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경우가 내 앞에 제시되었다. 비록 그는 우리와 동일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영감의 붓은 그를 흠없는 품성을 가진 사람으로 나타낸다. 그의 생애는 비록 이생에서도 사람이 하나님을 그의 힘으로 삼고 그에게 주어진 기회와 특권들을 현명하게 이용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모본으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다니엘은 지적 거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더 큰 지식, 더 높은 학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다른 젊은이들도 똑같이 유리한 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온 정력을 지혜-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업적에 나타난 그대로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를 구하는 일에 기울이지 않았다. 비록 다니엘은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였지만 그는 교만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았다. 그는 기도로써 그의 심령을 새롭게 할 필요를 느꼈으므로, 매일 하나님 앞에서 열렬하게 탄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만일 그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면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사자굴이 열려 있는 때일지라도 그는 이 특권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그분께 순종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타락한 영향을 피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섭리로 그는 세상에 있었으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다. 그를 두르고 있는 궁정 생활의 온갖 유혹과 매력 속에서도 그는 영혼의 고결성을 유지하였으며 원칙을 고수하는 일에 바위처럼 굳게 섰다. 그는 하나님을 그의 힘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장 어려울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았다.
-570-
다니엘은 진실하고, 고상하고, 관대했다. 그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롭게 지내고자 열망하는 한편, 어떤 세력도 그를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진리와 의를 따라서 행동할 수 있는 한, 그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즐겨 순종하고자 했다. 그러나 왕들과 법령들도 그를 만왕의 왕에 대한 충성심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다니엘이 이교도의 왕궁에 가서 바벨론의 왕에게 봉사하게 된 때는 열여덟 살에 불과했다. 그가 젊었기 때문에 그릇된 것에 대한 그의 고상한 저항과 정의에 대한 그의 확고한 고수가 한층 감탄할만하다. 그의 고상한 모본은 오늘날일지라도 시련당하고 시험받는 자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성경의 요구에 엄격하게 순응하는 것은 영혼에게 뿐 아니라 육체에도 축복이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일 뿐 아니라 절제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더럽히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그것이 성령의 전이 되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경우는, 비록 큰 희생이 따를지라도, 젊은이들이 종교적인 원칙을 통하여 육신의 정욕을 이기고 하나님의 요구에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만일 그가 이교의 관원들과 타협하고, 바벨론 사람들의 관습대로 먹고 마심으로 그 상황의 압력에 굴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하나의 잘못된 단계는 아마도 다른 단계들로 이끌었을 것이며, 마침내 그가 유지해 온 하늘과의 연결은 끊어지고 그는 유혹에 불려가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불변의 신뢰로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동안 예언적 능력의 정신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가 궁정 생활의 의무 중에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동안,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미래 시대의 비밀들을 읽게 되었다.
-571-
57 장 — 절약과 극기
자금 지출의 절약은 그리스도인 지혜의 탁월한 한 분야이다. 이 문제가 우리 기관들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 돈은 탁월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손안에서 그것이 주린 자에게는 식물이, 갈한 자에게는 음료가, 벗은 자에게는 의복이 된다. 그것이 압제받는 자에게는 방어가 되고 병든 자에게는 건강의 수단이 된다. 자금은 자존심이나 야망을 위해 쓸데없이 함부로 지출되어서는 안 된다.
백성들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는 엄격한 신앙 원칙의 동기가 지배적인 능력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이 함께 할 때, 그리스도인적 요소가 성화되지 못한 것에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 둘 사이의 대조는 예리하고 뚜렷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들은 두 주인의 종들이다. 한 계층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겸손한 길-단순과 온유와 겸비의 길-을 지키고 모본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노력한다. 다른 계층은 모든 면에서 전자와는 반대가 된다. 그들은 세상의 종들이며, 지나친 의복을 입고 식욕을 만족시키는 데 있어서 세상의 유행을 따르고자 열심이고 열광적이다. 이곳은 그리스도께서 위생병원과 관련된 자들에게 지정된 일을 맡긴 일터이다. 우리는 주님의 속량받은 자들이 걸어가도록 펼쳐진 높은 길에서 내려와서 그들의 수준에 맞춤으로 우리와 세상 사람들과의 거리를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나타난 매력들-이성 (理性) 의 지배 아래 식욕을 예속시키고, 의복의 단순함을 유지하고, 거룩한 대화를 나눔으로 우리의 매일 생애에서 실천하는 원칙들-은 습관이 잘못된 자들의 길을 끊임없이 비춰 주는 빛이 될 것이다.
