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4 619-628 (260일)

아, 내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봉사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이 교회에 상기시켜 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는가? 그런데 그대들의 시간 중 대부분을 그대 자신을 섬기는 데 바친다면 주께서 그대들의 청지기 직분에 대하여 회계하라고 명령하실 때, 그대들은 주님께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우리에게 위탁된 달란트는, 재산의 달란트이든, 힘의 달란트이든, 지능의 달란트이든 우리의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들 중 일부나 전부를 남용하면 우리는 우리의 무가치한 청지기 직분에 대하여 공정하게 정죄받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그분께 돌려드려야 할 매우 큰 책임이 지워져 있다.

이 교회가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 세상의 정신을 떨쳐버리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은 그들의 기회와 특권을 잃어버리되,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고 슬퍼할 것이다. 주께서는 때때로 세속적인 사물에서의 번영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선물들을 올바로 사용하도록 의도하신다. 그들의 재물, 그들의 시간, 그들의 힘, 그들의 기회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이 모든 축복들에 대하여 그들은 주신 분께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형제들 사이에 가난과 궁핍이 보이고 우리 자신의 필요가 공급되므로 그들에게서 구제가 보류되고 있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분명한 의무를 등한히 한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도록 우리에게 관대하게 주신다. 이기심을 극복하고 영혼을 고상하고 순결하게 하는 것이 자선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달란트를 남용한다. 그들은 그분의 사업의 필요를 보지 않기 위하여 그들의 눈을 감고,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벗은 자들을 입히라는 그들의 의무를 알려주는 음성을 듣지 않기 위하여 그들의 귀를 돌린다. 하나님의 자녀로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재물이 선물과 헌금의 형태로 주신 분에게로 돌아갈까 염려하여 세상에 투자하고자 열망하는 것 같다. 그들은 그들의 신성한 사명을 잊어버렸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마음의 지시를 따르고 그들의 귀중한 시간과 재물을 그들의 교만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쓴다면, 하나님께서는 불운을 당하게 하실 것이고, 그들은 그들의 배은망덕 때문에 고통스런 궁핍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분은 그분의 요구를 깨달을 수 있는 더욱 충성된 청지기들에게 당신의 달란트를 맡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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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는 능력이다. 만일 올바로 사용되면 그것은 계속적인 감사의 근원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이 사용되기를 바라셨던 대로 사용됨으로 하나님의 선물이 고맙게 여겨지고 주신 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지 않고 고통 중에 있는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자들은 그분의 보응하는 공의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모든 좋은 선물을 신뢰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무지와 우리의 약점과 우리의 속절없는 상태를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값없이 주셨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으로 요구하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고통 중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등한히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등한히 하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지상에 있는 당신의 대표자들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타낸 동정과 자비는 마치 그분에게 나타낸 것처럼 그리스도께 가납된다.

주님의 가난한 자들이 등한시 되고 잊혀진 바 되거나 차가운 시선과 가혹한 말로 대해지면, 죄인은 그가 그분의 성도가 된 인간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등한히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당신의 관심을 고통 중에 있는 인간의 관심과 동일시하신다. 부모의 마음이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으로 그의 어린 자녀 중 고통하는 자를 애석히 여기는 것처럼, 우리의 구속주의 마음은 당신의 지상 자녀들 중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천한 자를 동정하신다. 그분은 당신이 고통당하고 압제받는 자들에 대하여 느끼는 그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일깨워 주기 위하여 그들을 우리 가운데 두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잘못하고, 그들을 소홀히 하고, 학대하는 자에게 당신의 심판이 내리게 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인간의 모든 불행과 슬픔, 빈곤과 고통을 당신의 마음속에 받아들이시고 그것들이 당신 자신의 경험의 한 부분이 되게 하신 것을 생각해 보라. 비록 그분은 생명의 왕이셨지만, 그분은 당신의 위치를 위대하고 존귀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으시고 비천한 자들과 압제받는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분은 멸시받는 나사렛 사람이셨다. 그분은 머리 둘 곳이 없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우리는 그분의 빈곤을 통하여 부하게 되었다. 그분은 지금 영광의 왕이시다. 그분께서 왕으로 관을 쓰고 오신다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분께 경의를 표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자 서로 경쟁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분 앞에 나타나고자 간청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도가 된 사람을 통하여 그분을 영접할 기회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하나님은 그대들이 그분의 선물들을 깨닫고 그것들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나는 그대들이 진실하고 사심이 없는 자비를 향하여 그대들의 마음을 열기를 호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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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한 교회로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에 대한 의무를 슬프게도 등한히 해 왔다. 법칙과 제재를 그들에게 과하는 한편, 그대들의 품성이 그리스도와 같은 편이며 사단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린이들은 끊임없는 주시와 부드러운 사랑이 필요하다. 그들을 그대들의 마음에 결속시키고 그들 앞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함께 사랑을 언제나 제시해 주라.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그들 자신의 정신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대들의 자녀들을 제지하고 경고하는 것이 요망되는 것의 전부가 아니다. 그대들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함과 동시에 공정하게 행동하고 자비를 사랑하는 것을 조만간 배워야 한다. 모든 것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인상으로 남게 된다. 얼굴은 관찰되고, 음성은 감화를 끼치며, 행동은 그들에게 철저히 모방된다. 까다롭고 성미 급한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배우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을, 그들의 것이 되어 그들의 생애의 어떤 시점에서 온 세상에 미치게 될 교훈들을 자녀들에게 주고 있다.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의 생애에서 신앙과 일치되는 일관성을 보아야 한다. 모순이 없는 생애로 일관되고 극기를 실천함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의 품성을 꼴 지을 수 있다.

