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1 399-408 (40일)

부모들이여, 기록하는 천사들은 그대가 자녀들에게 하는 조급하고 까다로운 모든 말들을 기록한다. 그들에게 올바른 교훈을 하지 못한 것, 죄가 심히 흉악하다는 것과, 죄의 마지막 결과가 어떤 것임을 알려 주지 못한 모든 사실이 그대들의 이름 곁에 기록된다. 자녀들 앞에서 부주의하게 혹은 농담으로 별반 생각 없이 한 모든 말, 순결하고 고상하지 못한 모든 말을, 기록하는 천사는 그대들의 그리스도인 품성에 있는 하나의 오점으로 표시한다. 그대의 선악간의 행위가 모두 기록된다.

부모들이 먼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면 자녀들을 다스리는데 성공할 수 없다.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제어하고, 그들의 말과 얼굴의 표정까지도 지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음성이 흥분과 분노로 날카로워지거나 격앙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자녀들에게 결정적인 감화를 끼치게 될 것이다. 자녀들은 옳은 일을 하고싶고 부모와 보호자들에게 양순하고 친절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들로부터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 그들은 훌륭한 결심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원칙이 신앙으로 강화되고 생애가 하나님의 새롭게 하는 은혜로 영향을 받지 않으면, 그들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그들은 자녀들을 성실하게 가르치고, 자녀들이 마음대로 교육을 받도록 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이, 장차 언젠가 선이 득세하고 악이 그 영향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선과 악을 무분별하게 배우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악은 선보다 더욱 신속하게 자라난다. 그들이 습득한 악이 여러 해 후에 지워질 수는 있지만, 누가 이런 모험을 하겠는가? 시간은 짧다. 후에 잡초를 뽑아 내는 것보다 깨끗하고 좋은 씨를 자녀들의 마음속에 뿌리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안전하다. 주변의 영향이 자녀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부모들의 의무이다. 자녀들이 스스로 동료를 택하도록 허락하지 않고 그들을 위하여 택해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다. 부모가 하지 않으면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그대가 자녀들에 대하여 가져야 할 관심을 다른 사람들이 가져 주겠는가? 그들이 부모들이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관심과 깊은 사랑을 가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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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지키는 자녀들은 제지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부모들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은, 그들의 현재와 미래와 영원한 유익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부모에 대하여 마음속에서 좋지 못한 감정이 일어날 수도 있고, 불쾌하고 불만스런 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가면, 그들은 부모들이 그들의 경험없는 시절에 엄격하게 지켜 주고 성실하게 보살펴 준 데 대하여 감사하게 될 것이다.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구원의 계획을 설명하고 알기 쉽게 알려 주어야 한다. 여덟, 열 혹은 열 두 살된 자녀들은 개인적 신앙에 관한 문제를 알려 주기에 충분한 나이이다. 자녀들이 충분한 나이가 된 미래의 어느 때에 회개하고 진리를 믿게 될 것이라는 말로써 그들을 가르치지 말라. 올바르게 가르치기만 하면, 매우 어린 아이들도 죄인으로서의 그들의 상태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이치에 대하여 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목사들이 어린이들의 구원에 대하여 너무 무관심하기 때문에, 마땅히 가져야 할 만큼 개인적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린이들의 마음에 감명을 줄 황금 기회는 흔히 이용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다.

