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장 여리고의 함락
히브리인은 이미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아직 그 나라 백성들을 정복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에는 이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길고도 어려운 전쟁을 치러야 할 것처럼 보였다. 가나안에는 강대한 민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들의 영토의 침략에 대항할 준비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여러 종족들은 공통된 위험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 일치단결하였다. 그들의 말과 철병거와 지형에 대한 밝은 식견과 전쟁을 위한 훈련 등을 생각할 때 그들은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게다가 그 나라는 견고한 성채로 방어되고 있었는데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아”(신 9:1) 있었다. 그들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분의 능력의 보증으로써만 이스라엘은 절박한 전투에서 성공을 바랄 수 있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크고 견고한 성 중에 하나인 부요한 여리고 성읍은 길갈에 있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비옥한 평원의 변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열대 지방의 윤택한 각종 생산물이 풍부했고 사치와 죄악의 소굴인 궁전과 신전이 있고 그 뒤에 육중한 성벽이 둘러 있는 이 거만한 여리고 성읍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도전하였다. 여리고는 우상숭배의 본거지 중 하나인데 특히 달의 여신 아스다롯을 섬기는 곳이었다. 이곳은 가나안인들의 종교 중에 가장 비열하고 가장 부패된 모든 것들의 중심지였다. 벧브올에서 범한 죄의 무서운 결과가 마음속에 생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이교의 성읍을 증오와 공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제일보가 여리고를 함락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보증을 간구하여 그 보증을 받았다. 여호수아가 진영에서 물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앞에 행하시기를 묵상하고 기도할 때에 키가 크고 풍채가 당당하고 “칼을 빼어 손에” 든 한 무장한 군사를 보았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는 여호수아의 도전에 그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수 5:13~15, 6장, 7장)고 대답하였다.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명하셨던 동일한 명령이 이 신비스러운 낯선 사람의 참 성격을 드러내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 앞에 서셨던 분은 지존하신 그리스도이셨다. 위엄에 눌린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려 경배하고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이셨다는 보증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분으로부터 그 성읍을 빼앗는 일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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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정렬시켰다. 그러나 공격을 가하지 말아야 하였다.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나팔을 불면서 그 성읍 주위를 돌아야 하였다. 대열의 선두에 무사들이 섰었는데 그들은 선발된 용사의 단체이었으나 지금은 그들 자신들의 수완과 용맹으로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지시를 순종함으로 승리를 얻어야 하였다. 그 뒤를 나팔을 가진 일곱 제사장이 따랐다. 그 다음에는 그들의 신성한 직무를 나타내는 의복을 입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영광의 구름에 둘러싸인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행진하였다. 그 후에 이스라엘 군대는 각 지파마다 그 지파의 깃발 아래 행진하였다. 그 운명지어진 성읍을 도는 행렬은 이와 같았다. 이 강대한 군사들의 발걸음 소리와 엄숙한 나팔 소리가 산들에 메아리치고 그 소리가 다시 여리고 시가에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돌기를 마치자 전군은 조용히 각기 장막으로 되돌아가고 법궤는 성막 안에 전에 있던 자리에 안치되었다.
여리고 성읍의 파수꾼들은 경이와 공포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을 세밀히 감시하고 이를 상관에게 보고하였다. 그들은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지 그 뜻을 알지 못했으나 강대한 군대가 성스러운 법궤와 수종드는 제사장들과 함께 그들의 성읍을 매일 한 번씩 도는 것을 볼 때에 이 신비스러운 광경은 이교의 사제들과 백성의 마음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능히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그들의 튼튼한 방어 시설들을 점검해 보았다. 이 이상한 시위 때문에 저희에게 어떤 해가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조롱하는 자들이 많았다. 다른 이들은 날마다 성읍을 도는 행렬을 바라볼 때에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홍해가 열렸으며 얼마 전에는 요단에 길이 열려 그들이 건너온 것을 기억하였다. 그들은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어떠한 경이로운 일을 더 행하실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스라엘 대군은 6일 동안 여리고성을 돌았다. 일곱째 날 새벽에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를 소집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제 하나님께서 이 성읍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돈 후에 나팔 소리가 크게 들리거든 큰소리로 외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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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이스라엘 대군은 운명지어진 성벽 주위를 엄숙히 행진하였다.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는 많은 사람의 발걸음 소리와 이른 아침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나팔 소리가 때때로 울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용하였다. 견고한 돌로 된 튼튼한 성벽은 사람들의 포위를 멸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성벽 위에 있는 파수병들은 첫 바퀴를 돌고 나서 뒤따라 두 번째 바퀴를 돌고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바퀴를 도는 모습을 공포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 신비스러운 행동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떤 큰 사건이 임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일곱 번 돌기를 마친 후 긴 행렬은 멈추어 서고 한동안 조용하던 나팔들이 일시에 울려 온 땅을 진동시켰다. 