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당신의 성전에서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예수께서는 이 여행에서 수도를 향하여 가고 있던 큰 무리 중의 한 무리와 일행이 되셨다. 그분은 아직도 자신의 사명을 공표하지 않았으므로 군중 가운데 섞여도 남의 주목을 끌지 않으셨다. 이 경우에도 요한의 전도로 말미암아 현저하게 주목을 끈 메시야의 강림이 흔히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국가적인 위대함을 바라는 소망이 매우 열광적으로 강조되었다. 예수께서는 이 소망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데서 기인된 것이므로 실망을 겪게 될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깊은 열의를 가지고 예언의 말씀을 설명해 주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치밀하게 연구하도록 깨우치려고 힘쓰셨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유월절 절기 동안 예루살렘은 팔레스틴 각처와 심지어 먼 외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성전 뜰은 혼잡한 군중으로 가득 찼다. 많은 사람들은 한 크신 희생 제물을 예표 하는 제물들을 가져올 수가 없었다. 이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성전 바깥뜰에서 짐승들이 거래되었다. 각 계층의 사람들이 헌물을 사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곳에서 모든 외화는 성전 주화(鑄貨)로 교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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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유대인은 “그 생명의 속전”으로 해마다 반 세겔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이렇게 모은 돈은 성전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다(출 30:12~16). 이외에도 많은 금액이 자원하는 헌물로 드려져 성전 금고에 비축되었다. 그리고 모든 외국 화폐는 성전 봉사에 사용되던 성전 세겔이라고 불리는 주화로 바꾸도록 되어 있었다. 돈을 바꾸는 일은 사기와 부정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수치스러운 거래로 발전하였으며, 제사장들의 소득원이 되었다.
상인들은 동물들을 팔 때에 엄청난 가격을 요구하였으며 그 이익금을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나눠 가졌다. 그들은 이와 같이 백성들의 희생으로 치부하였다. 경배자들은,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의 자녀들과 토지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하여 비싼 가격에 동물들을 팔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이왕 온 다음에는 그들이 행하려고 한 헌신의 행위를 이행하지 않고는 가정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월절에는 수많은 제물들이 바쳐졌으므로 성전에서 매매하는 일이 대대적으로 행해졌다. 이에 따르는 혼란으로 그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란스러운 가축 시장과 같았다. 쩔렁거리는 동전과 노한 언쟁 소리에 뒤섞여 흥정하는 날카로운 소리, 가축들이 우는 소리, 양들과 비둘기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혼란이 너무나 극심하여 경배자들은 방해를 받았으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드리는 말씀은 성전 속까지 침입하여 들어온 소동 소리에 파묻히고 말았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경건을 크게 자랑하였다. 그들은 성전을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성전을 헐뜯는 말은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성전과 관계되는 의식을 이행하는 데 매우 엄격했으나 그렇게 한 것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이 의식의 본래 목적에서 그들이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지를 거의 깨닫지 못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에 그 장소는 그분의 임재로 성별되었다. 모세는 산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그 곳을 거룩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그 후에 경고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들려 왔다.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출 19:12, 13).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은 어느 곳이든지 거룩하다는 교훈이 가르쳐졌다. 하나님의 성전의 경내(境內)는 신성하게 간주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익 다툼으로 이 모든 것이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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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국민을 위하여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성전 뜰에서 벌어지는 악폐를 시정했어야 했다. 그들은 성실과 동정의 모본을 백성들에게 보여야 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 골몰하는 대신에 경배자들의 사정과 필요를 염려하고 필요한 제물들을 살 수 없는 자들을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탐욕으로 그들의 마음은 강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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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기에 고통당하는 자들과 곤핍과 비탄에 잠겨 있는 자들이 왔다. 