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4 139-148 (212일)

그대는 그대의 남편과 또한 그대에게 잘못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움을 키웠다. 그러나 그대가 어떤 점에서 실수하였으며 그대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사태를 더 나쁘게 한 것을 깨닫지는 못하였다. 그대의 정신은 그대에게 불의를 행한 사람들에 대하여 가혹했으며, 그대는 견책하고 비난하는 데서 감정을 드러냈다. 이것은 그대의 괴로운 마음에 일시적인 위안이 되었으나, 그대의 영혼에 오래 지속되는 상처의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그대는 태우는 불이 될 때까지 이것의 적절치 못한 사용을 조장해 왔다.

이 모든 것들은 그대의 영적인 향상을 저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참고 용서하는 것이 그대에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시며, 그분은 어떻게 동정하고 도울 수 있는지를 아신다. 그분은 그대에게 그대의 생애를 개혁하고 그대의 결함을 바로 잡으라고 요구하신다. 그분은 그대의 완고하고 복종하지 않는 정신이 그분의 은혜로 극복되기를 원하신다. 그대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대는 폭풍과 말다툼 대신에 평안과 고요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대로 하여금 보다 덜 충동적으로 움직이며 성화된 이성과 진정된 판단에 따라 움직이도록 그대에게 요구한다.

그대는 그대의 환경이 너무 많이 그대에게 영향을 주도록 허용한다. 매일 깨어서 기도하는 것이 그대의 방패가 되도록 하라. 그 때에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대의 마음에 분명하고 고귀한 빛을 비추고 그대를 그들의 하늘 능력으로 붙들어 주기 위해 그대 주위에 있게 될 것이다. 그대의 자녀들에 대한 그대의 감화력과 그들에 대한 그대의 태도는, 그대의 거처를 찾은 거룩한 방문객들에 아주 매력적인 것이 되어서, 그대의 가족과 그대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만들고자 하는 그대의 수고를 도와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대가 자신의 방법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적으로 투쟁하기 위해 애쓴다면, 하늘의 천사들은 불쾌하게 되어, 그대 홀로 싸우도록 내버려 둔 채 그대 앞을 슬픔 중에 물러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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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그들에게 준 품성의 표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그대들이 그들을 다루는 일은 얼마나 신중해야 하며, 그대가 그들을 책망하고 그들의 잘못을 바로 잡을 때 얼마나 부드럽게 해야 하는가. 그대는 너무 완고하고 엄격하다. 그리고 자주 그대가 흥분하고 화가 났을 때 그들을 대하곤 한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을 그대에게 묶어 주는 사랑의 황금 줄을 거의 녹슬어 없어지게 했다. 그대는 자녀들에게 그대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새겨 놓아야 했다. 그대는 그들의 유익을 위해 수고하며, 그들의 행복은 그대에게 소중하며, 그대는 그들의 선을 위한 것만 하고자 한다는 것을 새겨 주어야 했다.

