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13 — 교회에 대한 증언
서 론
나는 다시 매우 분명하게 주님의 백성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우리와, 우리의 사업과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 온 자들의 잘못과 반역을 지적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굴욕적인 일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 손해를 주기 위한 의도에서 나의 남편과 내 자신에 관하여 널리 퍼뜨린 잘못된 소문들을 고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바이다. 만일, 우리들만 고통을 받게 된다면, 나는 침묵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사업이 비난과 고통을 받을 위험에 놓일 때, 나는 그 일이 아무리 굴욕적이라 할지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형제들이 죄를 고백할 만큼 겸손하기 때문에, 교만한 위선자들은 그들에 대하여 더 의기 양양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이 가장 악하기 때문이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을 책망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 (계 3:19) 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 작은 글에 실은 놀라운 꿈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명백하게 동일한 것을 예시하는 꿈들에 특별한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수많은 꿈들이 하나님의 영과 전혀 상관없이 생애의 통속적 일에서 생긴다. 사단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거짓 이상은 물론, 거짓 꿈들도 있다. 그러나, 주님께로부터 오는 꿈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상 (異像) 으로 분류되며, 이상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예언의 신의 열매이다. 그런 꿈들은, 그 꿈을 꾼 사람들과 꿈을 꾸게 된 환경 등을 고려해 보면, 그 자체의 진실성의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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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글에 하나님의 축복이 따르기를 바란다.
102 장 — 경험의 대요
1866년 12월 19일에서 1867년 4월 25일까지.
나는 남편이 무활동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동안, 오래 된 그의 질병에서 회복될 수 없다는 것과, 내가 나가서 백성들에게 증거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나는 당시에 우리가 교인으로 소속되어 있던 배틀크릭 교회의 판단과 충고와는 반대로, 겨울의 가장 혹독한 추위 속에서 심히 허약한 상태에 있는 남편과 함께 북부 미시간을 여행하기로 작정했다. 특별히 배틀크릭의 사업을 지도하는 자들을 포함한 교회의 영향에 대하여 나는 홀로 반대의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큰 모험을 결정하는데는 적지 않은 도덕적 용기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으며, 사단이 내가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자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우리가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고,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좀더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귀중한 영혼들이 잃어버린 바 될 것을 두려워했다. 일터에서 물러나서 더 이상 머물러 있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더 나쁜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나간다 해도 죽기밖에 더하랴. 그리하여, 1866년 12월 19일, 우리는 눈보라 속에서 미시간 주 오타와 카운티 라이트를 향하여 배틀크릭을 떠났다. 나의 남편은 지루하고 고된 90마일의 여행을 내가 염려한 것보다 훨씬 더 잘 견디어 냈다. 그리하여, 루트형제 가정에 있는 우리의 옛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우리가 배틀크릭을 떠나던 때와 마찬가지로 쾌활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이 귀중한 가족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마치 그리스도인 부모가 병약한 자녀들을 보살피는 것과 같은 부드러운 보호를 받았다.
우리는 이 교회가 매우 낮은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교인들의 대부분에게 분열과 피차간 불만의 씨가 깊이 뿌리 박고 있었다. 그리고, 세속적 정신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들은 낮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전도자들의 활동의 혜택을 좀처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 양식에 굶주려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남편의 질병 이래 처음으로 효과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남편은 비록 심히 약한 상태에 있었지만, 지나간 날들처럼 여기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안식일과 일요일 오전에 30분내지 40분씩 이야기하고, 나는 나머지 시간을 채우곤 했다. 그리고, 매일 오후에 약 한 시간 반씩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최대의 주의를 기울여서 우리의 말을 들었다. 나는 남편이 차츰 튼튼해지고, 더욱 명석해지고, 그가 취급하는 문제에 더욱 몰두되는 것을 보았다. 한때는 그가 평상시처럼 그에게 맡겨진 사업의 책임을 느끼고 한 시간 동안 분명하고 힘있게 이야기했으므로, 나는 감사의 마음을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서 거의 반 시간 동안,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에게 이야기하고자 애를 썼다.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의 서광을 보증해 준 것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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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사람들과 함께 6주일 동안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25회, 나의 남편은 12회 이야기했다. 이 교회에 대한 우리의 활동이 진전됨에 따라 개인적 상황들이 내 앞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그들을 위한 증언들을 모두 100페이지쯤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물러 있는 루트 형제의 집으로 그 사람들이 왔을 때 그들을 위한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그들 중 어떤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집에서, 그리고 특별히 예배당에서 집회를 통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런 종류의 활동에서, 나는 남편이 큰 도움이 된 것을 발견했다. 과거에 나와 더불어 활동할 때, 이런 종류의 활동에서 얻은 오랫동안의 그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이 일에 자격을 갖추게 했다. 그 사업을 다시 착수한 지금, 그는 지난날의 명석한 사고력, 훌륭한 판단, 잘못한 자들을 다룸에 있어서의 성실 등 모든 것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상, 우리 목사들 중 두 사람일지라도 그가 나를 도와 준 만큼 도울 수는 없었다.