견고한 돌로 쌓은 성벽이 그 거대한 망대와 활 쏘는 구멍 있는 흉벽과 함께 기초에서부터 흔들려 우르르하고 무너져 내렸다. 여리고 거민들은 공포에 질려 움직일 수 없었고 이스라엘 대군은 진군하여 들어가 그 성읍을 점령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승리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 정복은 전부 여호와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그 성벽과 거기 포함한 것은 모두 그 땅의 처음 열매로서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하였다. 또 가나안 정복은 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싸운 싸움이 아님과 그들은 다만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들이 재물이나 명예를 구할 것이 아니요 그들의 왕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 성을 빼앗기 전에 다음과 같은 명령이 내렸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바치되”,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 성읍의 모든 거민은 그중에 있는 모든 생물과 함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다 칼로 진멸해야 하였다. 다만 충실한 라합과 그 가족은 정탐꾼의 약속대로 죽임을 면했다. 여리고 성읍이 전부 불타버렸다. 그 궁전과 사원들, 장엄한 저택과 그 사치스러운 모든 기구들, 화려한 피륙과 값진 의복들이 모두 불꽃에 삼키운 바 되었다. 그러나 불로 태울 수 없는 “은금과 동철 기구”는 성막에서 사용하도록 바쳐야 하였다. 성읍의 유적도 저주를 받아 여리고는 결코 성채로서 재건될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파괴된 성벽을 회복하려고 시도하는 자는 형벌받을 우려가 있었다. 온 이스라엘 앞에서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고 엄숙히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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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의 백성을 전부 멸한 것은 전에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 백성들에 관하여 주신 명령 곧 “너로 치게 하시리니…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신 7:2, 20:16)라는 명령의 성취에 불과하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명령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 있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참으로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그들로부터 이 세상에 당신의 나라를 나타낼 수 있는 민족과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종교의 후계자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원칙을 온 세계에 전파하여야 하였다. 가나안인들은 가장 더럽고 가장 부패한 이교에 빠졌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목적을 성취하는 데 분명히 방해가 될 것이므로 그들을 그 땅에서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나안 거민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허락되었다. 40년 전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에 형벌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제 미디안과 길르앗과 바산의 왕들을 정복하게 하심으로 한층 더 여호와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심을 나타내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품격이 거룩하시고 음란한 행위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서 가증스러운 의식에 참여한 까닭으로 그들에게 내리신 형벌에서 잘 나타내셨다. 이 모든 사건을 여리고 거민들이 잘 알고 있었고 비록 그들이 순종하기를 거절하였을지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는 라합의 확신에 동참하는 자들이 많았다. 가나안인들은 홍수 전 사람들처럼 하늘을 모독하고 땅을 더럽히는 삶을 살 뿐이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와 인류의 원수들을 신속히 처형하기를 요구했다.
40년 전에 불신의 정탐꾼들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던 그 교만한 성읍 여리고의 성벽을 하늘의 군대가 얼마나 쉽게 무너뜨렸던가!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분께서 “내가 여리고를 네 손에 붙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힘은 이 말씀에 항거하기에 무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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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여리고 성이 무너졌”(히 11:30)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여호수아로 더불어만 교통하시고 자신을 모든 회중에게 나타내시지 않았다. 여호수아의 말을 믿든지 의심하든지 하는 것은 오직 이스라엘 회중에게 달려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지도 하에 그들을 옹위한 천사들의 무리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도 있었다.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면서 날마다 성벽 주위를 행진하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하고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이 일은 이 우뚝 솟은 성채에 아무런 결과도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성벽을 최후로 무너뜨리기 전에 오랫동안 이런 의식을 계속하게 한 이 모든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신앙심을 계발시킬 기회를 주시고자 하심이었다. 이는 그들의 힘은 인간의 지혜나 그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들의 구원의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감명시키려 하심이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적으로 그들의 거룩하신 지도자를 의지하도록 숙달되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실 것이다. 당신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보다 큰 능력을 받지 못하는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크게 의지하고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그분에게 기회를 드리지 않는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충실히 당신을 순종한다면 당신을 믿는 자녀들을 위급할 때마다 도와주실 것이다.
