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159-168(157일)

시간이 급박하므로 우리는 열심히 배가된 힘으로 일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결코 대학에 들어갈 수 없을지 모르나, 그들은 실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또한 정신을 계발하고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필수적인 분야의 교육을 얻을 수 있다. 대학 과정을 마친 수많은 청년들이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진정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대학 교육을 받았노라는 이름은 가졌을지 모르나, 사실상 교육받은 저능아에 지나지 않는다.

아낌없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만 한다면, 그 봉사를 하나님께서 가납하실 만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저들이 스스로를 섬기고, 재산을 얻기 위하여 사용하는 정신적 능력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한다면, 그들은 주님의 포도원에서 열성과 인내로 일하며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에 사용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수많은 청년들이 성경 연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세속적 사물에 그러한 것처럼 영적인 지식에 있어서 그만큼 영리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납하심을 얻을 수 있었던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 실패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오직 극소수의 사람만이 죄인들에게 경고하고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고 있다. 우리의 청년들은 일반적으로 세속적 사물에 영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사물에 있어서는 지성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그 마음을 하늘의 거룩한 통로로 향하게 함으로 빛 가운데서 행하여 점점 더 광명한 빛 가운데로 나가고, 점점 더 힘을 얻어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며, 불신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이들에게 하늘 가는 밝은 길을 가리킬 수 있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날 때, 저들은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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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저들이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중요한 성경 진리들에 관한 지식이 없이 성경을 설명하거나 예언에 대해 가르치는 일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공통적인 교육 분야에 부족할 수 있으며, 따라서 만일 저들이 좋은 학교의 혜택을 받았더라면 이룰 수 있었을 상당한 분량의 선을 이루는 일에 실패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 공언하는 그 어떤 인물도 무식을 통해 겸손이나 영성을 증가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신령한 말씀의 진리들은 지성적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지성적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이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최고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 교육의 최고 목적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능력들을 성경적 신앙을 최선껏 대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시키는 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모든 재능들에 대하여 우리를 존재케 하신 분께 빚지고 있다. 우리의 조물주께 우리는 그분께서 위임하신 재능들을 계발하고 향상시키는 책임을 지고 있다. 교육은 지성을 연단하고 그 능력을 계발하며, 지혜스럽게 그것들을 인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전진시키는 일에 우리로 하여금 유용한 존재가 되게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곧 바로 목회에 들어가는 이들이 최소한도 교육의 공통적 분야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고,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진리를 더욱 더 완전하게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학교가 필요하다. 이러한 학교들과 관련하여 예언들에 관한 강의가 주어져야 한다. 당신의 포도원에서 행하는 노고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을 만큼의 선한 능력들을 진정으로 소유한 이들은, 그러한 학교에서 불과 몇 개월의 강의만으로도 많은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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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장 — 건강 개혁

1871년 12월 10일, 건강 개혁은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한 백성을 준비시키는 큰 사업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 다시 내게 보여졌다. 건강 개혁과 셋째 천사의 기별은 마치 손과 몸의 관계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사람들은 십계명을 소홀히 여겼지만, 주님께서는 먼저 경고의 기별을 그들에게 보내지 않고는 이 계명을 범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오지 않으실 것이다. 셋째 천사는 그 기별을 선포한다. 사람들이 항상 십계명을 순종하여 그 계명의 원칙들을 생애에 실천하여 왔다면, 오늘날 세상에 편만한 질병의 저주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남녀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지 않고는 타락한 식욕과 방탕한 정욕을 자행함으로 자연 법칙을 범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우리 몸에 세우신 법칙을 범하는 우리의 죄를 보도록, 건강 개혁의 빛을 우리 위에 비치게 허락하셨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난은 자연 법칙을 순종하느냐, 범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분이 설립하신 법칙들을 어떤 이들은 알면서, 또한 다른 많은 이들은 모르고 범하며 살고 있는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보신다. 그리고 인류에 대한 사랑과 동정 가운데 건강 개혁에 대하여 빛이 비치도록 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계명과 그것을 범하게 될 때에 따르게 될 형벌을 공포하셔서 모든 자들이 배우고, 자연 법칙에 조화되게 사는 일에 주의하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매우 명백하게 공포하시고, 극히 뛰어나게 하심으로, 그것은 마치 산 위에 세워진 도시와 같다. 하고자만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백치들이나 책임을 모면할 것이다. 자연 법칙을 명백히 하고, 그에 순종하도록 하는 것이 주님의 오심을 위하여 한 백성을 위하여 준비시키는 셋째 천사의 사업에 동반하는 사업이다.

