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77일

거룩한 산 제물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은 이와 같이 사람을 유혹에 빠뜨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의 교리를 반대한다. 은혜를 받는 데 필요한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참람된 억측이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은 성경의 약속과 법도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요구 중 한 가지를 고의적으로 범하면서 거룩해질 수 있다는 신조를 가지고 스스로 속지 말라. 죄인 줄 알면서 범하게 되면 깨우쳐 주는 성령의 음성을 침묵케 하고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한다. “죄는 불법이며”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 (요일 3:4, 6) 다. 요한은 그의 편지서들을 통하여 사랑을 충분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애를 하면서도 거룩하게 될 수 있노라고 주장하는 부류에 속한 사람들의 참 모습을 나타내기에 주저하지 아니한다.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 (요일 2:4, 5) 느니라. 여기에 모든 사람의 신앙 고백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서 성결의 표준으로 정해 주신 유일의 척도로 재어 보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도 성결하다고 할 수 없다. 도덕적 율법의 가치를 느끼지 않는 자들, 하나님의 계명을 소홀히 하거나 등한히 여기는 자들,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범하고 또 그렇게 남을 가르치는 자들은 하나님의 눈에 존중히 여겨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73- 

죄가 없노라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성결에서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증거가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순결과 성결에 대한 진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품성과 일치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할 때, 또한 예수님의 순결과 고상한 모습, 그리고 사악하고 지독한 죄의 성질에 대하여 진정한 개념을 깨닫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성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이 자기와 그리스도와의 거리를 멀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의 요구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자신이 자기 자신의 눈에 의롭게 보인다.  

성경에서 설명한 성화는 전인, 곧 영과 혼과 몸을 다 포함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고 기도하였다. 그는 또한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고 편지하였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희생 제물들은 모두 엄밀히 검사되었다. 만일 제물로 드려진 짐승에게서 어떤 결점이 발견되면 그것은 거절당하였다. 왜냐하면 제물은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능력들을 최선껏 양호한 상태로 유지하여야 한다. 마음과 몸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창조주를 위한 봉사에 부적당하게 만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아닌 것을 드릴 때에 기뻐하실까? 그리스도께서는 “네 마음을…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로써 하나님께 최선의 봉사를 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능력을 촉진시켜 줄 율법과 조화되고자 그들의 모든 역량을 다하여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정욕이나 식욕에 빠짐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제물을 약화시키거나 더럽히지 아니할 것이다. 

-474- 

성화와 일상 생애 

베드로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11) 고 말한다. 죄악적인 갈망을 만족시킬 때마다 신체의 기능이 마비되고 영적·지적 감각력이 죽고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령의 감화는 마음에 빈약한 인상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된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후 7:1) 고 말했다. 그는 또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 (갈 5:22, 23) 와 같은 성령의 열매에 “절제”를 부가시켰다.  

영감으로 된 이런 말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유행을 따르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들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또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탐식과 음주와 금지된 쾌락을 통하여 그들의 고상한 인간성을 타락시키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이를 견책하는 대신에 오히려 식욕을 돋우어 주고 물욕과 연락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공급할 수 없는 교회의 자금을 보충하기 위하여 너무도 흔히 악을 권장한다.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날의 교회에 오셔서 종교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고 있는 연회와 부정한 거래들을 보신다면 그분께서는 일찍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내쫓으신 것과 같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런 자들을 내쫓지 아니하시겠는가?  

사도 야고보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고 말한다. 만일 그분께서 담배로 더러워진 입술로써 예수님의 귀하신 이름을 부르는 자, 담배의 악취로 그 입김과 전신이 더러워져 있는 자, 하늘의 공기를 더럽히고 그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독기를 마시게 하는 자들을 만나신다면, 곧 복음의 순결성과 전연 반대되는 행위를 하는 자들과 만나신다면, 그들을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라”고 견책하지 아니하시겠는가? 담배의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완전한 성화의 축복을 받았노라고 주장하며 하늘의 소망을 가졌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 (계 21:27) 한다고 주장한다.  

