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4 529-538 (251일)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굴욕의 날들에 지상에서 가시적 (可視的) 으로 움직이셨던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영을 통하여 사실 그대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시간의 경과가 그분께서 하늘로 떠나시면서 당신의 사도들에게 하신 고별의 약속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분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계속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최초의 믿음의 교사들로부터 권위를 이어받는 사람들의 계승이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정하셨다. 위대한 교사께서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당신의 종들에게 능력을 위임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대사들이 당신의 교훈과 지도를 기다리기만 하면 그들의 사업을 감독하실 것이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대표자가 된 목사들은 기도의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의무와 시련을 위하여 강화되고 확고해지기 위해, 그들의 입술이 제단에서 취한 핀 숯불에 닿으므로 거룩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할 수 있기 위해, 부인될 수 없는 열성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탄원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구속주께서 드린 기도의 결과를 누가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기실 그 때에, 그분의 신성이 인성으로 가리워진 동안의 그분의 열렬한 기도의 가치를 보고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한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당신의 모든 제자들을 위해 간구하셨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그분의 눈은 미래의 어두운 휘장을 뚫고 모든 아담의 자녀들의 생애의 역사를 읽으셨다. 그분은 심한 폭풍중에 있는 모든 영혼의 짐과 슬픔을 느끼셨고, 그 열렬한 기도에 당신의 살아 있는 제자들과 함께 세상 끝까지 있을 당신의 모든 추총자들을 포함시키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그렇다. 그리스도의 그 기도에는 우리들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간구를 하나님 앞에 제시해 주는 위대한 중보자가 하늘에 계신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아야 한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가장 긴박한 사태의 시간, 낙담이 심령을 압도하고자 하는 때, 그 때가 감찰하시는 예수님의 눈이 우리에게 그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시는 때이다. 인간의 위기의 때는 하나님의 기회의 때이다. 모든 인간적인 도움이 실패될 그 때에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러 오신다. 그리하여 그분의 임재가 어둠을 흩어버리고 음침한 구름을 거두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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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바다 위의 작은 배, 폭풍과 어둠 속에서 제자들은 육지에 이르고자 애를 썼지만 그들의 모든 노력이 성공을 거두지 못함을 깨달았다. 절망이 그들을 둘러쌌을 때, 예수께서 거품이 이는 큰 파도 위로 걸어오심을 보았다. 처음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임재까지도 분별하지 못했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이 그들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희망과 기쁨을 그들에게 주기까지 그들의 공포는 더해 갔다.

이 두드러진 사건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경험을 예시한다. 얼마나 흔히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가 충분한 것처럼 노를 젓는가. 그러나 마침내 우리의 노력이 쓸데 없음을 발견한다. 그 때에 떨리는 손과 기진맥진한 힘으로 우리는 사업을 예수께 넘겨주면서 그 일을 이룰 수 없음을 고백한다. 우리의 자비로운 구속주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즉시 믿음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가 그분께 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업을 맡으셔서 우리에게 그처럼 어렵게 보였던 것을 너무도 쉽게 이루신다.

고대 하나님 백성의 역사는 용기를 주는 유력한 기도에 대한 많은 예증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아말렉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진영을 공격해 왔을 때, 모세는 그의 백성이 대항할 준비가 안된 것을 알았다. 그는 일단의 군인들과 함께 여호수아를 보내어 원수를 대항하게 해 놓고 아론과 훌을 데리고 전쟁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그 하나님의 사람은 그들에게 승리를 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께 그 사건을 제시했다. 모세는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뻗고 이스라엘 군대의 성공을 위하여 열렬히 기도했다. 그의 팔이 위를 향하여 뻗혀 있는 동안은 이스라엘이 원수에게 이겼으나 피곤하여 팔이 아래로 떨어질 때는 아말렉이 이기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론과 훌은 승리, 충분하고 완전한 승리가 이스라엘 편으로 돌아오고 그들의 원수들이 전쟁터에서 쫓겨갈 때까지 모세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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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는 마지막 때에 온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힘이시라는 교훈이 되어야 하였다. 이스라엘이 승리했을 때 모세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뻗고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온 이스라엘이 승리할 때는 능력 많으신 분이 그들의 사건을 맡아서 그들을 위하여 전쟁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무활동 상태로 남아있으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수를 정복해 주시도록 구하지 않았고 그렇게 될 것으로 믿지도 않았다. 그는 그의 모든 군대를 정열시켜 그들의 재간으로 할 수 있는대로 최선껏 준비하여 그들을 내보내면서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하나님께 가져간다. 여호수아가 그의 용감한 추종자들과 함께 산 아래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원수들을 맞이하여 격퇴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동안 모세는 산 위에서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었다.

