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장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거룩한 사랑과 가장 부드러운 동정심으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유다는 다락방을 떠났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열한 제자와만 함께 계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임박한 이별을 말하려고 하셨으나 이 일을 행하기 전에 당신의 사명의 큰 목적을 지적하셨다. 그분께서 언제나 염두에 두셨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분의 기쁨은 그분의 모든 굴욕과 고통이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분은 첫째로 당신의 제자들의 생각을 이 점에 향하도록 하셨다.
그 다음 그분은 애정을 느끼게 하는 “소자들아”라는 말로써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제자들은 기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구주의 주위로 바싹 다가갔다. 그들의 스승이요 주님이시며 그들의 사랑하는 교사요 친구이신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였다. 제자들은 모든 어려움에서의 도움과, 슬픔과 실망에서의 위로를 그분에게 구하였다. 이제 그분은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제자들을 떠나려고 하셨다.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암담한 미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신 구주의 말씀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원수의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되리라는 것과 곤경으로 침울해 있는 자들에 대한 사단의 술책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을 예수께서는 아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이는 것”에서 떠나 “보이지 않는 것”(고후 4:18)으로 향하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을 세상의 유랑에서 하늘 본향으로 돌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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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도 알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을 위하여 나는 이 세상에 왔다. 나는 너희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 내가 떠날지라도 여전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리라.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내 자신을 너희들에게 나타내어 너희들로 믿게 하려고 함이었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아버지와 협력하려고 아버지께로 간다. 그리스도께서 떠나시는 목적은 제자들이 염려하는 바와 정반대였다. 이것은 최후의 이별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처소를 준비하려고 떠나고자 하셨으며, 다시 오셔서 그들을 당신에게로 영접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큰 저택들을 짓고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거룩한 모습을 따라 품성을 건설해야만 하였다.
아직도 제자들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항상 의심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도마가 말하였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하늘에 가는 데는 많은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사람이 자기 나름의 길을 택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선포되었던 첫 복음이 에덴에서 전해진 이래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 높이 들리셨다. 그분은 아담이 살던 때, 곧 아벨이 구속주의 보혈을 대표하는 죽임을 당한 양의 피를 하나님께 드리던 때에도 길이셨다. 그리스도는 부조들과 선지자들이 구원을 얻은 그 길이었다. 그분은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길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빌립이 부르짖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그가 둔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께서는 근심스럽게 놀라면서 물으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통하여 그분께서 하시는 일에서 그대가 아버지를 보지 못하였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아버지를 증거하려고 왔다는 사실을 너는 믿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되셨을 때에라도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일을 그치지 않으셨다. 비록 그분이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을지라도 신성은 여전히 그분의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만이 인간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실 수 있었으므로, 제자들은 삼 년 동안이나 그 나타남을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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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그들의 신앙은 아무도 스스로 하지 못하였고 할 수도 없는 일들, 곧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에 나타난 증거 위에 토대를 든든히 놓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그분의 신성을 증거한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나타나셨다.
만일 제자들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이 밀접한 관계를 믿었다면 멸망하는 세상을 구원하려고 고통과 죽음을 당하시는 그리스도를 볼 때에 그들의 신앙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낮은 신앙 상태에서 당신이 육체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심을 참으로 깨달았을 때에 얻게 될 경험으로 인도하려고 노력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이 그들의 믿음이 점점 하나님께로 이끌리어 거기에 닻을 내리게 되는 것을 보기를 바라셨다. 인정 깊으신 우리 구주께서는 얼마 안 있어 그들을 엄습하게 될 시련의 폭풍우에 대비할 수 있도록 당신의 제자들을 준비시키려고 얼마나 열심히 또 끈기 있게 노력하셨던가! 그분은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지기를 원하셨다.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그리스도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그들이 그분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을 때에 그 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엄숙한 두려움을 느꼈다. 저희 마음은 더욱 결정적으로 예수께 이끌렸으며, 그들이 더 큰사랑으로 그리스도께 이끌릴 때 상호간에도 가깝게 되었다. 그들은 하늘이 아주 가깝다는 것과 그들이 듣고 있는 말씀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기별임을 깨달았다.