그대는 당연히 그렇게 해 줄 수 있었을 때는 언제든지 그들의 작은 소원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였다. 그대의 현재 위치는 그들의 어리고 쉼이 없는 마음에 변화나 즐거움을 거의 주지 못한다. 그리고 해마다 어려움은 늘어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그대의 첫 번째 생각은 그대의 자녀들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한 그리스도인 어머니로서 그들에 대한 그대의 의무는 가볍거나 작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온전히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대는 어떤 다른 짐을 내려놓아야 하며, 이 일에 그대의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야 한다. 그대의 자녀들의 가정은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하고 행복한 장소가 되어야 하며, 어머니가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 되어야 한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끼치는 사단의 능력은 두려운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종교적인 원칙에 의해 균형이 잡혀져 있지 않는 한, 그들의 도덕적 의지는 그들이 접촉하는 악한 친구들에 의해 더럽혀질 것이다. 그대는 이런 것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대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끼치는 악한 자의 속이는 능력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위험은 적절한 교육과 훈련이 없는 데서 온다. 방종한 부모는 그들의 자녀들에게 자아 부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이 자녀들 앞에 차려 놓는 바로 그 음식은 위의 부드러운 점막을 흥분시키는 그런 것들이다. 이 흥분은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고, 그 결과는 동물적인 욕정이 일어나 도덕적인 힘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성은 이렇게 해서 마음의 저열한 특성의 종이 되고 만다. 위로 들어와서 피로 변환되는 어떤 것이든지 존재의 한 부분이 된다. 어린이들은 돼지고기나, 소시지, 향료, 기름진 케이크나 구워서 만든 과자류 등 조악한 음식물을 먹도록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 그들의 피는 열을 발생하게 되고, 신경 조직은 과도하게 흥분되고, 도덕성이 영향을 받는 위험에 빠진다. 어떤 사람이라도 음식물에 관해 절제하지 못하고 살면서 크게 인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저열한 식욕으로 야기되는 악에 대항하여 보호하도록 건강 개혁의 빛을 보내셨으며, 순결함과 거룩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하신 좋은 것을 분별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셨으며, 또한 그들의 매일의 생활에서 절제를 실행함으로 진리를 통해 성화되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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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대의 자녀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통일성이 없다. 때로 그대는 그들이 손해가 되도록 제멋대로 하게 두다가, 다른 때는 그들이 정말 기뻐할 수 있는 순수한 만족을 누리지 못하도록 거부한다. 그대는 참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돌이키며, 그대에게는 어리석고 유치한 것으로 보이는 즐거움을 그들이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들의 단순한 요구를 꾸짖는다. 그대는 자신의 연령의 위엄을 낮추지 않으며, 그대의 자녀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들어주려고 자리하지 않는다. 이 면에서 그대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 실패했다. 그분은 자신을 낮고, 결핍된 사람, 고통을 당하는 사람과 같이 여기셨다. 그분은 작은 어린이를 팔에 안으시고, 젊은이들의 수준까지 내려 오셨다. 그분의 사랑의 넓은 심령은 그들의 시련과 필요를 이해하실 수 있으셨으며, 그분께서는 그들의 행복을 즐거워하셨다. 복잡한 도시의 소란과 혼란으로 지치시고, 교활하고 위선적인 사람들과의 접촉으로 고단해지신 그분의 정신은 흠없는 아이들과의 사귐에서 쉼과 평안을 찾으셨다. 그분의 출현이 아이들을 쫓아 버리지 않았다. 하늘의 대주재께서 그들의 질문에 답하고자 겸손하게 되셨으며, 그들의 어린애다운 이해에 맞추기 위해 그분의 중요한 가르침을 단순하게 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젊고 성장하는 마음에 진리의 씨앗을 심으셨으며, 이것은 자라나서 그들이 추수하는 때에 풍성한 수확을 내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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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축복하실 수 있도록 그분 앞에 보내진 이 아이들에게서, 그분은 장차 그분의 은혜의 후사와 그분의 왕국의 신민이 될 사람들을 보셨으며, 그들 중 얼마는 그분의 이름을 위해 순교자가 될 것을 보셨다. 동정심이 없는 어떤 제자들은, 그들이 주님을 귀찮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을 멀리 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이 슬픔 중에 돌이키려고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분께서는 이 어린이들이 그분의 권면을 듣고 그분을 그들의 구속주로서 영접할 것을 아셨으며, 한편으로 세상적으로 현명하고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분을 따르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그들의 자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을 아셨다. 이 어린이들은, 그리스도께 와서 그분의 권고와 축복을 받아들임으로 그분의 형상을 갖게 되었으며, 그분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그들의 유연한 마음에 결코 지워지지 않도록 도장이 찍히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의 행위에서, 젊은이들의 마음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건과 덕에 쉽게 감화를 받으며, 받은 감명을 간직하는 데 더 강하다는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 그러나 이 부드러운 젊은이들은 친절로 접근해야 하며, 사랑과 인내로 가르쳐야 한다.