그 곳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벙어리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들것에 실려 왔다. 너무 가난하여 주께 드릴 하찮은 선물조차도 살 수 없고 심지어 자신의 허기진 배를 채울 양식조차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이 사람들은 제사장들의 말을 듣고 크게 괴로워하였다. 제사장들은 그들의 경건함을 자랑하고 백성들의 수호자라고 주장하였으나 그들에게는 동정과 긍휼이 없었다.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과 죽게 된 이들이 호의를 구했으나 헛일이었다. 그들의 고통도 제사장들의 마음속에 연민의 정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서 이 모든 광경을 보셨다. 그분은 부정한 거래를 보셨다. 그분은 피 흘림이 없이는 그들의 죄를 용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난한 자들의 슬픔을 보셨다. 그분은 당신의 성전의 바깥뜰이 거룩하지 못한 장터로 변한 것을 보셨다. 신성한 구내는 일종의 거대한 환전소가 되어 버렸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종의 조치가 취해져야만 될 것을 아셨다. 백성들은 의식의 의미에 대한 적절한 교훈 없이, 무수한 의식을 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경배자들은 그들이 바치는 희생 제물이 유일하고 완전한 희생 제물이 되시는 분을 상징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쳤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그들의 모든 제사가 상징하고 있는 분께서 인정과 존귀를 받지 못한 채 서 계셨다. 그분께서 헌물에 대한 지시를 주셨다. 그분은 그 제물들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셨으며 이제 그 제사가 왜곡되고 오해되고 있음을 보셨다. 신령한 예배는 신속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그들의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는 고리는 하나도 없었다. 전혀 다른 예배를 확립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업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전 뜰의 계단에 서서 준엄한 눈초리로 당신 앞에 있는 장면을 바라보신다. 그분은 예언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보신다. 그리고 몇 년 후의 일만이 아니라 여러 세기와 여러 시대를 내다보신다. 그분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어떻게 궁핍한 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막을지를 보신다. 그분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들에게서 감추어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상품화할 것인지를 보신다. 그분께서 이 광경을 보실 때 당신의 용모에 의분과 권위와 권세가 표현된다. 사람들의 관심이 그분께로 이끌린다. 부정한 거래를 하고 있던 자들의 눈이 그리스도의 얼굴에 집중된다. 그들은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그들은 이 사람이 그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읽고 그들의 은밀한 동기를 알아내는 것을 느낀다. 어떤 자들은 마치 그들의 악한 행위가 얼굴에 기록되어 있어서 그 준엄한 눈초리가 환히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을 숨기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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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이 그친다. 거래하고 흥정하던 소리가 멈추었다. 침묵은 고통스럽다. 경외감이 회중을 압도한다. 마치 그들이 행한 일에 답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송사를 당하는 것 같다. 그리스도를 쳐다볼 때 그들은 인성의 두루마기를 통하여 신성이 번쩍이는 것을 본다. 하늘의 주재되시는 분께서 마지막 날의 재판장처럼 서 계신다. 지금은 그날에 그를 두를 영광으로 둘리어 있지는 않지만 그 때와 같은 능력으로 심령을 감찰하고 계신다. 그분은 샅샅이 관찰하면서 무리들을 훑어보신다. 그분의 모습은 당당한 위엄으로 그들 위에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며 하늘의 빛이 그분의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그분께서 말씀하시자 그분의 명확하고 울려 퍼지는 음성, 곧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범하고 있는 율법을 시내산 위에서 선포하신 바로 그 음성이 성전의 아치를 통하여 메아리친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예수께서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구내 입구에 모아 둔 노끈으로 된 채찍을 들고 장사하는 무리에게 성전 구내에서 떠나가라고 명하신다. 그분은 전에 결코 나타내지 않았던 열정과 준열함으로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신다. 주화는 대리석으로 된 보도 위에 떨어져서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아무도 감히 그분의 권위에 의문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도 감히 부정으로 모은 돈을 주우려고 멈추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노끈으로 만든 채찍을 가지고 그들을 때리시지는 않지만 그분의 손에 들린 단순한 채찍은 마치 화염검과 같이 무서워 보인다. 성전 관리들, 투기(投機)하는 제사장들, 중간상인들과 가축 매매자들은 양과 소를 몰고 오직 그리스도의 임재로 인한 정죄로부터 벗어나려는 일념으로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달아난다.