마음의 깊이와 원칙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약하고 무익한 자들, 복음의 단순함에서 떠나 유행의 열성자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타락하기에 충분한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 만일 그들이 보기에, 개혁자로 자처하는 자들이 환경에 따라 식욕에 방종하고 세상의 유행을 좇아 옷을 입을 것 같으면, 그 방종의 노예들은 그들의 그릇된 습관에 굳어져 버릴 것이다. 그들은 결국 상규 (常規) 를 그렇게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과 그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야 할 큰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의의 원칙을 굳게 고수하고, 유행의 신전에서 경배하고 있는 자들의 그릇된 습관을 고쳐 주고 사단이 이 불쌍한 영혼들을 사로잡고 있는 마력을 깨뜨리기 위하여 영향을 발휘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의 방종과 그리스도의 추종자인 개혁자들의 단순성 사이의 현저한 대조를 보아야 한다.
-572-
생애의 성공의 비결은 작은 것들에 대하여 신중하고 양심적으로 주의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단순한 잎과 작은 꽃과 풀잎을 당신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과 똑같은 주의력으로 만드신다. 강하고 아름다운 품성의 균형잡힌 구조는 개개의 의무 이행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은 가장 큰 의무에서는 물론이요 가장 작은 의무에서 성실하게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의 사업에서 작은 일들에 대한 성실하고 근면하고 검약한 주의가 들어 있음이 나타나 있지 않는 한 하나님의 심사에 통과될 수 없다.
우리 기관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은 비록 그들에게 맡겨진 일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문제일지라도 어떤 것도 낭비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절약하는 일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엄밀한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그들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밀한 주의가 요하는 절약에 대한 교훈을 제자들에게 하신 적이 있다. 그분은 당신의 교훈을 들은 수 천명의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이적을 베푸셨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먹고 배부른 후에 그분은 남은 조각을 버리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큰 무리의 필요에 따라 당신의 신성의 능력으로 그들을 먹일 수 있었던 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모아 잃어버리는 것이 없도록 하라고 명령하셨다. 이 교훈은 그리스도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졌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육신의 생애의 필요를 돌봐주신다. 그분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나 그런 잔치를 베풀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잔치 후에 남은 조각들을 등한히 하지 않으셨다. 우리 기관의 일꾼들은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는 이 교훈을 잘 유의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이 모본을 보여야 한다.
-573-
하나님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의 요청에 반응하고 고통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열린 손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사업 관리에 있어서 치밀하지 못하고 느슨하고 꾸물거리는 것으로 판명되는 자들이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수입 안에서 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주의한다. 그들은 원칙에 따라 절약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주기 위해서 저축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느낀다.
일꾼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승리를 위해 부르짖는 왜곡된 식욕과 방종의 습관을 허용한다. 그들은 고대 이스라엘처럼 애굽의 파와 마늘을 갈망한다. 이 기관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은 생명과 건강의 법을 엄격히 고수하고, 그들의 모본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그릇된 습관을 은근히 장려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영혼을 최초로 떠나가게 하는 것은 작은 것들에서의 범법이다. 금단의 과일을 취하는 하나의 죄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세상에 저주의 수문을 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범죄를 매우 작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가 작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안다. 하늘의 천사들은 우리보다 더욱 넓고 더욱 숭고한 행동 영역을 갖고 있지만 그들에게 옳은 것과 우리에게 옳은 것은 똑같이 동일하다.
담당 임원들이 현존하는 잘못을 책망하고 모든 일꾼들로부터 공의와 절약과 극기를 요구하는 것은 인색하고 궁색한 정신이 아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 기관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은 합당한 위엄을 떨어뜨리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성실한 자들은 자연히 다른 사람들에게서 성실을 기대한다. 엄격한 정직이 관리자들의 태도를 지배해야 하고, 그들의 지시를 받는 모든 자들에게 강조되어야 한다.
원칙의 사람들은 자물쇠와 열쇠의 제한이 필요없다. 그들은 감시당하고 경계받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언제든지, 그들을 보는 눈이 없는 단신으로나 공중 앞에서나 진실하고 떳떳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들은 약간의 이익이나 이기적인 유익 때문에 그들의 영혼에 오점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저열한 행동을 멸시한다. 비록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할지라도 그들 스스로는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들의 자존심을 파괴할 것이다. 법과 제지가 있고 그 점에 대한 벌이 있을지라도 작은 것들에 대해 양심적이고 성실하지 못한 자들은 개혁되지 않을 것이다.
