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1 529-538 (53일)

재산을 아내에게 넘겨주는 남편은, 그 여자가 신자이거나 불신자이거나 간에 그에게 유혹의 문을 넓게 열어 주게 된다. 그가 신자이지만 본성적으로 인색하여 이기심과 탐욕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면, 그가 남편의 청지기 직분과 자신의 청지기 직분을 감당해야 하므로 투쟁은 한층 더 심할 것이다.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는 독특하고 나쁜 모든 특성들을 극복하고, 거룩하신 주님의 품성을 본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할 기회를 찾고,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는 우리 구주께서 그처럼 크게 소유하셨던 귀중한 사랑의 선물을 계발시켜야 한다. 그분의 생애는 고상하고 이기심없는 자비로 특징 지어졌다. 그분의 온 생애는 단 하나의 이기적 행동으로도 손상되지 않았다.

남편의 동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는 그의 아내의 길에 거치는 돌을 놓아 그의 승리의 길을 방해했다. 재산의 이전을 자녀들에게 했을지라도 동일하게 악한 결과가 따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동기를 읽으신다. 그가 이기적인 사람으로서 자신의 탐심을 숨기고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은 데 대하여 변명하고자 그렇게 전가시켰다면, 하늘의 저주가 분명히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목적과 의도를 아시고 사람들의 동기를 시험하신다. 그분의 뚜렷하고 가시적 (可視的) 인 분노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서처럼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그 형벌이, 그들에게 내렸던 것보다 결코 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속이고자 시도하다가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였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겔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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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은 한 달란트를 받아서 땅 속에 숨긴 사람과 마찬가지로 심판의 시험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회계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하나님의 사업이 그것으로 유익을 얻을 수 없는 곳에 둠)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25:24-30). 이 사람은 그의 달란트를 증가시킴으로 주인이 유익을 얻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나는 그들의 달란트를 헝겊에 싸서 땅 속에 감춘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는 모든 돈을, 다시 찾을 수 없이 잃어버리는 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그들은 상급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다만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마지못하여 바친다. 하나님께서는 즐겨 바치는 자를 사랑하신다. 그들의 책임을 아내나 자녀들에게 넘겨줄 수 있다고 은근히 믿는 자들은 원수에게 기만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재산의 이전이 그들의 책임을 감소시켜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돌보도록 맡겨 주신 재물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들에게 맡겨 준 것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기 전에는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 (요일 2:15). 세상이 애정을 차지하고 있는 한, 어떤 사람도 진리를 분별할 수 없다. 세상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개재하여 시야를 흐리게 하고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그들은 거룩한 사물을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호소하신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약 4:8, 9). 세상의 부패로 손을 더럽힌 자들은 그 더러움에서 스스로를 정결케 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세상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들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며,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대한 모든 책임을 잃어버리고 있으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한다. 그들은 어느 하나에 속하지도 않고, 다른 것에 속하지도 않은 자들이다. 그들이 순결한 진리의 원칙에 순종함으로 손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두 가지 세계를 다 같이 잃어버릴 것이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 2:6).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일 4:17).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벧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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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경건을 파괴하는 것은 세상의 정욕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다. 세상의 이득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 구주의 신속한 재림을 고대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 증가하고 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까지도 지배한다. 그들은 탐욕스런 정욕으로 세상에 속한 것들을 찾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불결한 이득을 얻기 위하여 영생을 팔아 버릴 것이다.

91 장 — 올바른 안식일 준수

1865년 12월 25일에, 나는 안식일의 준수에 관하여 너무도 크게 등한히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일하는 날로 사람에게 주신 엿새동안에 세속적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신속하게 활동하지 않고, 그분께서 자신을 위하여 남겨 두신 거룩하고 신성한 시간을 침해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넷째 계명을 범하게 할만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업무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는 안식일에도 일을 하도록 허락하신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금전상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넷째 계명의 조항을 범하면, 우리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들이 되고, 계명의 모든 조항을 범하는 죄를 짓게 된다. 우리가 한 조항을 범하면 모두 범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재산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여호와의 분명한 계명을 범한다면,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우리는 어디에 경계를 정해야 할 것인가. 작은 것을 범하고, 그것이 우리 편에 있어서 별반 특별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양심은 굳어지고 감각은 마비되어, 마침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꽤 많은 양의 일을 하면서도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여전히 자부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표준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모두 범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우 세밀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주님의 시간을 조금 침범함으로 약간의 시간을 벌거나 스스로 유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은 조만간에 손실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그들을 축복하실 수 없다. 그들 때문에 그분의 이름이 멸시되고 그분의 율법이 가볍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며, 그들은 유익보다는 10배, 20배의 손실을 당할 것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 …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 (말 3:8, 9) 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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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스스로를 위하여 일할 엿새를 주시되, 특별히 당신이 높임을 받아야 할 한 날을 보존해 두셨다. 그분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분의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창조주께서 당신 자신을 위하여 보존해 두신 시간 중에서 얼마를 훔침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는 물론이요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일곱째 날을 사람의 휴식의 기간으로 보존해 두셨다. 그분께서는 사람의 욕망이 수고와 걱정에서 벗어나는 한 날을 요구한다는 것과, 엿새 동안의 활동과 근심에서 해방되는 기간이 없으면 그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해질 것을 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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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은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제정되었다. 그러므로, 일곱째 날에 노동을 금하는 거룩한 계명을 일부러 범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 아래서는 범법자의 죽음을 요구할 만큼 하늘의 안목에서는 큰 범죄이다. 그러나, 범법자가 받아야 할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범한 자를 하늘에 데려가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가 받을 충분하고 최종적인 형벌이 되는 둘째 사망을 당해야 한다.