공포가 무리를 휩쓴다. 그들은 그분의 신성의 표시를 느낀다. 공포의 비명이 수백 명의 핏기 잃은 입술에서 새어 나온다. 제자들까지도 떤다. 그들은 예수님의 평상시의 태도와는 너무도 다른 언행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 69:9)라는 말씀이 그분에 대하여 기록된 것임을 기억한다. 곧 떠들썩하던 군중이 그들의 물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멀리 떠나간다. 성전 뜰에는 부정한 거래가 없어지고 무거운 침묵과 엄숙함이 혼란하던 광경 대신에 자리를 잡는다. 옛날 성별된 산에 임하였던 여호와의 임재가 이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세워진 성전을 신성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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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정결케 하는 중에 예수께서는 메시야로서 당신의 사명을 선포하고 사업에 착수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로 건축된 성전은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하여 실물 교훈이 되도록 계획되었다. 영세 전부터 광명하고 거룩한 스랍 천사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을 창조주께서 내재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그쳤다. 사람의 마음은 죄악으로 어두워지고 더러워져서 신령하신 분의 영광을 더 이상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심으로써 하늘의 목적은 성취된다. 하나님께서 인류 안에 거하시고 또한 구원하는 은혜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은 다시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는 고상한 운명에 대하여 끊임없이 증거하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성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성령이 임재하실 만한 성전으로 바치지 않았다. 불경한 거래의 혼잡으로 채워진 예루살렘 성전 뜰은 관능적인 정욕과 부정한 생각을 품음으로 더러워진 마음의 성전을 너무나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세상의 매매하는 자들로부터 성전을 정결하게 하면서 예수께서는 마음에서 더러운 죄 곧 영혼을 부패하게 하는 세속적인 욕망, 이기적인 욕정, 악한 습관을 제거하고 정결케 하는 당신의 사명을 나타내셨다.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말 3:1~3).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 17). 어떤 사람도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악한 세력들을 혼자서 내쫓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만이 영혼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강제로 들어가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옛날 성전에 들어가셨던 것처럼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신다. 그분은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리라”(계 3:20)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또 하루 동안만 와 계시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분이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고후 6:16; 미 7:17)고 말씀하시는 까닭이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성결하게 하여 주께 거룩한 성전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엡 2:21, 22) 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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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질린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들의 마음을 통찰하시는 예리한 눈초리를 피하여 성전 뜰에서 도망갔다. 그들은 도망가면서 성전으로 가는 다른 이들을 만났다. 그들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서워서 도망가는 사람들을 매우 측은하게 바라보고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를 불쌍히 여기셨다. 이 장면 가운데서 그분은 온 유대민족이 그들의 악함과 완고함으로 인하여 흩어지게 될 상징을 보셨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왜 성전에서 도망갔는가? 그들은 왜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신 자는 세상의 지위나 권세가 없는 목수의 아들이요 가난한 갈릴리 사람이었다. 그들은 왜 그에게 대항하지 않았는가? 왜 그들은 그토록 부정하게 번 돈을 버리고 그렇게도 비천한 외모를 한 분의 명령을 듣고 도망갔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왕의 위엄을 가지고 말씀하셨으며 그분의 외모나 음성에는 그들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그들은 명령하는 말씀을 듣고 전에는 결코 인식하지 못했던 위선자와 강도로서의 자신들의 진정한 입장을 깨달았다.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번쩍일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분노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달았다. 그들은 마치 영원하신 재판장의 보좌 앞에서 현세와 영원을 위하여 선고를 받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얼마 동안은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임을 확신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분이 메시야임을 믿었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에 관한 선지자들의 말들을 번개처럼 떠오르게 해 주셨다. 그들이 과연 이 깨달음에 굴복하려고 할 것인가?
