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1 119-128 (12일)

18 장 — 부모의 책임

나는 부모들에게 중대한 책임이 지워져 있음을 보았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끌려 갈 것이 아니고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나에게는 아브라함이 제시되었다. 그는 가정에서 성실하였다. 그는 가족들에게 그를 따르도록 명령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기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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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또한 엘리의 경우가 제시되었다. 그는 자녀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악하고 비열해졌으며, 그들의 악이 이스라엘을 곁길로 가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와, 엘리가 자녀들을 제지하지 않음으로 이르러 올 무서운 저주를 사무엘에게 알려 주시면서, 그들의 죄가 제물이나 예물로 영원히 속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을 사무엘이 말하자, 엘리는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삼상 3:18) 는 말로 굴복하였다. 하나님의 저주가 곧 이르러 왔다. 그 악한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 백성 3만 명이 또한 살해되고, 하나님의 법궤가 원수들에게 빼앗겼다.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자, 엘리는 뒤로 넘어져 죽었다. 이 모든 재앙은 엘리가 아들들을 제지하는 일을 등한히 하였기 때문에 초래되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옛날에 이 같은 일을 유의할 만큼 세밀하신 분이었다면 이 마지막 시대에도 그것 못지 않게 세밀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다스리고, 그들의 감정을 바로잡아 주고, 그들을 차분하게 진정시켜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맹렬한 진노의 날에 그 자녀들을 분명히 멸망시키실 것이며, 자녀들을 제지하지 않은 부모들도 책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가족을 잘 다스려서, 그들이 잘 순종하게 해야 한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교회의 문제를 판단하거나 결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보았다. 그들은 먼저 가정에서 질서를 잘 유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들의 판단과 영향력이 교회에서 잘 발휘될 것이다.

최근에 이상이 더욱 빈번하게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교회가 이상의 진가를 올바로 평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임을 나는 보았다. 교회가 영성과 믿음을 거의 잃어버렸기 때문에, 책망과 경고가 그들에게 별반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상을 믿노라고 공언해 온 많은 사람들이 이상에 유의하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불신자들에게 이야기할 때 그 믿음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 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그 증거를 성경에서 제시하는 대신에 이상을 읽어 주는 지혜롭지 못한 길을 걸어왔다. 나는 이 같은 방법이 일관성이 없으며 불신자들이 진리를 반대할 구실을 삼게하는 길임을 보았다. 이상은, 그것을 결코 보지 못했고 그 정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 그러한 경우에 이상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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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장 — 하나님을 믿음

1855년 5월 5일, 미시간 주 배틀크릭에 있을 때, 나는 교회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믿음이 크게 부족함을 보았다. 그들은 너무 쉽게 낙심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그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다는 것을 너무 쉽게 믿고자 한다. 나는 이것이 너무 비참한 일임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그들을 위하여 주셔서 돌아가시게 할 만큼 그들을 사랑하셨고, 온 하늘은 그들의 구원에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들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처럼 친절하고 선량한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분은 당신에게 구하는 자들에게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고자 하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성령을 주고자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의 종들과 교회가 너무도 쉽게 낙심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구할 때, 그것들이 즉시 주어지지 않으면 그들의 믿음은 흔들리고, 그들의 용기는 사라지고, 불평하는 감정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일임을 보았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의 진정한 소원을 믿음으로 구하는 모든 성도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대의 기도에 즉각적인 응답을 얻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대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놓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 (요 16:24) 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신뢰하라. 하나님은 너무도 지혜로우시므로 실수하지 않으시며, 너무도 선하시므로 정직하게 행하는 당신의 성도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고 남겨 두지 않으신다. 사람은 실수가 많으므로, 비록 정직한 마음으로 소원을 아뢰었을지라도, 언제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나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만을 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지혜롭고 선량하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때로는 즉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 자신의 유익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것을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손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고, 우리가 구했을지라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손해가 될 어떤 것 대신에 우리에게 필요한 축복만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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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즉시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믿음을 굳게 붙들고, 불신이 들어오도록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확신은 강해야 한다. 그리하면, 가장 필요할 때에 축복이 소나기처럼 쏟아질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영과 축복을 받고자 기도할 때, 때때로 그것을 즉시 받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그 당시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에, 약해져서는 안 된다. 그대의 믿음은 주어질 약속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라. 그리하면, 그대에게 축복이 가장 필요한 때에 주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가 불신자들에게 진리를 제시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예기치 않은 도움을 얻어서, 분명하고 능력있게 그 말씀을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문제는 나에게, 자녀들을 사랑하는 육신의 부모에게 축복을 구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제시되었다. 그들은, 부모들이 그들에게 해가 될 줄 알고 있는 어떤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 대신에, 그들에게 유익하고 건전한 것을 주게 된다. 나는 진정한 마음에서 믿음으로 드리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과, 그 기도를 드린 자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축복을 받되 그의 기대를 훨씬 초월한 축복을 받을 것을 보았다. 진실한 성도가 정직한 마음으로, 또한 믿음으로 드린 기도는 결코 허사로 돌아가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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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장 — “메신저” 파