아담과 하와는 식욕의 부절제로 타락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가장 심한 시험을 견디어 내셨으며, 또한 인간을 위하여 식욕을 정복하셨다. 그리하여 인간도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아담은 비록 식욕 때문에 타락하고 행복한 에덴을 상실했지만, 아담의 후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식욕을 정복하고 모든 일에 절제함으로 에덴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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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이제는 율법을 범하는 데 대한 아무 핑계도 되지 않는다. 빛이 분명하게 비치고 있으며,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교사가 되시기 때문에 아무도 무지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들은 건강 개혁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건전한 철학과 진정한 경험에 유의해야 할 가장 신성한 의무로 매여 있다. 그분은 건강 개혁의 대주제가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고 일반 대중의 마음을 깊이 분기 시키어 연구하게 되기를 뜻하셨다. 왜냐하면 남녀들이 그들의 죄악스럽고 건강을 파괴하며, 두뇌를 고갈시키는 습관을 가진 채로는 신령한 진리를 분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령한 진리를 통해 그들은 성화되고, 고결하게 되고, 고상하게 되어 영광의 왕국에서 하늘 천사들의 무리와 더불어 살기에 적합하게 되어야 한다.

노아 시대의 거민들은 저들의 비뚤어진 식욕에 방종하게 되었기 때문에 멸망 당하였다. 소돔과 고모라는 부자연스러운 식욕에 방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령한 요구와 식욕의 아우성을 구분하지 못하게 됨으로 멸망당하였다. 후자가 저들을 사로잡아 저들은 사나워지고 혐오스럽고 가증한 일을 대담하게 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그들이 사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실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죄악이 탐욕과 술취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격려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그런데 사람들은 죄스러운 방종으로 저희 몸을 거룩하게 하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불결하다면, 신령한 예배자가 되기에 부당하며, 그들은 하늘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못하다. 만일, 사람들이 건강개혁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빛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는 진리로 성화될 수 있으며, 불멸성을 위하여 적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그 빛을 무시하고 천연계의 법칙을 어기며 산다면, 그는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완전하고 거룩하게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므로 말미암아 그 거룩한 상태로부터 타락하였다. 타락 이후로 질병과 고난과 사망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그 창조주를 모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를 위하여 아직도 펼쳐져 있다. 그분은 인간들에게 빛이 비치도록 허용하심으로써 인간이 온전한 생애를 살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지배하는 천연 법칙과 조화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체와 정신적 능력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사되도록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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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관습을 따라 신체적·정신적·도덕적 활력을 감소시키는 습관에 몰두하면서 인간이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기꺼이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도는 계속해서 말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예수께서 감람산에 앉으사 당신의 재림 전에 있을 일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노아 당시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한 똑같은 죄가 우리 시대에 존재한다. 지금 남녀들은 폭식과 취하기까지 먹고 마신다. 이 편만한 죄, 즉 타락한 식욕의 방종이 노아 당시 사람들의 정욕을 흥분시켜, 일반적인 부패로 인도하였으며 마침내 그들의 강포와 범죄가 하늘에까지 도달하였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홍수로 도덕적인 오염에서 땅을 깨끗이 씻으시기까지 하셨던 것이다.

폭식과 술 취하는 그같은 죄가 소돔의 거민들의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켜 범죄가 그 악한 도시의 남녀들의 기쁨이 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경고하시기를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눅 17:28, 29) 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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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가장 중요한 교훈을 남기셨다. 그분은 당신의 교훈 가운데 게으름을 격려하시지 않으신다. 그분의 모본은 이와 반대였다. 그리스도는 열심 있는 일꾼이셨다. 그분의 생애는 극기와 근면과 인내와 노력과 절약하시는 생애이셨다. 주님은 먹고 마시는 것을 최고로 삼는 위험을 우리 앞에 제시하고자 하셨다. 그분은 식욕의 방종에 몰두하는 결과를 제시하신다. 도덕적인 기능이 약화되므로 죄가 죄스럽게 보이지 아니한다. 범죄에 눈짓을 하고, 저열한 정욕이 정신을 주관하여 마침내 일반적인 부패가 선한 원칙과 선한 충동을 근절시키기까지 하여 하나님께서 모욕을 당하신다. 이것이 모두 다 지나치게 먹고 마시는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에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선언하신 상태이다.

