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전은 가장 찬란한 진주가 박힌 투명한 금으로 된 일곱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었다. 내가 그 곳에서 본 놀라운 것들은 도저히 묘사할 수 없다. 아, 내가 가나안의 언어를 구사할 수만 있으면, 더 좋은 그 세계의 영광을 조금만이라도 묘사할 수 있을 터인데! 나는 거기서 14만 4천 명의 이름이 금글씨로 석판 (石版) 위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성전의 영광을 본 후 우리는 밖으로 나왔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 성안으로 들어가셨다. 곧,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그분의 인자한 음성을 들었다. “내 백성들이여, 오라. 그대들은 큰 환난 가운데서 나왔고, 나의 뜻을 행하고 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였다. 만찬에 참석하라. 내가 허리를 동이고 그대들에게 봉사하겠다.” 우리는 “할렐루야 영광” 이라고 외치면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기서 순은 (純銀) 으로 된 식탁을 보았다. 그 식탁은 길이가 여러 마일이나 되었지만, 우리는 육안으로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나는 거기서 생명나무의 열매, 만나, 살구, 무화과, 석류, 그 밖에 여러 가지 종류의 과일들을 보았다. 나는 예수님께 그 과일을 먹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지금은 안 된다. 이 땅의 과일을 먹는 자들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성실하기만 하면, 잠시 후에 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샘의 물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다시, “너는 세상으로 돌아가서 내가 네게 보여 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한 천사가 나를 친절하게 이 어두운 세상으로 데려다 주었다. 때때로, 나는 여기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너무도 황량해 보인다. 내가 더 좋은 땅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매우 적적함을 느낀다. 비둘기 같은 날개가 있다면, 그 곳으로 날아가 안식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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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을 보는 동안에 같이 있었던 하이드 형제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는데, 그것은 종교 간행물들에 널리 게재되고 여러 찬미가에 수록되었다. 그 가사를 출판하고 읽고 노래하는 자들은 그것이, 그의 겸손한 간증 때문에 핍박받은 한 소녀의 이상 (異象) 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저 빛나고 거룩한 땅에서 한 소리 들렸네. 그 소리 들을 때 우리 마음은 기쁨으로 설레었네. 우리는 외로운 순례자들 피곤하고 지쳐 서러움에 차 있는데 이제 곧 순례는 끝나 아름답고 거룩한 땅 생명강이 흐르는 곳에 영원히 살 곳을 얻는다 하였네.
시듦을 모르는 들판에 푸른 물결 넘실거리고 꽃이 만발한 사막에 샤론의 장미 향기롭다 하네 푸르른 가지마다 밝고 고운 새들의 지저귐 샘물처럼 신선한 노래에 천사의 수금이 화답하네.
거기 종려나무와 흰옷과 면류관, 흰옷 입은 은빛 무리들이 있고, 진주 문, 아름다운 도성이 찬란한 광채로 빛나고 있다 하네. 거기 천사와 성도들이 금거문고 타며 노래 부르고, 동산에 생명나무 서 있고 그 잎사귀 만국을 소성케 한다 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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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의 아름다운 왕 그는 그 곳의 기쁨이요 빛이라. 우리 거기서 그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의 미소 짓는 얼굴을 뵈오리. 잠시 후면 그 곳에 가리. 우리 그 곳에 있으리. 순결하고 복 받은 자들과 함께 종려나무와 흰옷과 면류관을 얻고 영원한 안식을 즐기리.
10 장 — 책망을 보류함
그 즈음에, 나는 심한 시련을 당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집회에서 어떤 사람에게 임하여 그가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최면술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집회에서 나에게 이상을 보여 주심으로 주님께 기쁨이 되는 경우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흥분상태와 최면술의 결과라고 말하곤 하였다. 슬픔과 절망에 사로잡힌 채, 나는 때때로 어떤 한적한 곳을 찾아가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와서 편히 쉬라고 말씀하시는 분에게 심령을 쏟아 놓았다. 내가 믿음으로 약속을 성취시켜 달라고 요구할 때, 예수님은 매우 가까이 계시곤 하였다. 하늘의 아름다운 빛이 나의 주위를 비추고, 나는 구주의 팔에 안겨있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그 곳에서 이상 가운데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세속적 영향을 받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오직 나에게만 보여 주신 것을 말하게 될 때, 나는 어떤 친구들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사단에게 기만당하기 쉽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놀라고 슬퍼했다.