1855년 6월, 뉴욕 주 오스웨고에 있을 때,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장애물에 눌려 있는 것과, 장막 안에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진리가 뉴욕에서 더 이상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더 이상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졌으므로, 하나님의 사업은 조금밖에 발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종들 중 많은 사람들이 낙심 상태에 빠져 있었다. “메신저” 파가 생겼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거짓된 혀와 그릇된 설명으로 어느 정도의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꾸준하게 참아야 할 것이다. 이제, 그들이 우리를 떠나갔으므로, 그들이 우리와 함께 머물러 있었을 경우에 그들의 영향력으로 하나님의 사업에 끼칠 손해만큼은 이 사업이 손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내에 있는 것 때문에 교회에 대하여 불쾌히 여기신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형제들도 그 곳에 있게 하지 않았지만 가장 뛰어난 위치에 처하기를 원한다. 이기심과 교만이 그들의 행동을 특징 지어 왔다. 그런 사람들이 가서 같은 종류의 사람들끼리 목초지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이제 열려 있다. 이제, 하나님께서 자비롭게도 그들을 교회에서 제거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 중 많은 자들이 그들 스스로의 길로 가서 자기들의 행위에 배부르도록 버려 두셨다. 흥분과 동정이 오늘날 그들을 이끌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사람들을 기만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직한 사람은 이 무리들의 진상을 깨닫고,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들과 함께 남아서 진리를 굳게 붙들게 될 것이며, 그들 스스로의 길대로 가서 자기들의 행위에 배부르도록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겸비한 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개혁할 기회를 주시고, 자아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그 밖의 죄들을 깨달을 수 있는 빛을 주셨지만, 그들이 거기에 유의하지 않은 것을 보았다. 그들이 개혁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도 그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종들과 교회가 스스로를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에 바칠 것 같으면, 진리는 효력을 나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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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나서 갑옷을 입어야 할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오고 계신다.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전하는 사업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기별을 떠나서 “메신저” 파가 가르치고 널리 보급시켜 놓은 것과 같은 거짓말과 그릇된 설명과 비방 등에 대답하기 위하여 내려갈 수 없다. 진리 곧 현대 진리를 우리는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큰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려갈 수 없다. 사단은 현대진리와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우리의 마음을 떠나게 하고자 이 모든 일에 개입한다. 천사는, “예수님께서 그것을 모두 아신다” 고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그들의 진상이 밝혀질 날이 온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몸으로 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거짓 혀는 중단될 것이다. 시온에 있는 죄인들은 놀라게 될 것이며, 위선자들은 공포에 싸일 것이다.

21 장 — 주 만나기를 예비하라

나는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지연시켜서는 안 될 것을 보았다. 천사는 말하였다. “세상에 임할 일을 위하여 예비하라, 예비하라. 그대의 행위를 그대의 믿음과 일치되게 하라.” 나는,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하고, 우리의 감화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대변해야 할 것을 보았다. 우리는 부주의하고 무관심하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우리는 낙심상태에 있으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열심을 품어야 한다. 이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그 밖의 것은 무엇이나 둘째가 되게 해야한다.

