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그들에 의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의 교회 안에 친히 임명하신 도움들과 더불어 연결될 수 있는 곳에 그대를 놓으셨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전에 강신술과 연결되었다는 것이 그대에게 위험이 되고 있는데, 이는 그대의 판단, 지혜, 분별력이 비뚤어졌기 때문이다. 그대는 스스로 언제나 영들을 분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단은 매우 교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대를 도울 수 있도록 당신의 교회에 그대를 연결시켜 주셨다.
그대는 때때로 너무 공적이고, 냉정하고, 동정심이 없다. 그대는 백성들이 처한 곳에서 그들을 만나야 하며, 그들보다도 그대를 크게 높인다거나, 그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동안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부드러워지고, 정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의 방식으로 수고할 수 있도록 스스로 교육해야 한다. 그대의 말을 부드럽게 하고, 그대의 기질을 형성하고, 그대의 영혼을 향상시키는 예수님의 사랑이 그대의 심령 속에 차고 넘쳐서, 이것이 그대의 수고를 특징짓게 해야 한다.
하늘의 영의 활기를 주는 감화력이 없는데도 그대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말하곤 한다. 그대는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을 피곤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흥미가 고조되어 있는 동안에 저들의 설교를 중단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청중의 마음 속에 고조된 흥미가 죽어 버리고, 특별히 비중이 있거나 흥미가 있지 않은 말로 백성들이 정말 피곤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해댄다. 그런 입장에 빠지기 전에 말을 중단하라. 말할 만큼 특별히 중요한 것이 없으면 중단하라. 오직 편견이나 자극하고, 심령을 부드럽게 하지 못하는 메마른 말을 계속해서 말하지 말라. 그대의 말이 녹아서 영혼을 불태우게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연합하기를 그대는 원한다. 이 시대에는 단조로운 말은 불충분하다. 논증은 좋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논쟁적 이 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영과 생명이 지나치게 부족하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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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노력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대의 정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하게 굴복되고, 그대의 심령이 부드럽게 되고, 그대의 말이 사랑의 심령으로부터 흘러나오지 않는 한, 그대의 수고는 스스로에게도 피곤할 뿐 아니라 복된 결과를 맺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그 이상의 지점에 대해서는 인간의 지식과 기술은 무력하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변화시킬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백성을 일깨워 보고 깨닫도록 할 수 없는 거대한 오류들과 악으로 더불어 우리는 싸우고 있다. 죄의 죄됨을 식별하고 구주의 필요를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영혼들을 일깨울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의 영의 감화를 담고 있다면, 또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우리의 노력에 좀더 높은 능력, 신령한 능력이 함께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A 형제여, 그대가 이와 같다. 그대는 어두워진 마음을 향해 지나치게 서둘지 말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그대는 하나님께서 기이하게 깨우치시는 성령의 감화를 자비스럽게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해 겸손히 기대해야 한다.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그대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마다 그대의 위기와 그대의 약점을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홀로 주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구하며 그대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그대의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대는 마음들을 다루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자신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어떤 이들에 대해서 동정을 베풀며, 차이를 내어야 하되, 어떤 이들에 대해서는 두려움으로 그들을 구원하고, 저들을 불 가운데로부터 끌어내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이든, 저것이든, 어느 것이 번영하게 될지 모르므로, 모든 물가에 뿌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의 근원으로부터 우리의 믿음과 활력을 분기시키고, 그분께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기대어야 한다.
