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수고해 온 자들, 즐겨 어떠한 희생이라도 해 온 자들, 세상에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가난하게 되고 시련을 당하고 그들의 언행 일치의 생활로써 광신자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초래한 비난을 제거하는 자들을 인도하셨다. 그들은 온갖 형태의 반대를 당했다. 그들은 진리를 하나의 체계적인 형태로 분명하게 제시하고, 온갖 반대에 대항하기 위하여 우리의 믿음의 증거를 찾아내는 일에 밤낮 수고해 왔다. 이 큰 사업과 관련된 끝없는 노력과 정신적 시련은 한 사람 이상의 체질을 쇠약해지게 하고, 머리들을 조속히 백발로 물들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헛되게 쇠약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빛과 진리를 소유하게 해 달라고, 진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한 그대로 비칠 수 있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열렬하게 고통 중에 드리는 기도를 주목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자아 희생적 노력을 주목하셨으므로, 그들이 일한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한편으로, 이 귀중한 진리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수고를 하지 않은 자들이 나타나서, 안식일 진리와 같이 모든 것이 그들의 손에 맞도록 준비된 몇 가지 진리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럴 때, 그들은 그들이 아무런 희생도 하지 않은 것을 얻은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처럼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의 짐을 지워 주신 자들을 비난한다. 그들은,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민 16:3) 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은 전혀 감사를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성에 굴복할 수 없고, 그들 자신을 멸망으로 이끌어 갈 강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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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를 따라 앞으로 전진하는 백성들을 축복하셨다. 그분은 한 백성을 모든 부류에서 불러내어 위대한 진리의 토대위에 세우셨다. 불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계셔서 진리에 순종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해주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업은 계속해서 전진하는 중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단체를 이끌고 계신다는 온갖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이 진리임을 공언하면서도 그 단체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그들의 마음대로 믿고 행동하는 자들이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그들의 견해는 혼잡하다. 흩어져 있는 그들의 상태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뚜렷한 증거이다. 세상은 안식일과 그들의 오류를 같은 수준에 놓고 둘 다 함께 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게 만드는 길을 따르는 자들에게 분노하신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의 착한 행실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면, 그는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호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고, 그의 무모한 태도 때문에 미움을 받고, 그가 진리를 이웃 사람과의 다툼 거리로 만들고, 안식일을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에게 어려운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면, 그는 죄인들에게 거치는 돌이 되고 거룩한 진리에 욕을 돌리게 된다. 그가 회개하지 않으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더욱 나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서도, 불신자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비난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상하고 독특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우리를, 우리의 독특한 신앙상 불가피한 것 이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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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믿는 어떤 사람들은 자매들이 미국식 의상을 입는 것이 건강에 더욱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모양의 의복이 불신자들에게 우리의 감화를 손상시켜 그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만든다면, 비록 우리가 결과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우리는 그런 의상을 결코 입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의상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너무 많다고 생각함으로 기만을 당한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유익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가 된다.
나는 미국식 의상을 입는 자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뒤엎고 그분의 특별한 지시를 무시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신명기 22장 5절을 보았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소위 개혁 의복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것은 얌전하고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전혀 적합하지 않은 불건전한 의복이다.
여자들이 그들의 의복과 모습에 있어서 가능한 한 이성과 유사해지고자 하고, 그들의 옷을 남자들의 옷과 흡사하게 만들고자 하는 경향이 더해 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증한 일이라고 선언하신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딤전 2:9).