-574-
유혹, 특별히 식욕에 대한 유혹을 저항하고 극기를 실천하기 위한 도덕적인 힘을 가진 자는 별로 없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세 번째 식사를 하는 것을 볼 때 저항할 수 없는 강한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음식에 대한 위 (胃) 의 요구가 아니고 확고한 원칙으로 보호되지 않고 자제로 훈련되지 않은 마음의 욕망으로 느낌이 올 때, 배가 고픈 것으로 상상한다. 극기와 자제의 벽들은 단 한 번의 경우에 약해지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들에게 파견된 사도 바울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 말한다.
작은 것들에 승리하지 못하는 자들은 더 큰 유혹을 저항할 도덕적 능력을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생애의 일상적인 업무에서 정직을 지배적인 원칙으로 삼고자 노력하는 모든 사람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검소한 음식과 의복으로 만족한다면, 마음과 손을 탐욕과 부정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쉬운 문제임을 알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형성된 습관들은 남녀들을 지적으로 위대하게 만들거나 위축시키고 불구로 만드는 데 있어서 어떤 천성적인 재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바로 그 재능들이 왜곡되고 약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품성은 초기에 크게 결정된다. 젊은 시절에 이루어진 올바르고 덕스러운 습관들은 일반적으로 생애를 통하여 개인의 길을 특징지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하나님을 존경하고 정의를 존중하는 자들은 세상이 죄의 상을 영혼에게 찍기 전에 이 교훈을 배운 사실이 판명될 것이다. 성년이 된 남녀들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감명에 대하여 무감각하기가 마치 딱딱한 바위와 같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감명을 받는다. 그러므로 올바른 품성이 그 때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575-
우리 기관들에 채용된 자들은 많은 면에서, 올바른 습관 형성에 있어서 가장 좋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유혹이 미칠 수 없는 곳에 처할 수는 없다. 모든 품성에는 공격받으면 위험해지는 약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공언하는 자들은 독선적인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의 선행을 하나 하나 열거하는 데서 큰 기쁨을 발견하지 말고, 끊임없는 경성으로 도덕적 특성을 견지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 충성된 파수군들처럼 그들은 영혼의 요새를 지켜야 하고, 한 순간도 그들의 경계가 느슨해질 수도 있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열렬한 기도와 산 믿음에만 그들의 안전이 있다.
발걸음에 부주의하기 시작하는 자들은, 깨닫기 전에 그들의 발이 스스로를 구출할 수 없는 그물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진실하고 정직해지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확고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친구들이 있든지 외톨이가 되든지, 어떤 일이 있든지, 그들은 어떤 감화도 그들로 하여금 가장 작은 악행도 범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결심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세우신 기관들의 번영은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그들에게 의존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58 장 — 위생병원의 위치와 사업
메인 주를 여행하는 동안, 얼마 후에 우리는 위생병원에서 진리를 받아들인 A 자매를 알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한 때 돈 많은 공장주였으나 불운이 닥쳐 가난하게 되었다. A 자매는 건강을 잃고 우리의 위생병원으로 치료받으러 갔다. 그는 그곳에서 현대 진리를 받아들이고 건전한 그리스도인 생애를 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철저한 건강 개혁자들이 되어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증언할 수 있는 네 명의 훌륭하고 지성적인 자녀들이 있다. 그런 가정은 지역 사회에서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들은 올바른 방향에서 강한 감화력을 발휘한다.
-576-
치료를 받으러 위생병원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진리의 지식에 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육체에 치료를 받을 뿐 아니라, 어두워진 마음의 방들을 귀하신 구주의 사랑의 빛으로 밝히게 된다. 그러나 그 기관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먼저 지혜의 하나님과 연결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빛의 통로가 되었다면 참으로 많은 선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세상의 습관과 관습들, 외모의 자랑, 이기심, 자기 찬양의 정신이 너무도 자주 침범해 들어오며, 그분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죄가 하나님께 심히 혐오스럽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또한 그들을 통하여 능력 있게 일하실 수 없다.
세속적인 업무에 불성실한 자들은 영적인 사물에서도 불성실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요구에 등한하면, 인간의 요구에도 등한하게 된다. 불성실은 이 타락한 시대에 널리 퍼져 있다. 그것은 우리의 교회들과 우리의 기관들 안에도 미치고 있다. 그 불쾌한 자국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이것은 이 시대의 비난받을 죄들 중 하나이며 수천 수 만의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만일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 기관들에서 진리를 공언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대표자로 살았다면 어느 곳에서나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게서 나가게 될 것이다. 사단은 이것을 잘 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능력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역사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통하여 확대되지 못하게 한다. 향기가 되고 그분의 사업에 영광이 될 자들의 무가치한 생애와 거짓된 품성을 통하여 예수님이 얼마나 모독을 당하는지를 볼 때 나의 마음은 아프다.