A 형제여, 그대는 자아를 지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과 조화되게 품성을 계발하기 위하여 지극히 큰 열성으로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성공적인 목자가 되기 위하여 스스로를 교육하고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좋은 기질, 곧 친절하고, 쾌활하고, 관대하고, 불쌍히 여기고, 예절바르고, 동정적인 품성의 자질들을 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침울하고, 독단적이고, 편협하고, 흠잡기를 잘하고 독재적인 정신을 정복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과 연결되어있다면, 그대는 그대 자신으로 더불어 맹렬하게 싸워서 거룩하신 모본자를 본받아 그대의 품성을 형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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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부패한 마음의 영향력 아래에서 몇 가지가 발전되어 나타나서 그대의 길을 막을 것인데, 그러한 장애에 대해서 그대는 그 진정한 원인을 향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해서 비난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자기 연단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건은 꾀까다롭고, 냉정하고, 침울한 것처럼 나타낼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고, 가르칠 만하게 보여야 한다. 비난의 정신이 그대의 길에 울타리를 치게 될 것이며, 또한 그대를 향해서 마음 문을 닫게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 겸손하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장애물들로 스스로의 길을 자주 막게 될 것이며, 바로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행실 때문이라고 비난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편견을 조장하는 독단적인 정신을 갖고 진리를 가르치거나 의무를 수행하지 아니하도록, 굳건히 서서 스스로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의 자연적인 성격이 무엇인지, 그대가 계발한 성격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여 보라. 그대가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내는 이들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는 행동 습관이나 정신적, 도덕적 경향을 그대가 간직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목사들뿐 아니라 그대가 연구해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양들의 모본이 되도록 요구받고 있다. 목사의 감화는 그의 백성의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 많은 힘을 미칠 수 있다. 만일 목사가 게으르다면, 만일 그의 심령과 생애가 순결하지 않다면, 만일 그가 날카롭고, 비평적이고 흠잡기를 좋아하고, 이기적이고, 독립적이고, 자제심이 부족하다면, 그는 이와 동일한 불쾌한 요소들을 그의 백성들 중에서 상당히 많이 부딪쳐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릇된 감화로 혼란이 야기된 곳에서 질서를 잡는 일은 힘든 일이다. 백성들 속에 그리스도인 덕성을 계발하는 일과 관련해서 그들의 목사에게서 보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만일 그의 생애 속에 탁월한 특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진리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하여 그가 수고하고 있는 대상들은,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매우 크게 그의 모본과 감화를 반사할 것인데,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사는 범사에 하나님 우리 구주의 교훈을 아름답게 돋보이도록 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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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는 목사의 최대의 노력은 그의 모든 재능을 영혼 구원 사업에 바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때에 그는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현명하고 조심성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훨씬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표자인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에게 필수적이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당신의 순결과 고차원적인 도덕성을 통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으며, 그와 동시에 사랑과 부드러운 온정을 통해서 그들에게 열성을 불어넣어 주셨다. 극빈자와 극히 미천한 자가 그분께 접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분에게 끌렸다. 그들은 그분의 무릎에 올라가고, 사려 깊은 얼굴, 사랑으로 온화한 그 얼굴에 입 맞추기를 좋아하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부드러움이 그대에게 필요하다. 그대는 사랑을 계발해야 한다. 동정의 표현과 다른 이들에 대해 예의 바르고 존경하는 행동들을 통해서 그대의 위엄은 한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현재 그대를 거스려 닫혀 있는 많은 심령들이 그대를 향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목사들이 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바로 그런 분이셨다.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본받는 것에 대해 배워야 하며, 엄격한 정의, 순결, 성실, 사랑, 고결한 관대함 등을 결합시켜야 한다. 사랑이 비쳐 나는 기분 좋은 얼굴, 거기에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가 곁들인다면, 강단의 노력을 제쳐놓고, 책상 앞에서의 수고가 이것 없이 이룰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소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대해 존중 할 줄 아는 정신을 계발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다. 