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1 269-278 (27일)

어떤 희생도 자원해서 하고자 하지 않고 세상의 영향에 굴복해 온 안식일 준수자들 중 더러는 시험과 시련을 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의 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젊은이들 앞에는 예기치 않은 시련이 놓여 있다. 그들은 가장 고통스런 난관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믿음의 진실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인자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불신자들에게 불행한 모본이 되어 왔다. 그들은 기꺼이 세상을 버리고자 하지 않았으며, 세상과 연합하고, 소풍과 그 밖의 쾌락적 모임에 참석하고, 순수한 오락에 젖어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세상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런 방종임을 보았다. 하나님은 쾌락을 사랑하는 자를 당신의 추종자로 받아 주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와 같은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않으셨다. 오직 자아를 부정하고, 온건하고 겸손하고 거룩한 생애를 하는 자들만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의 경박하고 헛된 대화에 휩쓸려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마음을 찢는 고민의 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나는 분명한 증언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과, 주님을 돕기 위해 나아오는 자들이 그분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후프가 가증한 것임을 보았다. 모든 안식일 준수자의 감화가, 파리의 평판 나쁜 집에서 생겨난, 죄악을 눈가림하고 있는 이 어리석은 유행을 견책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을 보았다. 나는, 비록 하늘에서 온 교훈일지라도 그 교훈을 실시할 개인들이 있을 것을 보았다. 그들은 가장 분명한 증언을 피하기 위하여 약간의 변명을 하고, 주어진 모든 빛을 무시하고, 유행이기 때문에 결과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프를 입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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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장의 예언이 이 마지막 때에 적용되는 것으로 내게 제시되었다. 외모와 과시만을 생각한 시온의 딸들에게 다음과 같은 책망이 주어져 있다. 25절을 읽어 보라.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나는 이 성경절이 철저하게 성취될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그리스도인 경험을 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고 개인적 책임을 느끼지 않는 젊은 남녀들은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티끌 가운데서 낮아지고, 그들이 얻지 못한, 하나님의 사물들을 경험하고자 갈망하게 될 것이다.

전쟁이 곧 터지려고 합니다. 아, 하나님! 이제 당신의 백성들을 지켜주소서.

57 장 — 조 직

나는 1861년 8월 3일에, 우리 교회가 조직되면 바벨론이 될 것이라고 몇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중앙 뉴욕에 있는 교회들은 완전한 바벨론, 곧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질서를 실천하고 강요할 수 있도록 교회가 조직되지 않을 것 같으면, 미래에 있어서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조각이 되어 흩어져 버릴 것이다. 이전의 교훈들은 분열의 요소를 장려해 왔다. 세우기 위한 것보다 살피고 비난하기 위한 정신을 품어 왔다. 만일, 하나님의 종들이 연합해서 그들의 위치를 지키고 과단성 있게 일해 왔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일치시키는 감화가 존재했을 것이다. 분리시키는 장애물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안식일 준수자들의 대열에는 지금껏 우리가 목격하지 못한 놀라운 능력과 힘이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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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들이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여행하면서 목회에 종사하는 다른 형제들의 반대의 영향을 목격할 때, 그들의 마음은 슬퍼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어온 매 진보의 단계마다 그것을 반대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선 사람들이 있다. 담대하게 일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동료 일꾼들 편에 있는 연합의 부족 때문에 슬프고 괴로워진다. 우리는 엄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단과 악한 천사들은 강력한 힘으로 또한 세상을 도움의 대상으로 삼아 일하고 있다. 엄숙하고 중요한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자칭 안식일 준수자들은 그들의 힘을,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바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흑암의 세력의 병합된 영향력과 연합시킨다. 그런 자들의 영향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개혁의 진전을 막는 자들의 소위로 기록된다.

조직 문제에 대한 동요는 현대 진리를 증거하는 목사들 편에 도덕적 용기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조직이 옳다고 확신한 몇 사람들은 담대히 일어서서 그것을 옹호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직을 원한다는 사실을 불과 몇 사람들에게만 알려 주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비겁한 침묵과 실천의 부족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책망과 반대를 무서워했다. 그들은 그들이 옳은 일이라고 믿는 바를 위하여 담대히 일어서기 전에 일반적으로 그들의 형제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그들을 살펴보았다. 백성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목사들의 발언을 듣고자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조직을 지지하는 말을 들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조직이 그릇된 것이라고 결정해 버렸다.