그리스도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구주께서는 무슨 목적으로 당신의 신성이 인성과 연합되었는가에 관하여 당신의 제자들이 이해하기를 심히 갈망하셨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 그 회복시키는 능력으로 인류를 향상시키시고자 함이었다. 예수께서 저들 가운데 나타나시도록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나타내지셨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당신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가질 수 없는 어떤 특성을 나타내거나 어떤 능력을 행사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완전한 인성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 복종한다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으로 제자들의 사업이 당신께서 하신 사업보다 더 고귀한 것이 아니라 범위가 더욱 커지리라는 것을 의미하셨다. 그분은 단순히 이적을 행하는 일뿐 아니라 성령의 역사 아래 일어날 모든 일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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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그분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깨달았다. 그리스도의 못 박힘과 부활과 승천의 광경들이 제자들에게는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들은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였고,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그 교훈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 거룩하신 교사가 바로 그분께서 그로라 하신 분임을 알았다. 제자들이 그들의 경험을 말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높일 때에 사람들의 마음은 풀리고 부드럽게 되어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믿었다.
구주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은 시대의 종말에 처한 당신의 교회에게 하신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속하는 당신의 놀라운 계획이 다만 보잘것없는 결과만을 성취하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하실 수 있다고 믿고 일을 하기 위하여 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약속의 성취를 확실히 깨달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선언하신다.
아직도 제자들이 구주의 무한한 재원(財源)과 능력을 알지 못할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요 16:24)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성공의 비결은 당신의 이름으로 힘과 은혜를 구하는 데 있다고 설명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간청하려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영혼을 대신하여 마치 자기 자신의 소망인 것처럼 겸손한 탄원자의 기도를 드리신다. 모든 성실한 기도는 하늘에서 듣는다. 비록 기도가 유창하게 표현되지 않을지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왔다면, 그것은 예수께서 봉사하시는 지성소에 올라갈 것이며 예수께서는 서투르거나 더듬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완전한 그분 자신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향과 함께 이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실 것이다.
신실과 성실의 길은 장애물이 없는 길이 아니요 기도가 필요함을 알게 되는 매우 어려운 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으며, 그 능력의 근원은 가장 연약한 인간에게도 열려 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그들을 위하여 치르신 희생의 가치를 통해서만 그들은 주님이 보시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끼쳐 주신 의로 말미암아 그들은 귀중하게 헤아림을 받는다. 그리스도를 인하여 주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용서하신다. 그분은 그들에게서 죄인의 비루함을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믿는 당신의 아들을 닮은 모습이 그들 안에 있음을 인정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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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낮게 평가할 때에 실망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이 당신이 그들에게 매기신 값에 의하여 자신들을 평가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원하셨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분은 그들을 구속하려고 그처럼 값비싼 심부름으로 당신의 아들을 보내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분은 그들을 쓰실 데가 있으시며, 그들이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려고 당신에게 가장 큰 요구를 할 때에 매우 기뻐하신다. 만일 그들이 그분의 약속들을 믿는다면 그들은 큰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품성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정신을 나타내며 그분의 사업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주의 약속은 조건 하에 주어졌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사람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지 않고 죄로부터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순종함으로 그들의 사랑을 나타낼 것이다.
