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37장 – 최초의 복음전도자들

37장 최초의 복음전도자들

제자들은 예수님의 한 가족이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갈릴리 온 지방을 도보로 여행하실 때 그분을 수행하였다. 그들은 닥쳐오는 고생과 곤란을 예수와 함께 견뎠다. 그들은 그분의 설교를 들었으며 하나님의 아들과 동행하며 이야기하였고 그분의 일상의 교훈에서 인류의 향상을 위하여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배웠다. 예수께서 당신의 주위에 모인 매우 많은 무리들을 위하여 봉사하실 때에 제자들은 시중을 들었으며, 그분의 분부를 행하고 그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하여 힘썼다. 그들은 사람들을 정돈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주께로 데려오며 모든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 일을 도왔다. 그들은 청중 가운데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성경을 풀이해 주었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일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에 관하여 배운 바를 가르쳤으며 날마다 풍부한 경험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홀로 일하는 경험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아직도 많은 교훈과 큰 인내와 친절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이제 그분께서는 친히 제자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그릇됨을 지적하고, 그들을 권면하고 바로잡는 동시에 그들을 당신의 대리자로서 파견하셨다.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있었을 때에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에 종종 당황하였으나 그들은 저희의 어려움을 예수께 가져갔다. 그분께서는 유전과는 현저히 다른 성경의 진리를 그들 앞에 제시하셨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굳게 하고 랍비들에 대한 두려움과 인습의 속박에서 그들을 매우 자유롭게 해주셨다. 구주의 생애의 모본은 제자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단순한 교리적인 교훈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그들이 그분에게서 떠나게 되었을 때에 모든 표정과 음성 그리고 말씨가 저들에게 되살아났다. 그들은 복음의 대적들과 싸울 때마다 그분의 말씀을 반복하였고, 사람들에게 끼친 저희의 감화를 보았을 때는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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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당신 주위로 부르고 둘씩둘씩 짝을 지어 도시와 마을로 두루 다니라고 명령하셨다. 아무도 혼자 나아가지 않았으며 형제는 형제와 연합하고 친구는 친구끼리 짝을 지었다. 이와 같이 하여 그들은 함께 권면하고 기도하며 서로의 약점을 보충함으로 피차에 돕고 격려할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이와 같은 모양으로 후에 칠십 인을 내보내셨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연합시키는 것이 구주께서 목적하시는 바였다. 오늘날 우리가 이 모본을 더욱 엄밀히 따른다면 전도 사업은 훨씬 더 성공을 거둘 것이다.

제자들의 기별은 침례 요한과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포하신 “천국이 가까웠”다는 기별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께서 메시야이신지에 대하여 사람들과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께서 행하신 것과 같은 자비를 베푸는 일을 행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명하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公生涯) 동안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보다 병든 자를 고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바치셨다. 그분의 이적은 그분께서 멸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당신의 말씀이 진실임을 증거하였다. 그분의 의가 그분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분의 뒤에서 호위하였다. 그분께서 가시는 곳마다 그분의 자비의 소식이 앞장섰다. 그분께서 지나가신 곳에서는 동정을 받은 자들이 건강함으로 기뻐하고 새로 찾은 능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군중들은 주께서 행하신 이적을 직접 듣기 위하여 그들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분의 음성은 많은 사람들이 들은 최초의 소리였으며, 그분의 이름은 그들이 발한 최초의 말이었으며, 그분의 얼굴은 그들이 본 최초의 얼굴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분께서 성읍과 동네들을 지나실 때에 그분은 생명과 기쁨을 발산하는 생명의 조류와 같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분께서 하신 것처럼 일해야 한다. 우리는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며 고통받는 자와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해야 한다. 우리는 절망하는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소망을 고취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사 58:8)라는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 이기심 없는 봉사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악인을 개심시키는 데 있어서 칼이나 법정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다. 칼이나 법정은 법을 어기는 자를 공포에 떨게 하는 데 필요하지만 사랑의 선교사는 이 이상의 것을 행할 수 있다. 흔히 마음은 책망을 받게 되면 강퍅하게 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아래서는 녹을 것이다. 선교사는 비단 육체적인 질병을 낫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죄인을 죄의 문둥병에서 정결하게 하실 수 있는 크신 의원께로 인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병든 자와 불행한 자와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이 당신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런 보혜사로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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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전도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은 오로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야 할 것이었다. 그들이 만일 그 즉시로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면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저들의 감화를 상실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편견을 격발시킴으로써 그들은 활동 시초부터 그들을 낙담시켰을 논쟁에 휘말려 들었을 것이다. 사도들까지도 복음이 모든 나라에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디 깨달았다. 그들 자신이 이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활동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만일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인들에게 보내는 기별자들로 삼으실 계획이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복음을 제일 먼저 들어야 했다.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신 모든 지방에는 자신들의 필요를 깨닫고 진리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 갈급한 심령들에게 주님의 사랑의 소식을 보낼 시기가 이르렀다. 제자들은 그분의 대표자로서 이런 모든 사람들에게 나갈 것이었다. 이리하여 신자들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교사로 우러러보게 될 것이므로 구주께서 그들을 떠나시게 된다고 하여도 신자들이 교사가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 최초의 전도 여행에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미 그들보다 앞서 가셔서 친구들을 사귀어 놓으신 곳에만 갈 것이었다. 그들의 여장(旅裝)은 가장 단순하게 차릴 것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그 큰 사업에서 돌이키게 하거나 어떤 모양으로든지 반대를 일으켜서 더 큰 활동의 문호를 막아 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종교 교사들의 옷을 입거나 미천한 농부들과 구별되는 어떤 옷차림도 하지 말아야 하였다. 그들은 회당에 들어가서 공중 예배를 보기 위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을 것이 아니라 집집 방문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었다. 그들은 불필요한 인사나 집집을 다니면서 대접을 받는 일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러나 각처에서 그들은 유력한 자와 또는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자들에게서 마치 그리스도 자신을 환대하는 것과 같은 친절한 대우를 받을 것이었다. 그들은 인가에 들어갈 때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눅 10:5)라는 아름다운 인사를 할 것이었다. 그 집은 그들의 기도와 찬미와 가족끼리의 성경 연구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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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자들은 진리의 선포자로서 주께서 오시는 길을 예비할 것이었다. 그들이 전해야 했던 기별은 영생의 말씀이었으며 사람들의 운명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느냐 혹은 거절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 기별의 엄숙함을 사람들에게 감명시키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분부하셨다.

