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4 369-378 (235일)

그대의 다스리는 방법은 잘못되었으며, 결정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대는 인자하고 동정적인 아버지가 아니다. 그대가 비정상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킴으로써 그대의 자녀에게 어떤 모본을 끼쳤는가! 그대는 그대의 비뚤어진 훈련에 대해 하나님께 어떤 설명을 하게 될 것인가! 만일 그대가 그대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존중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그들에게 애정을 나타내야 한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결코 변명될 수 없으며, 그것은 언제나 맹목적이고 왜곡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행동 노선을 바꾸라고 요청하신다. 그대는 극복하기 위해 결정적인 노력을 한다면 직무에 있어서 유용하고 효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대의 견해를 표준으로 세우지 말 것이다. 주께서는 그대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될 수 있도록 그대를 그분의 백성에게 연결시키셨다. 그대의 생각은 왜곡되었으며, 그대는 이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정신이 변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지상에서 살았던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 사건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초래하였다. 그는 물 때문에 이스라엘 자녀들이 불평함으로 인해 크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에게 쏟아지는 당치도 않은 비난이 그로 하여금 한 순간, 그들의 불평은 그를 대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한 것이라는 것을 잊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모욕을 당했기 때문에 슬퍼하는 대신, 그는 흥분하여 불끈하게 되었고, 자기 의지로 참지 못하여 반석을 두 번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모세와 아론은 마치 기적이 자기들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들을 놓았다. 그들은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자신들을 높였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행위에 빠짐으로 궁극적으로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큰 약점을 드러냈다. 그는 현저한 자제의 결핍을 보였고, 불평하는 자들이 가졌던 비슷한 정신을 나타냈다. 그는 대중들 앞에서 인내와 관용의 모본이 되었어야 했다. 대중들은 그들의 실패와 불만, 그리고 불합리한 불평을 그의 편에서의 잘못 때문이라고 변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데 있었다. 지금까지 모세가 차지하고 있었던 명예의 자리는 그의 죄를 경감시켜 주지 않았으며, 그것을 크게 했다. 지금까지 흠없던 사람이 이제 타락했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흔들림 없는 신뢰의 긴 생애로 인해 그들의 죄가 간과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하나님의 영예가 되었던 사람이 격정을 나타냄으로써 품성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책임이 덜한 자리에서 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표자였다. 그러나 그 모습이 얼마나 심하게 망가졌는가! 모세는 범죄했으며, 그의 과거의 신임은 현재의 죄를 대속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은 후세대를 위한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실수가 없는 영감의 펜은 이 역사를 정확한 진실로써 기록해야 한다. 모든 미래의 사람들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도 죄를 정당화시키지 않는, 엄격한 통치자임을 알아야 한다. 모세와 아론은 보다 낮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에게 내려졌던 동일한 심판으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그들은 표현할 수 없는 심령의 고민이 있었지만, 복종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과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모본은 많은 사람들이 이것으로부터 배워야 할만큼 배우지 않고 건너뛰는 한 교훈이다. 죄는 죄되게 나타나지 않는다. 자아를 높이는 것은 그들에게 슬프게 보이지 않는다.

-370-

그러나 죄의 죄악됨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은 너무 좋으신 분이라 범죄자를 책망하지 않으신다고 스스로 아첨한다. 모세와 아론, 다윗과 그 외 수많은 사람들의 경우들은 말이나 생각에서나 행동으로 범죄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과 긍휼의 존재이시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행한 고별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 주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 가나안에 들어갈 특권을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호소는 단호하게 거절되었다. 가데스에서의 범죄는 공개적이었으며 현저했다. 그리고 범죄자의 자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리고 그 사람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판결은 더욱 확실하고 형벌은 더욱 분명하다.

-371-

사랑하는 형제여, 주의하라. 그대의 행로에 비치는 빛에 충실하라. 바울은 말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33 장 — 목사들의 헌신

3년 전, 주께서는 나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사물에 관한 이상을 주셨다. 나는 젊은이들이 진리를 설교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당시, 그들 중의 몇 사람은 진리를 아직 자신에게 받아들이지 않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그 때부터 진리를 붙잡고 다른 사람들을 그것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I 형제여, 나는 그대의 경우를 보았다. 그대의 과거의 삶은 그대로 하여금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초월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대는 본성적으로 자신의 힘만 신뢰하는, 이기적이고 자만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겸손하고 능률적인 그리스도의 목사가 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일터에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진리의 이론은 제시할 수 있으나, 진정한 경건은 부족하다. 만일 그대를 포함하여 복음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목사들이 매일 자아를 살피고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할 필요를 느낀다면,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줄 수 있는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그대의 말과 매일의 삶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가 되든지,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냄새가 될 것이다.