모든 참된 순종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것은 마음이다. 만일 우리가 동의하면 그분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시고 우리의 사상과 목적을 당신의 뜻과 일치하도록 융합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에게 순종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받은 자극을 실행하는 데 불과하게 될 것이다. 세련되고 성화된 의지는 그분의 일을 봉사하는 데서 최고의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그분을 알게 될 때에 우리의 생애는 계속적인 순종의 생애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품성을 존중하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우리들은 죄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시고 율법대로 생애하신 것처럼, 우리도 능력을 얻기 위하여 강하신 자(그리스도)를 붙든다면 그분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지 말 것이며 무엇을 해야 될는지 우리에게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권고에 의지할 수 없다. 주께서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실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우리의 의무를 가르치실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간다면 그분의 비밀을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해 주실 것이다. 주께서 에녹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와 교통하려고 가까이 오시는 때에 우리 마음은 우리 속에서 때때로 불타게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든지 하나님께 욕 돌리지 않기로 결정하는 자들은 그들의 실정을 하나님 앞에 아뢸 때 바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지혜뿐만 아니라 능력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순종과 봉사에 필요한 능력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한 “모든 것”은 인간의 머리요 대표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기 전에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완전한 선물, 즉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은혜의 무한한 근원이 될 선물을 주려고 노력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6~18)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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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성령께서는 세상에 계셨으며 구속 사업이 시작된 바로 그 때부터 그분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오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동안 제자들은 다른 조력자를 바라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지 않게 되자 비로소 제자들은 성령의 필요를 느끼게 되고 그때에 성령께서는 오실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대표자이시나 인간적인 개체로 계시지 않으며 따라서 자주(自主)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의 제약 때문에 모든 장소마다 친히 계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서 당신의 지상의 후계자로 성령을 보내시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이었다. 그렇게 되면 장소 때문에 또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접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익을 얻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구주께서는 성령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실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승천하지 않으신 것보다 그들에게 더 가까이 계실 것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의 장래를 아셨다. 어떤 이는 목베임을 당하고 어떤 이는 십자가에 달리며 어떤 이는 바다의 고독한 바위섬으로 유배당하고 다른 이들은 박해와 죽음을 당할 것을 보셨다. 그분은 시련을 당할 때마다 그들과 같이 하시겠다는 약속으로 그들을 격려하셨다. 이 약속은 하나도 그 효력을 상실하지 않았다. 주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감옥에 갇혀 있거나 혹은 고독한 섬에 추방당한 당신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모두 알고 계신다. 그분은 친히 당신의 임재로써 그들을 위로하신다. 진리를 위하여 신자가 불의한 법정에 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옆에 서신다. 그가 당하는 모든 비난을 그리스도께서 당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대신 거듭 정죄를 받으신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감금될 때에 당신의 사랑으로 그 마음을 아주 기쁘게 하신다. 당신을 위하여 어떤 사람이 죽임을 당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계 1:18)라. 나를 위하여 희생한 생명은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보존된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모든 슬픔과 고통 중에서나 앞길이 캄캄하고 장래가 암담하게 보일 때에 또한 우리가 무기력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에 믿음의 기도의 응답으로써 보혜사가 보내지실 것이다. 상황들은 우리를 지상의 모든 친구로부터 분리시킬는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도 어떤 먼 거리도 우리들을 하늘의 보혜사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그분은 우리를 지지하고 붙들고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의 오른편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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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아직도 그들의 영적 지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당신의 말씀의 뜻을 설명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겠다고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리라. 그대는 더 이상 나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유리를 통하여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엡 3:18, 19)을 것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업을 증거해야만 하였다. 그들의 말을 통하여 주께서 지상에 사는 모든 백성들에게 말씀하셔야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굴욕과 죽음을 통해 제자들은 큰 시련과 실망을 맛보아야 하였다. 이 경험 후에야 그들의 말은 정확하게 될 것이었으니 이는 예수께서 약속하기를 보혜사가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 진리의 광범위한 영역을 펼쳐 보이셨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유전이나 금언과는 다른 예수님의 교훈을 지킨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랍비들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음성과 같이 받아들이도록 교육을 받아 왔으며 이것은 아직도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능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들의 정서를 형성시켰다. 세속적 생각과 현세의 사물이 아직도 그들의 생각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자주 설명하셨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영적 성질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혼란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성경 말씀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분의 교훈의 대부분이 그들에게 거의 잃어버려진 것처럼 보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말씀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분은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이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자비롭게 약속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말씀하지 않으신 채 남겨 두셨다. 이것들 역시 성령께서 그들에게 알려 주실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하늘의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이해를 촉진시킬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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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불린다. 보혜사의 일은 진리를 밝히고 보존하는 것이다. 그분은 먼저 진리의 성령으로 마음 가운데 거하시며 그리하여 보혜사가 되신다. 진리 가운데는 위안과 평화가 있으나 거짓 속에서는 참된 평화와 위안을 찾을 수가 없다. 거짓 교리와 유전을 통하여 사단은 마음을 지배하는 세력을 얻는다. 그는 사람들을 거짓 표준으로 인도함으로 품성을 일그러지게 한다.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말씀하시며 진리를 심령에 깊이 새기신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잘못을 드러내고 심령에서 그것을 내쫓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다.
