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형제는 자신의 일에 적합하지 않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그의 품성은 흠이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돌보는 자, 일꾼, 짐을 지는 자가 되도록 교육받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행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으며,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할 일을 알도록 준비되지 못했다. 그는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주장한다. 그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온전히 헌신하고 그리스도의 목회자의 사업에 대한 엄숙함과 책임을 완전히 깨달을 때, 그는 자신이 그 일에 전적으로 불충분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는 여러 면에서 결함이 있다. 그의 결함은 우리 사업과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품성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세상에 남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재현될 것이다. 그는 일찍이 유한한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책임 있는 일에 종사하기에 적합한 자가 될 수 있기 이전에 실생활의 부담과 의무를 잘 알아야 한다. 모든 젊은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자가 되기 이전에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젊은이들을 목회 사역에 들어가도록 고취시킬 때, 그들이 종사하게 될 사업을 위하여 그들에게 적합성을 갖도록 강권하고 장려할 권한을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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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형제는 돌보는 자, 짐을 지는 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부주의함과 불완전이 그들이 행하고 있는 모든 일에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대화와 행동에 분별이 없다. 모든 복음의 목회자들을 특징지어야 할 엄숙하고 높고 고상한 감화는, 그들이 신령한 모본을 따라 변화되고 꼴 지어질 때까지는 그들의 생애에서 나타날 수 없다. 그들 각자에게는 다소간 이기심이 있으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있다. 하나님의 사업에 부적합한 이 젊은이들에게 자만과 자아 존중의 정신이 있다. 그들은 그분의 사업에 종사하는 일꾼들로 하나님께 가납되기 이전에 자신들을 철저하게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극복되어야 할 본성적인 게으름이 있다. 그들은 생애의 세속적인 일에 있어서 신실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배우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보다 작은 책임에 있어서 현저한 성공을 보인 후에야 더 큰 일을 맡기기에 적합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합회들은 이런 유용하지 못한 일꾼들이 없음으로 훨씬 더 낫다. 영혼에 대한 부담이 헌신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놓여질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어린이에게 놓여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들은 중요한 경건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심지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이전에라도 철저한 회심이 필요하다.
F형제는 우리 대학에서 철저한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의 언어는 불완전하다. 그의 행동은 거칠며 세련되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있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전적으로 속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증언에 대하여 진정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는 진리를 주의 깊이 연구하지 않았으며 그것들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는 그처럼 영성이 부족하는 한, 증언의 가치도 그것의 진정한 목적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젊은이들은 성경을 읽지만, 모든 선한 일에 완전히 구비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고 겸손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는 거의 경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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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대한 진정한 부담을 전혀 갖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을 현장에 들여보내도록 고취시키는 데는 큰 위험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일으키며 논쟁에 가담할 수 있을 것인데, 그들은 결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자신의 범위를 확대할 것이다. 우리는 온전하지 못하고 결함이 있는 목회 사역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들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그들이 관대한 취급을 받는 모든 곳에서 도덕적인 표준과 종교적인 표준을 낮추게 될 것이다. 한 모본되시는 분, 곧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어졌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로라.”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실수 없는 권면을 받고 있다. 그 가르침이 실제적으로 활용될 때 사람들을 어떤 의무의 자리에도 적합하게 할 것이다. 영혼에게 날마다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젊은이들은 얼마나 주의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하며, 그 교훈이 모든 행위를 지배할 수 있도록 그 감명을 심령에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인가. 우리 젊은 목회자들과, 때로 설교하는 자들은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현저한 결함을 보였다. 성령의 일은 어두워진 이해력을 밝히고, 이기적이고 강퍅한 심령을 녹이며, 반역적인 죄인들을 굴복시키고, 그를 세상의 부패시키는 영향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다. 제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는 이것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은 죄인의 마음을 파고들어 그것을 조각낸다. 