그대는 지성적으로 진리를 믿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대 앞에는 그대의 모든 생애의 행위와 심령의 모든 정서를 그대의 믿음과 조화시키는 일이 놓여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바로 직전, 그분의 제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는 이러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진리의 감화는 이해뿐만 아니라 심령과 생애에까지 영향을 미쳐야 한다. 참되고 실제적인 종교는 그것을 지닌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애정을 조절하도록 이끈다. 그의 외적인 행위는 진리로 성화되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대에게 단언하는데, 그대는 실제적인 경건이 대단히 부족하다. 목사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양떼에게 모본이 될, 그 위대한 사업에 성화되어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위대한 모본자,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백성들의 교사의 책임을 져서는 안된다. 성화되지 않은 한 목사는 헤아릴 수 없는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공언하는 동안, 그의 모본은 다른 사람들이 본뜨게 될 것이며, 그의 흠과 결점들은 그들 속에 다시 재현된다.

-372-

사람들은 우리의 출판물에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제시된 위대한 진리들을 유창하게 되뇌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교회내에서의 신앙의 퇴조를 열렬하게 지적으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백성들 앞에 복음의 표준을 유용하게 제시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느낌과 더불어 행위를 요구하는 그리스도인 생애의 매일의 의무는 더 중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그대의 위험이다. 실제적인 종교는 심령과 정신과 매일의 생활에 똑같이 그 요구가 적용된다. 우리의 신령한 믿음은 단순히 감정이나 행위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이 둘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같이 결합되어야 한다. 실제적인 종교는 성령의 역사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이 매체 곧 성령이 필요하며 범죄자들에게 그들의 잃어버려진 상태를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하나님의 영의 이 매체는 우리에게서 능력과 재능을 활용할 필요성을 제거하지 않으며, 우리의 모든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사람의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의 특별한 지도하에 있을 때, 이 땅에서 가장 좋은 목적에 이용될 수 있으며, 미래의 불멸의 생애에서도 활용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나는 만일 그대가 사업에 전적으로 헌신한다면 매우 성공적인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헌신하지 않으면 매우 형편없는 일꾼이 될 것임을 보았다. 그대는 세상의 구속주께서 하신 것처럼, 복음 설교자의 의무에 있어서 수고스러운 분야 즉, 종의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면에 그대처럼 부족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자신을 섬기는 데 대부분 일을 했는지, 혹은 사업을 위하여 일했는지, 그들의 시간과 재능을 하나님의 사업에 전적으로 바쳤는지, 혹은 강단에서 설교만 하고 나머지 시간을 그들 자신의 이익과 기호와 쾌락을 위해 바쳤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삯을 받는다.

-373-

하늘의 대주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왕복을 벗으시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매일의 생애에서 어떻게 실제적인 신앙을 실행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저주를 받아 완전히 시들고 망가진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는 목사의 올바른 모본을 보여 주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셨다. 그분의 모든 능력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쓰여졌으며, 그분의 생애의 모든 행위는 그 목적을 위해 행해졌다. 그분은 발로 여행하셨으며, 가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그분의 옷은 먼지가 가득했고, 여행으로 얼룩졌으며, 외모는 사람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분의 신령한 입술에서 떨어지는 단순하고 분명한 진리는 그분의 청중들에게 곧 그분의 외모를 잊게 하고, 사람이 아닌 그분이 가르치시는 교훈에 의해 매혹당하게 했다. 그분은 자주 온 종일 가르치신 다음, 밤을 기도로 새우셨다. 그분은 통곡과 눈물로 그분의 아버지께 탄원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구속하기 위해 온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우리의 구주처럼 밤새 기도하거나, 능력 있는 복음의 목사가 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의 아름다움을 보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구원을 받도록 인도하는데 있어서 효율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낮에 기도하는 데 시간을 바치는 목사는 몇 안된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차례 기도했으나,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루에 단 한 번도 기도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영혼을 낮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구주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에 관한 뚜렷한 교훈을 주셨는데, 특별히 복음의 목사들에게 주셨다. 지상에서의 그분의 사업이 거의 끝나고, 그분의 손에 모든 능력을 장악하신 채 그리고 그분의 머리에 온갖 영광을 쓰시고 자신이 내려 오셨던 아버지의 보좌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겸비를 쓰신 그분께서 하신 마지막 교훈 가운데 하나는 겸손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분의 제자들이 약속의 왕국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 될 것이냐에 대해 싸우고 있었을 때, 그분 자신은 종처럼 차리시고 그분을 주님이요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발을 씻기셨다.