92 장 — 정치적 견해

1865년 12월 25일,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나는 이 마지막 때를 위한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보았다. 나는 안식일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에 부족함을 보았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간 길을 가지 말라는 경고에 유의하지 않고, 그들의 악한 길들 중 어떤 것에 빠져 들어간다. 만일, 그들이 이런 죄악을 계속해서 범할 것 같으면,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타락해지고, 하늘 가나안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고전 10:11).

나는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이르지 못할 것을 보았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하며 입증하고 계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품성의 시험, 하나님의 헤아림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독특한 품성의 특성을 극복하는 고된 사업을 이루어,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책망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 편에서 철저한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업이나 교회에 특별한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정당하지 못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신자들의 단체와 연합하지도 않으나, 그들의 견해는 우리의 믿음의 원칙과 일치되지 않는다. 교정받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바로잡아주기 위하여 충분한 빛이 주어졌다. 진리의 정신과 일치되지 않는 정치적 견해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하늘의 원칙을 깨뜨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 그들은 자유와 거룩함의 정신을 소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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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문제에 있어서의 그들의 원칙과 입장은 그들의 영적 발전에 큰 장애가 된다. 이것들은 그들에게 끊임없는 올무가 되고, 우리의 믿음에 수치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이 원칙을 간직하는 자들은 마침내 원수가 그들에게 바라는 바로 그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분리될 것이다. 이 형제들은 억압받는 유색 인종에 대한 동정이 부족하고, 우리 정부의 순수하고 민주적 원칙과 일치되지 않고 있는 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지상의 반역에 동정하지 않으시는 것은, 마치 큰 반역자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를 의심하고 그의 반역에 동조한 모든 자들과 함께 내어 쫓겼던 하늘의 반역을 동정으로 봐주지 않으셨던 것과 같다.

93 장 — 고리 대금

1865년 12월 25일,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내게 주어진 이상에서 나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이자를 받는 문제를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을 보았다. 부한 사람들은 가난한 형제들에게서 이자를 받을 권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불신자들에게서는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 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식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 (레 25:35-37). “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 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 23:1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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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의 탐욕적인 마음 때문에 그들을 불쾌히 여기셨다. 이득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에, 그들은 고통 중에 있는 불행한 형제들이 그 같은 재물이 없어서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보다 가난한 그 형제들의 가난을 이용하여 그들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풍족한 재물을 증가시켜 왔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는 말은 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이다.