이와 같은 가르침에 의하면, 미혹을 피하는 유일의 안전책은 배교의 상태에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 과연 그렇다면, 혼자서 하나님을 찾아가서 정직하게 그분의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간구하고 그분의 구원을 달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더러운 최면술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인가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다만 돌이나 전갈을 받기 위하여 자비하신 하늘 아버지께 떡을 구하는가? 이와 같은 일은 나의 심령을 상하게 했고, 거의 절망 상태가 되기까지 마음을 심한 고민으로 찢었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이 없다는 것과,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람들이 경험한 모든 역사는 다만 최면술의 결과이거나 사단의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가 믿게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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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성경절들에 대한 극단적 견해를 가지고, 노동을 전적으로 못 하도록 금지하고, 신앙적 의무에 속한 이런저런 견해들에 대한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배척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상을 통하여 이와 같은 오류들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잘못에 빠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교훈하도록 나를 보내셨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기별을 완전히 거절하고, 나를 세상과 동화되었다고 비난했다. 한편으로 이름만 가진 재림 신자들은 나를 광신자라고 비난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저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애쓰고 있는 광신의 지도자로 잘못 알려졌다.
각기 다른 시간들이 주님께서 오시는 시기로 정해지고 형제들에게 강요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때들이 그저 지나갈 것이라고 나에게 알려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환난의 때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은 약해질 것이었다. 이 일 때문에, 나는 “주인이 더디 오리라” 고 말한 악한 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시기를 정하는 일에 관한 이 말은 약 30년 전에 출판되었으며, 그 문제를 게재한 책들이 도처에 배포되었다. 나를 잘 아노라고 주장하는 어떤 목사들은, 내가 여러 차례 주님의 오심에 관한 시기를 정했는데 그 시기들이 지나간 것을 보면 나의 이상이 거짓된 것이라고 말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와 같은 거짓 진술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나와 나의 사업을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그 같은 소문을 퍼뜨릴 수 없었다. 1844년의 시기가 지나간 후, 나는 언제나 다음과 같이 증언해 왔다.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시기를 정하는 일이 거듭되겠지만, 그저 지나가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시기를 정하는 일의 영향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이상을 통하여 명확한 시기를 보고 그것에 관하여 직접적인 증언을 했을 것 같으면, 이 증언을 앞에 두고, 그리스도의 재림전에 반드시 환난의 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해지는 모든 시기는 그대로 지나쳐 버리고 말 것이라고 써서 출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 말씀을 출판한 이래 지난 30년 동안, 나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시기를 정함으로 내가 책망하고 있는 자들과 동일한 정죄 아래 내 자신을 두기를 원치 않았다. 그리고, 나는 1844년에 일반적으로 기대했던 시기가 지나간 후인 1845년에 이르기까지는 이상 (異象) 이 없었다. 그 때에, 나는 여기서 언급한 것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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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증언은 모든 세밀한 점까지 성취되지 않았는가? 일요일 준수 재림교도들은 여러 차례 시기를 정하였다. 반복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새로운 시기를 정함으로써 사기를 회복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이렇게 하도록 인도하지 않으셨다. 1844년의 시기가 지나가도 기대했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참된 예언적 시기를 거절하고, 예언의 성취를 무시했다. 그들이 진리를 거절하자, 원수는 그들을 강력하게 미혹하기 위하여 능력을 행사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믿게 했다. 시기에 대한 큰 시험은 1843년과 1844년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 때 이후로 시기를 정하는 모든 자들은, 자기 스스로 기만당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만해 왔다.
첫번째 이상 때까지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이 떨렸으므로 펜을 굳게 붙잡을 수 없었다. 이상 중에 있을 때, 나는 천사에게서 이상을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는 순종하여 기꺼이 기록했다. 나의 신경은 힘을 얻게 되고, 손은 튼튼해졌다.