남녀들이 경고를 받을 것인가? 그들이 빛을 간직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식욕과 저열한 정욕의 노예가 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단순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보다 좀더 고상한 어떤 것을 우리에게 제시하신다. 범죄가 될 정도로 지나치게 먹고, 마시고, 입는다. 그것들은 마지막 시대의 현저한 죄 가운데 하나이며, 머지않아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신다는 징조가 되기도 한다. 주님께 속했으나 그분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시간과 돈과 힘은 의복의 사치와 타락한 식욕을 위한 호화로운 식사로 낭비되는데, 그 식사는 활력을 감소시키며, 고통과 부패를 초래한다. 우리의 죄스러운 방종으로 말미암는 부패와 질병을 계속 몸에 가득 채워 두면서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건강을 유지하도록 먹고 마시며 옷 입는 방법에 관하여 지식을 얻어야 한다. 병은 건강 법칙을 범한 까닭으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병은 천연의 법칙을 범하는 결과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와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동료 인간들에게 지고 있는 첫째 임무는 건강 법칙을 포함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병든다면, 우리는 친구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부과하며, 우리 가족과 이웃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 스스로를 부적합하게 만든다. 그리고 천연계의 법칙을 범한 결과로 일찍 죽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 준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서 그들에게 마땅히 주었어야 할 도움을 우리 이웃에게 주지 못하게 된다. 우리 가족들에게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위로와 도움을 우리 가족들에게서 빼앗는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봉사를 하나님에게서 탈취하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나쁜 의미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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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주 동정심이 많으시며 은혜롭고 부드러우시다. 그러므로 죄스러운 방종으로 그들의 건강을 손상시킨 사람들에게 빛이 이르러 올 때에 그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용서를 구하면, 그분께서는 당신께 돌려 드리는 그 보잘것없는 제물을 받으시며, 그들을 받아 주신다. 오, 주께서 고통당하며 뉘우치는 죄인들의 남용한 생애에서 그 남은 부분을 거절하시지 않는 자비가 얼마나 부드러우신가! 그분의 은혜로우신 자비로 이 영혼들을 불에서 꺼내듯이 구원하신다. 그러나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껏해야 얼마나 보잘것없고 가련한 희생인가! 고상한 재능들이 죄스러운 방종의 그릇된 습관으로 마비되어 있다. 포부는 변질되었다. 영혼과 몸이 흉하게 파손되었다.

15 장 — 의료 기관

개혁의 위대한 사업이 전진해야 한다. 고난을 경감시키고, 빛을 전파하고 궁금증을 일으키고, 개혁을 전진시키기 위하여 배틀크릭에 의료기관이 설립되었다. 이 기관은 땅 위에 있는 그 어떤 위생 기관보다도 색다른 원칙들로 말미암아 운영되어야 한다. 그 동료들과 운영자들에게 돈이 가장 큰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양심적이고 신앙적인 입장에서 이 기관을 운영하였는데, 성경상의 위생적인 원칙을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유의 대부분의 기관들은 다른 원칙하에 설립되었고, 보수적인데, 인기 있는 계층의 사람들을 적당하게 만족시키고 저들의 노선을 형성함으로 말미암아 최대의 후원과 최대의 자금을 받아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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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크릭의 의료 기관은 굳건한 신앙적 원칙 위에 설립되었다. 그 운영자들은 하나님을 진정한 소유주로 인정한다. 의사들과 조력자들은 하나님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분을 두려워하는 중에 양심적으로 행동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것은 확고한 기초 위에 서있다. 연약한 이들과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이 기관의 운영자, 감독, 의사, 조력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음을 배우게 된다면, 그들은 인기 있는 의료 기관들 중에 있을 때 보다도 더욱 더 안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만일 배틀크릭의 의료 기관에 관련된 이들이 순결하고 고상한 성경 진리로부터 떠나서 다른 기관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이론과 관습을 모방하여 오직 돈만을 위하여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하며, 그 운영자들은 고상하고 신앙적인 입장에서 일하지 않게 된다면,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은 이 기관 위에 머물지 않게 될 것이다. 이 기관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도록 준비시키는 최대의 도움이 되도록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 것이다. 이와 같은 온전함을 얻기 위해서 남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고상한 진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도덕적 품성 가운데 있는 불완전함을 식별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갈 수 있도록,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우정을 맺기 위하여 개혁하는 일에 열심을 보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뒤편으로 제쳐질 것이 아니며, 아무리 인기가 있더라도 그 어떤 부류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그 거룩한 원칙들을 내버려서는 안 된다. 만일, 진리와 거룩함의 원칙이 낮아지게 된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신 것은 이 기관 속에서 수행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특별한 신앙이 환자들로 더불어 토론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마음은 저들이 스스로 원하지 않는 한, 우리와 입장을 달리하는 주제들에 관하여 불필요하게 흥분되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의 특별한 신앙을 저들에게 강요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격동시키지 아니하도록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의료 기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종교계와 의견을 달리하는 우리 신앙에 관한 요점들에 관하여 토론하는 장소로 바뀌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이 원한다면, 기관에서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기도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나, 반대를 받는 차이점들을 건드리지 않고 성경적 신앙과 관련된 주제를 충분히 다루어야 한다. 조용한 감화는 공개적인 토론보다도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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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회에서 전달하는 격려와 관련해서 어떤 안식일 준수자들은 안식일 문제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다루어야 한다고 느끼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 그들은 자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편협한 마음의 특징이 이러하다. 우리 신앙에 관해 알지 못하는 환자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명확한 설명 없이 이러한 용어를 도입하는 것은 오직 해만 끼칠 뿐이다. 우리는 백성들이 처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야 하되 진리의 한 가지 원칙이라도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 환자들과 조력자들과 의사들에게 기도회는 축복이 될 것이다. 간단하면서도 흥미있는 기도의 시간과 친교적인 예배의 시간은 환자들로 하여금 저들의 의사와 조력자들에 대해 더욱 큰 신뢰를 갖게 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한, 일 때문에 조력자들이 이와 같은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것을 필요로 하며, 이와 같은 기회를 누려야 한다.