너무 많은 근심과 짐이 우리의 가정 안으로 들어오고, 자연 그대로의 단순과 평화와 행복은 너무 적게 간직된다. 바깥 세상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를 적게 하고 가족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더욱 사려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시와 세속적인 예절에 대한 애정은 적어지고 가족의 구성원들 사이의 친절과 사랑, 쾌활과 그리스도인의 예절은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많은 사람이 가정을 매력 있고 즐거운 장소로 만드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감사하는 마음과 친절한 표정은 부와 호사보다 가치가 있으며, 단순한 것들에서 얻는 만족은 사랑이 그곳에 있다면 가정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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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왕의 위엄을 지니시고 세상을 거니셨다. 그러나 그분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셨다. 그분은 쾌활과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다니셨기 때문에 모든 가정에 빛과 축복이 되셨다. 아, 우리의 가정을 아름답게 꾸며 줄 것을 얻기 위하여 마음의 열망을 적게 하고 어려운 것들을 얻기 위한 투쟁을 적게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배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시는, 겸손하고 조용한 정신은 간직하고 있지 않다. 단순과 온유와 진정한 애정의 덕성은 가장 비천한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평화와 만족으로부터 분리되는 것보다 모든 불편을 즐겁게 감수하는 것이 더욱 좋다.

그대들은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고 희망도 없는 그대들의 자녀들의 슬픈 상태를 보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겸비하게 할 필요가 크다. 통속적이요 세속적인 일들이 영원한 사업과 같은 수준에 놓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신령한 사물들을 식별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처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분과 연결되기만 하면 그들의 봉사를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젊은이들이 그대들 사이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고상한 인격을 소유하려면 도덕적 용기와 유혹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이 크게 필요하다. 하나님 앞에 더럽혀지지 않은 품성은 드물다. 그들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죽음을 향한 넓은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대들의 자녀들의 친구가 되고자 기다리고 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위험, 특별히 불행한 결혼을 할 위험을 보고 느끼게 해 주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의 야생 귀리를 뿌리는 데 보낸 적은 시간이, 그대들의 온 생애를 쓰라리게 하는 수확을 거두게 할 것이다. 경솔한 한 시간, 유혹에 한 번 넘어진 것이 그대들의 온 생애를 그릇된 방향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단 한 번만 젊은 시절을 보낼 수 있다. 그 시기를 유용하게 만들라. 그대들이 일단 지나가 버리면 그대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결코 돌아올 수 없다.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거절하고 유혹의 길에 스스로를 빠뜨리는 자는 분명히 타락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젊은이들을 시험하고 계신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부주의와 불경은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그들에게 보여준 잘못된 모본 때문이라고 변명해 왔다. 그러나 이것이 올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어떤 사람을 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대들은 지금 탄원하는 것처럼 그런 변명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이 길을 알고서도 그 길을 걷고자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들은 공정하게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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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만자, 사단은 자신을 빛의 천사로 바꾸어 그럴듯한 유혹물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로 와서 한걸음씩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그들을 납득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는 비방자, 기만자, 거짓말쟁이, 훼방자, 살인자로 묘사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모든 범법은 영혼으로 정죄를 당하게 하며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받게 한다. 마음의 생각은 하나님께 식별된다. 불순한 생각들이 간직될 때, 그것들은 죄가 되며 영혼이 정죄를 당하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될 필요는 없다. 영혼의 순결이 더럽혀지면 유혹자는 승리를 거둔다.