그러므로, 어떤 목사들은 조직을 지지하노라고 공언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으로 조직을 반대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영향력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서서 책임을 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모험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을 한 사람이 비난과 책망으로 상처를 받게 될 때, 그는 그 짐을 지기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 그의 곁에 서서 그의 무거운 짐을 같이 져야 할 그의 동료 일꾼들은, 그가 홀로 전쟁을 치르면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는지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짐을 지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고통과, 그의 번민과, 그의 눈물과, 그의 낙담과 실망을 주시하고 계신다. 그가 넘어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붙들어 일으키시고, 피곤한 자를 위한 안식과, 성실한 자에게 줄 상급을 그에게 가르쳐 주신다. 그리하면, 그는 다시 무거운 짐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 놓는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의 행동에 따라 상급을 받을 것을 보았다. 책임을 회피하는 자들은 마침내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다. 목사들이 함께 서야 할 때는 전쟁이 치열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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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장 —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의무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관하여 질문이 자주 되풀이 되었으며, 우리 자신들도 안식일을 받아들이는 가난한 가족들을 어떻게 신중히 다룰 것인지에 대해 알고자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나는 1861년 8월 3일 뉴욕 주 루스벨트에 있는 동안, 가난한 자들에 관하여 몇 가지 것들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형제들이, 이 기별을 받아들이는 모든 가난한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목사들은 자금의 고갈로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근면과 검약의 부족으로 가난하게 산다. 그들은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만일, 그들이 도움을 받을 것 같으면 그들은 오히려 손해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가난할 것이다. 그들이 최선의 유익을 얻으려면, 그들의 상황에서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올바른 계획을 세우지 않음으로 적든 많든 간에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재물을 다 사용해버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빚에서 벗어나고 어려운 때에 대비하기 위하여 극기하고 절약하는 것을 전혀 모른다. 만일, 교회가 그들 자신의 재력에 의존하도록 그런 사람들을 버려 두지 않고 돕는다면, 결국 그들에게 손해를 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벌이가 좋을 때에도 교회를 바라보고, 교회에서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고, 극기와 절약을 실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번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사단의 유혹을 받아 형제들을 질투하고 그들에 대하여 매우 민감해진 나머지, 그들이 자기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하게 된다. 잘못은 그들 편에 있다. 그들은 기만당하고 있다. 그들은 가난한 주님의 백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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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교훈은 이 같은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불행을 당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연단하고 시험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섭리로 사람들을 고통받게 하셨다. 교회에 축복이 됨을 입증하기 위하여 과부들과 병약자들이 교회에 존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진정한 품성을 계발시키고 우리의 자비로운 구속주에 의하여 나타난 품성의 귀중한 특성들이 발휘되도록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편들 중 일부이다.

독신으로 있을 때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부양할 길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하여 가족을 거느리게 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이 가정을 다스리지 않는 점이다. 가정에서 취하는 그들의 모든 행동은 태만하고 게으른 습관으로 특징 지어진다. 그들은 스스로를 거의 제어하지 못하고, 화를 잘 내고, 참을성이 없고, 변덕스럽다. 그런 사람들이 기별을 받아들일 때, 그들은 그들보다 부한 형제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만일 그들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교회에 대하여 불평하고, 형제들이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경우에 누가 어려움을 당해야 할 것인가! 이 많은 가난한 가족들을 돌보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이 활기를 잃고, 여러 곳에 있는 재원이 고갈되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안식일 진리를 받아들인 후에는 그 전에 당한 것보다 더 큰 어떤 결핍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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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 중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극복하지 않으면 분명히 멸망을 초래할 죄악이 있다. 그들은 상스럽고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습관을 가진 그대로 진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조잡한 상태를 보고 깨닫는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게 되고, 그와 같은 상태는 또한 그리스도의 품성과 일치되지 않는다. 그들은 보다 양순하고 세련된 사람들을 교만한 자로 간주한다. 그대는 그들이, “진리가 우리 모두를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를 끌어내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다. 진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취미를 세련되게 해주고, 그의 판단력을 거룩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천하면, 그는 하나님의 도성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교제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된다. 진리는 우리 모두를 일정한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다.

