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장 — 잃어버린 자의 비유들
잃은 양
나는 잃은 양의 비유를 듣게 되었다. 아흔 아홉 양은 광야에 남겨진바 되고, 방황하는 한 마리 양을 찾는 일이 이루어졌다.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그 양을 자기 어깨에 메고 기뻐하며 돌아왔다. 그는 자기에게 그토록 많은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고 불쌍한 잃은 양에게 불평과 책망을 퍼부으며 돌아오지 않았으며, 그 양을 짊어지고 기쁘게 돌아왔다.
그 후에 한층 더 크게 기쁨을 나타내었다. 발견한 자와 기쁨을 나누기 위해 친구들과 이웃들이 초청을 받았다.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찾음은 기쁨의 주제였다. 방황했던 것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았다. 찾은 기쁨이 상실과 염려의 슬픔, 잃은 양을 찾아 안전한 곳으로 회복시키느라 겪은 고초와 위험을 능가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잃어버린 은전
잃어버린 은전은 과오를 범하고 방황하는 죄인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다. 잃어버린 은전을 찾느라 여인이 기울인 조심성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바른길로부터 벗어나 방황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저들의 의무에 관해 한 가지 교훈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 여인은 자기의 빛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등불을 켜고 방을 쓸며 그것을 찾기까지 부지런히 찾았다.
여기에 하나님을 벗어나 방황하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 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의무가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다. 과오를 범하는 이들을 흑암과 오류 속에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빛 가운데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등불을 켜야 한다. 흑암과 불신에 둘러싸여 있는 이들의 처지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열렬한 기도로 하늘 빛을 구해야 하며 명확한 진리의 요점들을 파악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논증으로 무장하고, 그 경고와 위협과 격려의 말씀으로 강화되어 잘못을 범하고 있는 이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무관심과 태만은 하나님의 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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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은전을 찾았을 때, 그 친구들과 이웃들을 함께 부르고 말했다.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고백하며 그 형제들과의 교제 가운데로 돌이킨 과오를 범한 이들에 대해서 기뻐한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 곧 그 자신이 과오를 범하는 자요, 날마다 하나님의 용서와 그 형제들의 용서가 필요한 자들은 얼마나 더 사단의 계략에 미혹되어 그릇된 길로 행하며 그것 때문에 고통을 겪었던 형제 자매가 돌아온 것에 대해 얼마나 더 크게 기쁨을 느껴야 하겠는가.
그릇 행하는 이들을 멀리하는 대신에 그 형제들은 그들이 처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이 흑암 가운데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의 결점을 찾는 대신에 그들은 더욱 많은 신령한 은혜와 더욱 분명한 성경 지식을 받음으로 그 자신의 등에 불을 붙여야 한다. 이는 그들이 저들에게 가져가는 빛으로 말미암아 잘못 가운데 빠져 있는 이들의 흑암을 쫓아 버리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성공을 거두고 잘못을 범한 이들이 과오를 깨닫고 빛을 따르기로 순복할 때, 그들은 불평의 정신으로서가 아니라, 혹은 그들의 엄청난 죄됨을 상기시켜 불필요한 노력과 염려와 힘든 일을 추가시키려는 정신으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순결한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쁨으로 그 일을 반겼다면, 그 형제들은 얼마나 더 크게 기뻐해야 하겠는가. 그들은 과오를 범했을 때 스스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흑암 가운데 있으면서 동정과 사랑과 도움을 필요로 했던 자들이 아닌가.
탕 자
나는 탕자의 비유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서 자기의 몫을 요구하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와 이해 관계를 달리하기를 원하였으며 그 몫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하기를 원했다. 그의 아버지는 요청을 들어주었으며 아들은 이기적으로 아버지를 떠나갔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의 권면과 책망으로 괴롭힘 받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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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충고나 제재 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몫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상호간의 의무 때문에 괴롭혀지기를 원치 않았다. 만일 그가 아버지의 재산을 받게 된다면 그의 아버지는 아들인 그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관대한 아버지에 대하여 어떠한 의무도 느끼지 않았으며 그 아버지의 재산 중 일부가 자기에게 속했다는 생각으로 이기적이고 반역적인 생각을 밀고 나갔다. 그는 제대로 한다면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때에 자기의 몫을 요구하였다.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재물을 받게 되었을 때에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그는 아버지께로부터 멀리 떠나갔으니, 이는 그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기 위함이었다. 그는 제재를 멸시하였다. 그는 자기의 선택에 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쾌락을 추구하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그가 죄악스런 방탕된 생활을 따라 그 아버지가 그에게 준 모든 것을 허비해 버렸을 때, 그 땅에는 기근이 들었고 그는 심히 궁핍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죄로 가득 찬 허황된 쾌락의 길을 추구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궁핍하였고, 낭비해버린 돈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죄악된 방탕의 생활로부터 돼지를 먹이는 비천한 직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장 비천한 자리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의 친절과 사랑을 생각하였다. 그제야 그는 아버지의 필요성을 느꼈다. 친구 하나 없이 궁핍 가운데 빠지게 된 것은 그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그 스스로의 불순종과 죄 때문에 그는 자기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떠나서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자기 아버지 집에 고용된 종들이 누리는 특권과 풍족한 생활을 생각하였다. 그는 역경을 통해서 겸비하게 되었으며, 겸손히 고백하며 그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편안하고 적절한 옷조차 없는 거지였다. 그는 궁핍으로 비참하게 되었으며, 굶주림으로 야위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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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들이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섰을 때, 그의 아버지는 방랑자를 보았으며, 제어할 줄 모르는 죄의 길을 따라 여러 해 전에 자기를 떠난 탕자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로서의 감정이 격동 되었다. 그의 타락한 모든 표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의 참 모습을 식별하였다. 그는 아들이 자기에게 완전히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를 맞으러 달려나갔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꾸짖지 않았으며, 죄악의 길을 추구함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자초한 아들을 아주 측은하게 보았으며, 그에게 서둘러서 사랑과 용서의 표시를 하였다.
