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소멸
하나님께서는 반역의 정신에 대하여 혐오감을 나타내셨다. 온 하늘은 하나님의 공의가 사단을 정죄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다 같이 나타났음을 보았다. 루스벨은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될 수 없고 그 형벌이 경감될 수 없다면 율법을 범하는 모든 자가 창조주의 은총에서 영원히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는 죄에 빠진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 밖에 있으므로 자기의 정당한 포로가 되었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돌아가신 사실은 도무지 꺾을 수 없는 논증이 되었다. 하나님과 동등되는 그분께서 율법의 형벌을 받으시므로 인류는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고 겸손과 회개의 생애로써 마치 하나님의 아들이 승리하신 것처럼, 이겨서 사단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이시다.
-50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사망을 맛보신 것은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또한 율법을 크게 하고 존귀케 하기 위하여 오셨다. 율법은 마땅히 존중을 받아야 하는바 그분께서 오신 것은 이 세상의 거민들이 율법을 그처럼 존중히 여기도록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세계에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함이었다. 만일 율법의 요구가 취소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율법을 범한 죄를 속하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의 불변성을 입증한다. 무한한 사랑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을 강권하여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치르게 한 희생, 곧 이 속죄의 계획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었던 그 희생은 공의와 자비가 하나님의 율법과 그분의 정부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온 우주에 실증해 준다.
마지막 심판이 집행될 때 죄가 존재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온 세상의 심판장께서 사단을 향하여 “네가 어찌하여 내게 반역하고 내 나라의 백성들을 내게서 빼앗아 갔느냐?”고 심문하실 때 죄의 창시자는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입은 닫힐 것이고 모든 반역의 군사들은 오직 유구 무언해질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는 율법의 불변성을 말해 주는 한편, 죄의 값이 사망이라는 것을 온 우주에 선포한다. 구주께서 임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때 사단의 멸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오랫동안 계속하여 온 대쟁투는 이제 판가름이 나고 죄악의 최종적 도말이 확정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히 2:14) 멸하기 위하여 무덤의 문을 통과하셨다. 루스벨은 자기를 높이고 싶은 욕망으로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사 14:13, 14) 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네가 죄악이 많고…불의하므로…내가…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겔 28:18,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 (말 4:1) 하리라.
-504-
온 우주는 죄의 본질과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 천사를 두렵게 하고 하나님께 욕을 돌리게 하는 듯하던 죄의 최종적 박멸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즐겨 행하고 그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율법이 있는 우주의 거민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옹호하고 그분의 명예를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다시는 죄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나 1:9) 고 말한다. 사단이 속박의 멍에라고 비난하여 온 하나님의 율법은 자유의 율법으로 높임을 받을 것이다. 시련과 연단을 받은 피조물들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이루어진 품성을 그들 앞에 완전히 드러내신 하나님께 다시는 충성심을 변치 아니할 것이다.
-505-
30 장 — 인류와 사단 사이의 적의 (敵意)
죄의 창시자 사단의 모략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 인류의 타락 후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내리신 이 선고는 동시에 하나의 예언이었다. 그것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에 미치고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참가할 대쟁투를 미리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내가…원수가 되게 하리”라고 선언하신다. 이 원수 관계는 선천적으로 되지 않는다. 인류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으므로 그의 본성은 악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사단과 조화되고 불목하지 않게 되었다. 죄인과 죄의 창시자인 사단과는 본질상으로 아무런 원수 관계가 존재치 않는다. 둘 다 반역으로 악해졌다. 그 배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행위를 모방하게 하여 동조와 후원을 얻기 전에는 결코 안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타락한 천사들과 악한 자들은 결사적으로 연합하기로 하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특별히 간섭하지 않으셨을 것 같으면 사단과 인류는 동맹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대항하였을 것이다. 인류는 사단과 원수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에 연합하였을 것이다.
사단은 천사들을 반역에 가담시켰던 것처럼 인류를 범죄하도록 유혹하여 하나님을 대항하는 싸움에 협력하게 했다.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일에 있어서는 사단 자신과 타락한 천사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없었다. 다른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는 의견이 달랐을지라도 그들이 우주의 통치자의 권위를 반대하는 일에는 완전히 연합하였다. 그러나 사단이 그와 여자와 그리고 그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될 것이라는 선언을 듣자 그는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키려는 그의 노력이 방해를 받을 것과 인류가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기의 세력을 저항할 수 있게 될 것을 알았다.