그들은 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셨음을 알았다. 그들은 백성들과 거래할 때에 부정 이득을 취한 죄를 저질렀음을 알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셨으므로 그분을 증오하였다. 그리스도의 공공연한 책망이 그들의 자만심에 굴욕감을 주었으며 그들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을 시기하였다. 그들은 그분께서 저들을 내쫓으실 때 사용하신 능력과, 또한 이 능력을 그분에게 주신 분에게 도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천천히 생각에 잠겨 마음에 증오심을 품고 성전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곳을 떠난 사이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가! 그들이 도망갔을 때에 가난한 자들은 뒤에 남아 있었다. 이제 그들은 사랑과 긍휼을 띤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눈물어린 눈으로, 당신의 주위에서 떨고 있는 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건지리니 너희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세상에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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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선생님이여, 나를 축복하소서’라는 간절하고도 가련한 호소를 하면서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몰려들었다. 그분의 귀는 모든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분은 온유한 어머니의 긍휼보다 더 큰 긍휼을 가지고 고통당하는 어린것들을 굽어 보셨다. 모든 사람들이 돌보심을 받았다. 각색 병을 가진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다. 벙어리가 입을 벌려 찬송하고, 눈먼 자들이 그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신 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통당하는 자들의 마음은 즐겁게 되었다.
제사장들과 성전 관리들이 이 위대한 사업을 목격하였을 때에 그들의 귀에 들려온 소리들은 얼마나 놀라운 계시였던가! 사람들은 그들이 겪어온 고통, 곧 그들의 좌절된 희망, 고통스러운 날들, 잠 못 이룬 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소망의 마지막 불꽃마저 꺼질 것처럼 보였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고쳐 주셨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짐이 너무나 무거웠으나 나는 돕는 자를 발견하였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시다. 나는 그분의 사업에 나의 생애를 바치겠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너의 생명을 건지셨다. 네 목소리를 높여서 그분을 찬송하라’고 말하였다. 유년들과 청소년들, 아버지 어머니들, 친구들과 목격자들이 목소리를 합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렸다. 소망과 기쁨이 그들의 마음을 채웠다. 평화가 그들의 마음에 깃들었다. 그들은 심신이 회복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각처에서 예수님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선전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때에 이와 같이 나음을 입었던 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치던 폭도들에게 가담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동정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크신 긍휼과, 놀라우신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분이 그들의 구주이심을 알았다. 그것은 그분께서 그들에게 심신의 건강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파하는 말씀을 들었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간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사자들이 되었으며 그분의 구원의 도구가 되었다.
성전 뜰에서 도망갔던 무리들은 잠시 후에 슬금슬금 되돌아왔다. 그들은 그들을 사로잡았던 공포에서 얼마간 회복되었으나 그들의 얼굴에는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고 놀랐으며 메시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그분에게서 성취되었음을 깨달았다. 성전을 더럽힌 죄는 주로 제사장들에게 있었다. 성전 뜰이 시장으로 변하게 된 것은 제사장들의 결정에 의해서였다. 백성들은 비교적 무죄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권위에 감명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일종의 혁신으로 간주하고, 성전의 주관자들이 허용한 것을 간섭할 권리가 그분에게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장사가 방해를 받았으므로 감정이 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령의 호소를 짓눌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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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보다도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수님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이는 그들의 손안에 그분의 사명을 묘사한 성경 두루마리가 있었고,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일은 초인간적인 능력의 현현임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심히 미워하였으나 그분은 성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런 두려움에서 생긴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은 그분에게 가서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질문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 주셨다. 그들의 마음을 빛으로 환하게 하고 메시야가 해야 할 이적을 그들 앞에서 행함으로 그분께서는 당신의 신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를 주셨다. 이제 그들이 표적을 요구하자 그분은 그들에게 한 비유로 대답하심으로 저들의 악의(惡意)를 읽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으며 그 악의가 결국 그들을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를 아셨다. 그분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는 이중의 뜻이 있었다. 그분께서는 유대인의 성전과 예배가 파괴될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죽음, 곧 당신의 몸인 성전이 파괴될 것을 언급하셨다. 