진리의 이론이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영혼에 그 거룩한 영향이 느껴지지 않고 단지 되풀이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심령에 아무런 힘도 없고 오류처럼 거절될 것이며, 설교자는 영혼을 잃은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 우리는 목회자들은 회심한 사람, 겸손하고 온유하고 심령이 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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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회 사역에는 결정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목회자의 적합성에 대하여 보다 비평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모세는 그의 양떼들을 돌보고 사려깊게 대하며 부드럽게 배려하는 일에 있어서 체험을 하도록 하나님의 지도를 받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책임지도록 그를 부르실 때 신실한 목자로서 준비될 수 있기 위함이었다. 진리를 전파하는 위대한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체험이 필수적이다. 영혼들을 생명의 샘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먼저 자신이 그 샘에서 마셔야만 한다. 그는 타락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무한한 희생을 알아야 하며, 그 자신의 영혼이 다함이 없는 사랑의 정신으로 고취되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행하기 힘든 일을 하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불평하지 않고 그것을 해야 한다. 그 길이 어렵고 위험하다면 겸손하게 그것을 따르고 힘을 얻기 위해 그분께 부르짖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비교적 어려움과 시련을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을 순교자라고 여기는 어떤 목회자들의 경험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 구원의 주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길을 감사함으로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목회자의 사업은 수고에 있어서 더 엄숙하고 결과에 있어서 더 중요하므로, 사업적인 거래에 쏟는 것보다 더 큰 신실함과 능력과 열심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매일의 일은 “잘 하였도다” 라고 영원한 기록을 통해 말해져야 한다. 수고할 다른 날이 주어지지 않을 것처럼 그 일이 온전히 마쳐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목회자들, 특히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거룩한 사업에 적합하도록 하고 순결한 천사들과 교제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깨달아야 한다. 하늘집에서 살기 위해, 우리는 여기서 우리 심령에 하늘이 자리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에 어떤 부분도 맡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목회 사역은 성화되지 않은 목회자들에 의해 더럽혀져 왔다. 목회를 위한 높고 보다 영적인 표준이 없다면 복음의 진리는 점점 더 힘이 없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밭의 풍요한 토양으로 대표된다. 적절하게 경작되지 않으면 그것은 무지의 가시와 덤불로 뒤덮이게 된다. 마음과 심령은 매일 교육시키는 일이 필요하며, 이것을 소홀히 하면 악을 생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더 많은 천부적인 능력을 주셨다면 그는 더 크게 향상해야 하며, 그의 시간과 달란트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할 더 큰 책임이 있다. 마음은 잠자는 상태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것이 지식을 얻는 데 활용되지 않는다면, 무지와 미신과 망상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만일 지적인 능력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해야 할만큼 배양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파멸로 이끄는 강하고 힘있는 기구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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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거만하고 독단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하는 한편, 그들은 끊임없이 현저한 향상을 이루어야 한다. 그들은 품성의 보다 더 고상하고 관용적인 특성을 배양하기 위해 모든 기회를 받아 들여야 한다. 만일 젊은이들이 매순간 하나님을 의뢰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향한 영혼의 호흡인 기도의 정신을 품으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F 형제와 G 형제가 하나님의 영의 활동을 전혀 모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 일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완전히 감싸서 그들의 큰 결핍을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증언을 경박하게 말하며, 자신들의 견해를 말하고 이것 저것을 비평하며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그들은 입을 다물고 먼지 가운데 얼굴을 파묻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증언의 영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의 초보자들이며 종교적인 경험에서 난쟁이들이다. 사업에서 얻어져야 할 위대한 승리들은 힘든 논쟁이나 많은 재간, 많은 영향이나 풍부한 수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렬하고 고뇌하는 믿음으로 능력의 강한 팔을 신뢰할 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도실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야곱이 무력한 형편 가운데 완전히 엎드려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는 솔직한 고뇌 중에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고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천사는 놓아주기를 간청했으나 야곱은 자기가 붙잡고 있는 것을 놓아주고자 하지 않았다. 육신의 통증으로 고통하며 다친 이 사람은, 산 믿음이 담긴 담대함으로 신실한 간청을 내놓았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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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는 깊은 신비가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지 않은 마음으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다. 