-506-
인류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인류에 대한 사단의 증오심이 불타올랐다. 하나님의 창조 사업을 무너뜨리고 더럽힘으로 그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전복시키고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고자 열망한다. 그는 하늘에 슬픔이 있게 하고 땅은 재난과 황폐로 충만해지게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악이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결과로 생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사단에 대한 증오심을 일으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혼 속에 주입시키시는 은혜이다. 이와 같이 회개케 하는 은혜와 새롭게 하는 능력이 없었으면 인류는 계속적으로 사단에게 사로잡혀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언제나 대기하고 있는 종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령에 있는 새로운 원칙이 지금껏 평화롭던 곳에 투쟁을 일으킨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찬탈자요 폭군인 사단을 거절할 수 있게 된다. 누구든지 죄를 사랑하는 대신에 미워하고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정욕을 정복한 증거를 나타내면 전적으로 하늘에서 온 원칙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반역의 세력이 위협함
그리스도의 영과 사단의 영 사이에 존재하는 적의는 세상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절한 것은 그분께서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아니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외적 상태의 부족을 채우고도 남을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신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순결과 성결이 경건치 않은 사람들의 증오심을 일으켰다. 그분의 극기와 결백한 헌신의 생애는 거만하고 방종한 자들에게 그침 없는 견책이 되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적의를 일으켰다. 사단과 악한 천사들은 악한 사람들과 합세했다. 모든 반역의 세력은 진리의 투사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자 꾀하였다.
-507-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주님께 나타냈던 것과 똑같은 적의가 나타난다. 죄의 가증한 성질을 깨닫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유혹을 거절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사단과 그 부하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진리의 순결한 원칙에 대한 증오, 그 원칙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와 비난은 죄와 죄인들이 존속하는 한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과 사단의 종들은 서로 조화될 수 없다. 십자가에 대한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
사단의 부하들은 사단의 지휘 아래 하나님의 정부와 반대되는 그의 나라를 건설하고 그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의 충성심을 버리도록 유혹하고자 애를 쓴다. 그들의 지도자처럼 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곡해하고 왜곡시킨다. 사단이 하나님을 비난하기 위하여 애쓴 것처럼 그의 부하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훼방하고자 애를 쓴다. 그리스도를 죽게 한 그 정신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죽이도록 악한 자들을 자극시킨다. 이 모든 일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는 최초의 예언에 이미 나타나 있다. 이것은 세상의 종말까지 계속될 일이다.
죄에 대한 마비 상태
사단은 그의 온 군대를 동원하여 전투에 그의 힘을 다 쏟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더 큰 저항을 받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왜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그처럼 깊이 졸고 냉담한 상태인가?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실제적 연결이 거의 없고 그분의 영이 너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주님께서 죄에 대하여 하신 것처럼 그렇게 죄를 미워하고 가증히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확고하고 단호하게 죄를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은 죄가 어느 정도로 악하고 가증한 것임을 알지 못하므로 암흑의 왕의 특성과 세력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다. 그들은 사단과 그 사업에 대하여 별로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단의 세력과 그의 악랄함에 대하여 너무도 무지하고 사단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대하여 어느 정도 전선을 확장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미혹된다. 그들은 그들의 원수가 그 악한 천사들을 임의로 부리며 잘 짜여진 계획과 교묘한 행동으로 영혼의 구원을 방해하고자 그리스도와 싸우고 있는 강한 장군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사람들, 심지어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까지도 이따금 강단에서 말하는 것 외에는 사단에 대하여 말하는 일이 참으로 드물다. 그들은 사단이 끊임없이 활동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는 증거들을 못보고 지나간다. 그들은 사단의 교활함에 대한 많은 경고들을 등한히 여긴다. 그들은 사단의 존재 자체에 대하여서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508-
사람들이 그의 간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 방심하지 않는 원수는 끊임없이 그들의 뒤를 밟고 있다. 그는 모든 집, 각 도시의 거리, 교회, 의회, 재판정에 들어가서 혼란을 일으키고 속이고 유혹함으로써 도처에서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의 육체와 심령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증오와 경쟁과 투쟁과 혼란과 살인의 씨를 뿌린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계에서는 이런 일들이 마치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세상과 분리시키는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그들을 정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지된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하고자 모험함으로 죄에 빠지도록 유혹을 받았다. 그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타락하게 된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4). 그리스도의 확고한 추종자들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사단의 종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에는 죄를 사랑하는 마음과 죄를 간직하고 핑계하려는 정신이 있다. 그러나 거듭난 마음에는 죄를 미워하고 그것을 확고하게 저항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경건치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택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를 시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사단은 자신을 숨기고 속임수의 휘장으로 감쪽같이 그들의 눈을 가리운다. 그들은 그런 교제가 그들에게 해를 주리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끊임없이 품성과 언어와 행동에 있어서 세상과 동화됨으로 그들은 더욱더 눈이 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