유대인들은 이미 이 일을 음모하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은 성전으로 되돌아왔을 때, 이미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말썽을 일으키는 자를 제거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분께서 그들 앞에 그들의 의도를 드러내셨을 때에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단지 예루살렘의 성전에만 적용시켜 분노한 가운데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고 외쳤다. 이제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불신을 정당화시켜 주었다고 생각하고 그분을 거절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신하는 유대인들이나 심지어 당신의 제자들까지도 이때에 당신의 말을 깨닫도록 의도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원수들에 의해 곡해되고 당신을 거절하는 데 쓰이리라는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 심문을 받으실 때 그 말씀은 고소의 재료로, 그리고 갈바리에서는 그분에 대한 조롱거리로 쓰여 질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준다면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알게 될 것이며, 아직은 감당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슬픔을 그들에게 안겨 주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설명은 편견과 불신의 결과를 유대인들에게 너무 일찍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었다. 이미 그들은 그분께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되시기까지 그분을 끈질기게 쫓아다닐 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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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당신을 믿는 자들을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말씀이 되풀이될 것을 아셨다. 유월절에 하신 그 말씀은 수많은 사람들이 들을 것이며 세계 각처에 전달될 것이다. 그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그 말씀의 의미가 명백하게 될 것이었다. 그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었다.
예수의 제자들까지도 그들의 영적 흑암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흔히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일어난 사건들로 인하여 이 교훈들 중 많은 것들이 명백하게 되었다. 그분께서 더 이상 그들과 동행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분의 말씀은 그들에게 지주(支柱)가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구주께서 하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은 듣는 자들이 이해한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기초요 생명이셨다. 성전의 봉사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표상했다.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중보적 성격과 사업을 나타내기 위해 제정되었다. 희생 제도의 전체적인 계획은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구주께서 죽으실 것을 예표하였다. 여러 세대 동안 가리켜 왔던 큰 사건이 완성되는 때에 이 제사들의 효험은 없어지게 될 것이었다.
모든 제사 제도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죽음에 넘겨줌으로써 그분을 최종적으로 거절하였을 때 그들은 성전과 그 봉사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것을 거절한 것이었다. 성전의 신성성은 떠나갔다. 성전은 파괴당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날부터 희생 제물과 그것과 관련된 의식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가인이 드린 제물처럼 그것들은 구주를 믿는 믿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그들의 성전을 실제적으로 파괴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 안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진 것은 곧 최후의 큰 희생이 치러졌다는 것과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 제도가 영원히 종말을 고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구주께서 돌아가셨을 때에 흑암의 권세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며, 그들은 승리로 기뻐 날뛰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요셉의 갈라진 무덤에서 정복자로서 부활하셨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닌 “참 장막에 부리는 자”(히 8:2)가 되셨다. 유대인의 성막은 사람들이 건축했다. 유대인의 성전도 사람이 건축했다. 지상에 있는 것의 원형인 하늘 성소는 인간 건축가가 세운 것이 아니었다.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슥 6:12, 13)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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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예표하던 희생 제사는 끝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의 죄를 위하여 바쳐진 참된 희생 제물에 눈을 돌렸다. 지상의 제사장 직분은 그쳤다. 그러나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과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를 바라본다.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12:24, 9:8~12).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성전의 봉사가 지상에서 하늘의 성전으로 옮겨지고, 성소와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제자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조금도 손실을 당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구주의 부재(不在)로 말미암아 그들의 교통이 단절되거나 능력이 감퇴되는 일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는 한편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여전히 지상의 교회를 섬기는 자가 되신다. 그분은 육안에서는 사라지시나 떠나가실 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신 약속은 성취된다. 그분께서는 당신보다 낮은 교역자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위임하시지만 활력을 주는 그분의 임재는 아직도 그분의 교회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