성령의 직무를 제자들에게 묘사하면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흥겹게 한 기쁨과 희망을 그들에게 고취시키려고 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준비하신 많은 도움을 인하여 기뻐하셨다. 성령은 예수께서 당신의 백성을 높이기 위하여 아버지께 간청할 수 있는 모든 선물 중에 가장 고상한 선물이었다. 성령은 갱생시키는 주선자로서 주어져야 하였으므로 이분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은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었다. 악의 세력은 여러 세기 동안 강해졌으며, 이 사단의 속박에 사람들이 복종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죄는 신성의 제 삼위의 강력한 작용을 통하여만 물리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으며, 그분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가운데 오실 것이었다. 세상의 구주께서 이루신 일을 효력 있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은 마음을 순결하게 만드신다. 성령을 통하여 신자는 거룩한 품성을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유전적이며 배양된 악의 성향들을 이기며 자신의 품성을 당신의 교회에 새기는 거룩한 능력으로서 성령을 주셨다.
성령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다. 구주께서 당신의 사랑을 표명하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려고 오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당신의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심으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셔야 하였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에게 재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예, 곧 그리스도의 명예는 당신의 백성의 품성을 온전케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진리의 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의 계속적인 임재와 도움이 없이는 말씀의 전파가 전혀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분이야 말로 거룩한 진리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유일한 교사이시다. 진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함께할 때에만 양심을 일깨우거나 생애를 변화시킬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명령들과 약속들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진리를 깊이 감명시키지 않으면 반석 위에 떨어져 깨어질 영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교육이나 유리한 지위가 아무리 위대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성령과 협력함이 없이는 아무도 빛의 통로가 될 수 없다. 씨가 하늘의 이슬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약동하기 전에는 복음의 씨뿌림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성령께서 기도하던 사도들에게 임하신 것은 신약 성경 어느 한 책도 기록되기 전이었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어느 한 복음 설교도 설교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원수의 증언은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행 5:28)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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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성령의 선물을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은 처음 제자들에게 해당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나 모든 다른 약속들처럼 이 약속도 조건 하에 주어진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주장한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성령에 관하여 말하지만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거룩한 능력의 지도와 제재를 받도록 영혼을 복종시키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령을 사용할 수 없다.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야 한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안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빌 2:13) 하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여기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주장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저희가 하늘의 선물을 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오직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은혜와 지도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만 성령을 주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의 요청과 수용을 기다린다. 믿음으로 요청하는 이 약속된 축복은 그에 따르는 다른 모든 축복들을 가져온다. 이 축복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하심을 따라 주시는 것이며 또한 그분은 받을 수 있는 역량대로 각 영혼에게 공급하려고 준비하고 계신다.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실 때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고통과 죽음에 대하여 아무런 슬픈 빛도 보이지 않으셨다.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그분의 유산은 평화의 유산이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다락방을 떠나시기 전 구주께서는 찬양의 노래로 그분의 제자들을 인도하셨다. 그분의 음성은 어떤 비통한 만가(輓歌)의 곡조가 아니요 다음과 같은 유월절 찬송의 즐거운 곡조였다.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할지어다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할렐루야” (시 1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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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를 부른 후에 그들은 밖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혼잡한 거리를 지나 성문을 통과한 후 감람산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으며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들이 동산을 향하여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예수께서는 가장 깊은 슬픔에 잠기신 목소리로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마 26:31)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슬픔과 놀라움으로 이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버리고 돌아갔던가를 기억하였다. 그러나 그 때 열두 제자들은 자신들이 불충실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그의 형제들을 대표하여 말하면서 베드로는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충성심을 선언하였다. 그 때에 구주께서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고 말씀하셨다. 다락방에서 예수께서는 열둘 중의 한 제자가 당신을 배반할 것과 베드로가 또한 당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 그분의 말씀은 그들 모두를 포함한다.
이제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격렬히 항의하는 베드로의 음성이 들린다. 다락방에서 그는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미 그가 바로 그 밤에 자기의 구주를 부인할 것이라고 그에게 경고하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그 경고를 반복하신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나 베드로는 다만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막 14:29, 30, 31) 하고 모든 제자들도 이와 같이 말하였다. 그들은 자기 과신에 빠져 그들을 아시는 그분의 반복된 말씀을 부인하였다. 그들은 시험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으며 시험이 그들을 덮칠 때에 자신들의 연약함을 깨달을 것이었다.