비록 그 아들은 병들어 수척해지고, 그 안색에는 그가 살면서 허비한 방탕한 생활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그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그 맨발은 여행의 먼지로 더럽혀져 있었지만, 아들이 자기 앞에 겸손히 꿇어 엎드렸을 때, 아버지의 동정심은 크게 일어났다. 그는 체면을 차리느라 뒤로 물러서지 않았으며,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에게 과거의 과오와 죄로 된 길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그가 얼마나 비천한 중에 빠져있는지를 상기시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는 거역하는 아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그의 헐벗은 몸에 자기의 좋은 옷을 입혀 주었다. 그는 따뜻한 마음으로 아들을 맞아들였으며, 그들이 일찍이 그 아버지의 선함과 사랑을 의심했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동정을 나타내었다. 만일 그가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죄책감을 가졌더라면, 그가 이렇게 영접을 받았을 때, 자기의 그릇된 길에 대하여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굴복되기 전에 아버지의 사랑을 슬프게 해드린 것에 대하여 이제는 깨어져 버렸다.
거절당할까 봐 크게 두려운 나머지 통회하며 벌벌 떨고 있던 아들은 이와 같은 대접에 대해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았고 그의 아버지를 떠난 자기의 죄에 대하여 시인하였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눅 15:21). 그는 단지 고용된 종으로 여겨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기종들에게 특별한 존경의 표시를 하도록 하였고, 마치 그가 언제나 순종하는 아들이었던 것처럼 그에게 옷을 입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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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돌아온 것을 특별한 기쁨의 기회로 만들었다. 밖에서 돌아온 큰 아들은 그의 동생이 돌아온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모두가 기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며, 일꾼들에게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그의 아우가 돌아왔으며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얻은 것처럼 그의 아버지가 그를 받아들여 살찐 송아지를 잡았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형은 화가 나서 안에 들어가 그 아우를 보려고도, 영접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기 아버지를 떠나 둘이 나누어 졌더라면 되었을 의무를 모두 자기에게 떠맡긴 그 불충성스러운 동생이 그토록 존귀하게 영접받는 것에 대하여 적개심이 끓어 올랐다. 이 아들이 사악하고 불륜한 길을 추구하여 궁핍 가운데 빠지고 있는 동안 그 형은 집에서 아들로서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 왔다. 그런데 이 방탕한 아들이 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으며 자기가 받았던 그 어떤 대접 이상으로 존경과 명예를 받았다.
아버지는 장남에게 안에 들어가 그 아우를 기쁨으로 영접하도록 했으니 이는 그가 잃었다가 찾은바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죄와 사악함 가운데 죽었으나 이제 다시 살게 되었다. 그는 그의 도덕심을 회복하였고, 자기의 죄 된 길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의 장남은 대답하였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 15:29, 30).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 이라고 확신을 주면서 기쁨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 (눅 15:32) 때문이다. 잃은 자를 찾고 죽은 자가 다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버지에게 그 어떤 일보다 큰일이었던 것이다.