잘못한 자들에 관하여 내게 보여진 것을 그들에게 말해 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십자가였다. 다른 사람들이 괴로워하거나 슬퍼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나에게 큰 괴로움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불가불 기별을 말해 주지 않을 수 없게 되면, 때때로 기별들을 완화시켜 할 수 있는 대로 그 사람에게 그것이 좋게 보이도록 하곤 했다. 그런 다음에, 홀로 가서 정신적 번민을 안고 울곤 하였다. 나는 오직 스스로의 영혼만 돌보면 될 자들을 쳐다보고, 내가 만일 그들의 입장에 있다면 불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별을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해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하여, 만일 책망을 받은 사람들이 책망을 대항하여 일어나고 그 후에 진리를 반대하게 되면, 나의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기곤 했다. 나는 마땅히 전해야 할 그대로 기별을 전했는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어떤 길이 없었을까? 그런 다음에 너무도 큰 고통이 나의 심령을 누르게 되면, 나는 때때로 죽음이 바람직한 것이고 무덤이 편안히 쉴 곳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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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 중에 예수님 앞으로 가기 전까지는 그와 같은 행동의 위험과 죄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분께서는 불쾌히 여기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신 다음에 내게서 얼굴을 돌리셨다. 그 때 내가 느낀 공포와 번민은 도저히 묘사할 수 없다. 나는 그분 앞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한 마디의 말도 할 힘이 없었다. 아, 나는 불쾌히 여기시는 그 무서운 표정에서 가리워지고 숨겨지기를 얼마나 열망했던가! 그 때 나는 잃어버린 자들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계 6:16) 고 부르짖을 때 그들의 마음이 어떠할 것인지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때, 한 천사가 나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나의 눈에 띈 광경은 거의 묘사할 수 없었다. 내 앞에는 머리털이 헝클어지고 옷이 찢어지고 얼굴은 바로 공포와 절망의 모습을 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게 접근해 와서 그들의 겉옷을 나의 옷에 문질렀다. 나의 옷을 쳐다보았을 때, 나는 그 옷이 피로 더러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다시, 나는 수행하는 천사의 발 앞에 죽은 사람처럼 넘어졌다. 나는 한마디의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 거룩한 장소에서 떠나고자 열망했다. 그 천사는 나를 일으켜 세워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지금 그대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주님께서 그대에게 보여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일을 등한히 할 것 같으면, 그대의 상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 주기 위하여 이 장면이 그대 앞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끝까지 성실할 것 같으면, 그대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고 생명수의 강물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대는 많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대에게 족하다.” 그때, 나는 주님의 인정을 받고 불쾌히 여기시는 그분의 무서운 표정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자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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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장 — 결혼과 그 후의 활동
1846년 8월 30일에, 나는 제임스 화잇 목사와 결혼으로 연합했다. 화잇 목사는 재림 운동에서 깊은 체험을 했으며, 진리를 전파하는 그의 활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왔다. 우리의 마음은 위대한 사업을 통하여 연합되었으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함께 여행하고 활동했다.
우리는 돈 한푼 없이, 소수의 친구들과 허약한 건강만으로 우리의 사업에 착수했다. 남편은 강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학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지나치게 골몰함으로 심히 허약해졌다. 나는 이미 열거한 바와같이 어린 시절부터 허약한 건강 때문에 고생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돈도 없고, 우리의 견해에 동조해 주는 사람들도 매우 적고, 문서도 서적도 없이, 우리는 사업에 착수했다. 우리는 그 당시에 예배드릴 집도 없었다. 천막을 사용한다는 생각도 그 당시에는 우리에게 있지 않았다. 우리의 집회들 중 대부분은 사가 (私家) 에서 열렸다. 우리의 기별을 듣는 회중은 적었다. 재림 신자들 외에는, 그리고 한 여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자 하는 호기심에 끌린 자들 외에는 우리의 집회에 오는 자들이 드물었다.
처음에, 나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중 앞에서 설교하는 일에 착수했다. 만일, 나에게 확신이 있었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준 것이었다. 만일, 내가 자유롭고 능력 있게 말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우리의 집회는 일반적으로, 우리 둘이 다 참여하는 형태로 지도되었다. 남편이 교리 설교를 하고 나면, 나는 그 뒤를 이어 꽤 긴 권고의 말씀으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 이와 같이, 남편은 씨를 뿌리고, 나는 진리의 씨에 물을 주고, 하나님께서는 자라게 하셨다.