우리는 진실된 그리스도인 예절과 부드러운 동정심을 가장 거칠고, 딱딱한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계발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순결한 하늘 궁전으로부터 오셨다. 그대가 전하고 있는 기별에 대해 눈에 보일 만한 관심을 전혀 나타내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주님께서 보실 때에 은혜의 대상이며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그대는 너무 쉽게 마음 문을 닫는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 11:30). 바울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몇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이 되었다. 그대는 유사한 입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대는 그대의 독립심을 굽혀야 한다. 그대에게는 마음의 겸손이 부족하다. 그대에게는 그대의 심령 위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부드럽게 해주는 감화가 필요하다. 그대는 성을 내지 않을 것이며, 편견에 감염된 마음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녹여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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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업에 열렬한 사람, 열성, 소망, 믿음, 용기가 충만한 사람이 크게 필요하다. 이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물은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열렬한 사람이다. 체험이 미약하고, 그리스도인 덕성 상에 결함이 있고, 헌신이 부족하고, 쉽게 낙망하는 예민한 목사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다. 자기 스스로의 뜻을 만족시키는 데 열성적이며,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데 있어서는 아주 인내심이 많은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인물들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 말세에 우리는 항상 깨어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진실되게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소중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희생을 무릅쓰면서 자원하여 일하려는 의용병이 필요하다. 고난과 시련을 그리스도께서 저들에게 남겨 주신 유물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당할 때 불평하거나 투덜대지 아니할 그런 인물이 이 사업에 필요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선한 용사로서 진 밖으로 나가 비난을 견디고 짐을 지고자 해야 한다. 그들은 불평 없이, 투덜대거나 뒤로 물러서는 일 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질 것이며, 환난 때에 인내할 것이다.
이 말세를 위한 엄숙하고 시험하는 진리가 우리에게 위탁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 A 형제여, 그대는 그대 자신을 표준으로 삼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내가 그대에게 권하노니, 동정심에 호소하는 일을 피하라. 우리 구주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해서 겪으신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가 진리를 위해 겪을 수 있고, 아마 겪도록 부름 받게 될 모든 것은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대가 항상 제대로 평가받고, 제대로 제시되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우리가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분 안에서 우리는 평강을 누릴 것이다.
그대는 전투적인 정신을 계발시켰다. 그대의 길과 어긋날 때, 그대는 방어적인 자세를 즉각적으로 취한다. 그리고 진리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저들의 생애를 바친 그대의 형제들 사이에 그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대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그들을 비난하며, 그들의 말에 대해 시기하고, 그들의 동기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그리하여 그대의 형제들의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을 그대의 특권으로 주어진 커다란 축복들을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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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피하라
그대는 진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며 토의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은 조화되는 그리스도인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 있어서 그대에게 좋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그대가 하늘에 들어가고자 할진대 필히 정복해야 할 바로 그 성품적 특질이 과시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항상 토론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두 가지 악 중 선택이 불가피할 경우가 있겠는데, 그것은 토론이다. 그러나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거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자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토론을 부추길 것이다. 양편의 증거를 듣기 원하는 이들이 순수하게 정직한 동기에서 토론을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토론을 피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것이다. 토론은 일반적으로 호전성을 강화시키고, 의견 상에 차이가 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마음 가운데 항상 존재해야 할 순결한 사랑과 신성한 동정심을 약화시킨다.