베드로가 옥이나 죽는 데까지도 주를 따르겠다고 말했을 때 그 모든 말을 진심으로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상황의 부추김으로 생애 속에 나타난 악의 요소들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가 자신의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은 그의 영원한 파멸을 입증할 것이다. 구주께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까지라도 억눌러 버릴 이기주의와 철면피함이 베드로에게 있는 것을 보셨다. 많은 결점, 억제하지 못하는 죄, 주의성 없는 정신, 성화되지 못한 성질, 시험에 뛰어드는 부주의성 등이 그의 생애 가운데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엄숙한 경고는 마음을 살피라는 일종의 요구였다. 베드로는 자신을 불신임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더욱 깊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베드로가 겸손히 경고를 받아들였다면 그는 양무리의 목자에게 당신의 양을 지키시도록 간청했을 것이다. 갈릴리 바다에서 그가 빠지려고 할 때에 그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 14:30) 하고 부르짖었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손을 내밀어 그를 붙들어 주셨다. 그와 같이 만일 그가 진심으로 나를 나 자신에게서 구원하소서라고 예수께 부르짖었다면 그는 보호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불신임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그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벌써 마음이 상해 더욱더 자신을 고집스럽게 과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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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바라보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시련에서 구원할 수 없었으나 그들을 고독하게 버려두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무덤의 속박을 깨칠 것이며 그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약해지지 않으리라고 그들에게 약속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 26:32)고 말씀하셨다. 주를 부인하기 전에 그들은 용서의 보증을 받았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 후에 그들은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그리스도에게 소중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겟세마네로 가는 도중에 감람산 기슭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예수께서 가끔 묵상하고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찾아오셨던 한적한 곳이었다. 구주께서는 세상에 대한 당신의 사명과 제자들이 유지해야 할 당신과의 영적 관계를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계셨다. 이제 그분은 예증을 통하여 교훈을 설명하신다. 달이 밝게 비치어 한 무성한 포도나무를 그리스도 앞에 보여 준다. 제자들의 주의를 이 포도나무에 집중시키면서 예수께서는 이것을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신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우아한 종려나무나 높이 자란 백향목이나 강한 참나무를 선택하는 대신에 예수께서는 덩굴이 달려 있는 포도나무를 취하여 자신을 나타내신다. 종려나무 백향목 참나무는 홀로 서 있다. 이 나무들은 아무런 지주(支柱)도 필요 없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시렁을 감고 하늘을 향하여 올라간다. 그와 같이 인성을 쓰신 그리스도는 거룩한 능력에 의지하셨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고 그리스도께서는 선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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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포도나무요.” 유대인들은 항상 포도나무를 가장 고상한 식물이며 힘 있고 뛰어나며 열매 잘 맺는 모든 것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심으신 포도나무로 대표되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원의 희망을 그들이 이스라엘과 연결된 사실에 근거를 두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과 연결되었다고 해서 너희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분의 약속의 상속자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나를 통하여서만 영적 생명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팔레스틴 언덕에 이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그분은 친히 농부가 되셨다. 많은 사람들이 이 포도나무의 아름다움에 이끌리어 이것은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는 이것이 마른 땅에서 솟아난 뿌리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 나무를 꺾어서 상처를 입히고 그들의 거룩하지 못한 발로 짓밟았다. 그들의 생각은 이것을 영원히 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의 농부께서는 그분의 나무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이 저희가 이를 죽였다고 생각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취하여 성벽 다른 편에 다시 심으셨다. 포도나무 그루터기가 더이상 보이지 않아야 하였다. 이것은 사람들의 난폭한 공격을 피해 감추어졌다. 그러나 포도나무의 가지들은 성벽 위에 걸렸다. 이것들은 포도나무를 대표해야 할 것이었다. 그 가지들을 통하여 접붙이는 가지는 여전히 그 포도나무에 연결될 수 있었다. 그것들로부터 열매를 얻었다. 거기에는 통행인들이 따먹을 수확이 있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예수께서 그들을 떠나가려고 하셨지만 그들과 그분과의 영적 연합은 변함이 없을 것이었다. 그분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된 것은 너희가 나에게서 지지를 받아야 할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가지는 산 포도나무에 접붙여지되 섬유질과 섬유질이, 잎과 잎이 연결되어 포도나무 줄기로 자란다. 포도나무의 생명은 그 가지의 생명이 된다. 그와 같이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이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다.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믿음으로써 연합은 이루어진다. 죄인이 그의 결점을 그리스도의 장점에, 그의 텅 빈 것을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그의 연약함을 그리스도의 항구적인 능력에 연합시킨다. 그 때에 그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의 인성에 감응되며 우리의 인성이 신성에 감응된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은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인간은 사랑받으신 분인 예수 안에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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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이루어진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연한 접촉이거나 또는 분리와 연결이 무상한 그런 결합이 아니다. 가지가 산 포도나무의 한 부분이 된다. 뿌리에서 가지로 생명과 힘과 과실의 풍성함을 전달하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포도나무에 붙지 않은 가지는 살 수 없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에게서 받은 생명은 계속적인 교통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내가 없으면 너희는 단 하나의 죄도 이길 수 없고 조그마한 유혹이라도 물리칠 수 없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성령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여 그분의 봉사 사업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생애를 의미한다. 교통의 통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계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서 수액(樹液)을 계속적으로 빨아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께 매달려서 믿음으로 능력과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을 받아야 한다.
