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67일

새 언약에 의한 성소 

이상은 성경이 말해 주는 지상에 존재한 유일의 성소이다. 그것을 바울은 첫 언약의 성소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새 언약의 성소는 어떠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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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연구하는 자들이 히브리서를 다시 펴보았을 때 그들은 둘째 언약 곧 새 언약의 성소가 암시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에도”라는 말을 쓴 것은 바울이 이 성소에 대하여 이미 말했음을 암시해 준다. 그 전장 (前章) 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히 8:1, 2).  

여기 새 언약의 성소가 나타나 있다. 첫 언약의 성소는 사람이 치고 모세가 세운 것이었으나 이 성소는 사람이 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치신 것이다. 먼저 있던 성소에서는 이 세상의 제사장들이 봉사하였으나 나중 성소에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봉사하고 계신다. 먼저 것은 세상에 있었고, 나중 것은 하늘에 있다.  

더욱이 모세가 세운 장막은 식양 (式樣) 을 따라 지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 25:9, 40) 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다시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고 명령하셨다. 바울은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고 하였다” (히 9:9, 23, 8:5,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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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성소의 모형인 지상 성소의 구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시는 하늘에 있는 성소는 큰 실체 (實體) 이며, 모세가 지은 성소는 그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성소를 짓는 자들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셨다. 그리하여 그 구조에 나타난 공교한 기술은 모두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낸 것이었다. 벽은 하나의 큰 금덩이처럼 보이고 황금 등대의 일곱 등잔에서 발하는 빛은 성막의 내부를 사방으로 비추었다. 진설한 떡상과 향단은 마치 연마한 정금처럼 찬란하게 빛났고 천장은 청색 실과 자색 실과 홍색 실로 천사들의 형상을 수놓은 화려한 천으로 덮였었다. 둘째 휘장 안에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 곧 거룩한 쉐키나가 있었다. 그 앞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서 생명을 부지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찬란한 지상의 성막은 우리 앞서 가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시는 하늘 성소를 인류가 볼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을, 수종하는 자가 천천이요 시위하는 자가 만만이나 되는 만왕의 왕이 거하시는 곳 (단 7:10 참조), 그 시위하는 영화로운 스랍들이 경배하고 머리를 숙이는, 영원한 보좌가 있는, 영광으로 충만한 하늘 성소와 비교하면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한 건물일지라도, 그 무한한 영광과 웅장함에 대한 극히 희미하고 미약한 반영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상의 성소와 그 봉사를 통하여 하늘 성소에 관한 중요한 진리와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진행되는 주님의 봉사를 배우게 되었다.  

신령한 눈에 비추인 성소 

하늘 성소는 지상 성소를 통하여 두 칸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사도 요한이 계시 중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전을 보도록 허락되었을 때 그는 거기서 “일곱 등불 켠 것” (계 4:5) 을 보았다. 그는 또한 한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고…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계 8:3) 놓는 것을 보았다 여기에서 선지자는 하늘에 있는 성소의 첫째 칸을 보도록 허락되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일곱 등불 켠 것”과 향단을 보았는데, 그것들은 지상 성소에서 금등대와 향단으로 표시된 것들이었다. 요한은 또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 (계 11:19) 는 광경을 보았다. 그는 그 때에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지상 성소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넣어두기 위하여 모세가 만든 거룩한 법궤로 대표된 언약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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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그 문제를 연구하고 있던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의 존재에 대하여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 모세는 자기에게 보인 식양 (式樣) 을 따라 지상 성소를 지었다. 바울은 그 식양이 하늘에 있는 참 성소라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요한은 하늘에 있는 성소를 보았다고 증거한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 궁전의 보좌는 의와 공평이 그 기초가 되어 있다. 지성소에는 위대한 의의 원칙, 곧 전 인류의 심판의 표준이 되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다. 율법의 돌판을 넣어둔 법궤는 속죄소로 덮여 있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앞에서 당신의 피를 가지고 증인을 위하여 탄원하고 계신다. 이와 같이 인류의 구속의 계획에는 공의와 자비가 결합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결합은 오직 무한한 지혜만이 고안해 낼 수 있고, 무한한 능력만이 성취시킬 수 있다. 그것은 하늘을 경탄과 경외감으로 충만케 하는 결합이다. 지상 성소에 있는 천사들이 존경하는 태도로 속죄소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속죄 사업에 대한 하늘 천사들의 관심과 흥미를 보여준다. 이것은 천사들이 알기를 원하는 자비의 오묘이다. 그 오묘는 하나님께서 회개한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당신이 의롭게 되시는 것, 타락한 인류로 더불어 다시금 교제를 새롭게 하시면서 동시에 그분께서 의로우실 수 있다는 것,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무리들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구원하시려고 강림하시는 것, 그들에게 흠이 없는 당신의 의의 옷을 입히시고, 일찍이 타락한 일이 없는 천사들과 연합시키사 당신 앞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 등이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인류의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업은 “순 (나무의 싹) 이라 이름하는 사람”에 대하여 말한 스가랴의 아름다운 예언에 나타나 있다. 그는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아버지의) 위 (位) 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슥 6:12, 13) 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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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당신의 희생과 중보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교회의 기초와 건축가가 되신다. 사도 바울은 그분을 “모퉁잇돌”이라고 지적하고,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또한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0~22) 고 한다. 