나는 하늘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나는, 천사들이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예수님께 찬양과 영광과 존경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때 하나님의 아들의 놀라운 사랑을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분은 하늘에서 가지신 모든 영광과 명예를 버리셨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에 너무 큰 관심을 가지셨기 때문에 사람이 그분께 과할 수 있는 온갖 모욕과 멸시를 꾸준하고 겸손하게 참으셨다. 그분은 상처를 입으시고 구타를 당하시고 찔림을 겪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피로 씻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고 계신 집에서 당신과 함께 살게 하고, 하늘의 빛과 영광을 누리고, 천사들의 노래를 듣고 그들과 함께 노래하게 하시고자, 갈바리의 십자가에 달리셔서 가장 고통스런 죽음을 당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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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 하늘이 우리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구원을 얻느냐 잃어버린바 되느냐 하는 것이 사소한 일처럼 부주의할 것인가! 우리를 위하여 치러진 희생을 경하게 여길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했다. 그들은 받은바 자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쾌히 여기신다.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키지 못할 것이다. 조금만 더 근심시키면, 그분께서는 떠나가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로 예수님께서 제공해 주신 자비를 등한히 할 것 같으면 죽음이 그들의 몫이 될 것인데, 그 죽음은 참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죽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거절한 구속의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느끼신 그 고통을 느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영생과 불멸의 유업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불된 놀라운 희생은 영혼들의 가치가 어떤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귀중한 영혼을 일단 잃어버리게 되면, 그것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다.

나는 한 천사가 손에 저울을 들고 서서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젊은이들의 관심을 달아 보는 것을 보았다. 그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하늘로 향하는 생각과 관심이 실려 있고, 다른 쪽 접시에는 땅으로 향하는 생각과 관심이 실려 있었다. 이 접시에는 소설책을 읽는 것과 의복과 외모, 허영, 교만 등에 관한 생각들이 실려 있었다. 아, 얼마나 엄숙한 순간인가! 하나님의 천사들은 저울을 들고 서서 하나님의 자녀로 공언하는 자들, 곧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았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생각을 달고 있다. 세상과 허영과 교만 등에 대한 생각을 실은 저울의 접시는 수시로, 무게의 기복이 심하기는 할지라도 빨리 밑으로 쳐져 내려갔다. 하늘로 향한 생각과 관심을 실은 저울의 접시는 다른 쪽이 내려감에 따라 빨리 올라갔다. 아, 그것은 얼마나 가벼웠던가! 나는 내가 본 광경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천사가 저울을 들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각과 관심을 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마음속에 새겨진 엄숙하고 생생한 인상은 결코 표현할 수 없다. 천사는 말하였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결코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소망은 헛된 것이므로, 그들이 신속히 회개하고 구원을 얻지 못하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그들에게 알려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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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모양은 어떤 사람도 구원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깊고 산 경험을 해야 한다. 오직 이것만이 환난의 때에 그들을 구원할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의 공력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시험받게 될 것이다. 만일, 그것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일 것 같으면, 그들은 여호와의 은밀한 장막에 숨기어지는 것처럼 숨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력이 나무나 짚이나 풀일 것 같으면, 어떤 것도 여호와의 맹렬한 진노에서 그들을 가리워 줄 수 없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물론이요 젊은이들도, 그들의 소망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좋은 사물을 위하여 계획하시고 완전히 그분만을 섬기도록 창조하신 사람들의 마음은 영원한 사물에 대한 관심 대신에 어리석은 것들을 생각해 왔다. 여기 저기 방황하도록 방치되어 있는 마음은, 외모와 예절과 의복 등을 연구하는 것처럼,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할 증거와, 그리스도인 소망의 참된 기초 등도 이해할 수 있다. 어리석은 소설과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즐기도록 마음을 방치해 둔 자들은 상상력을 충족시켰을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말씀의 광채는 그들에게서 가리워져 있다.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떠나고, 그분의 귀중한 말씀에 관한 관심은 소멸된다.