-475-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 20). 몸이 하나님의 성령의 전이 된 사람은 해로운 습관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능력은 피로써 값을 지불하고 그를 사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 그의 소유물도 주님의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자기에게 맡겨진 자본을 낭비할 때 어찌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막대한 금액을 쓸데없고 해로운 일들에 낭비하고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을 얻지 못하여 멸망해 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와 헌금을 도둑질하는 한편,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거나 복음사업을 유지하는 일보다 더욱 많은 것을 그들을 멸망시키는 정욕의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버린다.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성화되었을 것 같으면 그들의 재물은 쓸데없고 해로운 방종에 낭비되지 아니하고 주님의 보고로 돌아가게 되었을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절제와 극기와 자아 희생의 모본을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의 빛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특권 

세상은 자아 방종에 빠져 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고상한 부르심을 받고 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의하면, 세속적 만족과 죄악적 습관을 완전히 내어 버리지 않으면 성화가 진실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우리의 주장이 정당함이 입증된다.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조건에 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고후 6:17, 18) 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 속한 일에 풍부하고 풍성한 경험을 가지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의무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고 말씀하셨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 (잠 4:18) 른다. 믿음과 순종의 길은 매 걸음마다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세상의 빛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해준다. 의의 태양 되시는 그리스도의 밝은 빛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비칠 때 그들은 그분의 빛을 반사하게 된다. 마치 별들이 하늘에 큰 빛이 있어서 그 영광으로 저들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우주의 보좌에 찬양과 모본의 대상이 되기에 합당한 품성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좌정해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의 은혜와 그분의 품성의 순결과 성결은 그분의 증인들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될 것이다. 

-476-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풍성한 축복을 밝혔다. “우리도…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하시기를 원하노라” (골 1:9~11).  

그는 또한 에베소 교회의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특권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깨닫기를 바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그들에게 가장 의미 깊은 말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소유할 놀라운 능력과 지식을 열어서 보여 준다. “성령으로 말미암아…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그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도함으로 그 사도의 간구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엡 3:16~19).  

-477-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높은 표준이 여기에 밝혀져 있다. 그리고 그 표준에 도달할 때 우리는 그분의 요구를 이루게 된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느뇨” (롬 8:32).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셨으므로 우리들도 그 영으로 충만함을 입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3).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4).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그리스도인 생애는 겸손으로 특징지어져야 하지만 슬픔과 자아 열시 (自我劣視) 같은 것으로 특색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축복하시는 생애를 누리는 것이 각 사람의 특권이다. 우리가 언제나 죄의식과 흑암 아래 지내는 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머리는 숙이고 심중은 자아에 대한 생각으로 충만해 있으면 참된 겸손의 증거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께로 나아가 깨끗하게 되고 율법 앞에 부끄러움과 가책 없이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 (롬 8:1) 느니라.  

하나님에 의한 승리의 생애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 (히 2:11) 하신다. 그리스도인 생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승리와 기쁨의 생애가 되어야 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믿음이니라” (요일 5:4). 하나님의 종 느헤미야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 8:10) 고 한 말은 진실한 말이다. 바울은 말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478- 

그와 같은 일들이 성경상 회개와 성화의 열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밝혀진 의의 큰 원칙을 일반 그리스도교계에서 매우 등한히 여기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결과는 아주 드물게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일찍이 신앙 부흥의 특징이 되었던 하나님의 성령의 심오하고 영속적인 역사를 거의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된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과 거룩하심을 사람들에게 밝히 보여주신 거룩한 원칙들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교훈과 이론에 집착할 때 교회 안에서 산 경건성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초래되는 일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주님께서는 “내 백성이…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 2:13) 고 말씀하셨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1~3). 하나님의 율법이 다시 그 정당한 위치를 회복할 때에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초대 교회가 가졌던 믿음과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렘 6:16).  

Posted i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