-374-

그분의 봉사는 거의 마쳐졌다. 그분은 나누어 주실 몇 가지 교훈만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순결하고 점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겸손을 결코 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우리의 구속주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자주 회고해 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목사들과 그대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분과 같이 시험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구유로부터 갈바리까지 그리스도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날마다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특별히 그분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부분을 하나 하나 취하고, 상상으로 매 장면을 분명하게 포착해야 한다. 이렇게 그분의 가르침과 고통, 인류의 구속을 위한 그분의 무한한 희생을 명상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우리의 사랑을 일깨우고, 우리의 구주를 지탱했던 영예보다 더 깊이 물들 것이다. 만일 우리가 마침내 구원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참회와 믿음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수치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굴욕을 당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당신에게 떨어지는 책망과 모욕과 훼방을 받기로 동의하셨다. 흑암의 장막을 그분의 영혼에 뒤집어 씌우고 하나님에게 맞아 버림받으신 분으로서 그분에게서 그런 부르짖음이 나오게 만든 것은 우리의 범죄였다. 그분은 우리의 슬픔을 지셨으며, 우리의 죄악을 인해 슬퍼하셨다. 그분은 당신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죄를 위한 제물로 드리셨다.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고상하고 너그러운 것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명상하는 일에 반응할 것이다.

-375-

나는 우리의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많이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은 무한한 희생을 하게 했던, 구주의 비할 데 없는 사랑으로 심령이 부드러워지고 진정되기를 바란다. 진리의 이론과 관련하여, 만일 우리의 목사들이 진리의 영에 물든 마음을 가지고 말하며 실제적인 경건을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욱 많은 영혼들이 몰려들어 진리의 표준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의 심령은 인류를 위해 고통당하는 예수님의 무한한 관용과 긍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간구에 의해 감동을 받을 것이다. 이 중요한 주제들은 우리의 믿음의 교리적인 요점과 관련되어 백성들 가운데 더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으로 가득 차야 한다.

십자가의 힘 있는 논증은 죄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사람들이 고상하게 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당신의 아들을 선물로 내어 주셔서 수치와 사망을 당하게 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은 일생의 연구 대상이다. 나는 그대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연구하기를 요청한다. 만일 사람들의 칭찬과 동료들보다 탁월하게 되기를 열망하는 모든 거만하고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이, 그분께서 구속하기 위해 오신 바로 그들에 의해 거절당하고 멸시당하며, 침뱉음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가치와 비교하여 가장 높은 지상의 영광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면, 유한한 사람이 주는 모든 영광이 얼마나 하찮게 나타날 것인가!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는 그대의 일을 불완전하게 성취하면서도 그대가 어떤 자리에도 적합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대는 아직 자신을 통제하기에도 충분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대는 기꺼이 지도를 받고 배우는 자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야 할 때, 경험 있는 사람들을 명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가 그리스도와 비할 데 없는 그분의 사랑을 적게 생각할수록, 그리고 그분의 형상과 비슷하지 않을수록, 그대는 자기 눈에 더 나아 보일 것이며, 자아 신뢰와 자기 도치에 더 많이 빠질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 곧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은 그대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 품성의 모습을 보여 주어, 위대한 모본자 되시는 분의 것과 대조하여 그대 자신의 생애와 품성의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실패하지 않도록 해 줄 것이다. 그 때, 그대는 스스로의 연약함과, 무지와, 안일을 사랑함과, 자아를 부정하는 데 내키지 않는 마음을 보게 될 것이다.

-376-

그대는 이제 겨우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이 많은 수고와 기도로 발굴한 진리의 보석을 몇 개 잡았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으로 가득하다. 그 책을 열심히 연구하고 그대의 생애의 규범으로 삼으라. 그대의 위험은 권면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는 그대 자신에게 더 높은 가치를 놓는 데 있다. 유능하게 말할 수 있는 목사에게 아첨하고 칭송을 돌리고자 준비된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있다. 젊은 목사는 칭찬을 받고 고임을 받아 해를 당할 수가 있다. 동시에 그는 그분의 대변인이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필수적인 것에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대는 이제 겨우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갔을 뿐이다. 그대의 사업에 적합하게 되는 것은 일생의 사업이며, 이미 형성된 습관과 경향과 유전적인 성향에 매일같이, 열심히 백병전을 벌여야 하는 투쟁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열렬하고 신실하게 자아를 지키고 통제하는 노력을 요구하며, 예수님을 높이고 자아를 시야에서 몰아내는 일도 요구한다.

그대는 그대의 품성의 약한 점들을 주의하고, 잘못된 경향을 자제하고, 적절하게 활용되지 않은 고상한 능력들을 강화하고 계발시킬 필요가 있다. 세상은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을 결코 알지 못하며, 영혼의 내적인 비통함과, 자아 혐오, 자아를 조절하기 위한 계속적인 노력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 노력의 결과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대의 매일의 생애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 그대는 모든 사람에게 읽혀지고 알려진 편지가 될 것이며, 고상하게 계발된 균형진 품성을 갖게 될 것이다.