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위대하고 훌륭한 사업이 이루어졌다. 잘못이 자유롭고 충분하게 고백되고, 연합이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사업에 임하였다. 나의 남편은 조직적 헌금 제도를 우리의 모든 교회에서 적용해야 할 형태로까지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 그의 노력의 결과로, 그 교회에서 해마다 약 300달러씩 금고에 넣을 정도가 되었다. 그 교회에서 나의 증언들 중 어떤 것, 특별히 의복 문제에 관하여 어려움을 당해 온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완전히 해결을 보게 되었다. 건강과 의복의 개혁이 채택되어, 많은 액수의 돈이 건강 기관을 위하여 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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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사업이 발전되어 가고 있을 때, 불행히도 뉴욕 주 출신의 한 부요한 형제가 배틀크릭을 방문하여, 우리가 교회와 배틀크릭의 사업의 선두에 서 있는 자들의 의견과 충고를 외면하고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서 라이트를 찾아왔다. 그는 우리가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자들 앞에서까지, 나의 남편이 부분적인 정신 이상 상태에 있으므로 그의 증언은 비중을 둘 만한 것이 못 된다고 말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의 그의 영향은, 그 교회의 장로인 루트 형제가 내게 한 말에 의하면, 사업을 최소한 두 주일 뒤로 물러가게 했다. 나는, 헌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맹목적이고 냉혹한 상태가 어떻게, 기진 맥진한 주님의 종들이 중화시키는 데 여러 주일이 걸릴지도 모를 영향을 한 시간에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바이다. 우리는 부요한 형제들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었는데, 사단은 이 부요한 형제가 바로 그가 이용할 사람임을 깨달았다. 주님께서,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곳으로 그를 인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두 주일 동안 가장 힘든 노력을 더욱 기울이고, 또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리는 이 그릇된 영향을 제거해 버리고,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들에게 보내셨다는 완전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더한층 노력한 결과, 얼마 후에 와그너 형제에 의하여 일곱 사람이, 그리고 우리가 그 교회를 두번째 방문한 7월에는 나의 남편에 의하여 두 사람이 침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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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주에서 온 그 형제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배틀크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라이트에서의 훌륭한 사업을 올바르게 보고하거나 배틀크릭에 있는 교회의 감정을 호전시키기 위한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때 이래로 속속 드러난 바와같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행동 중 가장 불리한 점을 들어 대화의 주제로 삼는 일에서 피차간의 기쁨을 누리는 중에 교회와 그는 다 같이 손해를 입은 것 같다. 이처럼 비참한 일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에, 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위풍 당당한 모습과 위엄 있는 태도를 한 사람과 함께 배틀크릭을 방문하고 있었다. 꿈에, 나는 우리 형제들의 집들 주변을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고자 했을 때, 우리는 열렬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음성을 들었다. 나의 남편의 이름이 빈번히 열거되었다. 나는 우리의 가장 든든한 친구들이라고 공언해 온 자들이 나의 남편의 정신적·육체적 힘이 크게 마비된 상태에 빠졌던 당시, 곧 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 일어났던 장면들과 사건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슬퍼하고 놀랐다. 배틀크릭의 형제들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말했는가 하면, 앞에서 언급한, 뉴욕에서 온 믿는 자로 공언한 그 형제는 배틀크릭에 있는 자들이 모르고 있는 사건들을 열렬한 태도와 과장된 견해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는 슬퍼졌다. 나는 괴롭고 마음이 아파서 꿈속에서 거의 쓰러지게 되었다. 그 때에, 나를 수행하는 자의 손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너는 듣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견디기 어려울지라도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까이 간 여러 집들에서는 동일한 문제가 화제의 주제가 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현대 진리였다. 나는 말했다. “아,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나는 번영 중에 있을 때 우리의 친구요, 고난과 고통과 역경 중에 있을 때 우리의 변함없는 친구로 간주해 온 자들의 마음속에 이런 감정이 있는 것을 몰랐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는 그 사람들을 가장 선량하고 가장 진실한 우리의 친구로 여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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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이런 말을 반복했다. “만일, 그들이 오로지 그들의 구속주에 관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또한 동일한 열성과 열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과 무사욕한 자비와, 그분의 긍휼이 풍성한 용서와,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 어린 친절과, 그분의 오래 참으심과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생각했을 것 같으면, 그 열매가 얼마나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되었을까!”