여성의 권리와 소위 의복의 개혁을 옹호하는 운동에 가담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전자의 정신이 후자의 정신과 조화가 될 수는 없다. 성경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관계와 권리를 분명히 밝혀 놓았다. 강신술사들은 꽤 넓은 범위에 걸쳐서 이런 독특한 의복의 형태를 적용해 왔다. 은사의 회복을 믿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흔히 강신술사라는 낙인을 받았다. 그들이 이 의상을 입으면, 그들의 감화는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강신술사들과 같은 위치에 놓고, 그들의 말을 듣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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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의복의 개혁에는 그 의복에 꼭 같이 발맞추어 경솔하고 무모한 정신이 따른다. 그런 모양의 의복을 입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서 품위와 겸양이 떠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일관되고 합리적인 길을 따르기를 바라고 계심을 보았다. 자매들이 미국식 의상을 입으면, 그들 자신의 감화는 물론 남편들의 감화도 소멸시키게 될 것이다. 그들은 웃음과 조소 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 16).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해야 할 큰 일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감화를 감소시키거나 소멸시킬 길을 택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77 장 — 다윗의 기도
나는 다윗이 늙어서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주님께 간구할 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간곡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지를 보았다. 그는 주변의 노인들이 대부분 행복하지 못한 것과, 특히 나이가 더해 감에 따라 불행한 품성의 특성들이 더해 감을 보았다.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편협하고 탐욕적이면, 나이가 많아질 때 그 성질이 가장 불쾌하게 나타난다. 만일, 그들이 질투심이 많고 변덕스럽고 조급하면, 나이가 들면 더욱 더 그러해진다.
다윗은, 왕들과 귀족들이 혈기 왕성한 장년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이가 들자 가장 절친한 친구들과 친척들을 시기하는 것을 보고 낙망했다. 그들은 친구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이기적 동기 때문일 것이라고 계속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마땅히 신임해야 할 자들에 대하여 낯선 사람들이 하는 암시와 기만적 충고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들의 제지당하지 않은 질투는 그들의 쇠약해 가는 판단에 아무도 동의해 주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들의 탐욕은 놀라웠다. 그들은 때때로 자녀들과 친척들이, 그들의 지위를 차지하고 그들의 재산을 소유하고 그들에게 주어졌던 존경을 받기 위하여 죽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자녀들을 죽일 정도로 질투와 탐욕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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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어떤 사람들의 생애가 혈기 왕성한 장년기에는 의로웠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그들의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목격했다. 사단이 들어와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함으로 그들을 불안하고 불만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나이 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원수들의 조롱과 비난 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 다윗은 큰 충격을 받고, 그가 나이를 먹어야 할 때를 바라보고 낙담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그가 목격해 온 다른 노인들처럼 그도 불행해지고 주님의 원수들의 조롱거리로 남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이런 부담을 안고 그는 열렬하게 기도를 드린다.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 71:9, 17, 18). 다윗은 늙은 때에 따르는 악에서 보호를 받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정신적 능력이 쇠약해 가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해야 할 염려를 함으로 수명을 단축시킨다. 사단은 빈번히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그들의 돈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염려하게 한다. 돈이 그들의 우상이므로 그들은 그것을 인색하게 쌓아 둔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돈을 사용하기는커녕, 때로는 생애의 안락을 빼앗기고 힘에 겨웁게 노동을 한다. 그들은 장차 어느 때에 궁핍해질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이런 모양으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궁핍한 처지에 둔다. 이 모든 염려는 사단에게서 온다. 사단은 심령의 고결함을 부패시키고 고상한 사상과 감정을 파괴시키는 노예적 공포와 시기심을 일으키는 신체의 기관을 자극한다. 그런 사람들은 금전 문제에 대한 정신 이상자들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위치를 취한다면, 그들의 말년은 가장 훌륭하고 가장 행복한 것이 될 것이다. 정직하고 현명한 처사를 할 만한 자녀들이 있다면, 그 자녀들이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단이 그들의 정신적 능력의 결핍을 이용하여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들은 근심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대로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하늘을 위하여 성숙해지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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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장 — 의복의 극단
우리는 미국식 의상을 입거나, 후프를 사용하거나, 보도와 거리를 쓰는 긴 옷을 입음으로 극단에 치우치는 것이 우리의 믿음과 일치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여인들이 그들의 옷 길이를 땅바닥에서 한 인치나 두 인치 간격을 두도록 입는다면, 그들의 옷은 아담해질 것이며, 옷이 훨씬 쉽게 깨끗이 보존될 수 있으므로 조금 더 오래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복은 우리의 믿음과 일치될 것이다. 나는 장식줄이 달린 스커트를 입는 것에 관한 나의 의견을 묻는 여러 통의 편지를 자매들로부터 받았다. 나는 위스콘신에 있는 한 자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런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 편지를 여기에 소개하겠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유행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세상에서 떠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가 의복에 대하여 산뜻하고 단순하고 점잖고 안락한 계획을 가지고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대로 의복을 입고자 한다면,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기 위하여 이 의복의 형태를 바꾸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기 위하여 우리의 의복을 괴상하고 독특하게 할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함으로 세상이 우리를 멸시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그들의 의복은 산뜻하고 점잖아야 하고, 그들의 대화는 고상하고 경건해야 하고, 그들의 행위는 흠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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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옷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 만일, 어떤 사람이 후프가 생기기 전에 안락을 위해서가 아니고 단순한 과시를 위하여 무거운 퀼트 (quilt) 를 입었다면, 그들은 그들이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강을 해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죄를 범한 것이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오늘날 단순히 후프처럼 보이기 위하여 그것을 입는다면, 그들은 죄를 범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치스러운 유행을 따르고자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후프가 생기기 전에는 장식 줄이 달린 스커트가 애용되었다. 나는 14세 이후부터 가벼운 장식 줄이 달린 스커트를 입었는데, 그것은 과시를 위해서가 아니고 편안하고 산뜻했기 때문이다. 후프가 생겼지만 나는 그것을 입기 위해 장식 줄 달린 스커트를 벗어 버리지는 않았다. 이제 후프의 유행이 들어왔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극단으로 끌고 가게 될 것이다.