세상에서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토론은 사람들 편에서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망에 대한 증거를 결여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토론에 수반되는 신기함과 흥분 때문에 생긴다. 이러한 싸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거의 영광을 받지 못하시며, 진리도 거의 전진하지 못한다. 진리는 그 결과에 있어서 너무 엄숙하고 웅장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간에 사소한 문제로 만들어 버릴 수 없다. 토론자의 기술을 반대자에게 보여줄 셈으로 진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아주 형편없는 정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를 거의 전진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의 반대자들은 기술을 발휘하여 상대편을 그릇되게 나타나도록 한다. 그들은 지극히 엄숙하고 신령한 진리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고귀하고 신성한 진리를 가지고 놀며, 모욕한다. 그리고 그것을 그릇된 빛 가운데서 백성들에게 제시한다. 오류로 어두워지고, 죄로 더럽혀진 마음의 소유자들은, 고귀하고 중요한 진리를 이런 식으로 덮어 버리고, 그릇되게 나타내는 이러한 의도적인 사람들의 동기와 목적을 식별하지 못한다. 토론에 참가하는 사람들 때문에, 올바른 원칙 위에서 처신하는 것이 가능한 토론은 거의 없다. 양편에서 날카로운 공격을 너무 자주 하게 되고 개성이 개입되고, 자주 양편은 야유와 익살 가운데로 내려간다. 이기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영혼에 대한 사랑은 상실된다. 깊고도 쓰디쓴 편견이 토론의 결과로 남는 경우가 자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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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진리의 보석이 진리를 위한 증거들에 관해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들 앞에 제시되는 것을 보고 천사들이 슬퍼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들의 전존재는 진리의 원칙으로 더불어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본성은 진리와 적대 관계에 있다. 그들의 토론 목적은 진리의 증거 자체를 파악하거나, 백성들이 우리의 진정한 입장을 공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 앞에 왜곡된 빛 가운데 진리를 놓음으로써 이해를 혼란시키기 위해서이다. 토론자로 스스로를 교육한 인물들이 있다. 반대편 토론자를 그릇되게 진술하고 부정직한 궤변으로 분명한 논증들을 덮어 버리는 것이 그들의 정책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이 부정직한 일에 바쳐 왔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 속에는 순수한 진리의 원칙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의 옹호자들을 꺾기 위해서 얻을 수 있는 어떤 논증이든지 붙잡지만, 사실은 그들 스스로는 그들을 반대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그러한 논증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공의와 진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입장을 강화한다. 그들 앞에 심판이 있으며, 그리고 그들이 그릇되게 거두어들인 승리는 그 모든 재앙적인 결과들과 함께 그 진정한 성격을 드러낼 것이란 점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는다.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기 위해서 뒤집고, 비틀어 대는 것을 그 모든 정책으로 삼고 있는 오류는, 그때에 모든 기형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의 날에 어떠한 승리도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며, 오직 진리, 순결하고, 고결하고, 거룩한 진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하늘에 근원을 둔 소중한 진리를 돼지 앞에 던짐으로, 그들이 그것을 붙잡아 진흙탕 속에 짓밟아 버리는 것을 보고 천사들은 운다.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 7:6). 이것은 세상의 구속주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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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목사들은 토론에 참가하는 기회를 큰 특권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편견을 가진 무리들 앞에 우리 신앙의 모든 요점들을 증거하고 제시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당신께서 그들 앞에 제시하는 진리들을 그릇되게 사용할 것이기에 상징과 표상 아래 진리의 명백성을 숨기시고, 비유로 그들 앞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수법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받아들이도록 준비될 길이 없는 진리들을 제시함으로써 백성의 귀를 막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진리들을 먼저 다루어서 청중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 다음에 백성이 따라올 만큼 우리는 서서히 전진하며 진리를 제시하여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서 편견 있는 사람들 앞에서 인기 없는 진리를 제시할 때 지극히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있도록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입장에 대해 알지 못하고, 성경 진리에 대해 무식한 사람들 앞에, 진리의 명백한 요점들을 가리워 버리기 위하여, 솜씨 좋게 계획하고 조심스럽게 짜 맞춘 논증 꾸러미를 토론을 통해 내어놓게 된다. 어떤 이들은 저들의 기만적인 이론들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사실들에 대한 분명한 진술들을 가려버리는 것을 저들의 사업으로 삼았으며, 스스로 연구해 보지도 않은 이들이 그것에 대해 박수갈채를 보내도록 한다.