열렬하고 믿는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는 매우 유용하고 효능 있고 강렬한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반드시 응답해 주지는 않으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것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지혜로써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팔이 피곤할 때 믿음과 기도로 그 팔을 붙들어서 강하게 해 주는 성실한 아론과 훌을 가진 목사는 행복하다. 그와 같은 지원은 사업을 맡은 그리스도의 종에게 강력한 도움이 되고 흔히 진리의 사업이 영광스럽게 승리하도록 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므로 범죄한 후에, 모세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하여 다시 나아간다. 그는 그의 보호 아래 있던 자들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마음의 사악함을 알고 있으므로, 그가 대항해야 할 어려움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는 경험을 통하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먼저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종의 마음에 있는 진실과 사심없는 목적을 읽으시고 마치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연약한 사람과 대면하여 교통하고자 같은 수준이 되신다. 모세는 자기 자신과 그의 모든 짐을 완전히 하나님께 던지고 자유롭게 그의 심령을 그분 앞에 쏟아놓는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종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의 간구를 듣기 위해 몸을 굽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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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위대한 사업에 부적합함을 깊이 깨닫는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가시도록 강렬한 열성으로 간구한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는 대답이 주어진다. 그러나 모세는 여기서 중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서 그분의 실제적 임재에 대하여 더 강한 보증을 얻고자 열망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짐을 지고 있다. 그는 압도적으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그는 마치 그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강한 죄책감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무정한 마음과 완고한 마음 그대로 버려두실 때 그 무서운 결과에 대한 생각이 그의 심령을 누르고 있다. 그들은 모세를 죽이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무분별과 사악 때문에 그들은 미구에 원수들의 먹이가 되고 하나님의 이름은 이교도들 앞에서 모욕을 당할 것이다. 모세가 너무도 강한 열성과 열정으로 간구하기 때문에 대답이 주어진다.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이제 우리는 정말로 그 선지자가 간구하는 일을 중지하기를 기대해 볼만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성공으로 담대해진 그는, 우리로서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거룩한 친밀감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자 모험한다. 그는 이제 그 이전에 어떤 사람도 하지 않았던 요구를 하게 된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사람에게서 이런 간구가 나오다니! 그렇다면 그가 거절을 당했는가? 하나님께서 참람되다는 이유로 그를 책망하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라는 은혜로운 말씀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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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을 벗은 하나님의 영광은 어떤 사람도 쳐다보고 살 수가 없었지만 모세는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그대로의 상태에서 그가 견딜 수 있는 범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보증을 받았다. 세상을 창조하고 산들을 각각의 자리에서 붙들고 있는 그 손이 흙으로 된 이 사람, 이 강한 믿음의 사람을 취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선하심이 그의 앞으로 지나가는 동안 반석 틈에 있는 그를 덮으신다. 우리는 전능하신 분에게서 반사된 지극한 영광이 모세의 얼굴을 너무도 밝게 했으므로 사람들이 그 빛을 쳐다볼 수 없었다는 것을 이상히 여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흔적이 그에게 있었고, 그를 보좌에서 나온 빛나는 천사들 중 하나처럼 만들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경험,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임재가 그와 함께 한다는 보증은, 애굽의 학문이나 군사, 과학에서의 그의 모든 학식보다도 모세에게 있어서는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더욱 가치가 있었다. 세상의 어떤 권세나 기술이나 학문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의 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 모세의 역사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통이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알 수 있다. 범죄자에게 있어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그처럼 무서운 위엄 가운데 선포된 그 율법의 창시자와 단 둘이 있게 된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심령이 그의 창조자의 뜻과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펴 놓는 것이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이 매우 가까이 계심을 깨닫게 되고, 간구자는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에 대해 귀중한 증거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많은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윗은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고 말한다. 주께서는 다른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고 우리에게 약속하신다. 다시 그는 마음을 다하여 내게 부르짖지 않은 어떤 사람들에 관하여 말한다. 그런 탄원은 형식화된 기도요, 입술만의 의식이기 때문에 주께서 받아주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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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드린 기도는 진실한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에 주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대하여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고 그들의 동기와 목적을 이해하신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그분께서는, 자아를 높이지 않고 자신의 큰 약점과 무가치함을 진정으로 느끼고 그분께 마음을 여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를 지체하지 않으신다.

