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539-548(195일)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한다면, 마땅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과 가정에 거하시도록 할 것이다. 가정은 말 그대로의 의미를 드러내도록 되어져야 한다. 그것은 땅위의 작은 천국, 애정이 가혹하게 억눌리는 대신에 계발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행복은 사랑과 동정과 상호간의 진정한 예절을 계발하는 데 달려 있다. 그토록 강퍅한 심령의 남녀가 이 세상에 많은 이유는 진정한 애정이 연약함으로 간주되어 좌절과 억제를 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류의 인물들의 성격의 훌륭한 부분이 유아 시절에 왜곡되고 외소화 되었으며, 신령한 빛의 광선이 그들의 냉랭함과 뻣뻣한 이기심을 녹여 버리지 않는 한, 그러한 이들의 행복은 영원히 매장된다. 만일 우리가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그러셨던 것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하고, 죄에 빠진,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향해서 천사들이 가진 것과 같은 성화된 동정심을 소유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어린이의 동정심, 곧 지극히 단순한 동정심을 계발해야 한다. 그때에 고결하고 고상하게 되어 하늘의 원칙들에 지시를 받게 될 것이다.

계발된 지성은 큰 보화이다. 그러나 동정과 성화된 사랑의 부드러운 감화가 없다면, 그것은 최상의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 대해서 사려 깊은 말과 행실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우정어린 말과 경쾌한 표정을 통해서 수천 가지의 작은 관심을 나타내 보일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반사될 것이다. 생각이 부족한 그리스도인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통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와 연합했으면서 타인에게 불친절하고, 자신의 권리를 잊어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로서의 애정을 강하게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우리 나름대로의 특성을 주셨는데, 그것은 다른 이들의 것에 병합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개인적인 특성들은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분의 뜻이 우리의 것이라면 훨씬 덜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생애는 우리 구주의 생애가 그러했던 것처럼 타인의 선과 행복을 위해 바쳐져야 한다. 우리는 자아를 잊고 다른 이들에게서 우리가 받은 호의에 대해서 적은 것 속에서도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하며,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슬픔과 짐을 부드럽고 친절한 행실과 사랑의 작은 행동을 통해 덜어 주며, 그들을 기쁘게 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우리 가정에서 시작되어 가정 밖의 관계로 확장되는 이러한 사려 깊은 예절은 인생의 행복을 쌓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작은 일을 무시함으로 인생은 비탄과 슬픔을 누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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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행하는 일과 행하지 않는 일은 우리의 생애와 운명에 엄청난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제공된 유용성의 기회를 모두 증진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것을 등한히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에 위험하다. 우리에게는 해야 할 위대한 일이 있다. 우리는 게으른 상태로 하나님께서 하늘을 위해 품성을 완성시키도록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활동을 하지 않거나 이 일에 게으르게 되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목적 없이 허비할 수 있는 순간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기도하고 당신을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잘못을 극복하도록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을 통해서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이 세상의 짧은 인생살이가 끝나게 될 때, 우리가 보여진 대로 우리 자신을 보게 되고, 우리가 알려진 대로 우리 자신을 알게 될 때, 더욱 나은 세계의 영광과 비교해 볼 때 이 세상의 것들은 얼마나 짧고 얼마나 작은 것인지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을 통해서 인간이 절대적으로 행복해지고 하나님의 생명과 필적되는 생명과 영속적인 부유함을 소유하게 될 것임을 그리스도께서 보시지 않았더라면, 그분은 하늘 궁정을 떠나서 인성을 결코 취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도우심이 없이는 죄된 인간이 이것들을 소유할 수 없음을 아셨다.