각 사람은 자기의 정욕에 끌려가 꾀임을 받을 때 유혹을 받는다. 그는 자기 자신의 성벽을 따름으로 덕성과 진실한 선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만일 젊은이들이 도덕적 절개를 소유했다면 가장 강한 유혹이 제시되어도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모든 사단의 군대의 힘으로도 유혹받는 자를 범죄하게 하지는 못한다.

젊은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허영과 어리석음에 그들의 힘을 낭비하고 있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정신을 훈련시키고, 지식을 쌓고, 생애의 전쟁에 참여해 성공을 확정짓고자 갑옷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애정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그들이 아무리 높이 오르고자 시도할지라도 그들은 생애의 성공을 거둘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온 마음으로 주께로 돌아가 의를 행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적을 가장 경미한 정도로라도 약화시키고자 하는 자들의 아첨하는 말들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힘과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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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를 좋아하는 자들은 빈번히 이런 특성에 탐닉되어 그것이 정욕을 지배하기까지 이른다. 아름답게 꾸미고, 오락의 장소들을 찾아가고, 허영보다 더 못한 문제들을 놓고 웃고 잡담하고 이것이 그들의 생애의 목적이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하늘의 사물들을 명상하는 일을 지속할 수 없다. 그들은 흥분시키는 무엇인가가 없으면 불행하다. 그들은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을 그들 속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처럼 분별없고 무모한 다른 젊은이들의 회합에 행복을 의존한다. 고상한 목적에 돌려져야 할 능력을 그들은 어리석음과 정신적 낭비에 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시간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는 젊은이들은 생명의 샘에서 마심으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얻는다. 그는 탁월한 도덕의 표준과 다른 사람들이 품을 수 없는 사상의 넓이에 이를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훌륭한 사상과, 고상한 포부와, 진리에 대한 분명한 지각과 높은 행동의 목적을 고무시킨다. 이와같이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자들은 그분의 아들과 딸로 그분께 인정을 받는다. 그들은 주께서 그들을 세상의 빛과 지혜의 통로로 삼을 때까지 끊임없이 점점 더 높이 이르러 하나님과 영원에 대하여 더욱 분명한 견해를 얻게 된다.

그들은 상스럽고, 무례하고, 거칠고, 반역적이다. 그들은 큰 빛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거절했다. 만일 그들이 지금 평화의 길을 택한다면 그들은 감정에서보다는 원칙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죄와 거룩함은 타협할 수 없다. 성경은 불경건을 찬성하는 말이 없고, 완고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관용과 사랑의 달콤한 말을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이끌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의 추종자들은 안락과 명성에 어떤 희생이 있든지, 재산이나 생명에 어떤 위험이 있든지 그분의 영광스런 모본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야 한다. 오직 이 길에서만 그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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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값진 진주가 젊은이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팔아 이 진주를 살 수도 있고 그것을 거절하고 무한한 손해를 당할 수도 있다. 하늘은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조건에 일치되는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다.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속죄 제물로 주셨다. 그대들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되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그대 자신의 힘으로 진지한 목적을 세울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영이 지배하는 감화에 마음을 굴복시키지 않고서도 바른 길을 따를 수 있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이렇게 함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들떠있는 그대들의 정신은 변화를 요구하고 오락과 유쾌한 기분과 젊은 친구들과의 교제에서 쾌락을 갈망한다. 그대들은 물을 저장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를 파고 있다. 하나의 기만적인 능력이 그대의 정신과 행동을 지배한다. 행복은 오직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만 발견되어야 한다. 그대들의 마음이 반역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대들의 말을 통해서 나온다. 그대들의 이기적인 기도와 종교적인 형식이 양심을 진정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대들의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다. 그대들의 본질은 새로워지지 않았다.

예수님의 귀중한 피는 죄의 더움에서 영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준비된 샘이다. 그대들이 그분을 그대들의 친구로 삼고자 결심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새롭고 영구적인 빛이 비칠 것이다. 사랑하는 구주의 희생과 중보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은 죄로 굳어진 마음을 깨뜨릴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과 감사와 겸비가 영혼에 이르러 올 것이다. 예수께 마음이 굴복되면, 반역자가 정복되어 회개자가 되고, 순종하는 영혼의 언어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는 말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성경의 종교이다. 여기에 못 미치는 모든 것은 하나의 기만이다.

