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1 639-648 (64일)

이미 주식을 확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기부할 수 없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주식에 투자한 바로 그 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 주에서 저 주로 여행하면서, 나와, 건강 기관을 한동안 찾아가야 할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이 바로 무덤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그들이 건강 기관의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그 자금의 부족으로 찾아갈 수 없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들은 거기에 1불도 투자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버몬트에 있는 한 사례를 들겠다. 이 형제는 일찌기 1850년에 안식일 준수자가 되었다. 그 때부터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경영하고 있는 여러 사업에 즐거운 마음으로 바쳐서 재산이 줄었다. 그러나, 건강 기관을 위하여 긴급하고 불합당한 요청이 있게 되자, 그는 100불에 해당되는 주식을 샀다. _____ 에서 열린 집회에서 그는 자기 아내에 대한 형편을 이야기했는데, 그는 매우 허약한 상태이므로 도움을 받되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자기의 환경을 이야기하면서, 만일 그가 당시에 그 기관에 넣은 100불만 소유할 수 있으면 그의 아내를 그 기관에 보내서 치료받게 할텐데 사실상 그렇게 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에게, 1불의 돈도 그 기관에 결코 투자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그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일이 그르쳐졌으므로 그 일이 잘못된 길로 가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자매가 적어도 서너 주 동안 그 기관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바이다. 그의 남편은 배틀크릭을 왕복하는 여비 정도의 돈밖에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인류의 친구요 진리와 거룩함의 친구들은, 희생과 관대함의 계획 위에서 그 기관에 대하여 행동해야 한다. 나는 그 기관의 주식에 500불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기부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의 남편이 기대한 책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그는 500불을 더 내게 될 것이다. 이 계획을 인정하는 자들은 미시간 주 몬트캄 카운티 그린빌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여, 그들이 기부하거나 출판소의 주식을 확보하듯이 그렇게 보유할 주에 투자하기를 바라는 액수를 말할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진 후에 필요한 만큼의 기부금이 들어오되, 액수가 적든지 많든지 그렇게 해야 한다. 자금을 분별 있게 지출하도록 하라. 환자들에게서 받는 돈은 할 수 있는 대로 합리적이 되게 하라. 형제들은 그들 가운데서 고통당하며 가치 있는 가난한 자들의 비용을 부분적으로 지불하기 위하여 기부하도록 해야 한다. 허약한 자들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 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아름다운 논밭을 경작하기 위하여 옥외로 나와야 한다. 그들은 급료에 대한 편협한 생각에서가 아니고, 그것들을 구입하기 위한 금전의 지출이 그들의 유익을 위한 자선 때문이었다는 관대한 마음으로 이 일을 해야 한다. 그들의 노동은 목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처방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급료와 훌륭한 투자와 수지 맞는 일과 주식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선과 사랑과 동정과 희생이, 의사들과 관리자들과 조력자들과 환자들과 도처에 있는 예수님의 모든 친구들을 지배하는 사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혼들을 위한 사랑과, 고통 중에 있는 인류를 위한 동정이, 건강 기관과 관련해서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을 지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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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사망이 성도들을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할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분의 나라를 믿고 바라고 고대하고 기다리고 열망하는 그리스도인 의사가, 어찌하여 그의 봉사의 대가로 그리스도인 편집자와 목사보다 더 많은 급료를 받고자 기대해야 할 것인가? 그는 자신의 일이 더욱 고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아직 입증되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하고, 그가 환자들에게 가르치는 생명의 법칙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과도하게 일을 함으로 목사나 편집자보다 더 많은 급료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기관에서 한몫을 담당하여 봉사에 대한 급료를 받는 모든 사람은, 동일하게 인색하지 않은 원칙에서 행동해야 한다. 단순히 급료를 위하여 기관에서 조력하는 자로 일하는 자는 아무도 기관에 남도록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업과 고통 중에 있는 주님의 추종자들을 위한 사랑으로 성실하고 즐겁게, 또한 희생 정신으로 그 기관에서 직임을 맡을 자들이 있다. 이러한 정신이 없는 자들은 물러나서 그 정신을 가진 자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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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판단에 의하면, 건강 기관에서 몇 주일이나 몇 달을 보내야 하는 고통 중에 있는 우리 백성들의 절반은, 여비와 그 곳에 머무르는 전체의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가난 때문에 이와 같은 주님의 친구들이 그분께서 그처럼 풍성하게 주신 축복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인가? 그들이 허약과 가난이라는 이중적 부담을 안고 싸우도록 버려져야 할 것인가? 