데서 그들은 주님 안에서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서 의를 실천함으로 그들은 하늘 나라에서 영생의 상급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자매들의 특권이다. 그러나 그들이 쓸데 없는 의복의 과시에 하나님의 시간과 돈을 쓰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그들이 첫 번째의 네 계명 뿐 아니라 두 번째의 여섯 계명도 깨뜨리고 있다고 그들에게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경배의 최고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우리는 모본되신 분을 계속적으로 우리 앞에 모시고 죄의 속박에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치러진 무한한 희생을 명상해야 한다. 우리가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정죄받은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한 걸음 더 범죄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지 말고 반대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 우리의 품성의 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 그 옷을 흠없이 만들도록 하자. 다윗처럼,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라고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축복이 되게 하고자 시간과 재물을 위탁해 주셨지만 이 선물들을 쓸데없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낭비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정에서 무서운 힐책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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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불신의 세계는 미구에 그들의 의복과 외모 외의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고통과 혼란에 의하여 그들의 마음이 이것들로부터 떨어져나갔지만 그들은 돌아가야 할 곳이 없다. 그들은 희망을 가진 죄수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요새가 되신 분께로 나가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은 불평과 공포로 그들을 실망시킬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피난처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들의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공포가 다가올 때 그분께서는 그들의 재난을 비웃고 조롱하실 것이다.
안식일 준수자들 가운데 세상의 영향력에 승복해 온 자들은 시험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 날의 위기가 우리 앞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시련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언하는 자들 앞에 있다. 그들의 믿음의 진가가 판명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만과 허영과 쾌락을 추구하는 데서 세상 사람들과 연합하고,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자부해 왔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세상의 자녀로 만든 것은 그와 같은 방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본을 보이지 않으셨다.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와 겸손과 성결의 생애를 사는 자들만이 예수님의 진정한 추종자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과의 사교를 즐길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불신자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과 같이 옷을 입는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은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 만일 그들이 진실한 구원의 감화를 주고자 한다면 그들의 공언을 실천하고, 의로운 행위로 그들의 믿음을 보여 주고,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과의 분명한 구분을 해야 한다. 말과 의복과 행동이 하나님을 위하여 말해야 한다. 그리하면 거룩한 감화가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로 전해질 것이고, 불신자들까지도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들의 감화로 진리를 위한 말을 하고자 하면 그들의 공언을 실천하므로 겸손하신 모본자를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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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무지와 어리석음은 끊임없는 동반자들이다.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 나타나는 교만을 불쾌히 여기신다. 그분은 그들이 이 타락한 시대의 불건강하고 음란하고 값비싼 유행에 일치되기 때문에 불명예를 당하신다.
유행이 세계를 지배한다. 그것은 포악한 여왕이며, 때때로 그의 광신적인 귀의자들에게 가장 큰 불편과 불행을 감수하도록 강요한다. 그는 매혹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가난한 자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도, 심지어 생명 자체를 희생하고서까지도 그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으면 그들을 비난하고 조롱하기 위하여 서 있다. 사단은 그의 계획들이 너무도 잘 성공하는 것에 의기양양해 하며, 죽음의 신은 건강을 파괴하는 어리석음과 유행의 신전에서 경배하는 자들의 맹목적인 열성을 비웃는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의 타락케 하는 영향에서 보호하고, 또한 육체적, 도덕적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의복의 개혁이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그것은 속박의 멍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축복이 되고, 노동을 증가시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노동을 감해 주고, 의복의 비용을 더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비용을 덜어주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과 구별하고 그 유행과 어리석음에서 지켜주는 방호벽 역할을 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를 아시는 분, 우리의 본질과 필요를 이해하시는 분─우리의 자비하신 속죄주께서는 우리의 위험과 어려움을 보시고 우리의 생활 습관과, 심지어 음식물과 의복의 적절한 선택에 관해서까지도 시의적절한 경고와 교훈을 우리에게 주기로 하셨다.
