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져야 할 짐을 그들 자신이 진다. 과로는 나쁘다. 그러나 나태의 결과는 더욱 두렵다. 게으름은 부패한 습관의 방종으로 이끈다. 근면은 나쁜 수음 습관의 오분지 일 만큼도 몸을 피곤케 하거나 기진하게 하지 않는다. 만일 단순하고 잘 주선된 노동이 자녀들을 기진하게 한다면, 자녀들에게는 노동 이외에 그들의 신체를 약화시켜서 계속적인 피곤을 느끼게 하는 더 큰 요인이 있다는 것을 부모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신경과 근육을 활용시킬 육체적 노동을 자녀들에게 시키라. 그와 같은 노동에 수반하는 피곤함은 악한 습관에 탐닉하고자 하는 그들의 경향을 약화시킬 것이다. 게으름은 저주이다. 그것은 방탕한 습관을 일으킨다. 많은 경우가 내 앞에 제시되었으며, 내가 그들의 내면 생활을 보게 될 때에, 나의 영혼은 경건을 공언하며 하늘나라로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부패한 마음가짐때문에 역겨워지고 혐오감을 느꼈다. 나는 자주 자문하였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 누가 이 죄악과 상관이 없는가?” 나의 남편과 나는 언젠가 폐결핵으로 심히 고통당하는 형제를 위하여 우리의 동정을 구하는 한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창백하고 쇠약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는 그의 가족이 질병에 걸려 있고 자녀를 한 명 잃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안고 말하였다. 그는 화잇 부부 보기를 얼마 동안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만일, 그들이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가 나으리라고 그는 믿어 왔다. 집회가 끝난 후, 형제들은 그 경우에 우리가 유의해 주기를 요청했다. 형제들은 그의 아내가 병들었고 그의 자녀가 죽었으므로 교회가 그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말하였다. 형제들은 그의 집에서 이미 예배를 드렸으며, 그 고통당하는 가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에 연합하였다. 우리는 대단히 피곤했으며 집회를 진행하는 동안 맡은 일이 있었으므로 자리를 뜨기 원하였다. 나는 주님의 성령께서 지시하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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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준수자임을 고백하는 자들 가운데서라도 불법이 너무 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제시되었으므로, 나는 그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 연합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사연을 말하였다. 형제들은 나에게, 그들이 아는 한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형제라고 보증하였다. 나는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우리의 기도를 요청하는 그 형제와 몇 마디의 말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는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말하며, 만일 우리가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가 건강을 회복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그의 과거의 생애를 알지 못하므로 그를 아는 자들이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였다. 그가 우리에게 너무나 진지하게 간청하므로 우리는 그의 경우를 고려하기를 결정하였으며, 그날 밤에 주님 앞에 그의 사정을 아뢰고, 만일 명확한 길이 제시되면 그의 요청에 따르기로 하였다. 그날 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그의 경우를 주님 앞에 아뢰었다. 우리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간청하였다. 우리가 바란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는가? 우리는 주님께 그 집을 맡기고 쉬기 위하여 돌아갔다. 꿈속에서 그 사람의 형편이 명백하게 제시되었다. 어린 시절부터의 그의 생애가 보여졌으며, 만일 우리가 주님께 간구한다면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인데, 이는 그가 마음에 불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그 형제는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려 달라고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그를 따로 데리고 가서 그의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꿈이야기를 했으며,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는 그의 소년 시절부터 수음을 행해 왔으며 그의 결혼 생활 중에도 그 행습을 계속하였으나 그 악습을 깨뜨리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하였다. 이 사람은, 오랜 기간 형성되어 온 극복해야 할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생애의 중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도덕적 원칙은 너무 연약하여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방탕과 투쟁할 때에는 정복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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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열한 정욕이 보다 고상한 본성을 지배하였다. 나는 그에게 건강 개혁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는 건강 개혁을 실행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가 만일 통밀가루를 집안에 가지고 들어간다면 그의 아내는 그것을 밖에 내다버릴 것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이 가정은 교회의 도움을 받아왔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도 드려졌다. 그들의 아이는 죽었으며 아내는 병들었고,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는 그의 형편을 우리에게 의탁하여 순결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가져감으로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하사 그를 낫게 하시도록 하고자 한다. 이 사람의 도덕적 감각은 마비되었다. 청년들이, 그 정신이 부드러울 때 이 악한 습관을 시작한다면, 그들은 결코 온전히 그리고 바르게 신체적·지적·도덕적 품성을 계발시킬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매일 자신을 저하시키면서도 감히 하나님앞에 나아가, 그가 악하게 낭비하였으며 만일 허락된다면 그의 정욕을 위하여 사용될 힘의 증가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가! 만일, 그분이 사람을 그의 부패한 길에 따라 다루신다면, 누가 그분의 목전에서 살 것인가? 만일, 우리가 악을 행하고 있는 이 사람의 경우를 부주의하게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갔다면, 주님께서 들어주셨겠는가? 그분께서 응답하셨겠는가?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이것이 그의 형편의 전부가 아니다. 결혼 관계마저도 이 사람을 그의 청년 시절의 부패한 습관에서 보호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제시한 그러한 경우가 드물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안다. 부패한 정욕에 의해 지배되는 양친으로부터 태어나는 자녀들은 가치가 없다. 