나의 자매여, 그대의 자녀를 애정으로 그대의 심령에 붙들어 매도록 하라. 모든 면에서 그들에게 적절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라. 그들에게 적당한 옷을 입혀서 그들이 외모로 굴욕감을 느끼지 않게 하라.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의 자아 존중에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세상이 사람을 가꾸기 위해 마음과 도덕을 소홀히 하고 유행과 의상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악을 피하는 데 있어서, 그대는 반대편 극단에 근접하였으며, 그대 자신의 옷과 아이들의 옷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대의 나이와 생애의 위치에 어울리게끔 말쑥하며 옷을 적절하게 입는 것이 언제나 옳다.

질서와 청결은 하늘의 법칙이다. 그리고 신령한 차림에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깔끔하고 고상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이 주제에 관한 그대의 생각은 왜곡되었다. 허식과 세상의 허황됨을 정죄하는 한편, 그대는 절약을 인색함으로 왜곡하는 실수에 빠지고 말았다. 그대는, 그대가 소유하는 것이 바르고 적절하며,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재물을 주어 갖게 하셨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이나 아이들을 적절하게 옷 입히지 않는다. 우리의 외모는 우리가 따른다고 공언하는 분을 수치스럽게 해서는 안되며, 그분의 사업에 신뢰를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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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말한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그대의 돈은 필요한 곳에 사용하라고 그대에게 준 것이며, 큰 화재에 파괴되도록 축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대는 주님의 좋은 은사를 누리도록 명령을 받았으므로, 자선을 위하여, 그대 자신의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선한 사업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대 자신을 위해 하늘에 보화를 쌓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그대를 은혜의 보좌로 가까이 이끌기 위해, 많은 어려움이 그대에게 닥쳐 왔다. 그분은 슬픔과 시련으로 그분의 자녀들을 부드럽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신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일터이며, 여기에서 그분은 하늘 궁정을 위해 우리를 꼴지으신다. 그분은, 거친 것과 불법이 제거되어 우리가 하늘의 건물에서 합당한 자리에 적합하게 될 때까지 평평하게 하는 삭도를 떨리는 우리 심령 위에 대신다. 그리스도인은 시련과 어려움을 통해 순결해지고 강해지며, 그리스도께서 주신 모본을 따라 품성을 계발하게 된다. 참되고 경건한 생애의 감화는 헤아릴 수 없다. 그것은 가까운 가족과 친구의 범위를 넘어서 예수께 영혼을 이끄는 빛을 비추며 멀리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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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27 — 교회에 대한 증언

14 장 —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순종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놀라운 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노인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세대에서도 노인으로 간주되었다. 젊음의 열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고난을 견디고 용감하게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 이제 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젊음의 활력을 가졌을 때는 힘에 대한 자랑스런 자각으로 폭풍을 정면으로 대항할 수 있고, 인생의 후기 곧 무덤을 향하여 비틀거리며 발을 옮길 때 낙담시킬 수 있는 방해물까지라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아브라함을 위한 가장 혹독한 마지막 시험을 그가 연륜의 무거운 짐을 지고 근심과 수고에서 벗어나 쉬기를 바랄 때까지 보류해 두셨다. 주님께서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창 22:2) 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노인의 심장은 공포로 멎는 듯했다. 그러한 아들을 질병으로 잃는다 해도 그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질 것이며, 백발이 된 그의 머리는 슬픔으로 숙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러한 아들의 고귀한 피를 자신의 손으로 흘리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분의 말씀을 순종해야만 하였다. 아브라함은 노인이었으나 그것이 그를 의무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았다. 그는 믿음의 지팡이를 붙잡고, 말못할 고통 속에서, 장미빛 혈색의 건강미를 띤 아름다운 젊은 아들의 손을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이 위대한 늙은 부조는 인간이었다. 그의 정열과 애착은 우리와 동일했다. 그는 노년기의 위안이요 또한 주님의 약속이 주어진 그 아들을 사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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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브라함은 만일 이삭이 죽임을 당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지 질문하기 위해 머물러 서지 않았다. 그는 아픈 마음으로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글자 그대로 순종하되 칼이 그 아들의 떨리는 살에 내리 꽂히기 직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는 말씀이 들리기까지 이행하였다.

