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1 679-688 (68일)

불쌍한 모어 자매! 그 자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남편은 심한 타격을 받았다. 우리는 바로 우리가 교제하기를 열망하던 사랑하는 어머니가 없어진 것과 같은 느낌을 함께 갖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만일 우리가 이 자매의 소원과 필요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사람들의 위치에 서 있었을 것 같으면 우리는 그들처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는 모어 자매의 사정에 아무런 책임도 지기를 원치 않을 만큼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가졌던 어떤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그런 양심의 고통을 그대들은 결코 느끼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귀중하고 자아 희생적인 그리스도의 종을 등한히 할 만큼 속임당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란다. 이와 같이 등한히 하는 것에 대하여 이런 변명의 말을 했다. 우리는 너무도 여러 번 괴롭힘을 당해 왔으므로 낯선 자들을 두려워한다고, 우리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우리가 가치 없는 사람을 돌봐 줌으로 야기되는 어려움 때문에 어떤 실수를 범하거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고 낯선 사람들을 대접하지 않도록 하라고 우리에게 교훈하셨는가?

바울은 히브리 인들에게,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 (히 13:1) 하라고 권면한다. 이 권면이 필요하지 않고, 형제 사랑하기를 그쳐도 좋을 때가 있다는 말로 스스로 위로를 받지 말라. 그는 계속해서,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 13:2) 고 말한다.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계속해서 읽어 보라. 형제들이여, 다음번 그대들의 아침 저녁 가족 예배 때에 그 성경절을 취하여 읽으라. 하늘나라에 영접될 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선한 행위는 그리스도의 고난받는 백성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한 것이었다. 이 선한 일들을 한 자들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고통 중에 있는 인류에 대한 의무를 다한 것에 불과했다. 왼편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의 필요를 등한히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학대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그분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을 등한히 했다. 이처럼 등한히 한 일 때문에 그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등한히 한 일의 요지는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 (마 25:43) 다고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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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배틀크릭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어느 곳에서나, 안식일 준수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있는 이기심을 통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러 가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쫓겨난 그분의 성도들을 통하여 불과 며칠 동안 그분에게 거처를 제공할 수 없을 것인가? 그분은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영광 중에 있는 그분의 집과 위엄과 높은 지위를 다 버리셨다. 그분은 그분의 가난을 통하여 우리로 부요하게 하고자 가난하게 되셨다. 인류를 존귀하게 하여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하나님의 보좌처럼 길이 존속할 집을 주시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셨다. 마침내 승리를 얻어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본을 따르고, 자원하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의 성도들을 통하여 그분을 위한 희생의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다. 자원하는 이 일을 할 수 없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115 장 — 건강 요리법

지난 7개월 동안 우리는 집에 약 4주일밖에 머물지 못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아이오와에서 메인 주에 이르기까지 많은 식탁에 앉았다. 우리가 방문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빛대로 최선껏 실천했다. 그러나, 건강하고 훌륭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일에 있어서 동일한 기회를 가진 어떤 사람들은 개혁의 첫째 계단도 거의 밟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이 새로운 방법으로 요리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그대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요리하는 이 문제에서 핑계할 수가 없다. “생활의 방법” 이라는 책 속에는 우수한 많은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고, 그 책은 모든 사람이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에서 가르친 요리법의 내용이 완전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어떤 면에서 내 마음에 좀더 적합한 조그마한 책을 곧 마련할 예정이다. 그러나, “생활의 방법” 이라는 그 책은 여행자들이 심지어 여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의 식탁에서 자주 대하는 것보다 거의 무한히 앞선 요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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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의무에 속한 일이 아니라고 느끼므로, 음식을 적당하게 마련하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이것은 돼지 기름, 버터, 육류등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하고 건전하고 쉬운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솜씨가 단순함과 합쳐져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여인들은 책을 읽고, 그들이 읽은 바를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자 애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은 그대들의 잠재 능력을 깨어나게 하고 연구할 때이다라고 말하는 바이다. 단순하게 요리하되, 가장 맛이 있고 건전한 음식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요리하는 법을 배우라.