그 부모보다 더 저열한 위치로 타락하는 것 외에 무엇을 그러한 자녀에게서 기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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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의 세대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수천의 사람들이 원칙을 상실하고 있다. 바로 이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들 자신의 비참하고 부패한 정욕을 유전시키고 있다. 이 무슨 비참한 유산인가! 수천의 사람들이 원칙 없는 생애를 연명하며, 그들과 사귀는 자들을 오염시키고, 그들의 타락한 정욕을 자녀들에게 전함으로 그것을 영속시킨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그들 자신의 품성의 흔적을 전한 데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나는 다시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논증한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이 불의와 관계가 없다면, 나의 영혼은 평안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킨다고 공언하는 자들조차 간음죄를 범한다. 그들의 마비된 감각을 일깨우기 위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도덕적 원칙은 철저하게 실행될 때 영혼의 유일한 안전책이 된다. 식사를 가장 단순하게 해야 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육류가 우리 자녀들 앞에 놓여져서는 안 된다. 그것의 영향은 보다 저열한 정욕을 자극하고 강화하며 도덕력을 마비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승천을 위하여 준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식탁을 위한 음식은 동물성 기름을 넣지 않고 가능한 자연 상태로 요리한 곡식과 실과이어야 한다. 자극성이 적은 식사일수록 정욕은 더욱 쉽게 제어된다. 신체적·지적·도덕적 건강을 무시한 식욕의 만족은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 보다 저열한 정욕의 방종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빛에 대하여 그들의 눈을 멀게 하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들이 버리기를 꺼리는 그 죄악을 보게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보고자 한다면 모두가 볼 수 있다. 만일 그들이 빛보다 어둠을 택한다면, 그들의 범죄의 근성은 감소되지 않을 것이다. 어찌하여 사람들이 서적을 읽고도 그들의 신체적·지적·도덕적 힘에 이처럼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 문제에 대하여 현명하게 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에게 그분의 영광과 봉사를 위하여 최선의 상태에 두도록 돌보고 보존해야 할 몸을 주셨다. 그대의 몸은 그대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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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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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18 — 교회에 대한 증언
52 장 — 그리스도인의 절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 20).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귀한 값으로 산 바 되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고 완전히 깨달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 온전한 봉사를 바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건강상태를 최선으로 유지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지워진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활력을 낭비하고, 힘을 흐리게 한다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분의 것인 우리의 몸과 정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 보시기에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는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귀한 값이 치루어졌는가?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인가? 우리 존재와 몸과 정신의 모든 힘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이 맞는가? 그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이 점을 깨달을 때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존하여 세상에서 그분의 것인 우리의 몸과 영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우리에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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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곧 오신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그저 우화가 아니라 사실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의심하지 않았고, 지금도 우리가 주장하는 가르침이 현대 진리이며, 심판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거룩한 천사들의 무리에 의해 호위되어 구름을 타고 오셔서 충성되고 의로운 자들에게 불멸의 마무리 손질을 하실 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시고 우리 품성의 결점들을 제하시며 우리의 성질과 성격의 약점들을 치료하시러 오시지 않는다. 이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 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주님이 오시면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할 것이다. 그들의 몸과 정신을 성결과 성화와 존귀로 보존한 자들은 그 때 불멸의 마무리 손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의하고, 성화되지 못하고, 더러운 자들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 때 가서 결점을 제거하고 거룩한 성품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련하시는 그분께서는 정련 작업을 다시하여 죄와 부패를 제거하시지 않으신다. 이 모든 일은 은혜의 시기 동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에게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할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소양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가 진리의 영향 아래 들어갈 때에 이것은 우리에게 하늘 왕국의 영광과 하늘 천사들과 동거하기에 적합한 도덕적 자격을 주는 데 필요한 일을 이룬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공장에 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채석장에서 나온 거친 돌과 같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붙들면 그 영향은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고상하게 하며 우리에게서 어떤 종류의 죄와 약점이라도 제거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왕의 아름다움을 볼 준비가 될 것이고, 결국 하늘 영광 가운데 순결한 하늘의 천사들과 연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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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서 우리를 위한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하며, 우리의 몸과 영이 불멸에 적합하게 되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면 바로 여기다. 