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그분의 제자들과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며 인간에 공통적인 바 우리의 필요와 연약함과 실패를 공감하고자 하셨다. 그분은 강한 탄원자이셨다. 우리처럼 타락한 본성의 정욕을 갖지 않으셨지만 그와 같은 연약성을 이해하며,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아버지로부터 도움과 지지를 받아야 하는 그런 고뇌를 겪으셨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이 사단에 의해서 시험을 당하며 심하게 침을 당하는가? 죄를 모르는 그분도 그렇게 당하셨다. 그분은 이런 시련의 시간에 그분의 아버지께 향하였다. 그분께서는 빈번하고 열렬한 그분의 기도의 생애를 우리가 본받으므로 우리가 필요한 때에 도움이 되는 은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이 이 모본을 따른다면 그들은 그분의 영으로 입히울 것이며 천사들이 그들에게 수종들 것이다. 천사들이 예수께 수종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임재는 그분의 생애를 심한 투쟁과 무서운 시험이 없는 안락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분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당하셨으나 죄는 없으셨다. 만일 목사들이 주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는 동안 시련과 곤란과 시험을 당한다면, 그들이 그들 앞에서 이 모든 일을 이기신 분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의기 소침해야 하는가? 그들이 수고한 성과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확신을 내어 버려서야 되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민족을 위하여 열렬히 일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노력은 그분이 구원하러온 사람들에 의해 천대를 받았고, 그들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러 오신 분을 죽였다. 목사의 수는 충분히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다. 일꾼들,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그 사업의 신성성과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나가려면 만나야 할 심한 투쟁에 대하여 알고 있다. 일꾼들은 아무리 힘든 일을 보더라도 놀라거나 맥이 빠져서는 안 된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그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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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무 부족이 없도록 마련된 큰 재원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핑계를 댈 수 없다. 곤란을 회피하여 핍박 중에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데 있어서 약하고 무능하게 만든다. 최전선에서 회피함 없이 서는 모두는 그들을 대항하는 사단의 특수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그의 공격을 깨달을 때에 그들은 요새로 도망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도움이 필요함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힘 안에서 일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승리로 그들은 우쫄해지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믿음으로 강하신 그분께 더 확고히 의지하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깊고 열렬한 감사의 마음이 그들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들은 원수에 의해 압박당하는 동안 환난 중에서도 기뻐한다. 이 자원하는 종들은 경험을 얻고 하나님의 사업을 빛나게 하는 품성을 형성한다. 지금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있어서 엄숙한 특권과 거룩한 신임의 때이다. 만일 이 신임이 충성스럽게 지켜진다면 주인께서 “네 하던 일을 셈하라” 고 말씀하실 때에 충성된 종의 상급은 클 것이다. 열렬한 수고, 이타적인 일, 인내하며 끈질기게 한 노력은 풍성히 보상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손님이라 하리라. 주인의 인정은 성취된 일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며,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작은 일에 충성한 까닭이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큰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근본 동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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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큰일을 성취한 것보다는 선함과 충성됨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경건을 완성하지 못하는 최대의 위험에 놓인 것을 보게 되었다. 목사들이 자신의 영혼을 잃는 위험에 처해 있다. 남들에게 설교했던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지 못하므로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일하는 동안 영혼들도 구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도 구원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을 아는 것과 자제의 중요성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깨어 있다면 그들은 시험에 의해 가장 쉽게 공격 당할곳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의 약점을 알게 될 것이다. 경성과 기도로서 그들의 최약점이 강화되어 최강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시험에 지지 않고 그것에 맞설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은 매일 자신을 살펴서 자신의 행위를 온전히 알게 되어야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한다. 이 태만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하는 두렵고 책임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나님의 대변자라고 공언하는 자에게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런 사람의 매일의 행동은 남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만일 그가 성공하게 된다면 그는 그가 얻은 영혼을 자신의 낮은 수준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들이 더이상 자라는 것은 드물다. 그들의 목사의 방식, 언어, 몸짓과 행동, 그의 믿음, 그의 경건 등이 안식일을 지키는 모든 재림신도들의 모본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친 그 목사의 모본을 따르는 한 그들은 그들이 모든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행동에 있어서 목사가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많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부족을 보고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주는 영향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은 그들이 행동할 때 그것을 의식한다. 