가장 열렬하고, 열정적이고, 번민하는 기도, 다윗이 부르짖으면서 드린 그런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율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이것이 훌륭한 시편 기자가 소유한 것과 똑같이 씨름하는 기도의 정신이다.

다니엘은 자기 자신을 높이거나 어떤 선행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것이 야고보가 열렬하고 역사하는 힘이 많은 기도라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라고 말한다. 하늘의 왕께서 드린 이 중보에 비하면 하나님께 드려진 연약하고 무관심한 기도들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많은 사람들이 입술의 봉사로 만족한다. 그러므로 진지하고 열렬하고 애정어린 열망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는 별로 없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그분의 뜻에 대한 깊은 지식을 심령에 제공한다. 그러나 믿음을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회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아버지와의 교통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결코 느끼지 못했다. 기도하면서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서 기도하는, 그들의 생애는 악의와 속임과 질투와 시기와 이기심으로 충만해 있다. 이런 종류의 기도들은 하나님께 가증하다. 진실한 기도는 심령의 활력을 보증하고 생애를 감동시킨다. 그와 같이 자기의 소원들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는 자는 하늘 아래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마음이 비어 있음을 느낀다. 다윗은 말했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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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증가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더 넓은 계획들이 세워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열렬한 경건과 그리스도인의 단순과 열성적인 헌신에 대해서는 특별한 증가를 보지 못한다. 교회는 회심의 첫째 단계만을 취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그들은 겸손한 헌신을 위한 준비보다는 적극적인 활동을 위한 준비를 더 많이 하고, 마음의 내적인 사업에보다는 외적인 신앙 활동에 임할 준비를 더 갖추고 있다. 명상과 기도는 큰 소동과 과시 때문에 등한시된다. 신앙은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과 함께 시작되어야 하고 매일의 기도로 양육되어야 한다.

우리 사업의 착실한 발전과 증가된 시설들은 우리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만족과 자존심으로 채우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를 대신할까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사업일지라도 기계적인 부분들에서의 분주한 활동이 정신을 크게 점유하므로 기도가 등한시 되고, 제 방식대로 하기를 재촉하는 자존과 자만이 참된 마음의 선량과 겸손과 겸비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그리하여 열성적인 외침이 들릴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그러나 짐을 지는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스라엘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어디에 있는가? 영혼들을 위한 짐을 마음에 지고 동료 인간들에 대한 친근한 동정심을 가지고 영원한 멸망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어떤 처지에도 처할 준비를 갖춘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고 말씀하신다. 어떤 책임을 말함인가! 우리의 쇠해가는 열성과 시들어가는 영성을 초월하여 금식과 굴복과 기도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 우리의 설교자들 중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당연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과 능력이 결핍된 어떤 자들이 새 지역에 들어갈 때, 그들은 다른 교단들을 공공연하게 공격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일반 교회들의 모순들을 제시함으로써 진리의 백성들을 확신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것은 우리의 사업에 대하여 편견을 일으킬 뿐이며, 그렇지 않았다면 진리에 귀를 기울일 뻔했던 많은 사람들의 귀를 막아 버린다. 만일 이 교사들이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면 그들은 하늘의 지혜를 갖게 되어 백성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진리에서 떠나가게 한 흑암과 오류, 흥분과 편견을 그렇게 빨리 잊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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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사들이 주님의 정신으로 일을 했다면 매우 다른 결과가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겸손과 오래 참음, 온유와 사랑, 그리고 단호한 열성을 가지고 그들은, 오류에 빠진 그 영혼들을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구주께로 이끌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사람들의 심령을 움직이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위대한 사도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라고 말한다. 가련한 사람들에게 준 그 특권이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 기 위하여 영적 무기들을 공급받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늘의 병기고에서 천둥 번개만을 취하는 것 같다. 이런 잘못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해야 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인 사업에 임하고 있는 동안 그 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등한히 한다. 그들은 성경의 해석을 듣기 위해 매일 밤 출석함으로 관심을 나타낸 자들을 방문하고 그들과 친근해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과 나누는 신앙적인 주제에 관한 대화, 함께 드리는 열렬한 기도는 많은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에 서게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하는 목사들은 양 무리의 진정한 목자들이 아니다. 관심을 가진 이런 사람들을 방문하고 대화하고 기도함으로써 가장 활동적이어야 할 바로 그 시간에 어떤 사람들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쓸데 없이 긴 편지들을 쓰고 있을 것이다. 아,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은혜의 시기가 끝날 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돌아가신 그들의 사랑하는 주께 바쳐야 할 봉사를 등한히 한 기회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성실한 인정을 받았던 자들까지도 그들의 마음이 세상의 환경으로 전환되지 않았다면 그들이 이루었을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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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자들에게 사업에서 결코 낙심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못하는 가장 완고한 죄인이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도록 탄원하는 바이다. 그런 사람들이 진리의 사랑으로 진리를 받아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다. 강물이 방향을 돌리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자는 가장 이기적이고 죄로 굳어진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와 굴복시킬 수 있다. 무엇인가 하나님이 하시기에 너무 어려운 것이 있는가? 그분께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축복의 말씀을 게으른 자, 이기적인 자, 무사 안일한 자, 곧 그분의 사업에서 짐을 지지 않는 자에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 “잘 하였도다” 라는 말씀은 잘 한 자들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각 사람은 “그의 일한대로 상급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활동적인 목사,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라고 말한 야곱처럼 하나님과 씨름할 기도의 사람을 원한다. 만일 우리가 승리자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모든 힘을 다 써야 한다. 우리는 무활동 상태에서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주님의 포도원에서 게으른 자가 되면 의인의 상급에 대한 모든 자격을 포기하게 된다.