우리는 전진적인 정신을 소유해야 한다. 우리는 고정적인 견해 감정 행동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은 향상적이다. 개혁은 수행되어야 하며, 우리는 개혁의 자동차를 이끌고 움직여 나가는 일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인내와 야망으로 절제되고 지혜로 균형을 이루는 활력은 현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되고 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이 아직도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에게 놓여져 있다. 우리 중에 아무도 변명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활동을 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왜소해졌으며 발육이 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우리의 시간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선을 행하고, 다른 이들을 진리의 지식 가운데로 이끄는 일에 모든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열심을 내어야 하겠는가! 우리의 표어는 항상 “위를 향하여, 더욱 더 높이” 가 되어야 하며, 분명하고도 끊임없이 의무를 향해서, 또한 승리를 향해서 전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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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에 언급한 인물들과 관련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며, 만일 그들이 그분께서 지정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말 3:3, 4).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행하실 과정, 곧 연단하고 순결하게 하는 과정이다. 이 작업은 영혼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오직 이 과정을 통하여서만 더럽고 쓸데없는 불순물이 제거될 수 있다. 우리의 시련은 하늘 아버지께로 우리를 가까이 이끌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게 함으로, 우리가 주님께 의로운 제물을 드릴 수 있게 하는데 모두 필요한 것이다. 여기 그 이름이 지적된 각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능력과 증진시킬 재능을 주셨다. 그대들 각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거룩한 생애에 있어서 새롭고 산 경험이 필요하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를 위하여 충분하지 못하며, 우리의 길에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힘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승리를 얻기 위하여 매일 새 은혜와 신선한 힘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면에 있어서 동일한 상황에 두 번 처하는 때가 거의 없다.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다니엘,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심한 시련을 당했으나, 동일한 시련을 당한 것은 아니다. 각자는 생애의 사건들을 통하여 개인적인 시험과 시련을 당하나, 아주 똑같은 시련을 두 번 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각 사람은 어떤 특정한 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그 나름대로의 경험, 곧 그 성격과 환경이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생애에 한 사업과 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모든 행동은 아무리 작을지라도 우리의 생애의 경험에 그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계속적인 빛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것이 필요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것들을 받고자 하면 받게 되기를 심히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대해 하늘 창문을 닫아 놓지 않으셨으나, 그대는 그렇게도 그대에게 필요한, 거룩한 도움이 없이 지내는 것으로 만족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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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매일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생애의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그대는 별반 알지 못한다. 그대는 말하고 행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선악간의 결과가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매우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말과 행동들이 인간사의 긴 사슬을 이루는 고리가 된다. 그대는 우리의 일상 생애의 모든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드러내실 필요를 느껴 오지 않았다.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 있어서, 단 한 번의 식욕의 만족에 대한 열망이 이 세상에 슬픔과 죄가 들어오는 홍수의 문을 열었다. 사랑하는 나의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걸어가는 매 발걸음이 그대들의 생애와 다른 사람들의 품성에 계속적이요 지배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얼마나 필요한가! 하나님의 은혜가 매 발걸음을 인도하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할 방법을 보여 줄 필요가 얼마나 절실한가!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경험이 충분한 안내자가 될 수 없는, 새로운 장면과 시련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생애의 어떤 때보다도 지금, 거룩하신 교사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더욱 크다. 경험을 더 얻으면 얻을수록 하늘의 참 빛에 더 가까이 접근하게 될 것이요, 우리 속에서 개혁이 필요되는 것을 보다 잘 분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 권고를 구하고 순종과 믿음으로 따른다면,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일에 있어서 좋은 사업을 할 것이다. 의인의 길은 힘에 힘을, 은혜에 은혜를, 영광에 영광을 더하며 전진한다. 거룩한 빛은 우리가 위를 향하여 감에 따라 더욱 증가할 것이요, 우리 앞에 놓인 책임과 긴급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해줄 것이다.