이제 구주의 눈은 미래를 꿰뚫어 보신다. 그는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이 당신을 위한 증인이 되어야 할 더욱 넓은 선교지를 보신다. 그분의 예언적 눈은 당신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의 종들이 당할 경험을 보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저희가 만날 투쟁을 보여 주신다. 그분은 그 싸움의 성격과 계획을 보여 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당할 위험과 필요한 극기를 그들 앞에 공개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원수에게 습격을 당하지 않도록 치러야 할 희생을 계산하기를 원하신다. 그들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엡 6:12)한 것이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세력과 싸울 것이나 초자연적인 도움이 보증되어 있다. 하늘의 모든 천사들이 이 군대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천사들보다 더 능력 있으신 분들이 이 대열에 참가하신다. 주의 군대 장관의 대리자인 성령께서 이 싸움을 지도하기 위하여 강림하신다. 우리의 허물이 많고 죄와 실수가 중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통회하는 마음으로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전능자의 능력이 하나님께 의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가세(加勢)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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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의 말씀은 하나도 감추지 않으셨지만 항상 그것을 사랑으로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사람들과 교제하실 때에 최고의 재치와 사려와 친절한 관심을 활용하셨다. 그분께서는 무례하거나 쓸데없이 가혹한 말을 하거나 민감한 자에게 공연한 고통을 준 일이 전혀 없으셨다. 그분은 인간의 약점을 비난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위선과 불신과 죄악을 두려움 없이 견책하셨으나 통렬한 책망을 하시는 그분의 음성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그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자기를 영접하기를 거절한 사랑하던 성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다. 그들은 구주이신 그분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보셨으며 너무나 슬퍼서 그분의 가슴은 에는 듯하였다. 영혼 하나하나가 그분의 눈에는 귀중하게 보였다. 그분께서는 항상 하늘의 위엄을 지니는 동시에 가장 친절한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가족의 각 사람을 굽어보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서 타락한 영혼을 보셨는데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타고난 마음의 지시대로 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도발을 받을 때 자아가 일어나서,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드는 식물을 소생시키는 이슬이나 가랑비와 같지 않은 말을 격류처럼 쏟아 놓지 않도록 하나님과 밀접한 교통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단은 그들이 바로 이렇게 행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그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분노하고 있는 것은 용이다. 즉 분노와 비난 가운데 나타나는 것은 사단의 정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의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늘에서 통용되는 것 곧 당신의 형상과 특징을 지닌 진리만을 다루기를 원하신다. 그들이 악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은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들의 능력이다. 그들은 그들의 눈을 그리스도의 인자하심에 고정시켜야 한다. 그 때에야 그들은 하늘의 재치와 온유함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리고 도발을 받을 때 온유함을 지속하는 정신은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그 어떤 논리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진리를 옹호할 것이다.