단순히 구미를 즐겁게 하거나 입맛에 맞도록 요리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아무도 빈약한 식생활이 옳다는 생각을 품게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쇠약해져 있으므로, 풍부한 영양분이 있는 잘 요리된 식사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잘 부풀지 않고 시큼하면서도 부분적으로 굽힌 통밀빵을 보게 된다. 이것은 요리하는 자의 중요한 의무를 배우고자 하는 관심과, 그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주의력의 부족 때문에 생긴다. 때때로, 우리는 살짝 구운 케이크나, 마르기는 했지만 굽히지 않은 소프트 비스켓과, 유사한 부류에 속한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 그럴 때, 요리하는 자들은 옛 방식의 요리법대로는 꽤 잘할 수 있다고 그대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의 가족들은 통밀빵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이런 방식으로 살면 쇠약해질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노라고 내 스스로에게 말해 왔다. 음식이 그처럼 맛이 없는 것은 그대들의 조리 방법 때문이다. 그런 음식을 먹는 것은 분명히 소화 불량을 초래할 것이다. 이처럼 서투른 요리사들과, 그들이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자들은, 건강 개혁이 그들에게 맞지 않는다고 퉁명스럽게 그대들에게 말할 것이다. 위장은, 빈약하고 쉽게 부풀지 않고 시큼한 빵을 좋은 것으로 바꿀 힘이 없다. 오히려, 이런 빈약한 빵은 건강한 위장을 병든 것으로 바꾸어 줄 것이다. 그런 음식을 먹는 자들은 힘을 잃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거기에 대한 원인이 없을까? 이런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건강 개혁자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다. 그들은 요리하는 법을 모른다. 그들은 케이크와 감자와 통밀빵을 마련하지만, 거의 변화가 없이 동일한 것을 되풀이한다. 그리하여, 신체가 튼튼해지지 않게 된다. 그들은 건강에 좋고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는 일에 철저한 경험을 얻기 위하여 바치는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먹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인 양, 그리고 닥치는 대로 위장에 집어넣은 음식물이, 그처럼 많은 수고를 하여 마련한 음식물 못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먹을 것 같으면, 우리가 위장에 넣는 음식을 즐길 때처럼 자양분을 공급받고 건강이 증진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으로 구성된다. 훌륭한 질의 피를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올바른 방법으로 마련된 올바른 종류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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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좋은 음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준비하여 즐겁게 먹을 수 있게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요리하는 자들의 신앙적 의무이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젊은 여인의 교육 중 어떤 분야가 이것보다 더 중요할 것인가? 먹는 것은 생명과 관계가 있다. 빈약하고 보잘것없고 잘못 요리된 음식은 조혈 기관 (造血器官) 을 약화시키므로, 피를 끊임없이 나쁘게 만들고 있다. 조리법이 가장 중요한 교육의 분야 중 하나로 간주되는 것이 극히 요긴한 일이다. 그러나, 훌륭한 요리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젊은 여인들은 요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자신들을 천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격하시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문제를 올바른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음식, 특별히 빵을 건강에 좋게 마련하는 법을 알려 주는 지식은 천한 학문이 아니다.

많은 가정에서 우리는 소화 불량을 보게 되는데, 빈번히 그 원인은 잘 만들어지지 않은 빵에 있다. 가정의 여주인은 그 빵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먹어 치운다. 이것이 그 빵을 처분하는 방법인가? 그대는 그것을 위장 속에 넣어서 피로 바뀌어지게 할 것인가? 위장은 신 빵을 달콤한 것으로, 쉽게 부풀지 않은 빵을 부푼 것으로, 곰팡내 나는 빵을 맛있는 것으로 바꿀 힘을 가지고 있는가?