시련이 그대를 누르고, 실망과 어두운 불신이 그대의 생각을 지배하며, 이기심이 그대의 행동을 꼴 지을 것 같으면, 그대는 하나님의 필요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깊고 철저한 지식의 필요를 깨닫지 못한다. 그대가 자아를 위하여 생활하는 동안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 그대는 그대의 선한 의도와 결심에 의존하며, 그대의 생애의 중요한 줄거리는 마음먹은 결심과 허물어진 결심으로 구성된다.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자아에 대하여 죽고, 자아에 의존하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대를 기쁘게 위로하고 싶다. 나는 기꺼이 그대의 좋은 자질과, 선한 목적과, 선한 행동을 찬양하고 싶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내게 보여 주시기를 즐겨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고상하고 향상된 거룩한 품성, 곧 그분께서 그대에게 얻기를 바라시는 하늘의 안식과 불멸의 영광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필요되는 그 품성을 그대가 얻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내게 제시하셨다. 그대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예수를 바라보라. 그분은 만유이시며 만유 안에 계신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구주의 피의 공로는 가장 작은 죄도, 가장 큰 죄도 깨끗케 하실 수 있다. 신뢰하는 믿음으로 그대의 영혼을 신실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지키시도록 맡기라. 하나님께서 그대를 떠나실까 하는 계속적인 두려움과 공포를 버리라. 그대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지 않는 한, 그분은 결코 그대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대가 그리스도를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면, 그분은 들어오셔서 그대와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대가 자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면, 그대와 하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사이에는 완전한 조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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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랑스럽게 여기는 죄, 애착을 둔 우상이 자기에게 있음을 깨닫는 자가 얼마나 적은가!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보지 못하는 이 죄악을 보시고 그분의 전정 가위로 깊이 잘라, 이 품어 온 죄를 그대에게서 분리시키기 위하여 일하신다. 그대들 모두는 이 순결케 하는 과정을 그대 자신을 위하여 택하기를 원한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굴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우리의 약점과 죄됨을 아시는 하나님께 그 모든 작업을 맡기면, 그분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최선의 길을 택하실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계속적인 투쟁과 단순한 믿음을 통해서였다. 그대들은 모두 에녹처럼 할 수 있다. 그대들은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되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며, 그분의 뜻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대의 본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동일하게 겸손한 순종과 헌신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진정한 경건은 파급되고 전달된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대회 중에서 은휘치 아니하였나이다” (시 40:10).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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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으며 다른 사람들을 거룩한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나님께서 그대들 모두를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48 장 — 탐심의 죄

사랑하는 P 형제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얻기 위해 열성을 내도록 그대를 경고하기 위해 나는 한 번 더 노력하려고 한다. 경고에 경고를 반복해서 그대에게 주었건만, 그대는 유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 만일 그대가 지금이라도 지나간 생애의 그릇된 길을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선다면, 그 잘못들을 고치기에 너무 늦지는 않을 것이다. 그대의 모든 정신적 능력은 돈을 버는 데 바쳐졌다. 그대는 돈을 숭배하였다. 그것은 그대의 신이었다. 하나님의 채찍질이 그대에게 임하고 있다. 그분의 심판이 어느 때에라도 그대에게 임할 수 있으며, 그대의 의복이 세상의 부패한 것으로 오염되고 더럽혀진 상태로 그대가 준비되지 않은 채로 무덤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하늘에 있는 그대의 기록은 어떠한가? 그대가 축적한 모든 돈은 그대를 이 가련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붙들어 매어 놓는 쇠사슬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익을 얻으려는 그대의 정욕은 끊임없이 강화되어 왔다. 그대의 생각의 짐은 어떻게 하여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그대는 두려운 체험을 했는데 그것은 세상의 사랑이 그 영혼을 소유하도록 허용한 이들에게 경고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대는 황금의 노예가 되었다. 주님께서 그대의 청지기 직분에 대해서 셈하라고 하실 때, 그대는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대는 돈에 대한 사랑이 그대의 인생의 정열을 사로잡도록 허용하였다. 그대는 술에 취하는 것처럼 돈에 대한 사랑에 지나치게 취하였다.