또한 구속의 계획에도 탐구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데, 이것은 유한한 마음으로는 결코 해석할 수 없다.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은, 드러난 사물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조사하고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영적인 깨우침을 갖지 않으면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데 일생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빛을 간직하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사용한다면 그들은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적인 학교이며, 이곳에서 그분은 생애의 진정한 목적을 알 수 있도록 사람들을 언제나 이끄실 것이다. 이 학교에서 신령한 교사에 의해 가르쳐지는 교훈에 부지런히 주의를 집중하여 배우기에 너무 어리거나 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분은 참 목자이시며 그분은 그분의 양떼를 이름으로 부르신다. 방황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음성이 이렇게 들린다.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생애의 일시적인 의무에서 결코 성공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높은 의무를 수행하는 데 역시 준비되지 못할 것이다. 종교적인 체험은 투쟁과 실망과 극심한 자아의 훈련과 신실한 기도를 통해서만 얻어진다. 산 믿음은 약속들을 주저함 없이 붙잡아야 하며, 그렇게 될 때에 많은 사람들은 야곱이 말했듯이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되 내 생명이 보존되었도다” 라고 말하면서 빛난 얼굴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위로 하늘을 향한 발걸음은 한 번에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하며, 모든 나아가는 발걸음은 다음을 위해 우리를 강하게 한다. 인간의 심령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변화시키는 능력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게을러서 필요한 노력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업을 위한 적합성을 갖추지 못했을 때 젊은 목회자들이 돌아다니며 시중을 받으면서 배우는 교훈은 그들에게 부패시키는 감화를 끼친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지키고 있지 못한다. 그들은 견고한 원칙으로 균형을 잡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듯이 말하며, 이렇게 해서 그들을 교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잘못 인도된다. 그런 사람 하나는 여러 사람이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상충할 수 있는 회의주의를 마음에 심어 주게 된다.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호한 말을 하고 비평하고 의심을 일으킬 것을 찾는 일을 좋아하며, 이것이 예리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것 대신에 세련됨과 고상함이 결여되었음을 보여준다. 자신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마음을 높이며 고상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가. 꽃이 태양의 밝은 광선을 받아 자신의 아름다움과 균형진 미를 완전하게 하는 데 도움을 얻듯이, 청년들도 의의 태양을 향하여 돌이켜 하늘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어 그들의 품성을 완전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물에 대하여 깊고도 내재하는 경험을 주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신령한 빛의 광선을 반사하게 될 것이다. 의심과 불신과 회의주의를 모으고자 하는 사람들은 은혜나 영성 안에서 자라는 경험을 하지 못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엄숙한 책임을 위해 적합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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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다가오는 운명에 대하여 경고를 받아야 한다. 죄악과 오류 중에 누워 있거나 졸고 있는 자들은 너무 깊이, 죽은 것 같아서 널리 깨어 있는 목회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그들을 깨울 필요가 있다. 목회자들이 회심하지 않는 한, 백성들도 회심할 수 없다. 우리 중에 지금 편만한 냉랭한 형식주의는 체험적인 경건의 살아 있는 활력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진리의 이론에는 잘못이 전혀 없다. 그것은 완전히 분명하며 조화롭다. 그러나 젊은 목회자들은 진리를 유창하게 말하면서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에 대한 진정한 감각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하고 있는 진리의 가치를 알지 못하며 시련과 반대를 통해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기도와 눈물로 그것을 찾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희생했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진리의 사슬에 있어서 모든 새로운 연결은 정련된 금같이 고귀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연결들은 지금 완벽한 하나의 전체로서 연합되어 있다. 진리는 빛과 지식을 향한 신실한 기도로써 미신과 오류의 쓰레기로부터 캐내어진 것이며, 헤아릴 수 없는 고귀한 보화로 백성들에게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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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영원한 세계로부터 사람에게 주어지는 빛의 광선과 소망의 계시이다. 모든 빛이 한꺼번에 비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온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을 갈망하며 찾고자 하는 마음은 결코 만족할 수 없으며, 그들이 더 깊이 찾으면 찾을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깨닫게 되고 자신들의 눈멀었음을 발견할 것이다. 높고 고상한 성취를 이해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것인데, 만일 그가 사람의 노력을 모든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은혜와 결합시킨다면 그는 이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우리는 세상에 나타난 것 중에 가장 엄숙한 진리의 기별을 가지고 있다. 