우리의 자녀들을 두르고 있는 악한 영향은 거의 압도적이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마음은 본성적으로 어리석은 것을 향하여 기울어진다. 그러므로, 어린 나이에 있을 때, 곧 그들의 품성이 형성되고 그들의 판단력이 성숙해지기도 전에, 그들은 흔히 그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칠 친구들과의 교제를 더 좋아한다. 어떤 젊은이들은 부모의 요구와 소원과는 반대되게 이성에 애착을 갖게 되어 부모를 거역함으로 다섯째 계명을 범하게 된다. 자녀들의 출입을 지키는 것이 부모들의 의무이다. 부모들은 그들을 권면해야 하고, 가정에서 그들을 끌 수 있는 매력을 그들 앞에 제시하고, 부모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들은 가정을 유쾌하고 즐거운 곳이 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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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들이여, 자녀들에게 친절하게 말하라. 그대들이 얼마나 예민하며, 책망받을 때 얼마나 참을 수 없는지 기억하라. 그대의 자녀들도 그대와 같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한 그 사실을 알라. 그대들이 질 수 없는 것은 자녀들에게도 지우지 말라. 그대들이 비난과 책망을 참을 수 없다면, 그대들보다 훨씬 더 연약하고 훨씬 더 견딜 수 없는 자녀들 역시 참을 수 없다. 그대들의 명랑하고 쾌활한 말로써 언제나 가정을 햇빛과 같이 되게 하라. 그대가 맺는 자제와 신중과 수고의 열매는 백 배로 결실할 것이다. 부모들은 흠잡는 일과 사소한 잘못에 대한 가혹한 비난으로 자녀들의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울 권리가 없다. 실제적인 잘못과 죄는 사실 그대로의 죄악상을 드러내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확고하고 단호한 조치가 강구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그들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적인 상태로 버려져서는 안 되며, 향상하여 부모들의 신임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되어야 한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자유를 너무 많이 줌으로 실수를 범한다. 그들은 때때로 자녀들을 너무 크게 신임하므로 그들의 결점을 보지 못한다. 부모나 보호자 없이 어느 정도의 비용을 들여서 자녀들이 먼 곳을 방문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 자녀들은 그들이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고 특정한 특권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이 허락되지 않으면 그들은 모욕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자유롭게 오고가는 어린이들과, 그들이 별로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하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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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자녀들이 그를 불공평하다고 생각할까 두려워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만, 그것이 결국 그들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이 밝혀진다. 어린 방문자들은, 그들의 결점을 보고 고쳐 주기 위하여 살펴보는 부모의 눈이 없는 상황에서, 수 개월이 걸려야 지워 버릴 수 있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착하고 양순한 자녀들을 둔 부모의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은 어떤 가정을 너무도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이 그들을 떠나 먼 곳에 있는 그 친구들을 방문하도록 허락했다. 그 때부터 자녀들의 기질과 성품에는 완전히 다른 변화가 생겼다. 전에는 그들이 가정에서 만족과 기쁨을 찾고, 다른 젊은이들과의 교제를 그다지 갈망하지 않았다. 부모에게로 돌아온 그들에게는 제지가 부당하게 보이고, 가정은 감옥과 같았다. 이처럼 지혜롭지 못한 부모의 처사가 자녀들의 품성을 결정한다.

이런 방문을 통하여, 어떤 자녀들은 결국 그들의 멸망을 증거해 주는 것에 애착하게 된다. 부모들이여, 할 수 있는 대로 자녀들을 그대들 곁에 두고 가장 큰 염려로 그들을 지켜라. 자녀들이 그대를 떠나서 먼 곳을 방문하도록 허락해 주면, 그들은 스스로를 돌보고 스스로 선택할 만큼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홀로 떨어져 있으면, 그들의 대화는 흔히 그들을 고상하고 세련되게 해주거나 신앙적인 것에 대한 애착을 증진시켜 주지 않는 주제가 된다. 방문하는 일을 자주 허용해 주면 줄수록 가고 싶은 욕망은 더욱 커지고, 가정은 그들에게 더욱 매력 없는 곳이 될 것이다.