1846년 가을에, 우리는 성경상 안식일을 지키고, 또한 가르치며 옹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해 초에 매사추세츠 주 뉴베드포드를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안식일에 주의가 끌렸다. 나는 그 곳에서, 일찌기 재림신앙을 받아들이고 그 사업에 적극적인 일꾼이었던 조셉 베이츠 장로와 친해졌다. 베이츠 장로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베이츠 장로가 다른 아홉 가지 계명보다 네째 계명을 더 강조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에게 하늘 성소에 대한 이상을 주셨다. 하나님의 성전이 하늘에서 열리자, 나는 속죄소로 덮여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보았다. 그 궤 양쪽 끝에는 두 천사가 섰는데, 그들의 날개는 속죄소 위로 펼쳤으며, 얼굴은 속죄소를 향하고 있었다. 나를 따르는 천사는, 모든 하늘의 천군들이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기록된 거룩한 율법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예수님께서 궤 뚜껑을 여셨을 때, 나는 십계명이 기록된 돌비를 바라보았다. 나는 십계명의 한복판에 있는 네째 계명이 부드러운 후광 (後光) 으로 둘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천사는 말했다. “그것은 열 가지 계명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명확하게 밝혀 주는 유일의 것이다. 세상의 기초가 놓여질 때, 안식일의 기초도 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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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식일이 언제나 지켜져 왔을 것 같으면 이교도나 무신론자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안식일의 준수는 세계를 우상숭배에서 지켜 주었을 것이다. 네째 계명이 유린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의 무너진 데를 수보하고 짓밟힌 안식일을 변호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높이고 때와 율법을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한 불법의 사람이, 안식일을 일곱째 날에서 주일 중 첫째 날로 바꾸었다. 이와 같이 함으로, 그는 하나님의 율법에 무너진 데를 만들었다. 하나님의 큰 날이 오기 직전에, 적그리스도가 무너뜨린 하나님의 율법에 충성하기 위하여 돌아오라는 경고가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다. 교훈과 모본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율법의 무너진 데로 끌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선포하는 세째 천사가, 하나님의 계명을 눈동자처럼 지키기 위하여 이 기별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경고의 음성을 높이는 백성들을 대표한다는 것과, 이 경고에 반응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안식일을 받아들이게 될 것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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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네째 계명에 관한 빛을 받아들이던 당시에, 메인 주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25명 가량 있었다. 그러나, 교리의 다른 면에서 생각의 차이가 너무 많았고 지역적으로도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은 너무도 약했다. 뉴잉글랜드의 다른 지역들에도 유사한 조건으로 거의 같은 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의 가정을 자주 방문하여 주님과 그분의 진리 안에 굳게 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도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의 대부분을 길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자금의 부족으로, 우리는 가장 값싼 사설 운송 기관, 2류급 차량, 기선의 밑창에 승선하는 등의 방법을 취했다. 허약한 건강 상태에 있는 나는 사설 운송 기관에 의한 여행이 가장 편안했다. 2류급 차량에 탔을 경우, 우리는 일반적으로 담배연기에 싸여 지쳐 버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기선의 밑창에 승선하게 되면, 우리는 선원들과 저속한 승객들의 저주스럽고 저속한 대화 외에 담배 연기에 의하여 꼭 같은 고생을 했다. 밤이면 우리는 융단제 손가방을 베개로, 외투와 숄을 이불로 삼아 딱딱한 마룻바닥이나, 건조된 화물상자 위나 곡식 자루 위에 누워서 잤다. 겨울의 추위를 만나면, 우리는 추위를 잊기 위하여 갑판 안에서 걸어다니곤 했다. 여름의 더위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서늘한 밤공기를 쐬기 위하여 갑판 위를 걸어다니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은, 특별히 어린 아기를 팔에 안고 여행할 때 나에게 피곤을 안겨 주었다. 이와 같은 생활 방식은 결코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난한 가운데서 부르셔서 고난의 풀무를 통과하게 하사, 우리에게 귀중한 가치가 될 경험과 그 후에 우리와 함께 사업에 동참할 다른 사람을 위한 모본을 남기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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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은 슬픔의 사람이었고 비애를 아는 분이셨다. 그러므로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는 자들은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다. 주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사 그가 개심하게 되었을 때, 그분께서는 그가 얼마만큼 행복을 누릴 것인지 보여 주고자 하지 않으시고, 그가 그분의 이름으로 얼마나 크게 고난을 당할 것인지 보여 주고자 하셨다. 고난은 순교자 아벨의 시대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의 몫이 되어 왔다. 부조들은 하나님께 성실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였다. 교회의 위대한 머리 되시는 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다. 그분의 사도들과 초기 교회는 고난을 당하였다. 그리고, 수백만의 순교자들과 개혁자들 역시 고난을 당했다. 그렇다면, 미구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성취될 복스러운 불멸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 때문에 고난의 생애를 두려워할 것인가? 고난당하는 일 없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고난당한 적이 없다면, 그 풍성한 상급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영광을 피하여 물러가게 될 것이며, 선한 싸움을 싸우고 인내로 달려갈 길을 가서 영생을 얻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받는 길을 택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선지자 요한은 구속받은 무리들을 보고 그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즉시,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7:14) 는 대답이 나왔다.
안식일 문제에 관한 빛을 전하기 시작할 당시에, 우리는 요한계시록14장 9-12절의 세째 천사의 기별에 관하여 분명히 정의된 사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 설 때 증거해야 할 사명은 위대한 재림운동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과, 첫째와 둘째 기별은 이미 전해졌고, 세째 기별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째 기별이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는 말씀으로 마치게 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예언적 말씀이 안식일 개혁을 시사한 것이라는 사실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같이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그 기별에서 말한 짐승에 대한 경배가 무엇이며 짐승의 우상과 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견해를 갖고 있지 못했다.
교회증언 1권 pp. 6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