사단은 육체적, 도덕적 건강에 손해로 입증될 어떤 새로운 형태의 의복을 끊임없이 고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자들이 자기가 고안해 낸 유행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다. 부자연스럽고 불건강한 의복 때문에 생긴 육체적 고통의 정도는 헤아릴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유행의 요구에 굴종함으로 일생 동안 병자가 되었다. 감정 전이 (感情轉移) 와 신체 불구, 암과 그 밖의 무서운 질병들은 유행성 의복에서 주어지는 악들 가운데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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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당치 않고 엉뚱하기까지한 많은 형태의 의복이 유행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채택되어 왔다. 이런 유해한 유행들 중에는 빈번히 몸을 보기 흉하게 노출시키는 큰 버팀테가 있었다. 이것과 대조적으로 버팀테와 질질 끌리는 스커트 없이 지낼 수 있고, 사지를 적당하게 감싸주는 산뜻하고, 온당하고, 적당한 의복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의복의 개혁은 의복을 짧게 하고 사지를 감싸주는 것 이상을 의미하였다. 그것에는 사람에게 필요한 온갖 종류의 의복이 포함되었다. 그것은 스커트를 어깨에 매달므로 허리가 그 무게를 받지 않게 했다. 그것은 폐와 위와 그 밖의 내부 기관들을 압박하고 척추의 굴곡과 거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질병들을 야기하는 팽팽히 당기는 코르셋을 제거했다. 의복의 개혁은 육체의 모든 부분의 보호와 발달에 알맞게 공헌했다.
개혁된 의복의 장점을 깨닫고 교만과 유행에 반대되는 위치를 즐거운 마음으로 취하여 그것을 시종일관 적용한 자들에게는 축복이 입증되었다. 적당하게 만들어졌을 때 그것은 잘 어울리고 모순없는 의복이었으며 솔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심지어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장려되었다.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왜 이런 의복이 도외시되고, 무슨 이유로 의복의 개혁이 옹호받지 못했는가?” 이 변화에 대한 이유를 나는 여기에서 간략하게 말하겠다. 우리 자매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개혁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인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그 개혁이 옹호한 단순하고 건강한 형태의 의복을 반대했다. 이 개혁을 우리 백성들에게 소개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요구되었다. 우리의 자매들에게 그런 의복의 장점을 제시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길임을 확신시키는 일이 충분하지 않았다. 유행이 너무도 강하게 그들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배에서 벗어나고, 심지어 이성과 양심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 너무 느렸다. 개혁을 받아들인 것으로 공언한 많은 사람들이 스커트를 짧게 하고 사지를 감싸주는 것 외에는 그들의 잘못된 의복의 습관에서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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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개혁에 동조한 어떤 사람들은 의복의 장점을 모본으로 보여줌으로써 질문을 받으면 동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어 문제를 거기서 그치게 하는데 만족해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그들의 양심으로 지배하고자 했다. 그들이 그것을 입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입어야 한다. 그들은 어떤 사람도 개혁된 의복을 입도록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었다.
나의 자매들에게 그 문제를 강요하는 것이 나의 의무가 아니었다. 내게 보여진 그대로 그것을 그들 앞에 제시한 후에, 나는 그들의 양심에 맡겼다. 개혁의 행동은 언제나 희생이 수반된다. 그것은 안일을 사랑하는 것과 이기적인 관심과 야망에 대한 욕구가 의의 원칙에 예속되기를 요구한다. 개혁하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장애를 만나야 한다. 그는 유행에 심취하는 자들과의 접촉에서 이익이나 쾌락을 얻는 자들과, 변화 때문에 특권을 잃어버리게 될 자들의 보수주의에 의하여 반대를 당할 것이다.
개혁된 의복을 그들의 자매들에게 끊임없이 강요하는 자들 때문에 많은 좋지 못한 감정이 생겼다. 극단론자들 때문에 이 개혁이 그들의 신앙의 요지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대화의 주제가 되고 그들의 마음의 부담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진리로부터 떠나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지 못하게 되었고, 진실한 예절이 크게 부족함을 드러냈다. 의복의 진정한 장점에 대하여 그 의복을 평가하는 대신에 그들은 그 특이성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의복의 개혁에서처럼 품성의 계발을 야기한 의문은 우리들 사이에 지금껏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의복을 사용하는 한편, 어떤 사람들은 여분의 손질에 빠짐으로 십자가를 피하고자 노력했는데 그 일은 그것을 축복보다는 저주가 되게 하였다. 의무감 때문에 마지 못해 그것을 착용하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멍에가 되었다. 외관상 가장 열성적인 개혁자로 보였던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의복에 산뜻함과 짜임새의 부족이 슬프게도 드러났다. 그것은 인정된 격식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가지 각색의 의복-한 가지 재료로 된 드레스, 다른 재료로 된 웃옷, 또 다른 재료로 된 바지를 갖기를 원했다. 다른 사람들은 매우 긴 스커트를 입었기 때문에 바지의 약 1인치만 볼 수 있게 되고 균형이 잡히지 않는 멋없는 의복이 되어 버렸다. 이런 괴상하고 단정치 못한 의복은 개혁된 의복을 좋아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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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내가 의복을 하나의 시험거리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난처해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 남편이나 자녀들을 가진 사람들이 개혁된 의복을 입을 때 그것이 불행으로 이끌어 그 사용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유익을 소멸시켜 버릴 것이라는 이유로 내가 그것을 입지 않도록 충고하였기 때문에 크게 난처해졌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우리 자매들 사이에 의복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이같은 사업과 활동의 짐을 졌다.