온갖 생활상 안락과 편의를 갖추고 사람을 고용하여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부유한 허약자들은,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가정에서의 치료를 받음으로, 간호와 휴식으로 건강 기관에 가지 않고 매우 안락한 건강 상태를 향유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하고 허약한 우리의 형제나 자매들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은 무엇인가 해야 한다.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실지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생활상 편리한 것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방안에서 쓰는 편리한 도구, 가구, 목욕 시설, 좋은 환기 시설 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의 단간방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취사용 풍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경 외에 그들이 가정에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책은 한 손에 다 잡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읽고 생활 방법을 깨달을 수 있는 책들을 살 돈이 없다. 이 귀중한 형제들은 바로 도움이 필요한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 중 대부분이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에게 결함이 있을 수도 있고, 그중 어떤 것들은 오래 전부터 있던 것으로서 현재 그들의 가난과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자신의 상태와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재물을 소유한 우리들보다 훨씬 더 잘 의무를 실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을 참을성 있게 가르치고 즐겁게 도와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과 욕망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받는 도움에 대하여 하나님과 형제들에게 감사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건강 기관에서의 치료, 식사, 숙박, 연료 등의 실제적 비용에 대하여 정확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현대 진리와 개혁의 큰 사업에 대한 범위와 우리 백성들의 관대한 회사를 요청하는 많은 외침들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의 가난한 교인들이 우리의 부자 교인들보다 여러 배로 많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이 부유한 자들의 대다수가 그들의 부를 굳게 붙들고 분명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무서운 사실의 영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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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이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불평하고, 그들의 탐심 때문에 부한 자들을 대적할 때, 그들은 하늘이 보는 앞에서 큰 죄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먼저 그들의 질병과 가난이 대부분 그들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과 잘못 때문에 야기된 불행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그분의 백성들의 마음과 정신에 그 사실을 깨우쳐 주신다면, 그 일은 그들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한 생각을 일으켜 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힘으로 스스로를 돕기 위한 모든 일을 해야한다. 만일, 그들에게 건강 기관에서의 비용을 지불해 줄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주고자 하는 친척들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 건강 기관의 자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가난하고 병든 많은 사람들을 고려하여, 그리고 현재의 자금의 결핍과 시설의 부족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그 기관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야 한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건강을 회복하고 건전하게 생활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얻는 목적으로 그 곳에 가야 한다. 그들이 그 기관에 있는 동안에 듣는 강의와, 가정에서 생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서적들이, 그런 사람들이 주로 의지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 기관에서 보내는 몇 주 동안에 어느 정도 회복이 될 수 있겠지만, 동일한 원칙을 실천함으로 가정에서 더 많은 회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몇 주일 안에 치료를 받기 위하여 의사들을 의존하지 말고, 천연 (天然) 이 치료의 과업을 수행할 기회를 갖도록 생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일은 건강 기관에 머물러 있는 몇 주일 동안에 시작될 수 있지만, 그것이 완성되는데는 가정에서의 올바른 습관을 통하여 여러 해가 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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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을 모두 건강 기관에서 쓰고 고통이 크게 제거되어 그의 가정과 옛 생활 습관으로 되돌아감으로 불과 몇 주일 혹은 몇 달 안에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다. 그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그는 그의 제한된 재물을 헛되이 다 써 버렸다. 건강 개혁과 건강 기관의 목적은 현재의 고통을 진정시켜주기 위한 1회분의” 진통제” 나 “순간적인 통증 제거제” 와 같은 것이 아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그 큰 목적은, 질병을 제거하고 저항하도록 천연에게 기회를 주게끔 생활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데 있다.