어머니들은 딸들을 교육시킬 때 이 분야를 등한히 한다. 딸이 잡담하고 뜨개질하고 그가 좋아하는 공부를 위하여 핑계하고 있는 동안, 어머니들은 걱정과 수고의 짐을 지고 빨리 쇠약해 가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사랑이요 잘못된 친절이다. 어머니는 흔히 자녀의 평생 동안 지속되는 손해를 그에게 주고 있다. 그가 인생의 짐을 어느 정도 질 수 있는 나이에 이르러도 그는 그렇게 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걱정과 짐을 감당할 수 없다. 그들은, 어머니가 마치 짐에 눌려 있는 손수레처럼 걱정의 짐에 눌려 있는 동안, 가벼운 짐을 지고 의무에서 벗어날 구실을 찾고 있다. 딸이 불친절 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부주의하고 무관심하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피로의 모습과 괴로움의 흔적을 보고, 더 무거운 부분의 짐을 그가 지고, 걱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고통의 침대로, 아마도 죽음의 침대로 가야 할 어머니를 구제해 주고자 노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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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머니들은 딸들을 교육시키는 데 그처럼 맹목적이고 소홀할까? 내가 여러 가정들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반면에, 쾌활한 정신을 보여 주고 건강과 힘을 제대로 갖춘 딸이 아무런 염려도 하지 않고 책임도 느끼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큰 모임이 있어서 가족들이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나는 어머니가 짐을 지고 모든 일을 돌보고 있는 한편 딸들은 젊은 친구들과 함께 앉아서 잡담하며 사교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너무도 잘못된 것처럼 보이므로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분별없는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고, 가서 일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피곤한 그대의 어머니를 해방시켜 주라. 그를 거실로 모셔 와서, 쉬면서 친구들과의 교제를 즐기도록 권하라.

그러나, 딸들이 이 문제에서 전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할 자들은 아니다. 어머니에게 잘못이 있다. 그는 딸들에게 요리하는 법을 꾸준히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딸들이 요리하는 면에서의 지식이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일에서 벗어날 마음을 갖지 못한다. 그는 주의와 생각과 주목을 요하는 모든 것에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 여인들은 요리하는 일에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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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에 있어서의 그들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실제적으로 활용되어야 할 지식이 여기에 있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 특별히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육의 분야이다. 요리하는 분야에서 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솜씨도 부족한 많은 아내요 어머니는, 소화 기관을 꾸준하고도 분명하게 파괴시키고, 빈약한 질 (質) 의 피를 만들고, 빈번히 염증성 질병의 날카로운 공격을 초래하고 조사 (早死) 의 원인이 되는 빈약하게 준비된 음식을 가족들에게 매일 제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잘 부풀지 않고 시큼한 빵을 먹음으로 그들의 죽음을 초래해 왔다. 나는 시큼하고 잘 부풀지 않은 빵을 만든 어떤 식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을 치워 버리고 그 문제를 감추기 위하여, 그는 매우 큰 두 마리의 돼지에게 한꺼번에 구운 그 빵을 던져 주었다. 이튿날 아침, 그 집 주인은 돼지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유를 살펴보았더니, 잘 부풀지 않은 이 빵조각이 발견되었다. 주인이 물었더니, 그 식모 처녀는 자기가 한 일을 시인했다. 그는 그런 빵이 돼지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잘 부풀지 않은 시큼한 빵이, 방울뱀이나 진저리 나는 모든 것을 거의 먹어 치울 수 있는 돼지를 죽일 수 있다면, 부드러운 기관인 인간의 위장에는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거친 밀가루로 훌륭하고 달콤하고 딱딱하지 않은 빵을 만드는 법을 즉시 배우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 처녀와 여자들에게 주어진 신앙적 의무이다. 어머니들은 딸들이 매우 어렸을 때부터 그들을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 요리하는 솜씨를 가르쳐야 한다. 어머니는 교육 없이 가정관리의 비결을 딸들이 이해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꾸준하고 친절하게 그들을 가르치고, 유쾌한 얼굴과 용기를 주는 찬성의 말로, 할 수 있는 대로 그 일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한 번, 두 번, 세 번 실패할지라도 비난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이미 용기가 꺾였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이 무슨 필요가 있어.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어” 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 때는 비난할 때가 아니다. 의지는 약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용기를 주고 쾌활하게 해주고 희망을 갖게 하는 말이 필요하다. “네가 실수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배우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수하는 것이 당연하단다. 다시 해봐. 네가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집중하여라. 매우 조심하고, 그러면, 분명히 성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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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머니들은 이 분야의 지식의 중요함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과, 그들이 배우는 동안 저지르는 잘못과 실수를 귀찮게 여기고 괴롭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딸들이 일하는 동안 실수를 저지르면, “다 귀찮다. 너는 이런 저런 일은 할 수 없어. 네가 나를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곤란하고 난처하게 만드는구나” 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쫓아내 버린다.

