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을 배격하는 능력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 (사 8:19, 20) 리라. 만일 사람들이 사람의 본질과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하여 성경이 그처럼 분명하게 말한 진리를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강신술의 주장과 그 이적에서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을 수반하는 사단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생각에 부합되는 자유를 택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죄를 버리지 아니하고 그들의 눈을 빛에서 돌이켜 바른 길을 걷지 않고, 사단이 그들의 주위에 올무를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를 무시하고 그의 포로가 된다.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라…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 (살후 2:10, 11) 심이다.
이 강신술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사단과 그의 사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들은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로 더불어 싸워왔다. 사단은 하늘 사자들의 능력으로 격퇴하지 않으면 한 치의 땅도 물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 구주께서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그를 대항하셨던 것처럼 능히 그를 대항할 수 있다. 사단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당시와 같이 성경 말씀을 인용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기만을 지지하기 위하여 성경의 교훈을 왜곡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위험한 시대에 설 자들은 성경의 증언을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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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친척이나 친구들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가장 위험한 이단설을 주장하는 악마의 영들과 대결하게 될 것이다. 이 영들은 가장 부드러운 우리의 동정심에 호소하며,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하여 이적들을 행할 것이다. 우리는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므로 이렇게 나타나는 것은 악마의 영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가지고 그들을 대항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 (계 3:10) 가 우리 앞에 박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믿음을 굳게 세우지 아니한 모든 자들은 기만당하여 패배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그의 속임수를 더 계속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사람들이 그의 유혹에 자원하여 넘어질 때에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진리의 지식을 열심으로 탐구하고 순종함으로써 그들의 심령을 정결케 하고자 애쓰고, 이와 같이 함으로 싸움을 위하여 준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안전한 방어책을 발견할 것이다. 구주께서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 (계 3:10) 리라고 언약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한 사람이 사단에게 정복당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자 즉시 천사를 보내 주실 것이다.
악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주고자 하는 무서운 기만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사 28:15). 여기에 묘사된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는 완고하고 회개하지 아니함으로써 죄인에게 형벌이 없으며 사람이 아무리 타락할지라도 모두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특별히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한 자라는 말은 환난의 날에 의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늘이 제공한 진리를 버리고 그 대신에 사단이 제공한 거짓 피난처, 곧 강신술의 속임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더욱 강력하게 지적하기 위하여 사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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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이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취하는 맹목적인 일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하여 거절하면서 사단의 기만은 열광적인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인다. 회의론자와 조롱하는 자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믿음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완고하다고 비난하고, 그리스도와 구원의 경륜과 진리를 거절한 자들이 받을 형벌에 관한 성경의 엄숙한 선언을 조롱함으로써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장을 인정하고 그분의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 매우 편협하고 어리석고 미신적인 일이라 하여 그런 이들을 오히려 가련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사망과 언약하고 음부와 맹약한 것처럼, 곧 그들과 하나님의 보응 사이에 통할 수도 넘어갈 수도 없는 장벽을 세운 것처럼 의견을 공포한다. 그들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완전히 유혹자에게 굴복당하고, 그와 너무도 밀접히 연합되고, 그의 정신을 너무도 완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의 올무를 깨뜨리고 나올 능력도, 의향도 없다.
사단은 오랫동안 온 세상을 기만하는 그의 마지막 운동을 위하여 준비하여 왔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창 3:4, 5) 리라고 하와에게 한 말로써 그의 사업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강신술의 발전을 통하여 그의 기만의 절정을 향한 길을 한 걸음씩 준비해 왔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아직까지 완전히 성취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남아 있는 마지막 시기에 그것을 실현할 것이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 16:13, 14).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온 세상이 그 기만의 대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사람들은 이 치명적인 기만에 굳게 사로잡혀 있다가 오직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그때에야 깨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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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사 28: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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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장 — 위협당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
변해 가는 개신교회
오늘날 로마교는 이전보다 훨씬 더 호감으로 개신교의 인정을 받고 있다. 천주교가 우세하지 못한 나라들에서는 법왕 교도들이 세력을 얻기 위하여 융화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개혁교회들과 법왕의 교권 제도를 분리시키는 그 교리들에 관하여 점차적으로 무관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개신교도들이 지금껏 생각해 왔던 것만큼은 중요한 점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과 우리 편에서 조금만 양보하면 로마교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세력을 더해가고 있다. 일찍이 개신교도들은 매우 고귀한 값을 지불하고 얻은 양심의 자유를 높이 평가한 때가 있었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법왕교를 거부하도록 가르쳤고 로마교와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충성한 일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표현되고 있는 의견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법왕권을 옹호하는 자들은 그 교회가 중상을 받아왔다고 주장하며, 개신교계에서도 그 말을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무지와 암흑의 세기 동안에 그 교회의 지배의 특징이 되었던 포학과 모순으로 오늘날의 그 교회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두려운 잔인성을 그 시대의 미개함에 돌리고 근대 문화의 영향이 그 교회의 생각을 변화시켰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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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은 그 거만한 세력이 8백 년 동안 주장해 온 법왕 무류설을 잊어버렸는가? 그 주장은 철회되기는커녕 도리어 19세기에 있어서는 이전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로마교는 “교회는 결코 오류가 없었고, 성경 말씀에 따르면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John L. Von Mosheim, Institutes of Ecclesiastical History, book 3, Century 11, part 2, chapter 2, section 9, note 17) 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로마 교회가 과거에 지배되어 온 원칙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법왕 교회는 그 무류설을 결코 철회하지 아니할 것이다. 법왕 교회의 교리를 부인한 자들에게 자행한 온갖 박해를 그 교회는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동일한 일을 반복하지 아니하겠는가? 현재 세속적 정부들에 의하여 과해져 있는 억제가 제거되고 로마교가 이전의 권세를 회복하게 되면 그의 박해와 학정이 급속히 부활될 것이다.