진리의 원수들과 논쟁하게 되는 자들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단과 그 대리자들과도 맞설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눅 10:3)라고 하신 구주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하라. 비록 사람들의 학대를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쉬도록 하라. 그러면 그들의 마음은 평온함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주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갑옷을 입혀 주실 것이다. 그분의 성령께서는 그들의 음성이 늑대의 부르짖는 소리를 발하지 않도록 심령에 감화를 끼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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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계속하여 교훈하면서 “사람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여 그들에게 계획을 공개하지 말 것이었다. 이는 사단의 대리자들을 유리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고안이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때가 자주 있다. 주의 성전을 짓는 자들은 산에서 보이신 모형 곧 하늘의 모양을 따라 지을 것이다. 그분의 종들이 성령의 지도를 받지 않는 자들의 의견에 의지할 때에 하나님은 수치를 당하시고 복음은 배신을 당한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리석다. 세상의 지혜에 의뢰하는 자들은 분명히 과오를 범할 것이다.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마 10:17, 18). 박해는 빛을 확산시킬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이 박해가 아니었다면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하였을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 앞에 끌려 나갈 것이다. 진리가 이 사람들에게 오전(誤傳)되어 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신앙에 관해서 거짓된 비난을 들어왔다. 때때로 그들이 진리의 참 성격을 배우는 유일한 수단은 저희의 신앙의 연고로 심문을 당하는 자들의 증언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심문에 대답하라는 요구를 받고 재판관들은 증언에 귀를 기울인다. 그 위기에 대처하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의 종들에게 공급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종의 마음을 조명(照明)하실 때 진리는 하늘의 능력과 고귀함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다. 진리를 거절하는 자들은 제자들을 비난하고 억압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자녀들은 손실과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죽게 되더라도 그들의 거룩한 모본이신 분의 온유하심을 나타낼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단의 대리자들과 그리스도의 대표자들 사이에는 대조점이 나타날 것이다. 구주께서는 관원들과 사람들 앞에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제자들은 그런 은혜가 필요될 때까지는 순교자의 용기와 꿋꿋함을 부여받지 못하였다. 그 후에 구주의 허락은 성취되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증언하였을 때에 사람들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행 4:13)았다. 스데반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람들은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하지 못하”(행 6:15, 10)였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가 가이사의 법정에서 심문을 당한 것에 대해서 기록하는 가운데 “내가 처음 변명한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버렸으나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딤후 4:16, 17)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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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종들은 심문을 받을 때에 고정된 답변을 준비하지 말 것이었다. 그들의 준비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귀중한 진리를 간직하는 중에 이루어져야 하며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기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하였다. 그들이 심문을 받을 때에 성령께서 요긴한 바로 그 진리를 기억나게 하실 것이었다.

날마다 열심히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힘쓰는 자는 심령에 힘과 능력을 얻을 것이다. 성경을 부지런히 상고함으로써 얻은 지식은 적절한 시기에 기억 속에 번개같이 떠오를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에 정통하게 되기를 등한히 하고 시련 가운데서 당신의 은혜의 능력을 전혀 시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날마다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 후에 그분을 의뢰해야 할 것이었다.

복음에 대한 증오가 너무 심하여 가장 친근한 혈육의 인연도 무시될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신의 집안 식구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죽게 될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라고 하신 다음 이렇게 부언하셨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막 13:13). 그러나 그분께서는 공연히 박해를 자초하지는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분께서도 친히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피하기 위하여 한 선교지에서 다른 곳으로 자주 옮기셨다. 나사렛에서 거절당하고, 고향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을 때에 그분은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는데, 그 곳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눅 4:32)이었다. 그러므로 그분의 종들은 박해로 말미암아 낙담할 것이 아니라 영혼 구원을 위하여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할 것이었다.