예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좀더 오랫동안 살려주시기를 간구하여 오셨다. 그리고 나도 또다시 그대에게 간청하는데 천국을 위하여 단호하고도 열렬한 노력을 기울이라. 말씀 앞에서 사단의 그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라. “저가 우상에게 연합하였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 는 말씀이 하늘에서 그대와 관련하여 발해질 것이다. 그대처럼 돈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어느 날 비통한 슬픔 가운데 울부짖을 것이다. “오, 재물의 기만성이여! 나는 돈으로 내 영혼을 팔았도다.” 현재 그대의 유일의 소망은 유약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돌아서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대가 그릇된 방향으로 행사하였던 의지력을 단호하게 그대의 도움으로 삼으라. 그리고 지금 그 반대 방향으로 역사하라. 이것은 그대가 탐심을 정복하는 유일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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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자선 행위를 통해서 탐심을 정복할 수 있도록 길들을 열어 놓으셨다. 그대의 생애를 통해서 그대는 세상의 보화를 불멸의 재물보다도 더욱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대는 “안녕 하늘이여, 안녕 불멸의 삶이여, 나는 이 세상을 선택하였노라” 고 말하고 있다. 그대는 현세적 이익과 큰 가치를 지닌 진주를 맞바꾸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권고하시는 동안에 당신의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러하셨듯이 이미 그대를 흑암의 속에 그대의 발을 들여놓게 하신 동안에, 그대는 감히 돈을 사랑하는 성벽을 계발하겠는가? 그대는 허송 세월한 인생의 맨 마지막 행위로서 지나치게 나아가 다른 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챙기려고 하는가? 그대는 그대의 형제에게 공의를 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 변론할 수 있겠는가? 저 위의 기록에 그대를 거스려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서 도를 넘어 또 다른 행위를 기록하려고 하는가? 하나님의 보응의 심판의 철창이 그대 위에 떨어져 경고도 없이 흑암의 물 속으로 그대가 빠져들지는 않게 될 것인가?

우리의 구주께서는 자주 열렬하게 탐심의 죄를 꾸짖으셨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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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모든 증가분의 십분의 일을 당신께로 돌리는 것을 당신의 백성을 위해 법으로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대에게 십분의 구를 주었노라. 나는 모든 증가분의 십분의 일을 요구한다. 그 십분의 일을 부자는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다. 만일 그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자기를 사랑하여 스스로를 섬기는 대신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였다면, 그는 쌓을 곳이 모자라는 지경에 이르도록 엄청난 보물을 축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의 재산을 그의 궁핍한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였더라면, 부숴뜨리고 더욱 큰 창고를 지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무시하였다. 그는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여기지 않았다. 만일 그가 자신의 재물을 선을 행하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하사품으로 여겼더라면, 그는 하늘에 재물을 쌓았을 것이며, 선행에 부요한 자가 되었을 것이다.

인생의 길이와 유용성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이 땅의 소유를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선을 행하는 일에 저들의 부를 사용하는 이들은 이 세상에 크게 쌓아야 할 필요를 결코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을 전진시키기 위해서 사용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궁핍한 자에게 준 재물은 그리스도께 드린 것이며,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결코 낡아 버리는 일이 없는 하늘 은행의 금고에 쌓으신다. 하나님께서 시여자의 명예를 위해 베풀어 주신 것을 겸비하게 사용하는 이, 받은 대로 거저 베푸는 이들은 하나님의 손길이 그 위에 계셔 선을 도모하시므로 자신의 모든 사업에서 평안과 확신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 자신은 하나님의 미소를 지니고 그분의 형상을 띠게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매년마다 자원하는 헌물을 바치는 것 외에도 조직적으로 바치기를 강요당하는 것에 대해 불쌍히 여겼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에 일치하는 헌금 제도가 무엇인지 가장 잘 아셨으며, 당신의 백성에게 이에 대해서 지시하셨다. 십분의 구가 십분의 십 보다도 그들에게 더 가치가 있음이 항상 증명되어 왔다. 하나님의 것을 드리지 않음으로, 혹은 열등한 헌물 — 즉, 저는 것, 눈먼 것, 병든 것 등 — 을 그분께 바침으로 재물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분명히 손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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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섭리는 인간사에 항상 작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손은 번영하게 하거나 저지할 수 있으며, 그분께서는 어떤 이는 번영하게 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때에 어떤 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시지 아니하는 적이 흔하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시험하고 입증하사 그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심이다. 주님께서는 불행이 어떤 형제에게 임하는 것을 허용하시는 한편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번영을 허락하시는데, 이는 당신께서 총애하시는 이들이 그분을 경외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들에게 명령된 바 그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며, 선을 행하려는 사랑으로 그들보다도 더욱 불쌍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지 보고자 하심이다. 관대함과 자선의 행동은 인간 자녀들의 마음을 부드럽고 동정적이 되도록 해주며,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셔서 당신의 가난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부유하게 되도록 하신 주님을 모방하는 중에 서로간의 관심과 사랑을 격려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십일조 법은 지속적인 원칙 위에 세워졌고, 인간에게 축복이 되도록 고안되었다.