북미 합중국에서의 로마교
어떤 유명한 저자는 양심의 자유에 대한 법왕권의 태도와 그 정책의 성공으로 특별히 북미 합중국을 위협하는 위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북미 합중국이 로마 천주교에 대하여 느끼는 불안을 종교적 편협이나 유치한 태도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로마 천주교의 특성과 태도에서 우리의 자유로운 제도에 적대적인 것을 아무것도 보지 못하거나 아니면 로마 천주교의 성장에서 불길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먼저 우리 정부와 천주교의 근본 원칙의 몇 가지를 비교해보자.
북미 합중국의 헌법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보다 더 귀중하고 근본적인 것은 없다. 그런데 법왕 피우스 9세는 1854년 8월 15일자의 동문 통달 (同文通達) 에서 ‘양심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불합리하고 그릇된 교리나 헛소리는 가장 유해한 오류로서 한 국가에 있어서 어떤 다른 것보다 가장 두려운 해를 끼치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또한 그 법왕은 1864년 12월 8일부의 동문 통달에서 ‘양심과 예배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와 또한 ‘교회가 폭력을 쓰지 말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자들’을 저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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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어서의 로마교의 평화적 태도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찌할 수 없는 경우에 관대한 태도를 취한다. 오 커너 감독은 말한다. ‘종교 자유는 반대가 천주교계에 해를 끼침 없이 수행될 수 있을 때까지만 허용된다.’…세인트 루이스 대감독은 한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단과 불신은 죄악이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와 스페인처럼 국민 모두가 천주교도이며, 또한 천주교가 그 국가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교국에 있어서는 이단과 불신은 다른 범죄와 같이 처벌될 것이다. …’
천주교회의 모든 추기경과 대주교와 주교들이 법왕에게 하는 충성의 맹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 있다. ‘나는 이단자들과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 그리고 주 (법왕) 와 그 후계자를 반역하는 자를 극력 반대하고 박해하겠나이다.’” (Josiah Strong, Our Country, ch.5, pars.2~4).
로마교 내에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교회에 속한 무수한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빛을 따라 최선껏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도록 용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와 단지 형식과 의식만을 반복하는 것과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혼미하고 만족을 줄 수 없는 신앙의 교육을 받은 그들을 긍휼이 많은 자비의 눈으로 주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두르고 있는 짙은 암흑을 꿰뚫을 수 있는 빛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의 진리를 그들에게도 계시해 주실 것이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그들의 입장을 같이 하게 될 것이다.
로마교의 세력 확장
그러나 오늘날도 로마교의 제도는 과거의 역사에서처럼 그리스도의 복음과 전혀 조화되지 아니한다. 개신교회들은 큰 암흑 속에 묻혀 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였을 것이다. 로마교는 그의 계획과 경영 방식이 매우 원대하다. 그는 그의 세력을 넓히고 전 세계를 지배할 세력을 다시 얻고, 박해를 부활시켜서 개신교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없애 버리기 위한 치열하고 결정적인 투쟁을 준비하기 위하여 온갖 계책을 다 써서 그의 영향력과 권세를 증가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오늘날 도처에서 로마교는 세력을 얻고 있다. 개신교 국가들에서 로마교의 교회당과 교인수가 증가되고 있는 것을 보라. 미국에서 개신교도들의 광범위한 후원을 받고 있는 로마교의 대학들과 신학교들의 인기를 생각해보라. 영국에서의 의식주의 (儀式主義) 의 성장과 로마교의 대열에 가담하기 위한 빈번한 탈회 행위를 보라. 이런 일들은 복음의 순수한 원칙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의 깊은 우려를 일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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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로마교에 손을 내밀어 후원해 오고 있다. 그들은 로마교들도 놀라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타협하고 양보하였다. 사람들은 로마교의 진상과 그가 최상권을 잡게 될 때 생길 위험들에 대하여 그들의 눈을 감고 있다. 사람들은 정치와 종교 자유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이 원수의 진격을 저항하기 위하여 각성할 필요가 있다.
많은 개신교도들은 로마교가 매력적이 아니며 그 예배 역시 어리석고 무의미한 의식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그들은 오해하고 있다. 비록 로마교가 기만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을지라도 그것은 조잡하고 졸렬한 모양으로 가장되어 있지 않다. 로마교의 예배 의식은 가장 인상 깊은 의식이다. 그 화려한 장식과 엄숙한 의식은 사람들의 감각을 매혹하고 이성과 양심의 소리를 침묵시킨다. 그 눈은 황홀해진다. 웅장한 교회당, 당당한 행렬, 황금빛 제단, 보석으로 장식한 신단, 정선된 그림들, 정교한 조각들은 사람들의 미적 감각에 호소한다. 귀도 또한 황홀해진다. 그 음악은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 은은하면서도 풍성한 오르간 소리, 웅장한 성전의 높은 천장과 둥근 기둥으로 구분된 복도를 통하여 울려오는 무수한 음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은 경이감과 숭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