종은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 하늘의 임금이 바알세불이라 불렸으니, 그 제자들도 그런 모양으로 곡해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위험이 어떠하든지 저희 원칙을 공언하여야 한다. 그들은 감추는 일을 경멸히 여겨야 한다. 그들은 진리를 공언하는 일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얻을 때까지 맡은 바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파수꾼으로 배치되었다.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공연하게 전해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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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자신은 결코 타협으로써 화평을 사지 않으셨다. 그분의 마음은 온 인류를 위한 사랑으로 넘쳐서 흘렀지만 그분은 그들의 죄에 대해서는 결코 관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의 절친한 친구셨으므로 그들이 자신의 영혼 즉 그분께서 친히 당신의 피로 사신 영혼을 파멸시키는 행동을 좇을 때에 잠잠히 계실 수 없으셨다. 그분께서는 사람이 그 자신에 대해서 진실하고 또 보다 고상하고 영원한 관심사에 대해서도 진실되도록 힘쓰셨다. 그리스도의 종들도 그와 같은 사업에 부름을 받을 때 불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진리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화평의 일을 힘”(롬 14:19)쓸 것이다. 그러나 참된 화평은 원칙을 양보함으로써는 결코 얻어질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반대를 일으킴이 없이 원칙에 충실할 수는 없다. 신령한 그리스도교 신앙은 불순종의 자녀들의 반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하나님께 충실한 자들은 사람의 권세나 사단의 증오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영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확보된다. 그들이 두려워해야 할 오직 한 가지는 진리를 버림으로써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높이신 신임을 배반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의심으로 채우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이다. 사단은 그들이 하나님을 엄한 재판관으로 여기도록 이끈다. 사단은 그들로 죄를 범하도록 유혹한 다음, 자신들은 너무도 죄가 많아서 하늘 아버지 앞에 가까이 나가거나 그분의 동정을 받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주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궁핍하고 연약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동정하신다는 것을 보증하신다. 사람이 한숨짓고 고통을 느끼고 슬픔을 당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무위한 상태에서 침묵과 고독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천천만만의 거룩한 천사들에 둘려 계시며, 이들 모두가 다 그분의 뜻을 수행하려고 기다리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 준다. 우리가 식별해 낼 수 없는 통로를 통하여 그분께서는 당신의 지배 아래 있는 온 우주의 각 지역과 적극적인 교통을 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분의 관심과 온 하늘의 관심이 집중된 대상은 그분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하게 하신 영혼들과 이 작은 세상이다. 억압당하는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보좌에서 귀를 기울이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진실한 기도에 대하여 “내가 여기 있노라”고 응답하신다. 그분은 상심한 자와 학대받는 자들을 일으키신다. 그분은 우리가 겪는 모든 괴로움을 다 당하신다. 하나님을 받드는 천사는 모든 유혹과 시련에서 건져주기 위하여 가까이 있다.

하늘 아버지 모르게 땅에 떨어지는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증오는 그로 구주께서 보호하시는 모든 대상을 증오하게 만든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훼손시키려고 애쓰며, 말 못하는 피조물까지 파괴하기를 좋아한다. 새들이 기쁜 노래로 우리를 즐겁게 하도록 보존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참새들까지도 잊지 않으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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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그대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대를 시인할 것이다. 그대는 세상에서 나의 증인이며 나의 은혜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하여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와 같이 나도 하늘에서 그대의 대표자가 될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대의 결함 있는 품성을 보지 않고 나의 온전함으로 옷 입은 그대를 보신다. 나는 하늘의 축복을 그대에게 전하여 주는 매개체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를 위하여 바친 나의 희생에 참여함으로써 나를 시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은 자의 영광과 기쁨에 참여하는 자라는 시인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시인하고자 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거하시게 해야 한다. 자기가 받지 않은 것을 전해줄 수는 없다. 제자들은 교리를 유창하게 말하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반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온유함과 사랑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그분을 시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에 배치되는 정신은 그 공언하는 바가 어떠하든지 그분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험담을 하거나 어리석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진실되지 못하고 불친절한 말로써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있다. 생애의 의무를 회피하고 죄된 향락을 추구함으로써 그분을 부인할 수 있다. 세상을 본받음으로써, 무례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사랑함으로써, 자아를 정당화시킴으로써, 의심을 품고 부질없이 걱정을 하고 흑암 중에 거함으로써 그분을 부인할 수 있다. 이런 모든 방식으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시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구주께서는 복음에 대한 세상의 증오는 정복될 것이며 잠시 후에 반대가 그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분은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투쟁은 복음의 영향이 아니라 복음에 반대하는 결과로 생긴다. 모든 박해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박해는 가정 안에서의 알력이요 절친한 세상 친구들과의 사이가 소원(疎遠)해지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선언하신다.

그리스도의 종들의 사명은 고귀한 영예요 거룩한 위탁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베푼 친절한 행위는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분께서는 이와 같은 친절한 인정 가운데 하나님의 가족 중 가장 연약하고 천한 자들을 포함시키신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소자 중 하나 ­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그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녀가 된 자들 ­ 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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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께서는 당신의 교훈의 말씀을 이상과 같이 마치셨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눅 4:18, 19)시려고 나가신 것처럼 택함을 받은 열두 제자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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