이 비유의 말씀은 과오를 범했을 때, 회개하는 자들을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영접하시는 모습에 대하여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하여 주어졌다. 아버지를 거스려 죄가 범해졌다. 그러나 동정심이 많은 그 아버지는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가운데 탕자를 만났고, 자식의 정을 끊고 죽은 것으로 믿어졌던 아들이 자기의 큰 죄와 태만을 깨닫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그 사랑을 감사하며 그의 요구를 시인하는 그 아들에 대하여 크게 기뻐하였다. 그는 죄악의 길을 추구했으나, 이제 회개하고 있는 아들에게 자기의 동정심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아들은 용납되었다. 그는 그의 필요를 깨닫고, 이 커다란 필요를 유일하게 채워 줄 수 있는 분으로 그 아버지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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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가 돌아온 것은 큰 기쁨이 되었다. 그 형의 불평은 자연스러웠지만, 올바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너무나 자주 형제가 형제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잘못을 범한 자들에게 그들이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깨닫게 해주며, 그들의 실수를 상기시켜 주고자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오를 범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어야 하는데, 그들은 도움과 동정심이 필요하다. 그들은 그들의 감정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으며, 자주 낙망과 좌절 가운데 빠진다. 그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무제한의 용서가 필요하다.
11 장 — 교회들 중에서 봉사함
1870년 봄, 배틀크릭 교회에서 이루어진 사업은 그 중요한 일이 요구하는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R 형제와 S 형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S 형제는 어떤 사람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할 때, 아주 지나치게 엄격하다. 같은 처지라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보였을 만큼의 동정과 배려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일에 그릇된 판단과 과오를 범한 큰 위험 가운데 있다. 사람의 마음을 취급하는 일은 일찍이 인간들에게 행한 일 중 가장 훌륭하고, 가장 중대한 일이다. 이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정확한 식별력과 훌륭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독립심은 성급함과는 전적으로 다른 요소이다. 조심하며, 기도하며,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는 독립적 자질은 우리가 그릇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입증해 주는 충분한 증거 없이 쉽게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독립적 태도는 널리 퍼져 있는 수많은 오류들 중에서 평안하고 변함없는 마음을 유지하게 해 줄 것이며, 조심스럽게 사방으로 모든 증거를 찾아보도록 할 것이며, 다른 사람이나 주변 사정에 휩싸여 모든 상황을 충분히 살펴보는 일없이 결정을 내리지 않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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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크릭에서의 조사 활동은 변호사가 증인을 비난하는 것 같은 식으로 되었는데, 하나님의 영께서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능동적이며, 열렬하게 이 일에 연합하였다. 어떤 이들은 독단적이고, 자만심이 많았으며, 그들의 증언이 신임을 받고, 그들의 영향력은 R 형제와 S 형제의 판단을 흔들었다. 몇 가지 사소한 결함 때문에 T 자매와 U 자매는 교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R 형제와 S 형제는 이 자매들을 출교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이와 같은 반대들이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볼 만한 판단과 분별력을 가져야만 하였다. 이들 모두는 오랜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18년 혹은 20년간이나 진실되게 안식일을 준수하여 왔다.
이런 문제를 초래한 V 자매는 그녀가 교인이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좀더 타당한 사실을 알아보아야 했다. 그녀는 죄가 없었는가? 그녀의 모든 길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였는가? 그녀는 인내와 극기와 온유와 참는 일과 안정적인 기질에 있어서 완전하였는가? 만일 그녀에게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약점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맨 먼저 돌을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교회로부터 쫓겨난 자녀들은 교회 안에 있어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충분한 이유도 없이 경솔한 대접을 받았다. 결코 하늘의 지혜나 건전한 판단력에 의하여 대접을 받아 보지 못한 다른 경우들이 있다. S 형제의 판단과 식별력은 그 아내의 영향력을 통해서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왜곡되어 왔다. 그 아내는 사단의 가장 강력한 매개체였다. 만일 그에게 진정한 독립적 자질이 있었더라면 그는 적절한 자존심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며, 그의 집을 품위 있는 집안으로 가꾸었을 것이다. 그가 가족에게 존경을 요구하는 길을 밟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일반적으로 문제들을 극단으로 끌고 나갔으며, 가혹하게 행하였고, 참을성 없이 거칠게 말하였다. 얼마 후 이것을 알게 되었을때, 이제 그는 정반대의 극단을 향해 나갔으며, 그의 독립심을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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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신 상태에서 그는 자기 아내의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자기 판단력을 내버렸으며, 그녀의 꾐에 쉽게 넘어갔다. 그녀는 자주 크게 고통을 겪는 사람인 것처럼 꾸몄으며, 자기 남편이 없는 동안 얼마나 궁핍하게 지냈으며, 자기 형제들로부터 얼마나 무시를 당했는지 말하였다. 그녀의 간계 때문에 그 남편의 마음은 크게 손상되었다. S 형제는 그 아내에 관하여 과거에 주님께서 그에게 베풀어 주신 빛을 충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일 그랬더라면, 그는 그렇게 부인에게 속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녀의 정신에 의하여 자주 속박되었는데, 이는 그의 마음과 생애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형제들에 대하여 분노를 느꼈으며, 그들을 학대하였다.