내가 하나의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이 유행에서 저 유행으로 뛰어들지 않고 독립적인 행동을 취하되 의복에 있어서 극단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언제나 점잖고 편안했던 나의 줄 달린 스커트를 벗어 버리고 엷은 무명 스커트를 입음으로써 다른 극단에서 조롱의 대상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그렇게 했더라면 나는 하나의 바른 모본을 보여 주지 못했을 것이며, 후프를 착용한 자들의 입에 하나의 논쟁거리를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후프 착용에 대한 변명으로, 그들은 나를 그것을 착용하지 않는 자로 지적하고, 그런 면에서 그들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와 같은 극단에 치우침으로, 우리는 그렇지 않으면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감화를 소멸시키고, 후프 착용자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변명하게 해줄 것이었다. 우리는 후프 유행에 전혀 관심을 두지 말고 점잖게 의복을 입어야 한다.
이 문제에는 중립적 위치가 있다. 우리는 모두 현명하게 그 위치를 찾아내어 지켜야 할 것이다. 이 엄숙한 시대에 우리는 모두 우리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도록 하자. 그 일은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므로, 모두는 의복과 행동과 형제 자매들의 동기를 비판하지 않고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습 2:3). 여기에 우리의 사업이 있다.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사람은 죄인들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그분의 계명을 준수하는 자들이다. 각 사람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모든 사람이 순종하면, 우리는 안식일 준수자들의 대열에 훌륭한 연합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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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장 — 헐 목사에게 보낸 편지
1862년 11월 5일에 나는 헐 형제의 상태를 보았다. 그는 두려운 상태에 빠져 있었다. 헌신과 생기 발랄한 경건의 부족 때문에 그는 사단의 제안에 굴복당했다. 그가 주님의 강한 팔 대신에 자신의 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강한 팔은 부분적으로 제거되었다.