우리는 의와 품성의 순결,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반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디를 보더라도 우리는 부패와 부정과 죄악과 결함 투성이다. 그러면 불멸을 받기 직전에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우리의 영을 순결하게 보호하여 이 마지막 시대에 만연하는 부패 속에서 흠 없이 서는 것이다. 이기심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온전히 장악하여 우리의 모든 행위에 영향을 끼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하늘을 잘 신뢰하고, 그 능력을 잘 붙잡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거룩케 하시는 영향이 우리 마음에 역사함을 알 것이다. 우리가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건강 개혁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며 먹고 마시고 모든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행동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것을 먹든지 저것을 먹든지 알 바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책임진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크게 잘못하였다. 그대들만이 잘못된 길의 결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이 살고 있는 사회도 그대들의 잘못의 결과로 인해 많이 고통을 당한다. 만일 그대들이 부절제한 음식과 음료로 고통을 당한다면 그대 주위에 있는 우리나 그대들과 접하는 사람들이 그대들의 병약함에 의해 영향을 입는다. 우리는 그대들의 잘못된 행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다. 만일 그대들이 쾌활하지 않고 우울하다면 그대들은 그대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우리가 슬픔과 근심과 걱정에 눌려 있을 때에, 그대들이 건강한 상태에 있다면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이를 헤쳐나갈 길을 보여 줄 수 있는 깨끗한 뇌를 소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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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대들의 뇌가 잘못된 생활에 의해 마비되어서 우리에게 바른 권면을 줄 수 없다면, 우리에게 손실이 아닌가? 그대들의 영향력은 우리에게 심각한 감화를 주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의 판단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질 수 있으나 우리는 상담자를 원한다. 왜냐하면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 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 우리의 행위가 일관된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며, 그들의 권고를 얻기 원하며, 그들이 맑은 정신으로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만일 그대들의 뇌신경이 극도로 무리하고, 그대들의 위장에 들어온 부적당한 음식이나 혹은 너무 많은 양의 좋은 음식을 처리하느라고 뇌의 모든 활력이 고갈된다면 그대들의 판단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런 사람들의 판단을 우리가 어떻게 처리할까? 그들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통하여 본다. 그러므로 그대의 생활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대들이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잘못된 길을 추구할 수는 없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특별한 명예로 생각되었던 월계관을 얻으려고 경주에 임한 사람들은 모든 것에 절제함으로 그들의 근육과 뇌와 모든 지체가 경주에 최적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들이 모든 것에 절제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원하던 몸의 탄력을 얻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절제하면 더 성공적으로 잘 뛸 수 있으며, 면류관을 받을 것이 더 확실해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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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의 모든 절제와, 최선의 상태에 있고자 하여 조심스런 식사를 했던 그들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경주를 달린 사람들은 단지 운에 맡기고 뛰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명예의 표를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를 보라. 몇 발 앞선 자가 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한 사람만 상을 받는다. 그러나 하늘의 경주에서는 우리 모두가 뛸 수 있고 모두가 상을 받을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불확실성도, 위험률도 없다. 우리는 하늘의 은혜를 입어야 하며, 불멸의 면류관에 눈을 고정시키고 우리의 모본을 항상 우리 앞에 모셔야 한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이셨고 고뇌를 아시는 분이셨다. 우리 구주의 겸손하고 자아 부정의 삶을 우리는 항상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닮으려고 할 때에 상을 주시하며, 확실성을 가지고, 이 경주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 상을 확실히 알며 뛸 수 있다. 사람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뛰려고 자아 부정과 훈련을 경험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 만에 시들고 말 것이며, 죽을 인간들로부터 온 명예의 표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가 불멸의 면류관과 영생인 경주를 뛰고 있다. 우리가 이 경주를 달리면 더 크고 영원한 영광이 우리에게 상으로 주어질 것이다. 사도는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 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적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 절제했다면 썩지 아니할 면류관과, 영원한 영광과 하나님의 생명에 비교되는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큰 동기가 우리에게 있을 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 며 우리 앞에 놓인 인내의 경주를 경주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길을 택하셨고, 그 모든 길을 그분의 발자취로 표시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