51 장 — 경고와 훈계

1879년 11월 23일, 우리에게 있는 기관들과 거기에 관련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의 의무와 위험들에 관하여 몇 가지 것들이 내게 보였다. 나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되고, 지도되고, 지배되어야 할 하나님의 기구들로서 특별한 사업을 하도록 세움을 입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응해야 하며, 그들이 그들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그들 스스로에게 가장 유익하게 판단되는대로 그들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비록 의롭게 되고 의를 행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일지라도 그들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끊임없이 배우는 자들이 되지 않으면 그들은 가장 분명하게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안전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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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들이 모든 길을 에워싸고 있다. 그러므로 승리자가 되는 자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도성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억제할 강한 품성의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영의 지배 아래 있게 되면 이 특성들은 축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그것들은 저주로 판명될 것이다. 만일 지금 인기의 파도를 타고 있는 자들이 현기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비의 기적일 것이다. 만일 그들이 같은 처지에 있던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한 것처럼 그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한다면 그들의 지혜가 어리석은 것임이 판명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이기심없이 자신을 바치고 원칙에서 추호도 벗어나지 않는다면 주께서는 영원한 팔로 그들에게 강한 조력자가 되심을 입증해 주실 것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사업에 필요한 재능을 소유한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이 시대는 위험한 시대이다. 왜냐하면 사단이 그런 사람에게 유혹의 손을 끊임없이 뻗고 교만과 야망으로 부풀게 하고자 언제나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고자 할 때 너무도 흔히 그는 독존적이요 자부심이 강한 상태가 되어 혼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중단 없는 믿음과 기도의 생애를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여러분의 위험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영원한 사물에 대한 깊고 영속적인 의미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생애를 통하여 보여주신 인류에 대한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 하늘과의 밀접한 연결은 그대들의 충절에 대하여 올바른 의미를 주고 그대들의 성공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의존의 각성은 그대들을 기도하게 할 것이고, 그대들의 의무감은 그대들을 노력하게 할 것이다. 기도와 노력, 노력과 기도는 그대들의 생애의 직무가 될 것이다. 그대들은 능률과 칭찬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인양 기도하고 의무는 모두 그대들 자신의 것인양 노력해야 한다. 그대들이 능력을 원한다면 그대들은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 그것은 그대들이 가져다 쓰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직 하나님만 믿으라. 그분의 말씀 그대로 그분을 소유하라. 믿음으로 행동하라. 그리하면 축복이 주어질 것이다.

교회증언 4권 pp. 529-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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