우리 백성들 중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나는 낙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과 그분의 사업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대의 건강 상태와 건강 기관에 체재하는 비용을 감당할 능력에 대하여 의사에게 알리는 편지를 미시간 주 배틀크릭에 있는 건강 기관으로 보내라. 그대가 병들어 있고, 점점 악화 일로로 쇠약한 중에 처해 있다면, 그대의 경우가 절망적인 상태가 되기까지 지체하지 말라. 즉시 편지를 쓰라. 그러나,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서는, 이미 지출한 자본을 장비와 건물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를 도울 길은 별반 없다. 그러므로, 그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라.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 그대를 도와 줄 것이다.

111 장 — 경험에 대한 기록

1867년 10월 21일에서 1867년 12월 22일까지

배틀크릭 교회를 대상으로 한 우리의 활동은 이제 끝났다. 비록 많이 지치기는 했지만, 우리는 기꺼이 J.N.앤드루스 형제와 함께 메인 주까지 가는 긴 여행에 동행함으로 얻은 훌륭한 결과를 목격하고 정신적으로 매우 상쾌해졌다. 도중에, 우리는 뉴욕 주 루스벨트에서 집회를 열었다. 증언 13호가 그 기능을 다하고 있었고, 일반적인 불만에 사로잡혀 있던 형제들이 그들의 참 모습 그대로 사물을 보기 시작했다. 이 집회는 힘든 활동 중 하나였는데, 그 집회 때 나는 직설적인 증언을 하였다. 고백이 있었고, 이어서, 배교자들과 죄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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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주에서의 우리의 활동은 11월 초에 노리지왁의 총회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 집회는 컸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남편과 나는 진리와 적합한 훈육을 위하여, 또한 그런 훈육이 부족할 때 필연적으로 싹트는 여러 가지 형태의 오류와 혼란과 광신과 무질서를 대항하여 분명하고 솔직한 증언을 했다. 안식일을 지키노라고 공언한 무질서한 사람들은 반역적이었고, 총회 전체에 불만을 퍼뜨리고자 애를 썼다. 사단이 그들을 도왔으므로, 그들은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여기에서 제시하기에는 너무나도 사소한 것들이다.

이와 같은 반역의 정신과 결점을 찾는 일 때문에,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있는 일종의 어린애 같은 질투와 불평과 원망 때문에, 두 주일 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메인 주에서의 우리의 사업이 가장 어렵고 힘들고 까다로운 수고로 점철된 일곱 주일이 요구되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다섯 주일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사실상 메인주에서의 사업에 대해서는 잃어버린 것보다 더 나쁜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뉴잉글랜드와 뉴욕과 오하이오의 일부 지역에 있는 우리 백성들은 우리가 메인 주에서 열고 있는 집회 때문에 다섯 번의 일반적 집회들을 빼앗겼다. 그러나, 우리가 그 주를 떠날 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반역을 고백하고, 몇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진리를 받아들이게 된 사실에서 위로를 받았다. 목사들과 질서와 조직에 관한 다음의 내용은 메인 주에서의 상황에 특별히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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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장 — 목사들과 질서와 조직

어떤 목사들은 그들의 음성을 고음으로 높여서 크고 빠르게 말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는 오류에 빠졌다. 그런 사람들은 시끄럽고 높은 음성으로 빨리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증거가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오랫동안 감명을 지속시켜 주는 것은 음성의 힘이 아니다. 목사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믿음과 소망에 관한 이유로 자신을 철저하게 무장시켜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음성과 감정을 완전히 제어하고, 그들은 사람들이 조용히 판단하여 받은바 증거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것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목사들이 엄숙하고 시험하는 진리의 형태로 제시하는 논증의 설득력을 느낄 때, 그들은 지식을 따른 열성과 열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진리로 그들 자신의 심령을 거룩하게 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물을 마시게 해주는 동안, 그들 자신들이 물을 공급받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의 목사들 중 어떤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가장 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힘을 보존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목사들은 그들의 힘이 지칠 정도로 큰 소리로 오랫동안 기도해서는 안 된다. 기도함으로 목과 폐가 피곤해질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귀는 당신의 겸손한 종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탄원을 듣기 위하여 언제나 열려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당신께 아뢰는 일로 언어 기관을 지치게 하도록 그들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하는 것은 완전한 신뢰와 확고한 믿음, 하나님의 약속을 한결같이 주장하는 태도와,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그분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완전한 믿음이다.

목사들은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주어진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양의 일을 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많은 양의 힘을 보존해 둠으로써, 여분의 활동이 요구될 경우에도 그 상황에 대처하기에 충분한 활력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해치는 일없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때때로 그들은, 소유한 모든 힘을 주어진 어떤 목표에 쓰도록 요구당한다. 그러나, 그들이 힘의 자원을 미리 다 써 버렸기 때문에 이 활동을 펼쳐 나갈 힘을 쓸 수 없게 된다면, 그들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은 잃어버린 바 된다. 때때로, 가장 튼튼한 요새를 구축하기 위하여, 또한 가장 분명한 빛 가운데서 증거들을 배열하여 그것을 가장 명백한 방법으로 사람들 앞에 제시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 주고자 가장 강력한 호소로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권유하기 위하여, 정신적·육체적 힘이 모두 쓰여질 수도 있다. 영혼들이 원수의 대열을 떠나서 주님 편으로 나오게 될 때, 싸움은 가장 치열하고 맹렬해진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흑암의 깃발 아래 있던 어떤 사람이 임마누엘 대왕의 피 묻은 깃발 아래로 위치를 옮기는 일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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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싸움터에서 치열하게 싸운 적대되는 군대들을 보았다. 승리는 어느 쪽에서도 얻지 못했다. 그러자 마침내, 충성스런 자들은 그들의 힘과 세력이 사라져 가고 있음과, 그들이 진격해 가서 그들의 전쟁 무기를 노획하지 않으면 원수들을 침묵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하여 원수를 향하여 돌격한다. 무서운 싸움이지만, 승리를 얻고 요새를 점령한다. 만일, 결정적인 순간에 군대가 극도의 피곤으로 너무 약해져서 마지막 공격을 하지 못하고 원수의 요새를 쳐부수지 못한다면, 여러 날, 여러 주일, 심지어 여러 달 동안의 모든 싸움이 패배로 끝나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된다.