여리고를 함락시킨 지 얼마 후에 여호수아는 요단강 유역 서편 수 마일 떨어진 계곡 중에 있는 작은 성 아이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그 곳에 보낸 정탐꾼들은 그 곳 주민은 적고 그 곳을 점령하기에는 적은 군대밖에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신 대승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만심을 가지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허락하셨으므로 그들은 안심하였고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그들에게 성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또 잊어버렸다. 여호수아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아이 성을 정복할 계획을 세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을 높이고 원수를 경멸하기 시작하였다. 쉽게 승리를 얻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 곳을 취하는 데는 3천명의 군사면 족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군사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리라는 보증도 없이 공격하여 돌진해 나아갔다. 이스라엘 군사는 아이 성문 가까이 진군하였으나 가장 완강한 저항을 받고 말았다. 그들은 적의 수효와 철저한 준비를 보고 당황하고 혼란에 빠져 가파른 내리받이 길로 도망하였다. 가나안인들은 맹렬히 추격하여 “성문 앞에서부터…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다. 그 때에 36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비록 그 수효는 적었지만 이 패배는 전 회중을 낙담하게 하였다.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이 가나안인과 실전에서 교전한 최초이었는데 이 작은 성읍의 방어군에게 이처럼 패배를 당한다면 그들 앞에 있는 큰 전투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여호수아는 그들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의 표시임을 알고 슬퍼하고 염려하여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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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라고 부르짖었다.
여호와께서는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느니라고 대답하셨다. 이때는 절망과 비탄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요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 할 시간이었다. 진영 중에 은밀한 죄가 있었는데 이것을 찾아서 제거하기 전에는 여호와의 임재와 축복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실 수 없었다.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라는 명령을 받은 자 중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그 범죄자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었다.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였다. 여호수아는 범죄자를 수색하여 처벌하라는 명을 받았다. 범인을 찾아내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야 하였다. 죄인을 직접 지적하지 아니하고 그 문제를 한동안 의문 중에 두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저희 중에 있는 죄에 대하여 책임을 깨닫게 하여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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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이른 아침 “그 지파대로” 백성을 모아 엄숙하고 인상 깊은 의식을 시작하였다. 하나하나 조사하는 일이 진행되었다. 무서운 심사는 점점 더 범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최초에는 지파, 그 다음에는 종족, 그 후에는 가족, 최후에는 범인을 잡아내게 되었는데 유다지파 갈미의 아들 아간이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로 지목되었다.
여호수아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죄상을 밝혀 그가 부당하게 선고를 받았다는 비난을 남기지 못하도록 아간에게 사실을 승인하도록 엄명하였다. 비참한 아간은 그의 죄상을 다음과 같이 철저히 고백하였다.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은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나이다. 즉시 사자를 그의 장막에 보냈고 사자들이 그가 말한 장소의 땅을 파 보니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아간에게 형벌이 선고되었고 즉시 그 형이 집행되었다. 여호수아는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고 말하였다. 온 백성이 아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결과로 고통을 당하였으므로 그들은 이제 저희 대표자들을 통하여 형벌하는 일에 참여하여야 했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쳤”다.
그리고 아간의 시체 위에는 돌무더기가 크게 쌓여 그 죄와 형벌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아골(괴로움) 골짜기라 부르더라.” 역대기에는 그의 죄를 기념하여 “아갈이니…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대상 2:7)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간의 죄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엄숙한 경고와 가장 강한 하나님의 능력의 출현을 무시하고 범해졌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는 명령이 온 이스라엘에게 포고되었다. 이 명령은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 온 백성이 할례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인식한 후에 유월절을 지키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인 언약의 천사가 나타난 후에 즉시 주어진 바 되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모든 범죄자들이 분명히 당할 멸망을 증거하는 여리고의 함락에 뒤따라 일어났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스라엘이 승리를 얻었고 그들이 자기 힘으로 여리고를 점령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노획물을 취하지 않도록 금지하신 명령에 엄숙한 비중을 더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 성을 함락시키셨으므로 승리는 당신의 것이며 그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당신에게만 바쳐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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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승리와 심판이 시행되던 엄숙한 시간에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 중에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한 사람이 있었다. 시날산 의복을 볼 때에 아간의 탐욕은 자극을 받았다. 이것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 그 순간까지도 아간은 그것을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라고 불렀다. 한 가지 죄는 다른 죄를 유도하여 그는 여호와의 보고에 바쳐야 할 금과 은도 훔쳤는데 곧 가나안 땅의 처음 열매를 하나님에게서 도적질하였다.
아간을 파멸시킨 무서운 죄는 모든 죄 중에 가장 흔하고 가장 경히 여겨지고 있는 탐욕에서 기인되었다. 다른 죄들은 조사하여 형벌하는 반면에 열째 계명을 유린한 죄는 좀체로 비난조차 받지 않는다. 이 죄가 얼마나 흉악하며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하여는 아간의 역사에서 배울 수가 있다.