이 위대한 믿음의 행위는 세상 끝까지 하나의 빛나는 거룩한 모본으로 거룩한 역사의 책장에 기록되어 세상에 빛을 발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도 괜찮게끔 제외시켜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다. “내 머리는 백발이며, 장년기의 활력은 사라졌습니다. 이삭이 없어지면, 누가 나의 기우는 인생을 위로하겠습니까? 어떻게 늙은 아비가 독자의 피를 흘릴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질문하거나 불평하거나 용기를 잃지 말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주변에 몰려와서 하나님의 사랑의 유쾌한 햇빛을 차단하고 영적 성장을 저지시키는 흑암을 물리치기 위하여, 오늘날 교회 안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필요하다. 나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아도 괜찮도록 결코 면제시켜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선한 행실을 낳아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의무나 이루어진 모든 희생은 참으로 큰 보상을 가져온다. 의무 이행, 바로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축복을 말씀하시고 또한 주신다. 그런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능력을 완전히 바치도록 요망하신다. 마음과 정신, 온 몸을 그분께 드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부를 얻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나 사람에게 아끼지 않으셨다. 그분은 지구를 아름다움으로 옷 입히시고, 인간의 현세적 생애의 소용과 안락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아들을 주셔서 죄와 어리석음으로 타락한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시게 하셨다. 그처럼 비할 데 없는 사랑, 무한한 희생은 우리의 가장 엄격한 순종, 가장 거룩한 사랑, 무한한 믿음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미덕들이 최대한 발휘된다 해도, 우리를 위해 제공된 그 위대한 희생에 비교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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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에 신속하고 의심 없이 순종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들어 있거나 사단의 속임수에 마비되어 있는데, 사단은 변명과 핑계를 제시하며, 동산에서 하와에게 말한 것처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4) 고 하여, 주저하는 자들을 제압한다. 불순종은 범법자의 마음과 양심을 강퍅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믿음도 타락하게 한다. 처음에는 매우 그릇되게 보이던 것들이 계속 그들 앞에 있게 되면 차츰 그러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어, 마침내 그것이 정말로 죄인지 의심하게 되고 무의식중에 동일한 잘못을 범하기까지 된다.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서 아말렉 족속을 치고 그 소유를 모두 진멸하라고 사울에게 명령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그 명령을 부분적으로 순종하였다. 그는 열등한 가축들은 진멸하였으나 최상의 것들은 보존하고 그 악한 왕도 살려 두었다. 다음날, 그는 우쭐해져서 자축의 말로 선지자 사무엘을 맞았다. 그는 “원컨대 당신의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즉시 대답했다.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삼상 15:13, 14).

사울은 당황하였고, 이렇게 대답함으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삼상 15:15). 사무엘은 그에게 아말렉 족속에게 속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지시하신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상기시키면서 그 왕을 책망하였다. 그는 사울의 범죄를 지적해 내고, 그가 주님께 불순종했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시인하지 않고 주님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가축을 살려 두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다시 변명하였다.

사무엘은 그 왕이 고집스럽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백하지 않았으므로 마음속 깊이 슬퍼하였다.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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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가 생길 때, 우리는 그 의무의 요구에 응하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지체는 의심이 생길 틈을 준다. 불신이 스며 들어오고, 판단이 왜곡되고, 이해력이 어두워진다. 마침내 성령의 책망은 이 미혹된 자의 마음에까지 이르지 못하게 되고, 그는 그 책망들이 자신을 위한 것이요 자신의 상황에 적용되는 것일 수는 전혀 없다고 생각할만큼 눈이 어두워진다.