그 후에 나는 말했다. “나는 슬프다. 나의 남편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무거운 짐에 눌려서 쓰러질 때까지 그 짐을 지고 견디었다.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쇠약해지고 부서졌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으로 그를 일으켜서 그가 다시 말할 수 있게 해주시자, 말과 행동을 모아서 그것들을 이용하여 그의 감화를 소멸시키고자 하는 것은 잔인하고 악한 것이다.”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은 말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생애의 특성이 생각의 주제가 되는 대화는 정신을 새롭게 해주고, 거룩함과 영생의 열매를 맺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의 말씀을 인용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이 말씀은 나에게 너무도 감명이 깊었으므로, 나는 그 다음 안식일에 그것에 관하여 말하였다.
라이트에서의 나의 활동은 매우 피곤한 것이었다. 나는 낮에 남편을 간호하느라고 많은 일을 하였고, 때로는 밤에도 그러했다. 나는 그에게 목욕을 시키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을 타게 하고, 춥거나 바람이 불거나 쾌청하거나 간에 하루 두 번씩 그와 함께 산보를 했다. 그가 리뷰지에 실을 보고문을 작성할 때, 나는 펜을 들고 받아 썼다. 그러면서도 또한 방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자주, 그리고 길고 열렬하게 이야기하는 일 외에, 개인적 증언에 해당되는 수많은 글과, 증언 11호의 대부분과, 또한 많은 편지를 썼다. 루트 부부는 나의 시련과 활동에 깊이 동정하고, 가장 부드러운 염려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기 위하여 진력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은혜와 영적 힘은 물론, 광주리와 창고와 건강에 축복해 주시도록 자주 기도 드렸다. 나는 특별한 축복이 그들을 뒤따를 것이라고 느꼈다. 우리가 그들의 집에 왔을 때 그들은 병으로 고생했지만, 나는 이제 루트 형제를 통하여 그들이 이전보다 더 좋은 건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 육신적 번영의 항목들 가운데서 그는, 이웃 사람들의 밭에서는 평균 한 에이커당 7부셀에 불과한 수확을 거두었지만, 그의 밀밭에서는 한 에이커당 27부셀, 어떤 밭에서는 40부셀의 수확을 거두었다고 알려 준다 (1부셀은 약 36리터, 2말 정도임 — 역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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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1월 29일에, 우리는 라이트를 떠나서 40마일의 거리가 되는 몬트캄 카운티, 그린빌로 향했다. 그 날은 가장 혹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메이나드 형제의 집에서 추위와 폭풍을 피하게 되어 기뻤다. 사랑하는 그 가족은 마음을 다해 우리를 환영하고 그들의 집으로 우리를 맞아들였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6주일간 머물면서 그린빌과 올리언즈에 있는 교회들을 대상으로 활동했다. 그 동안에, 우리는 메이나드 형제의 안락한 가정을 우리의 본부로 삼았다.
사람들에게 말할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자유를 주셨다. 나는 모든 활동에 그분의 도우시는 능력이 같이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남편의 활동과 관련해서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할 증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했을 때, 나의 믿음은, 남편이 건강을 얻어서 하나님의 일과 사업에 가납되는 활동을 할 것으로 굳어졌다. 그의 활동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그는 사업에 있어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없이는 조금밖에 성취할 수 없었지만, 그의 도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는 내게 맡겨진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남편이 하는 모든 활동에 그를 도우셨다. 자신의 연약함에 상관없이, 그가 하고자 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는 힘을 얻고 모든 노력이 향상되었다. 남편이 육체적·정신적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남편곁에 서서, 하나님의 사업에 새롭고 더욱 열렬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기회를 다시 얻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마지막 사업에 함께 일할 것을 기대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가 병으로 쓰러지기 전에, 사무실에서 차지한 위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를 그곳에 가두어 놓았었다. 그리고, 그가 없이는 여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필연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나는, 그가 말씀과 교리를 통하여 활동하고, 특별히 전도의 일에 자신을 더욱 바치게 되자, 하나님께서 이제 그를 형통하게 하심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다시는 사무실에 갇혀 있지 않고 나와 함께 여행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남은 백성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엄숙한 증언을 증거할 수 있게 해주실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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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낮은 상태를 민감하게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나의 능력의 한계까지 이르게 된 것을 깨달았다. 라이트에 있는 동안, 우리는 11호를 위한 나의 원고를 출판소에 보냈다. 그리고, 나는 집회가 끝나면 12호를 위한 집필에 거의 모든 시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라이트에 있는 교회를 위하여 활동하는 동안, 나의 육체적·정신적 힘은 심히 혹사당하였다. 나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런 기회를 얻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한 주일에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개인적 증언을 여러 페이지씩 기록하고 있었다. 영혼들에 대한 무거운 짐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내가 느낀 책임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나는 매일 밤 불과 몇 시간밖에 수면을 취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동안, 나는 배틀크릭에서 보낸 낙담케 하는 성격의 편지들을 받았다. 그 편지들을 읽으면서, 나는 짧은 한순간 나의 생명력이 마비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마음의 번민을 안겨 주는,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 억압을 느꼈다. 