탐욕은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죄악이다. 아간이 품은 물욕은 마침내 습관이 되어 거의 깨뜨릴 수 없는 족쇄처럼 그를 속박하였다. 그는 이 악을 품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에게 재난이 이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그의 지각은 마비되어 유혹이 닥쳐올 때에 그는 쉽사리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엄숙하고 명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동일한 죄가 범해지고 있지 아니한가? 아간에게 여리고의 노획물을 훔치지 못하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그 같은 탐욕에 방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선언하셨다. 우리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골 3:5; 마 6:24; 눅 12:15; 엡 5:3)는 경고를 받고 있다. 우리 앞에는 아간과 유다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무서운 운명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의 배후에 보다 높은 자리를 탐내다가 하늘의 영광과 복락을 영원히 상실한 “아침의 아들” 루스벨의 무서운 운명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탐욕은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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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든지 탐욕 투성이의 더러운 자국들이 보인다. 탐욕은 가정에서 불만과 알력을 조장하고 가난한 자로 하여금 부자에 대하여 질투와 증오를 일으키게 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포학한 압박을 가하도록 한다. 이 탐욕이란 악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교회 안에서까지도 이기심과 허욕과 속이는 일과 자선사업의 태만과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일을 얼마나 쉽게 볼 수 있는가! “선량하고 교회에 잘 다니는” 교인들 중에 슬프게도 많은 아간들이 있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아와 주의 식탁에 앉으나 저희 재산 중에 불법적으로 취한 것 즉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물건을 감추어 둔 자들이 많다. 많은 군중들은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를 위하여 양심의 호소와 천국의 소망을 희생한다. 많은 무리들이 그들의 성실과 훌륭하게 될 가능성을 돈주머니와 바꾼다. 가난한 자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은 무시되고, 복음의 빛이 전파되는 일이 방해를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자들의 거짓된 행동으로 인하여 속인들의 조롱이 불타오르고 있으나 여전히 탐욕적인 그리스도인은 재물 모으기를 계속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아간의 죄는 전국민에게 재난을 가져왔다. 그와같이 한 사람의 죄는 그 범행을 조사하여 처리해 버리기까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당신의 교회에게 임할 것이다. 교회가 가장 무서워해야 할 영향은 공공연한 반대자나 신앙심 없는 자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의 영향이 아니요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축복을 억제하고 당신의 백성들을 약하게 하는 자들이다.
교회가 난관에 처하고 냉담과 영적 타락에 빠져서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승리의 개가를 부를 기회를 제공하고 있을 때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불행한 상태를 슬퍼하는 대신에 교인들로 하여금 진영 중에 아간과 같은 자가 있는지 조사하게 하라. 각 사람은 겸비하고 마음을 살펴 하나님의 임재를 막는 감추인 죄를 찾아내도록 노력하라.
아간은 자기의 죄를 시인하였으나 그 고백이 자신에게 유익을 주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대가 아이에서 패배하여 낙담하여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자진하여 죄를 자복하지 않았다. 그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큰 슬픔으로 땅에 부복한 것을 보았다. 만일 그 때에 자복하였더라면 그는 진심으로 회개한 증거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간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아간은 큰 죄가 범하여졌다는 선언을 듣고 그 죄의 성질까지 분명히 진술된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입술은 인봉되었다. 그 후에 엄숙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그의 지파에서 시작하여 그의 종족과 가족이 점차 지목당하는 것을 볼 때에 그의 마음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그러나 하나님의 손가락이 그를 지적할 때까지 그는 자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죄를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아간은 사실을 고백하였다. 이와 동일한 자복이 얼마나 자주 행하여지고 있는가! 다 알려진 후에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자기 자신과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죄를 자복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간은 그의 고백으로써 그의 범죄의 결과를 피하리라는 희망을 갖지 않았다면 자기의 죄를 자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복은 다만 자신의 형벌이 공의로움을 나타내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그에게는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도, 깊은 뉘우침도 의도의 변화도, 악에 대한 증오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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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죄인들은 생사의 운명이 결정된 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죄를 자복할 것이다. 그들에게 미칠 결과가 각각 저희 죄를 시인하게 할 것이다. 선고에 대한 무서운 느낌과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자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복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아간처럼 그들의 범죄를 같은 사람에게 감출 수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엄격히 주목해 보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는다. 조만간 희생 제물이나 헌물로도 영원히 죄를 속할 수 없는 그날에 그들의 죄가 그들을 찾아낼 때에는 모두 너무 늦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늘의 기록들이 공개될 때에 재판장께서는 말씀으로 인간에게 그들의 죄를 선언하지 않으시고 날카롭고 가책을 느끼게 하는 시선을 던지심으로 모든 행위와 일상 생애의 모든 업무가 행악자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실 것이다. 그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시대에서처럼 지파로부터 가족에게까지 색출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자신의 입술로 자기 수치를 고백할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졌던 죄악들이 그 때에는 전 세계에 선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