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76일

율법과 신앙과의 관계 

하나님과 화목하는 첫째 계단은 죄를 깨닫는 것이다. “죄는 불법이라” (요일 3:4),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죄인이 죄를 깨달으려면 먼저 자기의 품성을 하나님의 위대한 의의 표준에 비추어서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의로운 품성의 완전함을 보여 주는 거울로서 죄인에게 그의 결함을 분별하게 해준다.  

율법이 사람에게 그의 죄를 나타내 보여 주기는 하지만 죄를 치료해주지는 못한다. 율법은 순종하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해 주는 반면에 율법을 범하는 것이 죽음임을 선고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죄의 선고와 더러움에서 사람을 해방시킬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였으므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그의 속죄 제물로 믿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사람은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용서를 받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양자의 영을 받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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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여도 무방한가?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3:31),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2) 라고 말한다.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고 하였다. 새로 남으로써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됨과 동시에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 위대한 변화가 죄인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면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성결로, 범죄와 반역에서 순종과 충성으로 옮겨지게 된다. 하나님과 멀어져 있던 옛 생애는 끝나고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화목의 생애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롬 8:4) 한다. 그 때에 심령에서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 119:97) 고 외치게 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시 19:7) 한다. 율법이 없으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성성과 순결, 그리고 자기 자신들의 죄와 불결에 대하여 올바른 관념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고 회개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자로서의 그들의 속절없는 상태를 알지 못하고 속죄하는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함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도, 생애의 개혁도 없이 구원의 소망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피상적인 회개가 보편화되고 결코 그리스도와 연합한 경험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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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聖化) 에 이르는 길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율법을 등한히 하고 부인하는 데서 생기는 그릇된 성화에 대한 이론들이 오늘날의 종교 운동에서 현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이론은 교리상으로 거짓될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있어서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일반에게 환영을 받는 사실을 볼 때 이 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명백히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요긴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참된 성화는 성경상 교리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 4:3) 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고 기도하였다. 성경은 성결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가르쳐 준다. 구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고 기도하셨다. 바울은 신자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 (롬 15:16) 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 (요 16:13)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구현되어 있는 의의 큰 원칙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며, 완전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나타내주므로 그런 율법에 순종할 때 이루어지는 품성도 또한 거룩하여진다. 그리스도는 그런 품성의 완전한 모본이시다. 그분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 (요 15:10, 8:29)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분의 거룩한 율법의 원칙과 일치한 품성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성화이다.  

이 일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의 내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서만 성취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2, 13) 라고 권고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것을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될 때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 (고전 15:57) 라고 부르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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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성화의 과업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짐을 분명히 알려 준다. 죄인이 회개하여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해질 때부터 그리스도인 생애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그는 “완전한 데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 14) 고 말하였다. 그리고 베드로도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성화를 얻는 계단을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는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 1:5~10) 고 말하였다.  

성화의 의미 

성경상 성화를 체험한 사람은 겸손한 정신을 나타낼 것이다. 성결의 두려운 위엄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세처럼, 무한하신 하나님의 순결하심과 완전하심에 비하여 그들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게 된다.  

선지자 다니엘은 참된 성화의 모본이었다. 그의 긴 일생은 그의 주님을 위하여 바친 고상한 봉사로 가득 차있었다. 그는 하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단 10:11) 이었다. 그러나 이 존경받는 선지자는 자신의 순결과 성결을 주장하는 대신에 자신을 죄 많은 이스라엘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그는 다시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나이다고 하였다. 그 후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교훈을 주셨을 때에 그는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다고 하였다 (단 9:18, 15, 20,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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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도 폭풍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 42:6) 고 부르짖었다. 또 이사야는 스랍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하고 창화하는 소리를 듣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사 6:3, 5) 고 크게 외쳤다. 바울은 셋째 하늘로 이끌려가서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은 후 자기 자신을 가리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 (고후 12:2; 엡 3:8) 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사랑을 받은 요한은 그분의 영광을 보고 천사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것같이 되었다 (계 1:17 참조). 

갈바리 십자가의 그늘 밑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자고하거나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으스대는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고뇌의 원인이 자기들의 죄였다는 것을 느끼며, 그런 생각이 그들을 스스로 겸비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이 생애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악과 약점을 가장 분명히 깨닫고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날의 종교계에서 성화를 두드러지게 논의하고 있지만 자아를 높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정신과 병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성경의 종교와는 거리가 먼 상태에 놓여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성화가 순간적인 것이며 오직 믿음으로만 완전한 성결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믿기만 하면 축복은 네 것이다”고 말한다. 받는 자 편에서는 그 이상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듯이 생각한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를 부인하고 그들이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에서 해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쁨을 돌리는 일이 됨과 동시에 그분의 품성과 뜻의 표현이 되는 원칙에 조화되지 않으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품성과 뜻에 일치하는 성결을 이룰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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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투쟁도, 극기도, 세속적인 어리석음도 버리는 일을 요구하지 않는 안이한 종교를 믿고자 하는 욕망이 필경 믿음만으로 이루어진 교리, 곧 통속적인 믿음의 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사도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약 2: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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