자녀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부모의 보호에 맡겨, 그들이 그대들을 가르치고 훈계함으로 그대들의 품성을 하늘을 위하여 형성시키는 그들의 몫을 다하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셨다. 그러나, 그대들이 경건하고 성실하고 기도하는 부모로부터 받은 특권을 이용하여 훌륭한 그리스도인 성품을 계발시키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대들에게 달려 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온갖 염려와 성실을 다할지라도 그들만으로는 자녀들을 구원할 수 없다. 자녀들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모든 자녀들은 그들이 담당해야 할 개인적 일이 있다. 믿는 부모들이여, 그대들 앞에, 자녀들을 신앙적 경험으로 인도해야 할 중대한 사업이 놓여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들에게 나타낸 그대의 보호와, 그들의 욕망을 제지하고 그들의 의지를 굴복시키는 일에 있어서 보여준 그대의 성실에 대하여 감사하고 존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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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편만한 경향은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마음의 본성적 경향을 따르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다. 어릴 적에 지나치게 거칠면 부모들은, 그들이 얼마 후 곧 16세나 18세가 되면 제정신이 들어서 그릇된 습관을 버리고 마침내 유용한 남녀들이 되고 바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원수가 마음의 밭에 씨를 뿌리도록 허용했다. 그릇된 원칙이 자라나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그 후에 그 땅에 들이는 노력은 전혀 효력이 없을 것이다. 사단은 교활하고 끈덕진 일꾼이며 치명적인 원수이다. 칭찬을 하거나 어떤 죄를 덜 가증하게 여기게 하는 말을 하는 중에 청년들에게 손해가 되는 말이 부주의하게 나올 때는 언제든지 사단은 그것을 이용하여 그 악한 씨를 가꾸어 뿌리가 내리게 하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한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릇된 습관을 형성하도록 용납했기 때문에 그 흔적을 평생을 통하여 볼 수도 있다. 이 죄는 부모에게 지워진다. 이런 자녀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지만 마음속에 은혜의 역사가 없고 생애에 철저한 개혁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과거의 습관이 그들의 모든 경험에 나타나고, 그들은 부모들이 형성하도록 허용해 준 바로 그 품성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 있는 경건의 표준이 일반적으로 너무 낮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르고자 하는 자들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사업이 훨씬 더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믿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세속적인 자들의 영향이 청년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과 세상을 구별하는 선 (線) 을 제거해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세상을 위하여 살아간다. 그들의 믿음은 그들의 쾌락을 제지하는 영향을 별로 발휘하지 못한다. 빛의 자녀라고 공언하지만 그들은 어둠 속을 걸어가는 어둠의 자녀요 밤의 자녀이다. 어둠 속을 걸어가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자 진정으로 소원할 수도 없다. 그들은 하늘 사물의 탁월함을 분별하도록 마음의 깨우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영광스럽고, 져야 할 십자가도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다. 그들의 동기는 흔히 이기적이다. 그러한 공언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무도장에 들어가서 거기서 제공하는 온갖 쾌락에 참여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처럼 지나친 일은 하지 않지만 환락의 파티, 소풍, 기부금 파티, 전시장 등에 참석한다. 가장 예민한 눈일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단 하나의 그리스도인적 특성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외모에서, 그들과 가장 보편적인 불신자와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 방탕한 자, 신앙을 공공연히 조롱하는 자, 대담한 신성 모독자, 그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섞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정신과 행동에 있어서 하나로 간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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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실이 일치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악한 자의 자녀들은 그들 자신의 주인의 종이다. 누구를 섬기든지 그 섬기는 자의 종이 된다. 그들이 마귀와 그의 모든 행실을 버리기 전에는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다. 하늘 왕의 종들이, 사단의 종들이 참여하는 오락과 쾌락에 참여하는 것은, 비록 그들이 그런 오락에 아무런 해가 없다고 흔히 말할지라도 해가 없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불경건한 자들에게서 분리시켜 당신 앞에서 정결하게 하시고자 신성하고 거룩한 진리를 계시하셨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그들의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 십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은, 쾌락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회피하고 네째 계명을 어기면서 사는 신앙의 공언자들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의 상태와 신앙적인 것을 보게 된다. 오늘날의 사회상에서, 부모가 자녀들을 제지하고 성경의 바른 원칙을 따라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너무도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거룩한 말씀으로 돌아와서 자녀들을 그 말씀의 교훈대로 가르치고, 옛날 아브라함처럼 가족들에게 그 교훈을 따르도록 명령하면, 그들 주변에서 그러한 영향을 받고 있는 가련한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고, 그들이 교제하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감독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본성적으로, 세속적이고 쾌락을 사랑하는 신앙의 공언자들의 본을 따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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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핍박과 비난이 좀처럼 없다. 경건의 모양을 취하고 교회의 녹명책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극기와 희생이 거의 필요치 않다. 그러나, 우리의 길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그런 생활을 위해서는 우리측에서 깨어 기도하고 극기하고 희생할 필요가 있다. 믿노라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젊은이들의 본이 안 된다. 올바른 행동은 참된 경건에 필수적으로 맺히는 열매이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녀들 앞에는 싸움이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나와서 분리되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닮아 가는 길에서 매일 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