나는 3일 밤을 거의 잠들 수가 없었다. 나의 생각은 번민되고 괴로웠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남편과, 우리와 정 (情) 을 같이 나누는 가족에게 나의 감정을 숨겼다. 내가 아침 저녁의 예배 시간에 가족과 연합하여, 무거운 짐을 져 주시는 위대하신 분께 나의 짐을 내어 놓고자 구할 때, 아무도 나의 수고와 마음의 부담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탄원은 번민으로 찢어진 마음에서 나왔고, 나의 기도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조리가 없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피가 뇌 속으로 몰려가 빈번히 비틀거리게 하고 거의 쓰러질 지경으로 만들었다. 나는 자주 코피를 흘리게 되었는데, 특별히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한 후에 그러했다. 나는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없는 증언들을, 그들을 위하여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게 지워진 염려와 책임의 짐을 회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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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강 기관에 관하여 내게 보여진 것을 기록할 때까지 11호의 출판을 지연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뜻을 알려 주는 편지를 또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 기관의 책임을 진 자들이 돈이 크게 부족하므로 형제들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나의 증언의 영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기관에 관하여 내가 본 부분을 기록했다. 뇌의 혈압 때문에, 전체의 문제를 다 해낼 수 없었다. 12호가 그처럼 오래 지체될 줄 알았을 것 같으면, 나는 11호에 포함된 문제의 그 부분을 어떤 경우에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며칠 동안 쉬고 나면 글 쓰는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섭섭하게도, 나는 뇌의 상태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반적 증언이거나 개인적 증언이거나를 막론하고, 그것들을 쓴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니, 나는 그 증언들을 쓸 수 없게 된 일 때문에 계속적으로 괴로워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배틀크릭으로 돌아가, 길이 진흙 투성이의 어려운 상태가 되어 있는 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12호를 완성하기로 작정했다. 나의 남편은, 배틀크릭에 있는 형제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이루고 계신 일을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자 매우 열망했다. 나는 내가 쓴 것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길을 떠났다. 도중에, 우리는 오렌지에서 두 번의 집회를 열었는데, 교회가 유익을 얻고 격려를 받은 증거를 보게 되었다. 우리 자신도 주님의 영으로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 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배틀크릭에서 출입문 옆에 있는 유리창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일단의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집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엄숙하고 단호해 보였다. 그들은 잘 아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응접실 문을 열고자 돌아섰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장면은 바뀌었다. 그 무리들은 이제 천주교 행렬의 모습을 나타냈다. 한 사람은 손에 십자가를 들고, 다른 한 사람은 갈대를 쥐고 있었다. 그들이 접근하자, 갈대를 쥐고 있는 자가 집을 빙 둘러 원을 그리고, 다음의 말을 세 번 되풀이했다. “이 집은 법률의 보호를 박탈당했다. 물건들은 몰수되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거룩한 명령을 거스려 말했다.” 공포가 내게 엄습했다. 나는 집에서 달려나가 북쪽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일단의 사람들 사이에서 내 자신을 발견했는데, 그들 중 더러는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배반당할 것이 두려워서 그들에게 한마디도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느 곳을 향하더라도, 열광적이고 호기심에 찬 눈들과 마주치지 않고 울고 기도할 수 있는 한적한 장소를 찾고자 노력했다. 나는 자주 이렇게 되풀이했다. “내가 만일 이것을 이해할 수만 있었을 것 같으면! 만일 그들이 내가 무엇이라고 말했으며 무엇을 했는지 내게 말해 줄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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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의 물건들이 몰수당하는 것을 보자 울면서 큰 소리로 기도했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내게 대한 동정과 자비의 흔적을 읽고자 노력했다. 여러 사람들의 얼굴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이 주시할 것을 두려워하지만 않을 것 같으면 나에게 이야기하고 나를 위로해 주리라고 내가 생각한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주목해 보았다. 나는 군중에게서 피해 가고자 한 번 시도해 보았으나, 내가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의향을 숨겼다. 나는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그들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다는 것을 내게 말해 주기만 한다면!” 같은 방에 있는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내가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듣고 나를 깨웠다. 나의 베개는 눈물로 젖어 있었고, 슬프고 울적한 마음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하웨 부부가 웨스트 윈저까지 우리와 동행했는데, 우리는 그 곳에서 카맨 부부의 영접과 환영을 받았다. 안식일과 첫째 날에 우리는 부근에 있는 여러 교회에서 온 형제 자매들을 만나, 그들에게 우리의 증언을 자유롭게 전하게 되었다. 생기를 주는 주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사업에 특별한 흥미를 느낀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우리의 집회는 훌륭했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얻고 크게 용기를 얻었다고 간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