이와 같이, 배우는 자들의 첫번째 노력은 배척당한다. 첫 실패가, 배우고자 하는 그들의 흥미와 열성을 너무도 냉랭하게 만들어 버리므로, 그들은 다시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를 두려워하고, 요리 외의 어떤 것 곧 재봉과 뜨개질과 집안 청소와 같은 것을 하고자 제안할 것이다. 여기에서 어머니는 크게 실수했다. 그는, 그들이 실천을 통하여 서투른 것이 제거되고 경험 없는 일꾼의 미숙한 동작이 고쳐질 수 있게 하는 경험을 얻도록 그들을 꾸준히 가르쳐야 한다. 나는 여기서 1864년에 출판한 증언 10호에서 발췌한 글을 제시하는 바이다.

“귀염과 시중을 받아 온 아이들은 항상 그것을 기대한다. 그들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실망하고 용기가 꺾인다. 이 동일한 기질은 그들의 온 생애를 통하여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무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의존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들에게 양보해 주기를 기대한다. 장성한 남녀들로 자라난 후일지라도, 그들이 반대를 당하면 그들은 학대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을 걸어가는 그들의 길을 염려하고, 그들 스스로의 짐을 거의 질 수 없고, 흔히 모든 것이 그들의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평하고 안달한다.

잘못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파멸을 초래할 교훈을 가르치며, 또한 그들의 앞길에 가시를 심어 주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의 욕망을 채워주고 그들의 기호대로 하도록 허락함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이와 같이 멋대로 하도록 방임된 아이들은 그들의 욕망을 제지당하지 않고, 그들의 기질을 굽히지 않고, 이기적이고 가혹하고 거만하게 자라나서 그들 자신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저주가 된다. 부모가 자녀들의 장래의 행복을 크게 쥐고 있다. 그들에게는 자녀들의 품성을 꼴 짓는 중요한 사업이 놓여 있다. 어린 시절에 주어진 교훈은 생애를 통하여 내내 그들을 따를 것이다. 부모들은 싹이 터서 선악간의 열매를 맺게 될 씨를 뿌린다. 그들은 아들과 딸들이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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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은 매우 어렸을 때부터 유용하게 되고, 자기 스스로를 돕고, 다른 사람들을 돕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 나이에 있는 많은 딸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그들의 어머니들이 수고하고 요리하고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거실에 앉아서 이야기 책을 읽고, 선두르기 뜨개질, 코바늘 뜨개질, 수놓는 일 등을 할 수도 있다. 그들의 마음은 돌처럼 무감각하다. 그렇다면, 이런 잘못이 어떻게 생기는가? 이 문제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누가 가장 크게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인가? 가련하고 기만당한 부모들이다. 그들은 자녀들의 장래의 복리를 간과해 버리고, 그들의 그릇된 맹목적 사랑 때문에 자녀들로 하여금 무위 (無爲) 한 가운데 앉아 있게 하거나, 정신과 근육의 활동을 요구하지 않는 다만 하잘것없는 것을 하도록 용납한다. 그러고는, 그들의 게으른 딸들이 허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핑계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허약하게 만들었는가? 많은 경우에, 부모의 그릇된 방침이 그렇게 만들었다. 집 주위에서 적당하게 활동하면 마음과 몸이 좋아진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릇된 생각 때문에 이런 일을 박탈당하고, 마침내 일하기를 싫어한다. 이것은 마음에 들지 않고, 고상함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일치되지 않는 일이다. 접시를 씻고 다림질을 하는 것이나 싱크대 앞에 서는 것은 숙녀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 불행한 시대에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유행적 교훈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유행에 따라 모든 행동 과정을 측정하고자 하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원칙에 의하여 지배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을, 유용한 생활을 위하여 훈련시켜야 한다. … 어렸을 때부터 책임을 지도록 그들을 준비시켜라. 만일, 자녀들이 일하는데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은 곧 피곤해질 것이다. 그들은 허리가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팔다리가 피로해졌다고 불평할 것이다. 그리하면, 그대들은 그들에게 조금만 참도록 하기보다는 오히려 동정으로 그대들 자신이 일을 하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자녀들에게 처음에는 매우 가볍게 짐을 지게 해주라. 그리고, 매일 짐을 조금씩 증가시켜, 마침내 그다지 피로하지 않고 적당한 양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라. 무활동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파지는 가장 큰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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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은 자녀들을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 꾸준히 가르쳐야 한다. 그들의 체질은 그런 활동으로 더욱 양호해지고, 그들의 근육은 양호한 상태가 되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하루를 끝낼 때의 그들의 명상은 더욱 건전하고 고상해질 것이다. 그들이 피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당한 양의 활동을 끝낸 후의 휴식은 얼마나 달콤하겠는가. 잠 곧 천연의 아름다운 회복자는 피곤한 몸에 활기를 주고, 다음날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어 준다. 그대들의 자녀들이 노동을 하든지 안 하든지 별반 상관이 없다는 암시를 결코 하지 말라.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들의 시간이 귀중하다는 것과, 그대들이 그들의 활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라.