나는 헐 형제의 경우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상태는 그가 자신의 위험에 대하여 잠자고 있는 것임을 보았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이 그들의 승리에 대하여 기뻐 날뛰고 있는 동안, 그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완전한 안전과 휴식을 느끼고 있다. 헐 형제가 투쟁을 하고 있는 동안, 그의 마음은 제어되고 있었고 정신적 갈등이 있었다. 이제 그가 투쟁을 그치자 갈등도 그친다. 그의 마음이 휴식 상태에 들어가자, 사단이 그를 편안하게 해준다. 아, 나에게 나타난 그의 처지는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던가! 그의 경우는 거의 속절없는 상태이다. 그가 사단에게 저항하고 그의 무서운 올무에서 스스로를 구출해 내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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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형제는 성실하게 다루어져 왔다. 그는 자신의 본성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제지를 당했다고 느꼈다. 진리의 능력이 그 모든 능력 그대로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안, 그는 비교적 안전했다. 그러나, 정신을 지배하던 진리의 능력과 힘이 깨어지자 제지가 사라지고, 본성적 경향이 주도권을 쥐게 되자 그것을 막을 방도가 없게 된다. 그는 투쟁에 지쳐서 한동안 좀더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원했고, 형제들의 책망에 상처를 받은 것으로 느꼈다. 그는 무시무시한 낭떠러지 끝에 서서 뛰어내리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났다. 그가 뛰어내린다면, 그것으로 마지막이 되고, 그의 영원한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그는 일을 하며 영원을 위하여 결정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은 헐 형제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다. 만일, 그가 임마누엘 대왕의 피 묻은 깃발을 쥐고 있는 자들의 대열을 떠나서 검은 깃발을 쥐고 있는 무리와 합세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손실이요 그 자신의 영원한 멸망이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과 진리를 의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그렇게 할 여지가 많은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믿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즐겨 주시고자 하는 증거에 의존하는 길을 택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의심하고 멸망하는 길을 택하든지 할 수 있다. 헐 형제여, 그것은 생명이 되거나 죽음이 된다. 나는 이미 악한 천사들이 그대 주위에 구름처럼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대는 그들 사이에서 완전히 안락하게 지내고 있다. 사단은 괴로운 정신으로 끊임없는 싸움에 휘말리는 것보다 더욱 안락한 길에 대하여 그대에게 달콤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그 길을 택하면, 끝에 가서 엄청나게 무서운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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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가 그대 자신을 강한 것으로 느끼고, 반박당할 수 없는 이론을 갖춘 것으로 생각하고,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은 것을 보았다. 그대는 너무도 자주 반대자를 만나기 위하여 사단의 땅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대는 진리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사전에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그 일을 통하여 진리가 진척될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업에 유익이 없겠다고 결정을 내렸을 곳에서 반대자들과 대결해 왔다. 이런 모양으로 귀중한 시간은 허비되었다.
사단은 헐 형제가 배틀크릭에서 강신술에 가한 강한 타격을 구경하고 목격했다. 강신술사들은 그의 조직을 알고 그들의 사업을 그처럼 크게 손상시킨 자를 정복하기 위하여 결정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강신술사들과 토론할 때, 그대는 단순히 사람과 그의 이론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대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신술사들과 싸우러 갈 때에는 결코 한사람만 가서는 안 된다. 만일 하나님의 사업이, 영매 (靈媒) 로 대표되는 사단과 그의 사자들과 대결하도록 정말로 요구한다면, 그와 같은 토론을 해야 할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면, 암흑의 군사가 쫓겨 가고 능력이 탁월한 천사들이 말하는 사람을 지켜 주도록 기도와 믿음으로 무장하고, 몇사람이 함께 가야 한다.
헐 형제여, 그대는 그 마력을 깨뜨리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가 입증될, 마음을 달래고 사람을 홀리는 영향을 받고 있음이 나에게 나타났다. 그대는 사단과 협상하고, 그와 의논하고, 금지된 땅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대에게 있어 너무도 벅찬 것에 마음을 쓰고 의심과 불신에 빠짐으로 악한 천사들을 그대 주변으로 끌어 모으고, 순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대에게서 쫓아 버렸다. 만일, 그대가 단호하게 사단의 제안을 물리치고, 결정적인 노력으로 하나님께 힘을 구했을 것 같으면, 그대는 모든 사슬을 깨뜨리고, 그대의 영적인 원수를 쫓아 버리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고 그분의 이름으로 승리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대가 불신의 구름에 둘러싸여 미혹되어 있으면서 강신술사들과 대결하러 가는 것이 참람된 일임을 보았다. 그대는 무장없이 사단과 그의 군대를 맞아 싸우러 나가서 무서운 상처를 입었다. 그러면서도, 그대는 그 상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는 시내산의 우뢰와 번개도 그대를 감동시킬 수 없지 않을까 크게 염려된다. 그대는 사단의 안락 의자에 앉아서 그대의 무서운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거기서 피해 나오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만일 그대가 깨어 일어나 마귀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대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형제 자매들이 그대를 건져내고자 하지만, 그들이 그 일을 할 수 없음을 나는 보았다. 그대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대는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잃어버린 바 된다. 나는 미혹시키는 강신술의 영향을 받고 있는 자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대는 미혹되어 최면술에 걸려 있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빛으로 나오고자 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