75 장 — 빛 가운데서 걸어감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너무도 지나치게 구름 아래 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불신 가운데 사는 것이 그분의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빛이시므로 그분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 그분의 백성들은 빛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그분의 형상으로 새로워지고, 어둠에서 나와 그분의 기이한 빛 가운데 들어가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그분은 세상의 빛이시며,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그러하다. 그들은 어둠 가운데 걸어갈 것이 아니고 생명의 빛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더욱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끈덕지게 원수의 추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와 가까워져 있으므로, 그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가게 하고자 애쓰는 교활한 원수를 저항할 힘이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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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에게 확실하고 실수가 없는 모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지기 쉬운 사람들을 모본으로 삼아 우리들 상호간에 비교하는 일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이나, 사람들의 의견이나,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의 우리의 상태에 의하여 헤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우리의 믿음과 위치는 현상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고 공언한 후 계속적으로 전진하고 향상했다면 도달되었을 그 상태와 비교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할 유일하고 안전한 비교이다. 그 외의 모든 다른 비교는 자아 기만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특성과 영적 상태가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과 특권과 빛에 상응하지 않으면, 그들은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 는 천사들의 보고를 듣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참 상태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진리를 보지만 진리의 가치와 그 요구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들으나, 그들의 생애가 진리와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얻는 성화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증거인 낮의 구름 기둥과 밤의 불 기둥이 그들 앞에 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태연자약하며 만족해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노라고 공언하지만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특별한 백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구원하시는 그분의 임재와 능력은 그들 사이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의 어둠이 얼마나 짙은가!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빛이 비치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옳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행위를 가납해 주신다고 믿게 하는 기만보다 더 큰 기만으로 인간을 속일 길은 없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을 경건의 정신과 능력으로 오해한다. 그들은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고 모든 것이 필요하지만 부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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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일에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세속적 사업에서는 어떤 일이건 힘을 다하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한 야망을 나타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려 있고 그들의 영원한 행복이 그들의 성공에 좌우되는 영생의 사업에서는 그들이 마치 도덕적 존재가 아닌 것처럼, 마치 다른 사람이 그들을 위하여 생명이 걸린 경기를 대신해 주고 그들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무관심하게 행동한다. 아,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정신 나간 짓인가! 만일 모든 사람이 세상 사업을 위하여 나타내는 그런 정도의 야망과 열성과 열심을 영생을 위하여 나타낸다면, 그들은 영광스러운 승리자가 될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경험을 얻어야 하고, 생명이 걸린 경기에 있어서 자신의 몫을 훌륭하고 성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을 보았다. 사단은 우리가 방심할 때 귀중한 은혜를 빼앗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를 간직하기 위하여, 또한 경계의 부족으로 하늘의 은혜를 잃어버렸을 때는 그것을 되찾기 위하여 흑암의 권세와 더불어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귀중한 선물을 간직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임을 보았다. 열렬하고 힘있는 기도는 하늘이 주목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이 방어를 위하여 믿음의 방패를, 싸움을 위하여 성령의 검을 취할 때 원수의 진영에는 위험이 닥치므로 무엇인가 대책을 강구하게 된다. 핍박과 비난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입고 싸우도록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기다릴 뿐이다. 진리가 단순하고 능력 있게 신자들을 지배하고 세상의 정신을 대항하여 증거될 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일치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의 주님의 생애와 정신을 보여 주는 산 모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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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를 막론하고 그들 앞에는 싸워야 할 투쟁 곧 전쟁이 있다. 그들은 한순간도 졸아서는 안 된다. 교활한 원수는 그들을 미혹하여 정복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깨어 있다. 현대 진리를 믿는 신자들은 그들의 원수처럼 깨어 있어야 하고, 사단을 저항하는 일에 지혜를 나타내야 한다. 그들이 이렇게 할 것인가? 그들이 이 싸움에서 참고 견딜 것인가? 그들이 모든 죄에서 떠나기 위하여 조심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면에서 부인을 당하고 계신다. 우리는 진리와 반대되는 말을 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방함으로, 어리석은 이야기나 농담을 함으로, 무익한 말을 함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 있다. 이런 일에 있어서 우리는 재치나 지혜를 별로 나타내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약화시킨다.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큰 원수를 저항하기에 약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복당한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4). 경계의 부족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 않다고 고백한다. 자신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바치기를 주저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빈약한 결과를 나타낸다. 그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므로, 그들이 실지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지 그들의 큰 원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지 모르는 수가 태반이다. 왜 우리는 이 세상의 사물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소유로 삼는 일에 그처럼 느린가? 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원수들과의 우정을 지속하고, 그들의 풍습을 따르고, 그들의 의견에 의하여 지도되기를 원해야 하는가? 완전히 아낌없이 하나님께 바치고, 세상과 세상의 사물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거기서 돌아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정신은 탁월함과 완전함의 유일한 표준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은 그분의 모본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교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영접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구속주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많은 고난을 기꺼이 받아야 한다. 우리가 성령을 받기 위하여 애쓰고 생활하고 믿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일하시고 당신의 영을 값없이 주신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빛 가운데서 걸어갈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소유하여 누리고, 그분의 다함이 없는 충만하심에 잠길 수 있다.

교회증언 1권 pp. 399-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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