좀더 역량 있는 자들은 가난한 형제들을 취급함에 있어서 언제나 고상하고 관대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훌륭한 충고를 해주고, 그들이 생애의 싸움을 감당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가난한 과부들과 고아들과 병약자들을 돌봐 주어야 할 가장 엄숙한 의무가 교회에 있음을 보았다.

59 장 — 모본의 힘

디도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서 2장 13, 14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읽게 된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親)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위대한 과업은 자원하여 정결해지고자 하고 특별한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들과, 선한 일에 열심하는 자들에게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결케 하는 과정을 꺼려 하고 있는가! 그들은 진리를 실천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 유별나게 보이기를 원치 아니한다.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성과 순결과 열성은 파괴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감각을 마비시켜, 그들의 양심이 그릇된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과 세상 사람들과의 구별의 표가 사라지게 하고자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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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복에 관하여 질문하는 편지를 빈번히 받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기록한 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세상의 유행을 본받고 있는 것으로 내 앞에 제시된 바로 그 부류의 사람들은 영향을 받거나 개혁을 하기에 매우 느리고 좀처럼 그렇게 할 것 같지 않았다. 또, 의복에 대한 취미와 규모가 없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내가 기록한 것을 이용하여 반대의 극단으로 치우쳐, 그들 자신은 교만을 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산뜻하고 규모 있게 옷을 입은 사람들을 교만한 자로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옷을 아무렇게나 괴상하게 입는 것을 특별한 미덕으로 여겨 왔다. 그런 사람들은 불신자들에 대한 그들의 영향을 파괴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유익을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혐오를 느끼게 한다.

이상들은 교만과 세상의 유행을 본받는 일을 책망했고, 복장과 몸과 의복의 청결이 부족한 자들을 또한 책망했다. 특별히, 나는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고 특별히 영광스럽게 하신 창조주를 우리가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태도로 그 날에 하나님 앞에 나타나기 위하여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을 보았다. 안식일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은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단정하고 규모있게 입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결과 무질서를 불쾌히 여기시고 불경의 모든 증거를 주시하시는 엄격하신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햇빛 가리는 모자 외에는 그들의 머리에 어떤 것이나 쓰면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사람들은 매우 극단으로 치우친다. 단정하고 검소한 밀짚 모자나 견직물 모자를 쓰는 것이 교만이라고 불리어질 수는 없다. 우리의 믿음이 실천되기만 하면, 우리를 의복에 있어서 매우 검소하게 해주고 선한 일에 열심 있게 해줄 것이므로, 우리는 특별한 백성으로 특징 지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복에 있어서 규모와 단정의 멋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사실상 진리에서 떠나게 된다. 진리는 결코 타락시키지 않고 향상시켜주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안식일 준수자들을 뒤떨어진 사람으로 본다. 그리고, 안식일 준수자들이 의복을 등한히 하거나 그들의 태도가 조잡하고 거칠게 되면, 그들의 영향은 불신자들이 내린 결론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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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의 위기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겸손과 극기의 모본 되시는 분을 본받지 않는 자들은 원수의 대열에 스스로를 놓게 된다. 원수는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간주하고, 그들은 그의 백성들 중 어떤 사람이 하는 것처럼 그를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실상은 죽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공언을 하지 않았으면 그들의 모본은 배척되었을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모본으로 삼아 그들을 따름으로써 하늘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같이 헌신하지 못한 공언자들은 그들의 영향력의 비중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매우 심한 갈등을 안겨 준다. 바울은 디도서 2장 15절에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바라고 있는 백성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고 그는 말한다.