“내게 배우라” 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 라. 그분은 지식을 달라고 그분께 오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거짓 교사들이 있다. 사도는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부드러운 것만 듣기 원하여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둘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 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여기에 묘사된 부류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이 있으며 영혼들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심령은 탐욕적이고, 이기적이고, 안일을 사랑하고, 그들의 거룩하지 못한 심령의 충동을 따른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과 모순되며,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한 정신이 결핍되어 있다.

-377-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거룩한 진리를 전하는 설교자들은 이 모든 것과는 반대되어야 하며, 그들의 생애와 실제적인 경건으로 거짓 목자와 참된 목자 사이에 존재하는 구별된 점을 명확하게 나타내야 한다. 선한 목자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다. 그분은 일하시면서 그분의 양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다. 목자장 밑에서 일하는 모든 목자들은 그분의 특성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이 될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은 영혼에 쉼을 가져올 것이며, 사랑으로 역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관심을 갖는다. 만일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안에 거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목사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주인을 오해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사단의 깃발 아래 서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세상적으로 현명하고, 투쟁과 헛된 것을 위해 열심을 내면서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쇼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동기가 사업에 품격을 부여한다. 비록 사람들은 그 결핍을 분별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간파하신다.

진리의 말씀은 믿음을 굳게 붙잡고 마침내 구원받을 영혼들을 확신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진리를 제시했던 이기적인 설교자들은 그들을 회심시킨데 대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는 시온의 성벽 위에서 파수꾼이라고 공언하면서도 불성실한 것에 대해 심판 받을 것이다. 심령의 교만함은 품성의 두려운 특질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이것은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국가에서도 사실이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단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단순성에 있어서 아름다운 그분의 진리를 세상에, 특히 가난한 자에게 전하도록 가르치셨다. 목자장은 목자들을 자신과 연결시키실 것이다. 그분은 이 무식한 사람들이 그들의 일하는 동안 무지한 채로 남아 있지 않고, 그들이 모든 지식과 빛과 능력의 근원인 그분으로부터 지식을 얻도록 계획하신다.

-378-

복음의 목사들을, 확신시키고 회심시키는 데 그처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부재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박사들과 제사장들과 율법사들과 서기관들과 신학자들은 이 무식하고 겸비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능력의 말씀을 듣고 놀랐다. 이 지혜로운 사람들은 비천한 제자들의 성공에 놀랐으며, 마침내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그분에게서 배웠다는 사실에서 그것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었다. 그들의 품성과 가르침의 단순성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가르침과 비슷했다. 사도는 이것을 이런 말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은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날 인기가 없는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교훈에 결합시켜야할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노력은 별로 중요치 않을 것이다. 겸손의 귀한 은혜는 목회직과 교회에 참담하게도 부족하다.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능력을 너무 높게 생각한다. 진정한 겸손은 그리스도와 진리를 높이도록 사람을 이끌며, 진리의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을 것이다. 겸손의 교훈을 배우는 것은 고통스러우나 결국 이것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겸손의 교훈을 배우는 데 따르는 고통은 우리가 자아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하여 우리가 우쭐하게 된 결과이며, 그래서 우리는 큰 필요를 깨달을 수 없다. 허영과 교만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하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개혁의 일을 할 수 있다.

나의 형제여, 그대 자신을 낮추는 것은 그대가 할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대를 낮추시도록 기다리지 말라. 하나님의 손길은 때로 사람들을 낮추시기 위해 사람들을 무겁게 누르시고, 그분 앞에 올바른 위치로 그들을 이끌어 오신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날마다 심령을 겸손하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더 좋겠는가! 우리는 자신을 낮출 수 있다. 아니면 우리가 교만한 마음으로 자신을 세우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실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복음의 목사들은 오늘날 진리를 위해 거의 고난당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들처럼, 또한 후기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처럼 핍박을 받는다면, 그리스도 편으로 더 가까이 전진할 수 있을 것이며, 구주와의 더 가까운 연결은 이 땅에서 그들의 말에 능력이 있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당하셨다. 그분은 죄인들의 핍박과 반대를 견디셨다. 그분은 가난했고, 배고프고 피로하셨다. 마귀에게 시험당하셨고, 그분의 사업과 가르침은 혹심한 증오를 만났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에 대하여 자신을 부정하는가? 진리를 위한 우리의 헌신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피하며 관심과 책임을 회피한다. 우리가 사업에 대해 아주 적게 헌신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노력에 함께 역사하도록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교회증언 4권 pp. 369-378

Posted i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