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1 469-478 (47일)

목사들은, 각성하여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거의 상관없이 지내 온 활기와 열성과 헌신을 나타내야 한다.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사업이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심령의 준비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과식과 음주와 이생의 염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그들은 세속적 사업의 정신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이득을 얻기 위한 야망을 품고 있다. 영성과 헌신은 드물다. 보급되어 있는 정신은, 일을 하고 추적하고 그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에다 첨가하는 것이다. “이런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나의 괴로운 마음에서 나오는 질문이었다.

집회는 오래 지속되는 유익을 끼치지 못했다. 집회에 참석하는 자들은 상거래 (商去來) 의 정신을 가지고 다닌다. 목사들과 백성들이 빈번히 이 큰 모임에 그들의 상품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설교단에서 전해지는 진리는 마음에 감명을 주지 못한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며, 청중들에게 생기 없이 떨어진다. 고상한 하나님의 사업이 통속적인 것들과 너무도 밀접히 연결을 이루게 되었다.

목사들은 형제들을 강하게 하기 전에 먼저 회개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전할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전해야 한다. 개혁은 백성들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목사들에게서 먼저 정결케 하는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들은 부주의한 자들과 방심한 자들에게 경고의 음성을 전하고, 또한 시온에 있는 위선자들의 운명을 알려 주기 위하여 시온의 성벽 위에 서 있는 파수군들이다. 목사들 중 어떤 사람들은 사단이 여전히 살아 있어서 끈덕지고 열렬하고 변함없이 간교하다는 것과, 여전히 영혼들을 의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처럼 내게 보였다.

목사의 사업 중 중요한 한 부분은, 건강 개혁을 세째천사의 기별의 사업과 관련된 한부분이요 일부로 인정하고 백성들에게 성실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스스로 실천하고,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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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은 영혼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큰 사업에서 관심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정력은 모두 여기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 한 가지 큰 사업을 제쳐놓고 상업이나 행상이나 그 밖의 어떤 사업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 디모데에게 준 엄숙한 명령은 꼭 같은 비중으로 그들에게 주어져 있으며, 그들에게 가장 엄숙한 의무와 가장 무서운 책임을 지워 준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 4:1, 2, 5).

그릇된 생활 습관은 우리의 정신적·육체적 감각을 감퇴시켰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른 역할과 우리 자신을 건강과 생명과의 최선의 관계에 놓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모든 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업에 아낌없이 바쳐져야 한다. 우리는 “공궤 (供饋) 를 일삼” (행 6:2) 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업을 장사하는 일과 혼합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약간의 허약하고 불구가 된 힘을 사용할 여유가 없다. 마음과 육체의 모든 기능이 이제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업이 이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 위대한 사업 이외의 어떤 다른 사업에 종사함으로써 시간과 정신적·육체적 힘을 빼앗겨, 하나님 사업에 있어서의 우리의 활동의 활기와 힘을 감소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목사들은 모든 시간을 명상과 기도에 바칠 수 없고, 모든 힘과 명석한 마음을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할 준비를 갖추는데 바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때에 알맞은 적절한 말은 가련하고 실수하고 의심하고 피곤한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 4:15) 고 권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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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8) 고 말씀하신다. 만일, 이것이 놀랍게도 하나님의 종들에게 책임 지워진 사업이라면, 그들이 그 사업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영혼들을 마치 그들이 심판을 받을 것처럼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어떤 분리된 이기적 관심이 여기에 개입되어서 마음을 그 사업에서 나누어지게 해서야 되겠는가? 어떤 목사들은 그들의 집 주위에서 머뭇거리면서 안식일을 다 보낸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농사일을 하거나 집안의 어떤 일에 종사함으로 그들의 정력을 소모해 버린다. 그들은 평일 동안 내내 그들 자신을 위하여 활동을 하고, 그들의 소모된 정력의 나머지를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하는데 쓴다. 그러나, 그처럼 연약한 노력은 그분께 가납되지 않는다. 그들은 비축해 둘 육체적·정신적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들의 노력은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하는 평일 동안 내내 이 세상 생애의 염려와 걱정에 얽히고 마음을 빼앗긴 후에, 그들은 고상하고 신성하고 중요한 하나님의 사업에 전혀 부적합하게 된다. 영혼들의 운명은 그들이 취하는 행동과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먹는 일에 있어서 뿐 아니라 노동에 있어서까지 모든 일에 절제함으로 그들의 힘이 약화되지 않고 그들의 거룩한 부르심에 헌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얼마나 요긴하겠는가.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에 의하여 일련의 집회 활동에 장사하는 일이 개입되고, 그들의 매매 때문에 집회의 목적에서 마음을 분리시킴으로 큰 실수를 저질러 왔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것 같으면, 이 행상인과 장사치들이 목사들이든 평신도들이든 간에, 그분께서는 옛날에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처럼 작은 노끈으로 된 채찍을 가지시고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마 21:12, 13) 라고 하시며 그들을 쫓아내실 것이다. 이 장사치들은 그들이 매매하는 물건들이 희생 제물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이익을 보고 재물을 얻어 축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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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릇된 생활 습관으로 도덕적·지적 기능이 흐려지지 않았을 것 같으면, 목사들과 백성들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혼합시키는 해로운 결과를 분별하기에 민감해졌을 것임을 보았다. 목사들은 설교단에 서서 가장 엄숙한 설교를 한 후에 장사하는 일을 끌어들여 바로 하나님의 집에서 장사꾼이 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청중들의 마음을 받은바 감명에서 떠나게 하고, 자기들의 활동의 결과를 소멸시켜 버렸다. 감각이 마비된 상태에 빠지지 않았을 것 같으면, 그들은 거룩한 것을 속된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내린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분별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출판물을 판매하는 책임이 말씀과 교리를 가지고 활동하는 목사들에게 지워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시간과 힘은 일련의 집회를 위해 철저히 노력하기 위하여 비축된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들의 시간과 힘은, 우리의 책이 말씀을 전할 책임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 의하여 공중 앞에 적절히 소개될 수 있다면 그 책들을 파는데 빼앗겨서는 안 된다. 새로운 지역에 들어갈 때, 목사는 사람들에게 판매하기 위하여 출판물들을 가져 갈 필요가 있을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는 책들을 팔고 출판의 업무를 취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을 경우에는 그런 일을 언제든지 피해야 한다.