귀중한 은혜의 기간이 지나가고 있으나, 그것이 영원을 위한 준비를 목적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는 거의 없다. 황금 같은 시간은 세속적인 업무와 쾌락과 흉악한 죄 등으로 허비된다. 하나님의 계명은 소홀히 여겨지며 잊혀진다. 그럴지라도, 그 계명의 매 조항의 규제력 (規制力) 은 살아 있다. 모든 범죄마다 형벌이 따를 것이다. 세속적 이익을 좋아하면 안식일을 더럽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거룩한 날이 요구하는 바는 폐기되거나 감소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명은 이 점에 있어서 명백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분은 안식일에 노동하는 것을 단호하게 금하셨다. 그분은 안식일을 당신께 거룩한 날로 구별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의 길에 놓여진 방해물이다. 그들을 세상 길에 묶어 놓는 강하고 교묘한 영향력이 있지만, 주님의 능력은 이 사슬을 깨뜨릴 수 있다. 그들이 그분의 도움을 열렬하게 구하면, 그분은 당신께 신실한 자들의 발 앞에 있는 모든 방해물들을 제거해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이다. 자아에 대하여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비록 생명 자체가 희생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열렬한 소망과 불굴의 노력 앞에는 모든 방해물이 사라질 것이다.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을 그들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으로 바라보고 전진하는 자들에게 있는 흑암은 하늘에서 오는 빛이 제거해 버릴 것이다.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날 그분은 성령의 증언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과 당신의 백성들이 따르기를 바라시는 길에 대하여, 오늘날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것보다 더 열렬하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가르치신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의 가르침을 통하여 유익을 얻을 것인가? 그들이 그분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경고에 유의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부분적인 순종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자아와 타협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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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장 — 열두 정탐꾼

주께서는 당신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사람들을 보낼 것을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각 지파에서 한 명의 두령들이 이 목적을 위해 선발될 것이었다. 40일 후에 그들은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모세와 아론, 그리고 온 이스라엘 회중 앞에 나아 와 그들에게 그 땅의 소산들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그 땅이 좋은 땅이라는 데 있어서 의견이 일치하였으며, 그들은 증거로서 그들이 가져온 풍부한 과실을 내 보였다. 포도 한 송이가 얼마나 큰지 중간에 막대기를 끼워서 두 사람이 그것을 운반해 왔다. 그들은 또한 그곳에서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화과와 석류도 가져왔다. 그들이 그 땅의 비옥함에 대해서 말한 후에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땅을 차지할 그들의 능력에 대하여 비관적으로 말했다. 그들은 그 땅에 거하는 백성들은 매우 강하였고, 도성들은 크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더욱이 그들은 거기서 거인 아낙의 자손들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그 백성들이 가나안 일원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나서 그들이 이 땅을 차지하기가 불가능하리라는 두려움을 표현하였다.

이 보고에 귀를 기울이던 백성들은 과격한 비난과 통곡으로 그들의 실망을 표출하였다. 그들은 여기까지 그들을 데려오신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추론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논외 (論外) 로 제쳐놓았다.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여리고 성을 취하는 데 오로지 무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그들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께서 당신의 말씀을 성취하시도록 그분을 온전히 신뢰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복되지 않은 마음은 그분의 계획과 조화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분께서 그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해내시고 그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바닷물 가운데로 길을 내시고,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멸망시키시면서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를 반추 (反芻) 하지 않았다. 불신에 빠진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시키고, 여기까지 안전하게 그들을 인도해 오신 그 손길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경우에 있어서도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불평하던 그들의 이전 실수를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모든 드높은 희망은 끝장이야” 라고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애굽에서 여기까지 여행해 왔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환난을 가져온 데 대하여 그들의 지도자들을 비난하였고, 백성들을 속이고 그들을 미혹시켰다고 그들을 다시 비난하였다.

교회증언 4권 pp. 13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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