그러나 기억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개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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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목사들이 매일의 행동들을 유심히 고려하고 되뇌이면서 자신의 습관을 더 잘 알고자 한다면 그들은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일상 생활의 모든 경우를 면밀히 살피므로 그들은 그들의 동기와 그들을 움직이는 원칙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매일의 행위들을 양심이 인정하는지 혹은 정죄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선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많은 행위들을, 심지어 자선의 행위들도 면밀히 새겨보면 그릇된 동기에서 나온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이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덕으로 인해 칭찬을 듣는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동기를 조사하신다. 그리고 자주 사람들에 의해 높이 칭찬을 받은 행위들이 그분에 의하여 이기적 동기와 비열한 위선에서 나온 것이라고 기록된다. 탁월하여 칭찬을 받을만 하든지 비난을 살만 하든지 간에 삶의 모든 행위는 그 행위를 유발시킨 동기에 따라 마음의 감찰자에 의해 판단된다. 심지어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는 어떤 목사들도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의 동기를 숙고하며 살피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과 죄를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신실함과 열성으로 그들의 생애와 행위와 품성을 일일이 그리고 전체적으로 살피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의 신성하고 거룩한 율법과 비교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들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공경한다고 공언하는 그 율법의 정신을 거스리며 매일 살아간다. 바울은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한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말씀과 교훈으로 일하는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그것의 거룩한 요구들이나 그리스도의 중보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가 없다. 그들은 죄인을 회개시키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회개할 필요가 있다. 품성의 결점을 드러내는 충성된 거울이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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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결함과 죄가 존재한다. 그리고 잘못이 있는 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남들이 다 본다. 가증스런 이기심의 죄가 만연한데, 심지어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한다고 공언하는 어떤 이들에게도 있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품성을 그분의 요구들, 특히 위대한 표준 즉, 그분의 거룩하고 공의롭고 선한 율법과 비교해 본다면 그들이 진지하고 정직한 구도자일 것 같으면 그들은 자신의 끔찍한 부족함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의 마음의 결함을 보기 위해서 깊이 있게, 또 멀리 내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우 많은 면에 있어서 부족하다. 그러나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들의 죄를 모른 채 살려고 한다. 그리고 너무 자신의 이익만을 살피느라 급급해서 하나님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천성적으로 경건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과 동기를 면밀히 살피는 습관을 장려하고 계발해야 하며 특히 신앙적 행위와 은밀한 기도에 대한 사랑을 간직해야 한다. 그들은 자주 의심과 불신을 이야기하고, 무신론적 느낌과 겪었던 놀라운 갈등을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담하고 있는 사업의 궁극적인 성공과 진리 안에 있는 그들의 믿음과 소망과 용기에 지장을 줄 만큼, 그래서 의심하는 편에 선 것에 특별한 덕이 있는 것처럼 만들 정도로 좌절시키는 영향력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한다. 때로는 그들은 무신론자의 입장을 배회하고 그들의 어두운 형편의 핑계로 삼을 수 있는 모든 상황과 함께 불신을 강화시키기를 참으로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자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대들은 회개하여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때까지 당장에 내려와 시온 성루를 떠나는 것이 낫겠다. 그대들이 목사가 되는 책임을 지기 전에 그대들은 이 세상의 애착에서 그대들을 분리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받았다. 이 의심의 위치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받을 보응은 무서워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의심과 흑암과 불신의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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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답한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영혼을 정직하고 진실되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적인 신앙을 계발하기를 게을리하였다. 그들은 모든 이기심과 죄와 죄인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자아 부정, 자기 희생의 우리 주님의 생애를 연구하지 않았고 그분의 순결과 헌신과 자기 희생의 모본을 따르지 않았다. 쉽게 에워싸는 죄는 방종으로 인해 강화되었다. 그들의 태만과 죄로 인해 그들은 거룩하신 교사로부터 떠났으며, 그분은 그들보다 하룻길이나 앞서셨다. 그들은 태만하고 나태하고 타락하며 불신하고 불경스럽고 감사할 줄 모르며 거룩지 않은 동료, 즉 악한 천사들을 그들의 길동무로 삼았다. 그런 자들이 어두움에 있고, 교훈을 의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을 알리라.” 그는 이 문제에 있어서 확실히 알 것이다. 이 약속이 모든 의심과 의문을 물리칠 것이다.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의 분리이다. 그분은 열렬하고 정직하고 진실되며 충성되며 겸손하며 온유하며 순결한 자들, 즉 하늘의 장식을 한 거룩한 천사들이 거룩하게 하고, 빛을 비추며, 순결케 하며, 보호하는 자들이 그분의 뒤를 따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그의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의심과 불신을 말하는 사실보다 더 그의 형편, 즉 그가 예수께로부터 멀리 있으며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며 개인적인 경건을 게을리한다는 것을 더 잘 증명해 줄 것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정결하고 순결하고 참된 그리스도의 신앙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정련의 과정에서 찌꺼기로 온전히 타버릴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의 믿음을 검증하실 때에 그들은 동요하며, 약하게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운데 있다. 