목사들은 말씀을 전파하기 위하여 해야 할 모든 일이 있고, 그들이 엄숙한 진리를 백성들에게 강조한 후에는 고상한 진리의 전파자로서, 또한 백성들에게 제시한 진리의 대표자로서 겸손한 위엄을 유지해야 한다. 힘든 노력을 한 후에 그들은 휴식이 필요하다. 현대 진리에 관한 책들을 판매하는 것은 마음에 부담과 짐이 되고, 육체에 피곤을 초래한다. 만일, 아직 저장된 힘이 있어서 그들 자신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해야 할 중요한 사업이 있다. 그 사업은 그들이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했을 때 시작된 데 불과하다. 그 후에, 모본이 되는 설교, 주의 깊이 돌보는 일,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 집집의 화롯가를 방문하여 그들의 입술에서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와 영적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일, 이 사람을 권면하고 저 사람을 책망하고, 다른 이를 견책하고, 고난당하는 자들, 고통당하는 자들, 낙망한 자들을 위로하는 일들이 뒤따르게 된다. 그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딤후 4:2) 즉각 응소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피로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 (딤전 4:15) 라고 한 명령을 순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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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의 책임이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가볍게 지워져 있다. 그들은 설교단을 떠나면 그들의 사업이 마쳐진 것으로 생각한다. 방문하는 것이 부담이 되고,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그러나, 그들을 위하여 있는 유익한 것을 모두 얻고자 진정으로 바라는 자들과, 그들이 모든 것을 분명히 보기 위하여 듣고 배우고자 하는 자들은 유익과 만족을 얻지 못한다. 목사들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핑계를 한다. 그러나, 어떤 목사들은 어떤 다른 사람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잘 해낼 수 있는 사업에 그들의 귀중한 힘과 시간을 허비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실한 일꾼으로서 목회 활동의 역량을 완전히 발휘하기 위하여 도덕적·육체적 힘을 보존해야 한다.