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혀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그리스도께 굴복시키기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여야 했다. S 형제는 믿음과 극기로 말미암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하나님의 영과 진리의 능력으로 무장했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S 형제는 여러 면에서 연약하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이웃에 대하여 폭로하고 정죄하고 어떤 형제를 견책하고 바로잡으며 그 적을 저항하고 파멸시키도록 그에게 요청하신다면, 그것은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마음의 소욕과 애정을 극복하고 마음의 은밀한 동기를 살피며 지배하도록 하는 자아와의 싸움은 좀더 힘든 싸움이다. 신실하게 이와 같은 싸움을 감당하는 것에 대해 그는 얼마나 주저했던가. 자아와의 싸움은 일찍이 싸워 본 것 중 가장 위대한 싸움이다. 하나님의 뜻에 자아를 복종시키고 모든 것을 굴복시키며, 겸손으로 옷 입고 순결하고, 평화롭고 쉽게 간청을 받아들이는 사랑을 소유하고, 온유와 선한 열매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쉽게 달성되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온전한 승리자가 되는 것은 그의 특권이며 그의 의무이다. 지식과 참된 거룩함 가운데서 새롭게 되기 전에 영혼은 하나님께 굴복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애와 성품은 충성스러운 모본이다. 당신의 하늘 아버지께 대한 그분의 신뢰심은 무한하였다. 그는 아낌없이 완전하게 순종하고 굴복하였다. 그분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은 당신 스스로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오셨다. 모든 면에서 그분은 의롭게 판단하시는 분께 자신을 굴복시켰다. 세상의 구주의 입으로부터 이런 말씀이 흘러나왔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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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가난하게 되셨고, 스스로 평판을 받지 아니하셨다. 그분은 궁핍하게 되셨고, 자주 목마르셨으며 일하시는 중에 자주 피곤하게 되셨다. 그러나 그분께는 머리를 둘 만한 장소조차 없었다. 춥고 침침한 어두움이 깔리게 될 때, 자주 땅바닥은 그분의 침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을 미워하는 자들을 축복하셨다. 얼마나 놀라운 생애이신가! 얼마나 놀라운 체험인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 공언하는 우리들이 우리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불평 없이 기쁨으로 궁핍과 고통을 겪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분께서 받으셨던 침례와 그분께서 드셨던 잔을 마실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과 함께 그분의 하늘 왕국에서 그분의 영광을 나누게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분과 함께 할 자리가 전혀 없다.
S 형제에게는 얻어야 할 체험이 있는데, 그것이 없이 그의 사업은 해만 끼치게 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잘못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는 것에 의해 너무나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기 마음에 받은 인상대로 결정하기 쉬우며, 부드럽게 행할 때, 훨씬 나을 수 있는 일을 가혹하게 처리한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명심하지 않으며, 자신의 길에 대하여 질문을 받게 될 때, 자신이 그릇되게 행하는 중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그릇되었다는 판단이 들 때, 비록 자기 영혼에 손상을 입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한다 할지라도 그는 그 일을 부각시켜 질책을 가한다.
S 형제는 피할 수만 있다면, 교회의 징계를 피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전혀 나서지 말아야 한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사업에 요긴한 가치 있는 은사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동정심에 호소하고 그의 판단력을 혼란시키며, 무분별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영향력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너무 적게 행사한다. 그는 지나치게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주목하며, 형편없는 감정에 빠짐으로써 불신을 강화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신뢰하는 믿음으로 열렬하게 능력과 지혜를 간구하는 이들을 위하여 그것들을 저장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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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보여진 바대로는 S 형제는 어떤 면에서는 강한 사람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연약하다. 잘못을 범한 이들을 취급하는 그의 태도는 흩어 버리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일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수고 속에 자기 자신의 정신을 짜 넣으며, 분별력을 행사하지 않고 자주 부드럽게 행동하지 못한다. 그는 개인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는 버릇이 있다. “또 어떤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의무, 엄격한 의무에는 쌍둥이 자매가 있는데, 그것은 친절이다. 만일 의무와 친절이 결합한다면, 결정적인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무와 친절이 분리된다면, 의무 속에 부드러운 사랑이 섞여지지 않는다면, 실패가 있을 것이며, 결과에 있어서 많은 해를 받게 될 것이다. 남녀들은 쫓겨나게 되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친절과 사랑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S 형제는 복음의 채찍을 높이 치켜들고, 그의 말로 자주 내리쳤다. 이와 같은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열성과 선행을 장려하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그의 가혹함에 반발하여 호전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만일 S 형제가 빛 가운데 행하였더라면, 그는 그토록 많은 심각한 실패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요 11:9, 10). 순종의 길은 안전의 길이다. “바른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잠 10:9). 빛 가운데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 (잠 3:23) 리라. 빛 가운데 행하지 않는 자는 병들고 위축된 신앙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다. S 형제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할지라도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고무되어 마음을 강하게 하고 은혜를 계발시키는 열렬한 노력이다.
교회증언 3권 pp. 99-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