사단의 이러한 대리자들은 대처하기 힘든 존재들이며, 그들에 대해 인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든 목사들이 계발해야 할 것은 침착성, 인내심, 자제력 등의 요소이다. 진리의 싸움꾼들은 지적인 전쟁을 위해 스스로를 교육시켜 왔다. 그들은 피상적인 궤변과 주장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의심 없는 마음들을 혼란시키고, 진리를 애매 모호하게 한다. 반면에 기쁘게 하는 우화들이 순수한 성경 진리 대신에 백성들에게 제시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는 어두움을 선택한다. 그러나 다른 형편 속에서 다른 식으로 진리가 전파되어 저들 스스로 논증의 비중을 달아보고,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리의 명확함에 매혹되어 그것을 받아들였을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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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사들이 엄숙하고 신성한 여호와의 진리를 덮어 버리고 그 능력을 무력화시켜 버리려는 엉큼한 인물들이 마련해 놓은 오류의 간교한 궤변을 세상에 출판해 내는 것은 매우 신중하지 못한 일이었다. 부주의한 이들을 기만하기 위해 엎드려 기다리는 이 교활한 인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기 위해 저들의 지력을 사용한다. 경험이 미숙하고, 의심을 하지 않는 이들은 미혹을 받아 멸망한다. 반대자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낸 모든 논증들을 출판하는 일은 큰 오류인데, 이는 그렇게 함으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저에는 결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수많은 논증들을 공급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경솔한 전략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신성한 진리를 반박하는 논증들, 곧 간교하게 영향을 끼치는 논증들이 진리의 능력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지 않은 이들의 마음에 영향을 끼친다. 지역 사회의 도덕적 감수성은 죄와 친숙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크게 손상되었다. 이 타락한 시대에 범람하고 있는 이기심, 부정직, 그리고 다양한 죄들은 영원한 사물에 대한 감각을 손상시켜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의 대적자들의 오류가 담긴 논증들을 출판함으로 말미암아 진리와 오류가 그들의 마음 속에 같은 차원 위에 놓여졌는데, 만일 그들이 진리의 신성성과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그 진리들을 분명하게 그들 앞에 제시했더라면, 그들은 진리를 위한 강력한 논증들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 그들은 반대자들이 강요하는 논증들을 대처할 준비가 될 것이다.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애쓰는 이들, 빛에 충실하고 그들의 일상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일에 열성인 이들은 교리를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인데, 이는 그들이 모든 진리 속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진리를 찾지 않고 또한 진리에 대해 알고자 하는 갈망도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배적인 섭리의 행동을 통하여 사람들이 당신의 진리를 아는 일 쪽으로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려 오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할 힘이 있다. 선택력은 그들에게 놓여져 있다. 그들에게는 행동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다. 그들은 우리 구속주의 이름과 은혜를 통해서 순종하든지, 혹은 불순종하든지 할 것이며,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은 신성하고 영원한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일에 책임을 지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깨닫도록 하시며, 영혼들은 진리를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결정한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의 품행, 말, 행동은 진리편, 혹은 반대편으로 영혼들을 저울질 할 수 있다. 모든 행동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이것은 특별히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대사들 중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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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권위
세상의 구주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큰 능력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교회의 신자들을 심리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을 말씀해 주셨다. 따라야 할 행동 노선에 대한 명백한 지시를 하신 후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8). 그러므로 성경의 법칙에 따라 행해질 경우에, 하늘의 권위는 교인들에 대한 교회의 징계를 인정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개인이 교회의 판단에 반대되게 자신의 판단을 세우도록 허용하지 않으며, 그가 교회의 의견에 반대되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도록 허락하지도 않는다. 교회 안에 징계나 행정이 없으면, 교회는 조각이 날 것이며 한 몸으로서 결속될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이 옳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을 가르치고 감동시키고 인도하셨다고 주장하는 독자적인 마음을 가진 개인들이 언제나 존재해 왔다. 각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와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관점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각자는 서로 다른 논리와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각각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빛을 받았노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고, 각자가 스스로 독립된 교회가 된다. 이들 모두가 옳을 수는 없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감의 말씀은 “예” 와 “아니오” 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 와 “아멘” 이다.
교회증언 3권 pp. 419-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