1875년 1월 3일 배틀크릭에서 받은 이상에서 나는 내가 지금 여기 제시한 것들의 상태와, 심한 의복의 다양성이 진리의 사업에 손해가 되었다는 것을 보았다. 균일하게 적용되고 온당하게 입었다면 축복이 되었을 것이 비난거리가 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망신거리가 되었다.
그 의복을 입은 어떤 사람들은 무거운 짐처럼 그것을 한탄했다. 마음에서 우러난 그들의 말은 이러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이 없는가. 만일 우리가 이 독특한 스타일을 자유롭게 벗어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평범하고 주름잡히지 않은 보통길이의 의복을 택할 것인데. 사지도 이전처럼 따뜻하게 감싸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적은 노력으로 육체적인 모든 유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개혁된 의복을 온당한 방법으로 준비하는 데는 너무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불평과 투덜댐은 신속하게, 생기가 넘치는 경건을 파괴하고 있었다.
나는 의복 문제에 관한 증언에 부담을 갖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옹호하거나 정죄하거나 간에 어쨌든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당신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는 것이 주님의 목적이었다. 장막회에서 나는 그 문제에 관하여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질문을 피하고 편지들에 대해서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1년 전에 의복 문제가 내 앞에 다시 제시되었다. 나는 우리의 자매들이 복음의 단순성으로부터 떠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개혁된 의복이 불필요한 노력을 요구했다고 생각하고 세상의 정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는 그들이 한 때 정죄했던 유행을 채택했다. 그들의 의복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울리지 않고 우리의 믿음과 전혀 맞지 않게 세상 사람들의 쓸데없는 모든 장식품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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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세상에서 나와서 분리되었다고 공언하는 백성들이 탐닉하고 있는 마음의 교만을 조장시켰다. 영감의 기록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분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시간과 재물을 유행의 제단 위에서 소모해버렸다.
우리의 백성들은 개혁의 사업에 있어서 꾸준히 후퇴해 왔다. 지혜와 판단이 마비된 것 같았다. 이기심과 과시에 대한 욕망이 마음을 부패케 하고 품성을 타락케 했다. 언제나 변하고 결코 만족을 모르는 유행의 제단 위에서 건강과 하나님의 은총을 희생시키는, 점차적으로 커져가는 성벽 (性癖) 이 있다.
위생병원에서 입기에는 개혁된 의복보다 더욱 적절한 스타일의 의복은 없다. 그것이 그 기관의 위엄이나 유용성으로부터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어떤 사람들이 간직한 생각은 잘못이다. 그것은 그곳에서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결코 버려져서는 안 된다. 이 옷으로 조력자들은 그들의 업무를 지금 요구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복은 유행의 열성가들에게 그 자체가 설교가 될 것이다. 그들의 불건강하고, 주름 잡힌, 질질 끌리는 의복들과 사지를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쉬운 것으로 적절히 묘사되고 제안된, 개혁된 의복과의 대조는 가장 교훈적일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의복의 개혁을 받아들였을 것 같으면 더 큰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산뜻하고, 간소하고, 건강한 의복을 반대하기 위하여 작용해 온 어떤 영향도 유감으로 생각한다. 육신의 마음은 세속적인 습관에 찬성하여 언제나 호소하고 있으며, 어떤 영향력도 잘못된 방향에서 발휘될 때는 열 배의 힘을 가지고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