젊은이들은 자유와 빛이,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에 대한 계속적인 신뢰와 함께 극기와 끊임없는 경성을 통해서만 간직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성령께서 심령에 역사하고 있을 때 사람의 의지와 능력이 그 감화에 반응해야 한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고, 즐겁고, 기쁠 것이다. 침착한 온순이 음성을 특징짓고, 신령하고 영원한 사물들에 대한 존경이 행동에 나타나고, 음악, 즐거운 음악이 입술에서 울려나올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건의 비밀이며,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끼고 향유할 수는 있다. 완고하고 반역적인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유쾌한 감화와 성령 안에 있는 모든 기쁨에 대하여 문을 닫을 수가 있다. 그러나 지혜의 길은 즐거움의 길이며, 그 모든 길은 평안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하면 할수록 우리의 말과 행동은 부드럽게 하고 변화시키는 그분의 은혜를 더욱더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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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대들의 역량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대들이 관리하도록 위탁된 달란트가 많으면 많을수록, 만일 그 하늘의 선물들이 사단을 섬기는 데 사용된다면 그대가 받을 정죄의 선고는 더욱 클 것이다. 하나님은 그대들 없이도 하실 수 있지만 그대들은 하나님 없이 할 수 없다. 예수님이 없으면 고난당할 자는 그대들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의 지식은 그들이 죄악의 쾌락 속으로 빠져들기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배제해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어져 있는 제지에는 참을 수 없는 느낌이 있다. 그들은 이 경고의 음성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시채를 뒷발질하고 많은 슬픔으로 스스로를 찌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아, 그들이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을 근심시켜 떠나가게 하기 전에 생명수 샘으로 나왔다면 좋았을 것을!

교인들에게 몇 마디 더 부언하는 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베옷을 입고, 우리의 몸을 아프게 하고, 건강에 좋고 자양분 있는 음식을 스스로 거부함으로 우리 자신이 십자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 안에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우리의 동료 인간들에게 선을 행하지 않으면서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쓸데없이 건강과 생명을 버리도록 요구받지도 않았고, 그리스도인 생애의 언덕으로 탄식하러 올라가면서 즐거워하고 만족해하고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것이 죄라고 느끼도록 요구받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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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죄악적인 정욕을 지배하는 것이며, 비록 그렇게 하는 것이 불리한 경우일지라도 그리스도인의 예절을 실천하는 것이며, 궁핍하고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의 필요를 깨닫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재물과 인내력이 허비될지라도 집 없는 고아들에게 우리의 마음 문을 여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메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의 왕관을 입증할 십자가이다.

형제들이여, 비록 세상이 그대들의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고 그대들에게 신임장을 주지 않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대들의 생애를 선한 행실로 채우라. 이것이 극기이다. 이기심은 교인들이 언제나 그들의 어깨에 메고 있는 가장 괴로운 멍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추종자로 공언하는 자들도 그것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것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분께서 과부와 고아들을 위하여 그대들에게 주신 풍성한 선물들을 이기적으로 저장해 두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 당신의 명예, 당신의 높은 통치권을 버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므로 우리가 그분의 가난을 통하여 부요해지게 하셨다. 이제 절실한 질문이 주어진다. 황폐한 세상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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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장 — 의복의 단순함

산상 설교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추종자들이 지상의 사물에 그들의 마음이 몰두되도록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을 권면하신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이 말씀들은 의미가 충분하다. 그것들은 예수님의 시대에도 적절했고 우리 시대에도 적절하다. 예수님은 여기서 들꽃들의 자연적인 단순함을 의복의 인공적인 장식과 대조시킨다. 그분께서는 솔로몬의 영광이 자연적인 아름다움 속에 있는 꽃들 중 하나와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하신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교훈이 있다. 예수님은 의복에 주어진 관심과 강한 애착을 주목하시고, 거기에 너무 많은 생각을 바치지 말라고 우리를 경고하시고, 사실상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주의 깊이 유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솔로몬은 외적인 과시에 대한 생각에 너무 몰두되었기 때문에 그는 지혜의 하나님과 끊임없는 연결을 이루므로 그의 정신이 향상하는 데 실패했다. 품성의 완성과 아름다움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얻기 위한 그의 시도 때문에 간과되었다. 그는 세상 앞에서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에 그의 명예와 품성의 정직을 팔고, 마침내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함으로 그의 사치를 지탱하는 전제군주가 되었다. 그는 먼저 마음이 부패해졌고, 다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했고, 마지막으로 우상 숭배자가 되었다.

우리의 자매들이 의복의 단순함에서 떠나 세상의 유행을 사랑하는 마음을 계발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괴로움을 느낀다. 이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김으로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내적인 단장을 등한히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시간을 불필요한 의복의 장식에 써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성경을 연구하여 예언들과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교훈에 관한 철저한 지식을 얻는 데 사용되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교회증언 4권 pp. 619-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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