뿌리는 가지를 통하여 가장 먼 잔가지에 이르기까지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들에게 영적 능력의 흐름을 전달하신다. 영혼이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는 한, 시들어 버리거나 부패할 위험은 없다.
포도나무의 생명은 가지에 달린 향기로운 열매 가운데 명백히 나타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에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생애 가운데 나타날 것이며 한 사람도 잃어버림을 당치 않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접붙인 가지가 외형으로는 포도나무와 연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적인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라지도, 열매를 맺지도 못할 것이다. 그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참된 연합 없이 그리스도와의 외형적인 연결이 있을 수도 있다. 신앙 고백이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지만 그러나 품성과 행동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어 있는지 어떤지 보일 것이다. 과실을 맺지 않으면 그들은 거짓 가지들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는 것은 죽은 가지가 예증하는 것처럼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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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예수님을 따라 다닌 선택받은 열두 제자로부터 한 제자는 시든 가지로서 곧 찍어 버림을 당할 것이었으며 나머지 제자들은 전정하는 칼의 쓰라린 시련을 통과해야만 하였다. 예수께서는 엄숙하고도 친절하게 농부의 의도를 설명하셨다. 가지를 치는 일은 고통을 유발할 것이지만 칼을 대시는 분은 아버지시다. 아버지께서는 난폭한 손으로나 무관심한 마음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땅에 늘어지는 가지들이 있다. 이것들은 덩굴이 땅의 지주에 붙지 않도록 잘라 버려야 한다. 그것들은 하늘로 뻗어 나아가야 하며 그들의 지주를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 과실로 가야할 생명의 수액을 빨아들이는 과도한 잎들은 잘라 버려야 한다. 의의 태양의 치료하는 광선이 활동 공간을 넓혀주기 위해 웃자란 것들은 잘려야 한다. 농부는 과실이 알차고 더욱 많이 열리도록 하기 위하여 해롭게 자란 가지는 잘라 버린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통하여 당신의 품성의 거룩함과 자비와 동정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추종자들 속에 거하신다. 이것이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표현된 그와 같은 생명의 연합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그대들은 포도나무의 생명을 받는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마 4:4) 살 것이다. 그대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분 안에서처럼 동일한 열매를 생산한다.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에게 부착되어 그리스도의 지원을 받으며 그리스도에게서 영양분을 흡수한다면 그대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의 이 마지막 회합에서 나타내신 큰 소망은 그분이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여러 번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다.” 다락방에서 제자들과만 같이 계실 때에 예수님의 처음 명령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계명이 제자들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새로운 이념과 충동이 그들을 지배하여야 하였으며 새로운 원칙이 그들로 말미암아 실행되어야 하였으며 그분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그들이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사실을 예수께서는 아셨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의 빛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가졌다. 은혜의 온 사업은 사랑과 극기와 자아 희생적인 노력의 계속적인 봉사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머무르신 매 시간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억제할 수 없는 물결로 그분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신의 성령의 감화를 받는 자들은 모두 그분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움직이게 한 모든 원칙이 그들 상호간의 관계에서 그들을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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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은 저희의 제자된 증거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힘이나 사리(私利)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 결합할 때 그들은 모든 인간의 영향력을 능가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일치가 존재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속에서 회복되고 있으며 생애의 새로운 원칙이 심어졌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거룩한 본성 가운데 악의 초자연적인 작용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타고난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이기심을 정복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교회에 나타난 이 사랑이야말로 사단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쉬운 길을 설계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복음은 반대와 위험과 손실과 고통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투쟁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하는 자들은 다만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 불과하다.