모든 중요한 장소에는 출판물들을 위한 창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리의 진가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누군가가 이 책들을 읽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하는 일에 관심을 나타내야 한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들은 적다. 그러므로, 오늘날 일터에 있는 소수의 경험 있는 일꾼들이, 말씀과 교리로 활동하기 위하여 해야 할 모든 것을 다 맡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칠 책임을 그들에게 지워주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시험을 받고 자격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들이 모든 짐에서 벗어나게 해서는 안되며, 즉시 책임 있는 위치에 오르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격려를 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일 것 같으면, 그들이 봉사사업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그들을 격려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일들을 전적으로 맡는 것은 최선의 길이 아닐 것이다. 먼저 그들을 경험과 지혜가 있는 사람과 관련을 지워 활동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그들이 구원하는 감화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를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 힘든 활동을 결코 해본 적이 없고, 그들의 정신적·육체적 힘을 짜내는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젊은 전도자들은, 그들 자신의 육체적 노동 없이 생계를 유지하려는 희망을 품도록 고무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 자신에게 해가 될 뿐 아니라, 사업의 책임이나 하나님의 택한 종들에게 지워져 있는 의무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 사업에 종사하도록 유도하는 하나의 미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첫째 원칙도 배우지 못한 상태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에 적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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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지 않고, 지혜도 받고 있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도를 받거나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반적으로 세속적 마음을 가지고 복음의 단순함에서 떠나 있다. 이것이 그들이 목사들에 대하여 취해 온 행동에 있어서 영적 분별력이 크게 부족했던 이유이다. 목사가 자유롭게 설교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 목사의 면전에서 그를 찬양할 것이다. 그가 말한 진리를 깊이 생각하고 그 진리를 적용하여 그들 자신이 잊어버리는 청중이 아니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들임을 보여주는 대신에, 그들은 그가 한 일을 말함으로써 그 사람을 높인다. 그들은 가련한 기구의 공로는 생각하지만, 그 기구로 사용한 그리스도는 잊어버린다. 한때 영광 중에 고상한 천사로 있던 사단의 타락 이래, 목사들은 언제나 칭찬으로 말미암아 타락해 왔다. 어리석은 안식일 준수자들은 그들의 목사들을 칭찬함으로 마귀를 기쁘게 해 왔다. 그들이 사단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던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들은 놀랐을 것이다. 그들은 눈이 멀었고, 하나님의 권면을 실천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목사들을, 칭찬하거나 추켜 세우는 일을 반대하는 경고의 음성을 높이는 바이다. 나는 이 일이 몹시 해로움을 보아 왔다. 목사들의 면전에서 그들을 칭찬하는 말은 한마디도, 결코, 결코 하지 말라. 하나님을 높이라. 언제나 성실한 목사를 존경하고, 그의 짐을 깨닫고, 할 수 있는 대로 그 짐을 가볍게 해주라. 그러나, 그를 추켜 세우지는 말라. 왜냐하면, 사단이 그런 종류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의 망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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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은 아첨하는 말을 하거나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자들을 약간 다르게 취급하거나, 말로써가 아닐지라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서 그들에게 아첨함으로 여기서 크게 실수하는 위험이 언제나 존재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아첨” (유 16) 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영원한 복리가 위태롭게 된다. 목사는 어떤 부자의 특별한 총아가 될 수도 있고, 그 부자는 그에게 전혀 인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목사에게 만족을 주어, 그는 기증자의 자비심을 아낌없이 칭찬하게 된다. 그의 이름이 인쇄되어 높임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관대한 기증자가 전혀 신임할 만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의 관대한 선물은, 그의 재물로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깊고 산 원칙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고 어떤 이기적 동기와, 관대하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에서 그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충동에 의하여 주게 되었는지도 모르므로, 그의 관대한 마음은 원칙의 깊이가 없을 수도 있다. 그가 한때 지갑 끈을 풀게 하는 감동적인 진리를 들음으로써 행동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관대함에는 보다 깊은 동기가 없다. 그는 충동에 의하여 준다. 그의 지갑은 발작적으로 열려지고, 동일하게 발작적으로 굳게 닫혀진다. 그는 칭찬받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는 글자 그대로 인색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돈주머니와 모든 것과 함께 그가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위협적인 선고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약 5:1, 2). 그런 자들은 마침내 무서운 자아 기만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들이 이따금씩 보이는 관대를 칭찬한 사람들은 사단이 그들을 속이도록 도와주고, 관대함과 자아 희생의 첫째 원칙도 깨닫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매우 관대하고 희생적이라고 생각하게끔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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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녀들은, 그들이 이 세상의 사물을 크게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고, 진리와 그 발전을 어떤 세속적 이익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체한다. 많은 사람들은 마침내 정신이 들어, 그들이 속아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한때 진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진리와 비교해서 세상의 보화가 그들에게 무가치한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 후 그들의 세속적 보화가 증가되자, 그들은 헌신적 마음이 식어졌다. 비록 그들은 안락한 생계를 위하여 충분하게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은 그들이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마음이 이 지상의 보화에 결속되어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이득, 이득, 이것이 그들의 표어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그들의 활동에 참여한다. 그들은 예배나 기도를 위한 어떤 시간을 좀처럼 스스로에게 할애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 약하고 병든 여자들과 연약한 자녀들은 그들의 쇠퇴해 가는 야망을 채찍질하여 달리게 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얻고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 위하여 생명력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돕기 위하여 이렇게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이것은 무서운 기만이다. 사단은 그들이 이득을 얻기 위한 욕심으로 영혼과 육체를 팔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쳐다보고 웃고 있다. 그들은 이득을 위하여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팔고 있는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힘없는 변명을 한다. 그들은 이 세상의 신 (神) 에 의하여 눈이 멀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의 피로 그들을 사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그들 스스로를 산산조각으로 찢어서 사회에서 거의 쓸모 없는 사람이 된다.