이 진리는 논쟁할 수 없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에 의해 점점 더 존중을 받고 있다. 이 사실에 비추어, 우리 젊은 사람들은 자기 신뢰와 자만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정신에 의해 발견된 진리를 취해서 연구나 혹은 신실한 기도 없이 반대를 만나고 논쟁에 가담하여 날카로운 말이나 재담에 빠져서 이것이 복음의 목회자들의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아첨한다. 하나님의 사업에 적합하게 되기 위해서 이 사람들은 바울이 경험한 것과 같은 철저한 회심이 필요하다. 목회자들은 그들이 전파하는 진리의 살아 있는 대표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들은 큰 단순함으로 특징지어지는 위대한 영적인 삶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백성들의 주의는 이끌어져야 한다. 우리의 기별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거나 사망에서 사망으로 이르는 향기가 된다. 영혼들의 운명이 저울질되고 있다. 대다수는 결정의 골짜기에 있다. 한 음성이 울부짖는 가운데 들려야 한다.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
즉각적이고 힘있는 그리고 열렬한 행동이 아직 결심하지 않은 영혼들을 구원할 것이다. 성령의 기름 없이 설교하려고 시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려질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모든 회중 가운데에는 주저하며 하나님을 위해 전적으로 거의 이끌려 온 영혼들이 있다. 시간과 영원을 향해 결심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목회자들이 자신의 심령에 진리의 기별의 영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저울질에서 흔들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직접적인 호소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 결과로, 죄를 깨달은 사람의 심령에 감명은 깊어지지 않으며, 그들은 오기 전보다 그리스도의 봉사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경향이 더 적어진 느낌으로 집회를 떠나게 된다. 그들은 보다 호의적인 기회를 기다리자고 결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오지 않는다. 가인의 제사와 같이 이 불경건한 설교는 구주가 빠졌다. 황금 기회는 상실되었으며, 이 영혼들의 사건은 결정되었다. 무관심한 방법과 영혼에 대한 부담 없이 설교하는 것이 너무나 위험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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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덕적 흑암의 세대에 영혼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건조한 이론보다는 무엇인가가 더 필요할 것이다. 목회자들은 하나님과의 산 연결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믿음으로 설교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의 입술에서 떨어지는 산 진리는 죄인들을 떨게 하고 죄인들은 크게 울부짖을 것이다.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로다. 나는 완전히 여호와의 편에 서기로 결심한다.’” 하나님의 사자는 위로부터 오는 위대한 빛과 능력을 위한 그의 노력을 결코 그쳐서는 안 된다. 그는 좌절과 흑암 중에서 노력하고 기도하고 소망을 품고 성경의 완전한 지식을 얻기 위해 결심하고 어떤 값싼 것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유익을 얻는 한 사람의 영혼이 있는 한, 그는 매번 노력할 때마다 용기를 가지고 전진해야 한다. 이루어져야 할 사업, 신실한 사업이 있다.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떠나거나 내버려두지 않겠다” 고 말씀하시는 한, 의의 면류관이 승리자들에게 주어지는 한, 우리의 대언자께서 죄인을 위해 탄원하시는 한,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은 지침이 없는 에너지와 불굴의 믿음으로 소망 중에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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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의 진리가, 그들의 심령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의 접촉되지 않은 젊고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수행될 때 그 사업은 시들고 만다. F와 G형제는 기도하기보다는 논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노력하기보다는 만족하면서 이 시대를 위한 사업의 엄숙한 특성을 사람들에게 감명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말씀을 받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준다고 감히 주장하는 자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진리와 그들이 행하는 영향에 대해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들의 소망은 자신들 안에 있지 않고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또한 그들을 통해 하실 것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명함과 재능에 사람들의 주의를 끌면서 자만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느끼며 주께서 가신 자아 부정의 길로 발길을 옮기며 영적 활력을 가지고 일할 것이다. 매 발걸음마다 자기 희생이 보일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에서 더 많이 일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으로 인해 통곡할 것이다. 그들의 길은 시련과 투쟁의 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을 통해 완전을 이루신, 그들의 구원의 대장이신 구속주의 발자국으로 특징지워질 것이다.
부목자들은 그들의 수고에서 목자장의 길을 가까이 따르고 그 정신을 나타내야 한다. 회의주의와 배교를 도처에서 만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심령이 강철과 같이 진실되고 고결함에 굳게 서서 상황에 따라 주춤거리지 않는 사람들이 그분의 사업에서 일하기를 원하신다. 이 사람들은 시련과 우울함 가운데서도, 그들의 전망이 소망으로 밝게 빛나던 때와 외적인 모든 환경이 자신들이 바라던 대로 되던 때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사자 굴 속의 다니엘은, 왕 앞에서 하나님의 빛에 의해 빛나던 그 다니엘과 동일한 사람이었다. 잔인한 네로로부터 올, 자신이 알고 있는 선고를 기다리던 어두운 감옥 속의 바울은,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설교하던 동일한 그 바울이었다. 자신의 가장 어려운 시련과 가장 절망적인 환경 중에 심령이 하나님께 머무는 사람은 하나님의 빛과 인정이 자신에게 임해 있는 때, 가장 번영하던 때의 그 자신과 같은 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도 미치며 영원한 것을 붙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