세상의 구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계속적으로 외형상의 실패에 직면하셨다. 자비의 사자로 이 세상에 오신 그분은 당신이 향상시키고 구원하는 일에서 하고자 갈망한 일을 거의 하시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사단의 세력은 그분의 길을 방해하려고 계속적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낙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그분은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라고 선언하신다. 다음에 기록된 말씀은 그리스도께 주어진 약속이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사 49:4, 5,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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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이 말씀에 의지하셨으며, 유리한 것은 하나도 사단에게 주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굴욕의 마지막 발걸음을 옮겨 놓으셔야 했을 때, 곧 가장 깊은 슬픔이 그분의 영혼을 둘러쌌을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느니라.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 14:30, 16:11, 12:31). 이제 예언적 안목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큰 투쟁에서 벌어질 광경들을 훑어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을 때에 온 하늘이 개가를 부를 것을 아셨다. 그분의 귀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과 하늘 조정에서 들려오는 승리의 함성이 들렸다. 그분은 그 때에 사단의 제국의 멸망을 고하는 조종이 울릴 것이며, 그리스도의 이름이 온 우주를 통하여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선포될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그들이 요청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음을 기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전능하신 섭리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주어졌음을 알고 확신 있게 말씀하셨다. 성령의 전능으로 무장한 진리가 악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을 것이며 피묻은 깃발이 당신의 추종자들 위에 의기양양하게 휘날리게 될 것을 예수께서는 아셨다. 당신이 신뢰하는 제자들의 생애가 그분의 생애와 같이 중단되지 않는 승리의 연속이 될 것인데 비록 현세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위대한 내세에서는 그렇게 인정되리라는 사실을 그분은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하거나 낙망하지 않으셨는데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그와 같은 인내성 있는 믿음을 나타내야 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하며 그분이 일하신 것처럼 일하여야 한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위대하신 주장(主將)으로 의지하는 까닭이다. 그들은 용기와 힘과 인내를 가져야 한다. 분명히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는 것들이 저희 길을 막을지라도 그들은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전진해야 한다. 그들은 어려움을 슬퍼하는 대신에 극복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들은 어떤 일에도 실망하지 말고 범사에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비길 데 없는 사랑의 금사슬로 그들을 하나님의 보좌에 붙들어 매셨다. 모든 능력의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우주에서 가장 높은 감화가 그들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다. 그들은 악을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세상이나 죽음이나 지옥이라도 정복할 수 없는 능력,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그들을 승리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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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질서, 하늘 정부의 계획, 하늘의 거룩한 조화가 지상에 있는 당신의 교회에서 나타나게 되기를 계획하신다. 이렇게 하여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 그분은 영광을 받으신다. 그들을 통하여 의의 태양은 광명한 광채를 세상에 비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구속하고 사신 사람들에게서 큰 영광의 소득을 얻기 위하여 당신의 교회에 막대한 편의를 제공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그분 자신의 충분한 역량을 나타낼 수 있도록 능력과 축복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내려 주셨다. 그리스도의 의를 부여받은 교회는 그분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이라는 보화가 완전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나게 될 그분의 보고(寶庫)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당신의 영광을 보충하는 순결과 완전함을 입은 백성들을 당신의 굴욕에 대한 보상으로 바라보신다. 그리스도, 그분은 모든 영광을 발산하는 대중심이시다.
힘 있고 희망에 가득 찬 말씀으로 구주께서는 교훈을 마치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 가운데서 영혼의 괴로움을 토로하셨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시고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하도록 주어진 사업을 마치셨다. 그분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분의 사업을 계승할 자들을 모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와 같이 신적인 권위를 지닌 자의 언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선택된 교회를 아버지의 팔에 위탁하셨다. 성별된 대제사장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중재하신다. 충실한 목자로서 그분은 강하고도 확실한 피난처로, 곧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로 당신의 양무리를 모으신다. 그분에게는 사단과의 마지막 투쟁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분은 이 투쟁을 맞으려고 나아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