그들은 바울이 지녔던 진정한 요소를 갖지 못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환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그들은 상황의 종교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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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들 주변의 모든 자들이 믿음이 강하고, 세 천사의 기별이 궁극적으로 성공하여 고취되어 있으며 그들을 대항하는 특별한 세력이 없을 때에 그들은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경이 닥치는 것 같고, 사업이 지지부진하게 되며,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이 불쌍한 영혼들은 복음의 목사들이라고 공언하면서도 모든 것이 무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돕는 대신에 방해가 된다. 만일 배도가 일어나고 반역이 나타나면 그들이 용기와 격려의 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다. 형제들이여, 힘을 내라. 용기를 가지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환경에 그토록 좌우되는 사람들은 가정에 남아 있어서 그런 거센 반대가 없는 덜 책임짓는 일에 그들의 신체적·지적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모든 일이 잘 풀려 가면 그들은 선하고 신앙적인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주인께서 그분의 일터로 내보내지 아니하실 자들이다. 왜냐하면 이 사업은 사단의 사자들에 의하여 반대를 당하기 때문이다. 사단 역시 그의 악한 천사들과 함께 그들을 대항해서 항오를 벌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을 하도록 부르신 자들이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준비하셨다. 그분의 지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패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는 에베소서 6장 10-18절에 바울을 통하여 우리가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대항하여 어떻게 자신을 강화시켜야 하는지를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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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우리는 고상하고 신성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어두움에 앉은 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불신과 흑암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살아야 한다. 거기서 그들은 주 안에서 모든 빛이 될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거룩한 격려의 소리만 들려야 할 때에 의심과 좌절의 소리가 난다. 목사들에게 신앙이 필요하다. 매일 하나님과의 대화가 필요하며, 그분의 사업을 위한 나뉘지 않은, 이타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자기를 낮춤과, 모든 질투와 악한 생각과 시기와 미움과 악의와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모본, 갈바리의 고통당하는 그분을 시야에서 놓쳤다. 그분을 섬기는 가운데 이생에서 우리는 안락과 명예와 위대함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하늘의 왕께서 그것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 앞에 이 모본이 있는데도 우리가 십자가를 회피하고 환경에 좌우되기를 선택할 수 있을까? 우리가 깨어서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둘러쌓여 있을 때만 우리의 열심과 열성이 일어나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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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환경이 불쾌하고 절망적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결코 설수 없지 않은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대하여 집중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분의 사업에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진리의 사업의 발전을 위해서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하여 쉽게 시험을 받게 되고 그것에서 떠나게 된다. 그들은 안정되지 않고 강화되지 않고 정착되지 않았다. 자신의 품성을 잘 깨닫고, 자기를 가장 잘 에워싸는 죄가 무엇인지, 자신을 가장 잘 정복할 수 있는 유혹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불필요하게 자신을 노출시키거나 자신을 원수의 마당에 둠으로 시험을 불러들이지 않는다. 만일 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서 일할 의무가 생긴다면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을 받을 것이며, 그리하여 원수와의 싸움을 위해서 완전 무장이 될 것이다. 자신을 아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큰 시험에 빠지는 것을 막아 주며, 불명예로운 패배를 방지해 줄 것이다.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 우리의 동기와 행동의 원칙을 일일이 따져 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표준과 우리의 행위를 비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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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은 자신을 격려하고 계발해야 한다. 나는 우리의 출판소와 건강 기관과 목회에 종사하는 자들 중에 어떤 이들이 순전히 월급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예외가 있기는 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청지기 직분에 대해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는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을 위해 바쳐진 재물이 낭비되고 있다. 진리의 거룩하게 하는 감화를 경험하고 그 가치를 알고 하나님께 감사함을 느낀 가난한 가족들은 주의 금고에 예물을 바치기 위하여 저들의 생활 필수품까지를 희생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저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실제로 필요한 의류를 희생했다. 또 다른 이들은 한 마리 밖에 없는 암소를 팔아서 그 돈을 하나님께 드렸다. 저들의 영혼의 진심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기 때문에 그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 예물을 가지고 와서 주 앞에 무릎을 꿇고 바치는 이 예물 위에 주님의 축복이 임하사 흑암 중에 있는 영혼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전달하는 재물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렇게 드려진 재물이 자기 희생적인 헌납자가 의도한 대로 늘 사용되지는 못하였다. 극기와 희생 정신이 없는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이렇게 금고에 들어온 재물을 불충실하게 취급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당하게 벌지 않은 재물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보화를 도둑질 했다. 그들의 비헌신적이고 무모한 관리는 기도와 눈물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재물을 낭비하고 흩어버렸다. 나는 기록하는 천사가 하나님께 헌납되는 연금마다, 금고에 넣어지는 금전들을 충실히 기록하며, 그렇게 드려진 연금의 최후 결과로 충실히 기록하는 것을 보았다.
교회증언 2권 pp. 509-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