광야에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유혹들-식욕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참람-은 사람들이 가장 빈번히 정복당하는 크고 중요한 세 유혹물들이다. 위생병원의 관리자들은 자주 이런 기관을 관장해야 하는 원칙들로부터 떠나도록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벽들을 만족시키거나 부유한 환자들이나 친구들의 타락한 식욕에 맞추기 위하여 바른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 길의 영향은 악이 될 뿐이다. 강의나 인쇄물을 통하여 가르친 교훈에서 떠나는 것은 그 기관의 감화와 교훈에 가장 불리한 영향을 끼치게 되고, 타락한 식욕과 정욕의 희생자들을 가르치고 개혁시켜서 그들을 유익하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신 그리스도께로 이끌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크게 중화시킬 것이다.
-577-
악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영향은 환자들뿐만 아니라 일꾼들에게도 미치게 된다. 장벽들이 일단 무너져 버리면 잘못된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가게 된다. 사단은 신앙심이 없는 자들의 찬동을 얻기 위하여 원칙에서 떠나고 정직과 그리스도인의 명예를 희생하는 자들에게 찬란한 세상의 전망을 제시한다. 그의 노력은 너무도 자주 성공을 거둔다. 그는 배척과 패배를 직면해야 할 곳에서 승리를 얻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사단을 대항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약한 결의와 결심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 구주의 모본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지되 혼자서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승리를 얻지 못하는 각 영혼은 그의 영향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도 넘어지게 한다.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자신의 생애를 품위 있고 고상하게 하기 위하여 지혜와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자들은, 그들이 소유할 수 있었지마는 정신의 세속성과 성화되지 못한 자들과의 우정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이룩하지 못한 선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온 하늘은 사람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고 하신 조건과 일치될 때 하늘의 은혜로운 선물들을 그에게 부어 주고자 준비하고 있다.
위생병원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교의 표준을 낮추고, 이 기관을 다른 기관들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게 하고, 그곳에 관련된 자들의 정신에 참된 경건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성격의 오락들이 존재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속적이거나 연극적인 오락은 위생병원의 번영을 위해서나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런 종류의 오락을 가지면 가질수록 이와 유사한 무엇인가가 계속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그들은 점점 덜 즐거워 할 것이다. 정신은 새롭고 흥분적인 어떤 것, 소유해서는 안되는 바로 그것을 찾는 불안의 열정 가운데 놓인다. 그리고 이런 오락들을 일단 허용하게 되면 그것들이 다시 기대되고, 환자들은 시간을 요하는 어떤 단순한 배려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흥분이라기 보다는 휴식이다.
-578-
이런 오락들이 소개되자마자 극장 가는 데 대한 반론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제거된다. 그리고 도덕적이고 고결한 장면들이 극장에서 상연되어야 한다는 호소는 마지막 보루를 무너뜨린다. 위생병원에서 이런 류의 오락들을 허용하고자 하는 자들은, 이 불쌍하고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을 기쁨과 평화와 행복의 근원되시는 분에게로 이끌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구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바른길에서 일단 떠나게 되면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다. 장벽들이 제거되면 그릇된 방향에서의 한 걸음은 또 다른 걸음을 위한 길을 마련한다. 한 잔의 술이 취객의 습관으로 끌어갈 유혹의 문을 열 수가 있다. 품고 있는 단 하나의 복수심이 살인으로 종결되는 일련의 감정에 이르는 길을 열 수도 있다. 정의와 원칙으로부터의 최소한의 일탈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에 이르게 하며 배교로 끝을 보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한 번 하는 일은 더욱 쉽고 자연스럽게 다시 하게 된다. 그리고 옳은 길이든 그릇된 길이든 간에 어떤 길을 가는 것은 출발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품성에 의와 진리의 습관을 부식시키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길을 타락시키는 것이 시간과 노력이 적게 든다. 그 영향이 선한 것이든지 악한 것이든 간에 사람이 습관을 붙인 것은 무엇이나 버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위생병원의 관리자들은 무엇인가 새롭고 흥분적인 것에서만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류의 정신들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즉시 쉽게 결론내릴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이 그들의 생애 동안에 지적 식물 (食物) 이 되어 왔다. 육체적인 소화 불량자들이 있는 것처럼 정신적인 소화불량자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육체의 질병보다는 영혼의 질병으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생명의 샘이 되는 그리스도께로 오기 전에는 구원을 발견할 수 없다. 피로와 고독과 불만족에 대한 불평들이 그 때에 그치게 될 것이다. 만족한 기쁨이 마음과 건강에 활력을 주고 육체에 생명력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