헌금 제도는 탐심이라는 큰 악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업을 추구하는 중에 재물에 대한 사랑이 마음 속에서 진정한 경건을 뿌리째 뽑아내 버리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을 보셨다. 그분께서는 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꽁꽁 얼어 붙고 강퍅케 되어 관대한 마음의 흐름을 차단하고, 고난과 환난을 당한 자들의 부족에 대해 마음을 닫아 버릴 것임을 보셨다. 그분께서 반복하신 경고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 12:15) 는 말씀이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우리 구주께서 자주 반복하신 깜짝 놀랄만한 경고는 저들의 생애 가운데서 부자가 되려고 아주 열성적이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그분의 추종자라 공언하는 이들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탐심은 말세에 가장 흔하고 유행하는 죄이며 영혼을 마비시키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P 형제여, 부자가 되려는 갈망이 그대의 마음의 중심적인 생각이다. 돈에 대한 이 한 가지 정욕이 모든 높고 고귀한 생각을 마비시켰고, 타인의 필요와 관심에 대해 무관심한 자로 그대를 만들었다. 그대는 거의 무쇠 조각처럼 감화를 받지 않는다. 그대의 금과 은은 부패하였고, 영혼을 잡아먹는 암과 같이 되었다. 재물이 늘어나는 것만큼 자선을 베풀었다면, 그대는 돈을 그대가 선을 행할 수 있는 도구로 간주했을 것이다. 탐심과 관련하여 인간의 위협을 아시는 우리 구주께서는 이 무서운 해악에 대해 방비책을 준비하셨다. 그분께서는 구속의 계획이 자선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선에서 끝나도록 계획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한 희생으로 당신 자신을 드리셨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탐심을 직접적으로 가로막으며, 자선을 드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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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는 자선은 이기심, 탐심과 같은 암적인 죄에 대한 치유책이다. 하나님께서는 조직적인 자선을 통해서 당신의 사업이 유지되며 고통을 겪고 있는 자와 궁핍 속에 빠져 있는 자들의 필요를 채우도록 계획하셨다. 그분께서는 주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셨으며, 이것을 통해서 위험하고 기만적인 탐심의 죄의 효과를 상쇄하도록 하셨다. 끊임없이 주는 것은 탐심을 죽게 한다. 조직적인 자선은 재물을 얻자마자 신속하게 탐심을 가진 이에게서 떼어 놓아 그들이 속한 바 주님께 그들을 헌신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계획되었다.

이 제도는 인간이 저들이 날마다 번 돈으로 무엇인가를 주도록 하며, 그들의 주님을 위해 모든 투자한 것의 이익 중 한 부분을 저축하도록 한다. 조직적인 자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끊임없이 실천함으로 탐심은 약화되고, 자선은 강화된다. 만일 부가 증가한다면, 경건하다고 공언하는 인간들조차도 그 위에 저들의 마음을 쏟는다. 더욱 더 많이 가질 수록, 그들은 주님의 금고에 더욱 더 적게 드린다. 이렇게 하여 재물은 인간을 이기적이 되도록 하며 축적은 탐심을 더욱 크게 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악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강화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위험을 아시며, 우리 스스로의 멸망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우리를 두르셨다. 그분께서는 자선을 끊임없이 행사하기를 요구하시는데, 이는 선한 일을 행하는 습관의 힘으로써 그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습관의 힘을 깨뜨리려 함이다.

하나님께서는 매주일마다 자선을 위해 자금 중 어느 만큼의 분량을 요구하시는데 이는 이 선한 일을 자주 행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열려서 닫히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실천을 통해서 자선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강화되며, 결국 그것은 원칙이 되어 영혼을 지배한다. 이기심과 탐심이 심령 속에 조금이라도 깃들이도록 허용하는 것은 영성에 아주 위태롭다.

교회증언 3권 pp. 539-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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