유사한 사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쇠줄로 묶여 있는 것처럼 묶여 있다. 그들은 진리의 편을 택함으로 어려움을 당하고자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결정의 골짜기에 놓여 있다. 그 곳에서 그들의 전쟁 무기를 버리고 주님의 편을 택하도록 특별하고 철저하고 요점이 분명한 호소를 하여 그들을 감동시킬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결정적인 시기에 사단은 이런 사람들 주변에 가장 강한 줄을 던진다. 만일,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의 육체적 · 정신적 자원을 다 써 버려서 모두 피로에 지쳐 있다면, 그들은 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빈번히, 다른 곳에서 작전을 개시하기 위하여 전쟁터를 완전히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시간과 재물과 노력의 전부 혹은 거의 전부를 허비해 버리고 만다. 분명히, 그들이 그 곳에서 사업을 결코 착수하지 않았던 것보다 훨씬 더 나빠진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크게 감동을 받아 결정의 지점까지 이끌렸다가 그들의 흥미를 잃어버리고 그 증거들을 반대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그들의 마음이 그 문제에 다시 감동을 받는 경지에 쉽게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많은 경우에 이미 마지막 결정을 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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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이 여분의 힘을 저축해 두었다가 모든 일이 진척되기에 가장 어려워 보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열렬한 활동을 전개하고, 가장 강력한 호소를 하고, 가장 큰 열성을 나타내고, 마치 용감한 군인들처럼 위기의 순간에 원수를 공격한다면, 그들은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사단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영생을 위하여 결정할 힘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올바른 시기에 잘 지도된 활동은 오랫동안 시도해 온 활동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불과 며칠간이라도 활동을 중단하게 되면, 많은 경우에 완전한 실패를 초래한다. 목사들은 자신을 선교사로 그 사업에 바치고 그들의 활동을 가장 유리하게 전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목사들은 바로 일련의 집회가 시작되면 대단히 열성적인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도록 요구하지 않으시는 짐을 지고, 노래하고, 큰 소리로 오랫동안 기도하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의 힘을 써 버리므로 피곤해져서 집으로 돌아가 쉬어야 한다. 그런 활동으로 이루어진 것이 무엇이었던가?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 일꾼들에게 정신과 열성은 있지만 이해력은 없었다. 그들은 현명한 지도력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들은 감정의 전차 (戰車) 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원수에게서 한 가지의 승리도 얻지 못했다. 원수의 요새는 탈환되지 않았다.

나는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이 전쟁을 위하여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할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의 지휘는 국가의 전쟁에 임하고 있는 장군들에게 요구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지혜가 요구된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목회자들은 위대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사람들을 대적하여 싸우지 않고, 사단과 그의 부하들을 대적하여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현명한 지휘 솜씨가 요망된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가 되고, 자기 자신을 사업에 완전히 바쳐야 한다. 어떤 장소에서 활동을 개시할 때, 그들은 우리가 가진 믿음의 이유를 제시하되 몹시 사나운 방법으로써가 아니고, 또한 완전한 폭풍우와 같은 형태로써도 아니고 온유와 두려움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확신시킬 수 있는 능력은 온유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제시된 강한 논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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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그리스도의 목회자들, 즉 말과 교훈에 능하고, 성경을 잘 알고, 우리의 믿음의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이 위험한 마지막 때의 사업을 하는데 필요되고 있다. 나는 다음의 성경절들을 지적받았는데, 어떤 목사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 4:6).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딤후 2:24-26)

하나님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께 속한 목사는 모든 선한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되도록 요구받고 있다. 권위만 주장하는 거만한 목사는 이 선한 사업에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단정하고 예의바른 태도는 설교단에서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는 목사는 자신의 태도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가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자일 것 같으면, 그의 품행과 태도와 행동이 쳐다보는 자에게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는 그런 성격의 것이 되어야 한다. 목사들은 세련미를 갖추어야 한다. 그들은 모든 조야 (粗野) 한 태도와 자세와 동작을 버리고, 스스로 겸손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견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지위의 위엄에 합당한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그들의 말은 모든 면에서 엄숙하고 잘 정선된 것이어야 한다. 나는, 조잡하고 불경스런 표현을 하고, 흥미를 돋구기 위하여 기담 (奇譚) 을 하거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하여 우스꽝스런 예화를 들거나 하는 것이 잘못임을 보았다. 비꼬는 말을 하거나 반대자의 말을 비웃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일이다. 목사들은 음성이나 태도를 개선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 많은 개선을 할 수 있다. 꽤 오랫동안 이야기해도 발성 기관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음성은 계발될 수 있다.

교회증언 1권 pp. 639-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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