이렇게 정규 집회를 운영함으로 말미암아 환자들은 기관에 대해 신뢰심을 갖게 되며, 더욱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리하여 진리의 씨앗이 어떤 이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길이 마련된다. 이러한 집회는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에게 흥미를 주며,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끼친다. 상호간의 신뢰심이 향상될 것이며, 편견은 약화되고, 많은 경우에 그 어떤 편견은 전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 후에 안식일 집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갈망감이 생길 것이다. 그곳 하나님의 전은 우리의 교단적 관심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 곳에서 목사는 현대 진리의 필수적인 요점들을 분명하게 가르칠 수 있을것이며,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사랑과 온유 가운데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 전적으로 필요함을 호소하고, 그리하여 진리가 심령들에게 확신을 주도록 할 수 있다.

나는 의사의 일에 관련된 제반 사업에 관하여 철저히 이해하고 있으며, 적절한 교양을 갖춘 올바른 정신 상태의 신사다운 의사들이 있다면, 더 크게 사업이 성취될 것을 보았다. 의사들에게는 폭넓은 인내와 견고함과 친절과 동정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 즉 신체적으로 병들고, 그 중 다수의 사람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는데, 이들을 취급하기 위해서 이러한 자질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자리에 맞는 적임자,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조화를 이루며 열성껏 이기심 없이 일을 할만한 올바른 남녀들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행하는 사람, 병든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신앙적 견지에서 건강 개혁을 두드러지게 유지하는 자들이 의료 기관에 필요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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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헌신하여야 하며, 대중적인 의사들의 입장과 같이 단지 질병만을 치료하기 위해 신체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영적인 아버지가 되어 병든 정신을 다루고, 죄로 병든 영혼들을 실패함이 없는 치료제, 곧 저들을 위하여 죽으신 구주께 향하도록 하여야 한다. 질병 가운데로 빠져들게 된 이들은 한 방면 이상으로 고난을 겪고 있다. 저들은 정신적 고충보다도 육체적 고통을 훨씬 더 잘 견딜 수 있다. 많은 이들은 범죄한 양심을 지니고 있으며, 오직 성경적 신앙의 원칙으로만 저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

가난과 질고 가운데 있던 중풍병자가 구주께 들려 왔을 때, 처지는 너무나 위급하여 한 순간의 지체도 허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미 신체에는 와해 작용이 진행 중이었다. 그를 데려온 이들이 직접 그리스도의 종전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보았을 때, 그들은 즉시로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가 눕혀진 병상을 그 아래로 달아 내렸다. 우리 구주께서는 보시고 그의 형편을 완벽하게 이해하셨다. 그분은 또한 이 가련한 사람에게는 신체적 고통 이상으로 더 고통스러운 영혼의 질병이 있음을 아셨다. 그분은 그가 여러 달째 짊어져야만 했던 최대의 부담은 죄악들이었음을 아셨다. 백성의 무리는 그리스도께서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일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보기 위하여 거의 숨을 죽이고 기다렸으며, 그분의 입술로부터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는 말씀을 듣고 놀랐다.

이것은 병으로 고생하는 그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말씀이었다. 왜냐하면 죄의 짐이 그를 얼마나 무겁게 짓눌렀는지 거의 편안함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심하라.” 그대의 구주인 내가 죄들을 용서하고자 왔노라. 질고자의 창백한 안색은 얼마나 빨리 변했던가! 희망이 어두운 좌절을 밀어내고, 고통스러운 의심과 묵중한 그늘 대신에 평강과 기쁨이 자리 잡았다. 일단 마음에 평강과 행복이 회복되면 고통중에 있는 신체에도 접근할 수 있다. 다음에 신령한 입술을 통해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는 말씀이 흘러나왔다. 의지에 순종하려는 노력을 통해 생기와 혈색을 잃었던 팔이 소생되었다. 건강한 혈류가 혈관을 통해 흐른다. 피부로부터 창백한 색깔이 사라지고 불그스레한 건강한 모습이 자리를 잡았다. 오랜 세월 동안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수족이 생기를 얻고, 고침받은 중풍 병자는 자기의 침상을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무리를 헤치고 자기집으로 걸어 나갔다.

교회증언 3권 pp. 159-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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