116 장 — 서적과 소책자

우리의 출판물을 적당하게 보급하고 유포하는 일은 현 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일이 없으면 별반 성취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목사들은 어떤 다른 부류의 사람들보다 이 일에 있어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우리의 전도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서적들의 판매에 있어서 지나친 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판매를 위하여 그들이 간직한 재고품에다 별반 가치 없는 출판물뿐 아니라 동일하게 가치 없는 상품들까지도 첨가시켰다.

그러나, 우리의 목사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내가 증언 11호에서 우리의 출판물에 관하여 말한 것에 대하여 오늘날 극단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일의 책임을 무겁게 지지 않고, 훌륭한 종류의 출판물을 보유하고서 취급자로 행동해 온 뉴욕 주에 있는 한 사람은, 더 이상 판매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출판물은 주문에 의하여 팔게 되었다고 쓴 편지를 출판소에 보냈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나는 여기에, 증언 11호에서 발췌한 글을 제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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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출판물을 판매하는 책임이 말씀과 교리를 가지고 활동하는 목사들에게 지워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시간과 힘은 저장되었다가 일련의 집회에 철저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말씀을 전파할 책임을 갖지 않은 자들이 공중 앞에 우리의 서적들을 적절히 제시할 수 있을 때에는 목사들의 시간과 힘이 그것들을 판매하는데 쓰여져서는 안 된다. 새 지역에 들어갈 때에는, 목사가 사람들에게 판매하기 위하여 출판물들을 가지고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다른 환경에서는, 출판 사업을 위하여 서적들을 판매하고 거래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피해야 한다.”

이 발췌문의 첫째 부분은 마지막 부분에 의하여 완화된다. 이 문제에 대한 나의 견해를 좀더 명확하게 말한다면, 앤드루스, 와그너, 화잇, 러프보로우 목사와 같은 사람들은 사업의 감독을 맡아 하고 여분의 염려와 부담과 활동의 짐도 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장막 집회와 대총회에서 우리의 출판물들을 판매하는 일을 통하여 그들의 짐을 가중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 견해는, 그런 집회에서 그 사업과 관련이 없는 상품을 무리 앞에 늘어놓음으로 그들의 사업의 위엄을 너무도 많이 떨어뜨린 자들을 바로잡아 주기 위하여 제시되었다.

양호한 건강 상태에 놓여 있는 우리의 목사들은 최선의 예절을 갖추고서, 적당한 시간에 우리의 중요한 출판물의 판매에 관여할 수 있다. 그런 서적의 판매와 보급은, 최근에 우리 백성들의 주의를 환기시킨 바와같이, 이 시대에 그것들을 위하여 활동적인 노력이 특별히 요구되고 있다. 4주일에 걸쳐 그래시옷, 사기나우, 투스콜라 등지를 여행하면서, 나의 남편은 4백 불어치를 판매하였고,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는 먼저 백성들 앞에 서적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그러자, 그 책들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교회증언 1권 pp. 679-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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