이 어둔 세상의 위험을 뚫고 우리의 발길을 하늘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한 책이 주어졌다. 그 책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받으신 그리스도의 고난, 곧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하여 치러진 큰 희생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빛이 주어진 이 땅에서 진리를 듣고서도 마침내 부족함이 드러나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 될 것이며,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과, 마지막 일곱 재앙을 피하는 법을 알려 준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알고자 하는 관심이 없었다. 다른 사물들이 마음을 채우고 우상을 간직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은 등한히 여겨지고 경솔히 여김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 의하여 경하게 여겨졌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그분의 거룩한 말씀이 그들을 심판할 때, 그들은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어리석은 소설 때문에 등한히 해 온 그 말씀이 그들의 생애를 심판한다. 그 말씀은 표준이다. 그들의 동기와 말과 행동과, 그들이 시간을 이용한 방법 등이 모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된다. 그러므로, 그때에 그들의 부족이 드러나면, 그들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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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피차간에 평가하고, 그들의 생애를 다른 사람들의 생애와 비교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우리에게 모본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분이 우리의 참된 모본이므로, 각 사람은 그분을 닮는 일에 뛰어나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역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원수의 동역자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모으는 자가 되지 않으면 흩어 버리는 자가 된다. 우리는 확고하고 전심 전력하는 그리스도인이거나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5, 16) 고 말씀하신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자아 부정이 무엇이며 희생이 무엇인지, 진리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희생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극기와 희생의 정신을 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제단 위에 자기 자신, 그들의 몸을 희생 제물로 바치지 않았다. 그들은 조급하고 변덕스러운 기질에 사로잡히고, 그들의 식욕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사업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개인적 이익만 도모한다. 영생을 위하여 어떤 희생이라도 즐겨 감수하고자 하는 자들은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영생은 그것을 위하여 고난을 당할 가치가 있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모든 우상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리고, 세상의 온갖 쾌락을 가리워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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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2 — 교회에 대한 증언

22 장 — 두 길

1856년 5월 27일 배틀크릭 총회에서, 나는 주로 교회에 관련된 일을 이상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천사는 말하였다. “하나님은 그 위엄이 두렵지만, 그대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분의 진노가 무섭지만, 그대들은 날마다 그분을 거스린다.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눅 13:24; 마 7:13, 14). 이 길들은 서로 구별되고, 분리되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한 길은 영생으로, 다른 길은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한다. 나는 이 두 길이 다른 것과, 그 길로 여행하는 자들이 다른 것을 보았다. 그 길들은 서로 반대되는데, 한 길은 넓고 평탄하고, 다른 길은 좁고 험하다. 그러므로, 그 길로 여행하는 자들도 품성과 생애와 의복과 대화에 있어서 서로 반대된다.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여행 끝에 가질 기쁨과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은 가끔 슬픈 빛을 띠나, 자주 거룩하고 성스러운 빛으로 빛난다. 그들은 넓은 길에 있는 무리처럼 옷입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한 분의 모본이 주어져 있었다. 슬픔에 처한 자요 질고를 아는 자께서 그들을 위하여 그 길을 여셨고, 친히 그 길로 걸어가셨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그분의 발자취를 보고 위로와 기쁨을 얻는다. 그분께서는 안전하게 지나가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한, 그들 역시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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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용모와 의복과, 그 길에서 얻는 쾌락 등에 몰두한다. 그들은 마음 놓고 쾌락에 몰두하고, 그 길 끝에 있는 분명한 멸망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그들은 그들의 멸망에 접근해 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미친 듯이 점점 더 빨리 달려 가고 있다. 아, 나에게는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섭게 보였던가!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너희는 예비하라” 는 말을 그들의 옷에 기록한 많은 사람들이 이 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얼굴에 보이는 슬픔의 그림자 외에는 그들 주변에 있는 허망한 자들과 꼭 같아 보였다. 그들의 대화는 그들 주변의 경박한 자들의 대화와 꼭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그들의 옷에 쓰여 있는 글자를 지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것과 같은 글자를 쓰도록 요구했다. 그들은 넓은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좁은길을 가고 있는 자들에게 속한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하였다.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도 꼭 같다. 우리도 꼭 같이 옷을 입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 후에, 나는 1843년과 1844년을 뒤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 찾아볼 수 없는 헌신의 정신이 있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세상과 일치되는 것,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자 하지 않는 것 등을 보았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일이 크게 부족함을 보았다. 나는 애굽을 떠난 후의 이스라엘 백성을 뒤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방해나 제지를 당하지 않고 당신을 경배할 수 있게 하시고자 그들을 애굽에서 자비롭게 불러내셨다. 하나님께서는 도중에 그들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시고, 그들을 어려운 지역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심으로 그들을 시험하고 연단하셨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그들을 취급하시고 그처럼 여러 번 구원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시험과 연단을 받을 때 불평하였다. 그들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 (출 16:3) 이라고 원망의 말을 하였다. 그들은 애굽의 파와 마늘을 갈망했다.

교회증언 1권 pp. 11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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