교만과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일을 반대하는 증언을 할 때, 우리는 변명과 자아 변호의 말을 듣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모본을 내세운다. 그런 자매는 후프를 낀 옷을 입는다. 내가 후프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 자매 역시 잘못이다. 어린이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부모를 둔 다른 어린이들의 모본을 내세운다. A 형제는 교회의 집사이다. 그의 자녀들은 후프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옷에 후프 사용하는 것이 그들보다 더 나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모본을 통하여, 헌신하지 못한 공언자들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을 대적하는 이론을 제공해 주는 자들은, 약한 자들의 길에 걸려 넘어지는 돌을 놓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모본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이따금, “후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내가 받은 빛을 그대들에게 전해 주었다는 대답을 한다. 나는 후프가 수치스러운 것이며, 그처럼 어리석은 정도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행에 전혀 호의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때때로 “화잇 자매가 작은 후프를 사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는 것을 듣고 놀란다. 어떤 사람도 나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후프에 관하여 내가 가진 견해를 본 후, 어떤 경우도 후프를 사용하도록 어떤 사람에게 권유할 수는 전혀 없었다. 무거운 누비 이불과 후프는 다 같이 불필요하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서는 후프나, 후프와 비슷한 어떤 것으로 흉하게 되도록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의 허구 (虛構) 와 유행에 너무 오랫동안 지배되어 왔으므로, 그들은 그 사람들과 구별된 처지에 놓이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성경을 연구할 때, 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보고 놀란다. 그들은 우상 숭배에서 떠나도록 권고를 받고 있다. 나는, 그들이 잠들어 있고 세상과 너무도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구별하기가 어렵게 될까 두려워한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들 사이의 거리는 넓어져 가고, 그들과 세상과의 거리는 좁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과 세상 사람들을 구별하는 표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들은 주변에 있는 민족들의 가증한 일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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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바에 의하면, 후프는 가증한 것이다. 후프는 꼴사납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유행에 최소한의 정도로라도 따르거나 호의를 보인다면, 그들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곧 특별한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후프를 버려야 하고, 그들의 행동은 후프를 입는 사람들에게 실제적, 견책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를 내세울 것이다. 나는 많은 여행을 하면서, 후프를 사용하는데 따르는 많은 불편을 보아 왔다. 건강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우는 자들은, 후프가 누빈 치마보다 더 큰 손해를 줌에도 불구하고 겨울에 그것을 낀다. 자동차와 역마차로 여행하면서 나는 때때로, 아, 얌전한 맛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부르짖게 되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안으로 몰려 들어올 때 앞을 헤치고 나가기 위하여 후프를 들어 올려야 하고, 꼴사나운 모양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목격해 왔다. 몸의 노출은 후프를 사용하지 않는 자들보다 사용하는 자들이 십 배나 더 많다. 만일, 유행이 아닐 것 같으면, 이처럼 조심성 없이 자신을 노출시키는 자들은 꾸짖음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숙과 고상함도 유행의 신에게 바쳐지지 않을 수 없다. 주님께서 이 가증한 죄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건져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유행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후프를 사용할 때 약간의 편리가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것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는가? 유행이 바뀌면, 편리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는 “내가 어떤 점에서 세상과 분리되어있는가” 라고 물어 볼 의무가 있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안전한 편을 택하도록 하자.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그들의 정신에 참여하고, 그들과 같이 옷을 입고 이야기하고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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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장 9, 10절을 읽어 보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또한 베드로전서 3장 3-5절을 읽어 보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모본의 힘은 크다. A 자매는 작은 후프를 사용하고자 한다. B 자매는 내가 후프를 사용하는 것이 A 자매만큼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좀더 큰 것을 사용한다. 또한, C 자매는 A 자매와 B 자매를 본받아서 그들의 것보다 좀더 큰 후프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들의 후프가 작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것이 나쁜 일임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부모들은 힘겨운 투쟁을 겪게 된다. 그들은 이런 항의를 받게 된다. “어머니, 왜 A, B, C 자매들은 후프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나에게는 나쁘면서 그들에게는 나쁘지 않습니까?” 부모들이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그들은 자녀들 앞에 올바른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 비록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모본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가 그들을 제지하는데 지나치게 세심하고 가혹하다고 생각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양심적인 부모들의 활동을 축복하실 것이다. 만일, 부모들이 결정적이고 확고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의 자녀들은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이다. 사단과 악한 사자들이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고 있고, 헌신하지 못한 믿음의 공언자들의 모본이 극복하려는 그들의 일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열렬한 기도로, 믿는 부모들은 의무의 거친 길에서 전진해야 한다. 십자가의 길은 전진하는 길이요 위로 올라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길에서 전진을 계속하고 위에 있는 것을 구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점점 더 먼 거리에 남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 사람들과 육신의 마음을 가진 신앙 고백자들이 죽음을 향하여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고 있는 동안, 언덕을 올라가는 자들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역시 그 사람들과 함께 내려가게 될 것이다.

교회증언 1권 pp. 269-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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