몇 해 전에, 가난한 형제들 중 몇 사람들이 그릇된 생각 때문에 그들의 영혼을 잃어버릴 위험을 당하였다. 어느 곳에서나 사단은 부자들에 대하여 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 가난한 형제들은 그들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의무였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혜택을 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혜택을 받았을 것 같으면, 그들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가장 좋지 못한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의 온 대열을 통하여, 사단은 그의 유혹으로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을 넘어뜨리고자 애쓰고 있다. 판단력과 지혜가 부족한 어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의 길을 택하고, 조언을 구하여 거기에 따르기를 원치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형편없는 경영 때문에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바로 그 사람들이,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형제들에게서 은혜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것은 교정될 필요가 있다. 처음에 언급된 계층의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지워져 있는 책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의 재물 때문에 그들이 당할 수밖에 없는 난관과 걱정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볼 수 있었던 모든 것은, 그들 자신이 재물 때문에 속박당하고 있는 반면에 이 사람들은 사용할 수 있는 동일한 그 재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선을 행하고, 진리를 위하여 살고자 역량껏 최선을 다하고 있는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동일한 관점으로 간주해 왔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판단력은 훌륭하고, 그들의 정신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중하다. 그리고, 그들이 겸손한 방법으로 수행하는 선의 양은, 부자들이 비록 특정한 기회에 많은 액수의 돈을 낼지라도 그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보다 10배나 더 많다. 부자들은, 선한 일을 하고, 선한 일에 부요해지고, 나누어 줄 자세를 취하고, 즐겨 전달해 주어야 할 필요를 보고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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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장 — 재물의 기만성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은 분별력이 부족하여 도덕적 가치를 식별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업에 많은 충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자랑하고, 마치 그들이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겸손하지 않다. 그들은 돈과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일에는 그것이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을 것이다. 돈은 세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큰 영향을 발휘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지닌 훌륭한 품성과 도덕적 가치는 흔히 간과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돈과 재산을 어떻게 여기시는가? 언덕 위에 있는 수많은 가축들은 그분의 것이다. 세계와 그 중에 있는 것들이 그분의 것이다. 세상의 거민들은 그분 앞에 메뚜기와 같다. 사람들과 재산은 저울의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 그분은 사람들을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그들의 재물을 바라보고, 나의 지혜로 이 재물을 얻었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그들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셨지만, 그들은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에 그것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그분은 그들을 시험하고 입증하여, 그들의 영광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힘을 옮기고, 그들의 재산을 흩어 버리실 것이다. 그들은 축복 대신에 저주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릇된 행동이나 압제, 바른 길에서의 이탈은, 재산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뿐 아니라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서도 묵인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부요한 사람이 지금껏 소유한 모든 재물도, 하나님 앞에서 가장 작은 죄를 가리우기에 충분한 가치도 없다. 그것들은 죄의 속량물로서 가납될 수 없다. 회개, 참된 겸비, 상한 심령, 그리고 통회하는 마음만이 하나님께 가납될 것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겸비의 모본을 보이지 않는 한 하나님앞에 진정으로 겸손할 수 없다. 회개하고 자복하고 죄를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께 가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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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자들은 인색한 거래를 통하여, 또한 그들 스스로는 이롭게 하고 그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그들의 형제들은 불리하게 함으로써 재산을 얻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은 거래할 때 나타내는 그들의 약삭빠름과 예민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여 얻은 모든 돈과 그들의 손에 들어온 그 이익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다. 이런 일이 내게 나타났을 때 나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 19:24) 고 하신 우리 구주의 말씀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재산을 얻을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소득한 것 때문에 좋지 못한 평을 듣게 되고, 엄격한 정직을 지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유혹에 져 속이어 터무니없는 값을 받아,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관대하고 너그럽고 고상한 인격의 원칙을 희생하게 된다.

나는, 안식일을 준수하는 자로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의 정신과 영향으로 타락해있는 것을 보았다. 거룩한 것이 그들의 품성에서 사라지고 사악한 것이 들어와서, 사단의 목적을 위하여 봉사하고 불의의 도구가 되도록 그들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 사람들과 반대로,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 주기에 민감한, 부지런하고 정직한 가난한 사람들, 부자들처럼 매우 인색하고 탐욕적인 정신을 나타내기보다는 오히려 부요한 형제들 때문에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길을 택하고자 하는 자들,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재물보다 정결한 양심과 정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는데 너무도 민감하고, 그들의 힘으로 자원해서 온갖 선을 행하고자 하기 때문에 재물을 축적하지 못하고, 그들의 세상 재산은 늘어나지 못한다. 재산이나 노력을 요구하는 어떤 자선의 대상이 생기면, 그들은 첫째로 관심을 나타내고 거기에 반응하되, 빈번히 그들의 실제적 능력 이상의 일을 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어떤 유익을 부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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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은 자랑할 만한 세상의 보화가 거의 없으므로, 그들은 능력과 판단력과 지혜에 있어서 부족한 것처럼 간주될 수도 있다. 그들은 특별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헤아려지고, 그들의 영향력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현명한 이 사람들을 어떻게 여기시는가? 그들은 그분의 눈앞에 귀중하게 여겨진다. 비록 세상에서는 보화를 늘리지 못할지라도, 그들은 썩지 않을 보화를 그들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 쌓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거룩하고 경건한 것이 세속적이요 육신적이요 사단적인 것보다 우월한 것과 같이, 영리하고 타산적이고 탐욕적인 자칭 그리스도인의 지혜보다 훨씬 더 우월한 지혜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보시는 것은 도덕적 가치이다. 탐욕으로 얼룩지지 않고 정숙과 온유와 겸손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의 품성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좋은 금, 오빌의 순금보다 더 가치가 있다.

부한 자들은 그들이 지금껏 받았던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시험을 견디고, 그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성실한 청지기로서 하나님께 속한 것을 그분에게 돌려드린다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 25:23) 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 후, 나는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를 보게 되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 16:9-12).

교회증언 1권 pp. 529-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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