그들은 정신의 계발을 위하여 별로 시간을 바치지 않고, 사교적 기쁨이나 가정의 기쁨을 위해서도 별로 시간을 바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사람에게도 별로 유익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생애는 크게 잘못되어 있다. 이처럼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들은, 그들의 부단한 활동의 길이 칭찬받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의 분수에 지나친 노동으로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다. 그들은 과도한 노동으로 신체의 법칙을 끊임없이 어김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을 망가뜨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회계하자고 그들을 부르실 때, 그분께서 그들에게 빌려 주신 달란트를 이자와 함께 요구하실때, 그들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그들의 우상 숭배적인 맹목적 열성으로 크리쉬나 신의 신상을 실은 차에 몸을 던져 치어 죽는 이교도라면, 그들의 경우가 훨씬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빛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전이라고 부르시는 육체를 가능한 한 건전하게 보존하여, 그분의 소유인 몸과 마음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하라는 경고를 거듭해서 받아 왔다. 그들은 다음의 그리스도의 교훈을 무시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19-21). 그들은 세상의 염려가 그들을 얽어매도록 허용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9). 그들은 마치 무지한 이교도가 그의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그들의 세상 재물을 숭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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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이득을 얻기 위한 그들의 욕망이 하나님의 사업을 돕는데 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어느 정도의 이득을 얻게 되면 그것으로 선을 행하고 현대 진리의 사업을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가 이루어지면, 그들은 이전보다 더 그 사업을 도울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바람직한 집이나 토지를 사고 그 값을 지불한 후에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재물로 큰일을 할 것이라고 스스로 서약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의 욕망이 성취되면, 그들은 가난하던 때보다 하나님 사업의 발전을 돕기 위한 마음을 훨씬 더 적게 가진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자요” (마 13:22). 재리의 유혹은 그들을 한 계단씩 이끌어서, 마침내 그들이 진리에 대한 사랑을 모두 잃어버리게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진리를 믿노라고 자부한다. 그들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은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나 진리에 대한 사랑은 그들 안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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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돈을 얻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사업 문제를 신중하게 계획하여, 옥외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집에 있는 가족들이 많은 힘든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모든 사람들의 뼈와 근육과 두뇌는 극도로 지쳐 있다. 그들에게는 해야 할 많은 분량의 일이 있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 않으면 손실을 당하고 무엇인가를 낭비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를 붙인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모든 것이 저축되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무엇을 얻었는가? 아마도, 그들은 기본 재산을 보존함과 동시에 그것을 더 늘릴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한 사람들은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부자에게는 물론이요 가난한 사람에게도 매우 귀중한 건강의 자본을 그들은 꾸준히 약화시켜 왔다. 어머니와 자녀들은 그들의 건강과 힘의 자본을 거듭해서 빼내고 있으면서도, 그 같은 과도한 지출이 그들의 자본을 결코 고갈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생명력이 소모된 것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그들은 비상시에 사용할 것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의 생애의 즐거움과 행복은 고통스러운 아픔과 잠 못 자는 밤 때문에 비참해진다. 육체적·정신적 힘은 한가지로 사라진다. 이득을 목적으로 사업을 어리석게 경영한 남편이요 아버지는, 아내요 어머니 된 사람의 충분한 인정 아래 한 일일지라도, 그 결과로 어머니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자녀의 장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건강과 생명은 돈에 대한 애착 때문에 희생되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안식일 준수자들에게는 성취해야 할 큰 사업이 있다. 그들의 눈은 열려져야 하고, 그들은 그들의 참 상태를 보고 열심을 내어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정신이 그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들은 흑암의 세력에 포로가 되어 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권면에 유의하지 않는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많은 사람들에게는 탐심과 이기심을 수반한 세속적 정신이 지배적이다.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특별한 유익을 찾고 있다. 이기적인 부자는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불리한 사정을 이용하여 그 자신이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연구하는 것 외에는 그들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 속에 있는 고상한 것과 거룩한 것은 이기적 이익에 양보되고 희생되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 그것은 시력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과 이웃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교회증언 1권 pp. 469-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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