“영광도 얻”으리라.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신 영광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다.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영원무궁토록 부를 노래는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계 1:5, 6) 는 노래가 될 것이다.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라. 아직 영광의 나라가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그 영광의 위에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중보자로서의 봉사를 마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실 것인데” 그것은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한 그 나라이다 (눅 1:32, 33).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으로서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앉아 계신다 (계 3:21 참조). 영원하시고 자존하신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분이시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다 (사 53:4; 히 4:15, 2:18; 요일 2:1). 그분께서는 당신의 무죄하신 생애와 상하고 찔림을 받은 몸을 가지고 중보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상하신 손과 찔림을 받으신 옆구리와 상처 난 발을 가지고 죄에 빠진 인류를 위하여 탄원하신다. 그들의 구속은 그처럼 무한한 값을 치르고 이루어졌다.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성자 (聖子) 의 사랑보다 약하지 않은 아버지의 사랑이 타락한 인류의 구원의 기초가 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가시기 전에 그들에게 “내게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요 16:26, 27) 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 (고후 5:19) 셨다. 하늘 성소의 봉사로써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을 이루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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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정결 

성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경은 분명한 해답을 준다.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소라는 말은 첫째, 하늘 성소의 식양을 따라 모세가 지은 장막을 가리키고 둘째, 지상의 성소가 가리키는 하늘에 있는 참 성소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형적 봉사는 끝났다. 하늘에 있는 참 성소가 새 언약의 성소이다. 그런데 다니엘 8장 14절의 예언은 현대에 성취될 예언이므로 거기 말한 성소는 새 언약의 성소가 되어야 한다. 2300주야가 끝나는 1844년에는 여러 세기 전부터 지상에 이미 성소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한 예언이 하늘에 있는 성소를 가리키는 것임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소의 정결이 무엇이냐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의문이 해답되지 아니한 채 남아 있다. 구약 성경은 지상 성소와 관련하여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봉사가 있었던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늘 성소에도 정결케 할 무엇이 있을까? 히브리서 9장에는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의 정결에 대하여 분명히 가르쳐 준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히 9:22, 23). 좋은 제물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모형과 실체에 있어서, 둘 다 정결하게 하는 일은 피로써 하는데, 먼저 것은 짐승의 피로 할 것이요 나중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정결하게 하는 일을 피로써 해야 할 이유를 말하면서 피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 한다. 사유하는 일, 곧 죄를 없이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런데 죄가 어떻게 하늘 성소와 지상 성소에 관련하여 존재할 수 있었는가? 그 사실은 표상적인 봉사에서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그 직분을 행한 제사장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 (히 8:5) 에서 봉사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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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성소의 봉사 

지상 성소의 봉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제사장들은 매일 성소에서 봉사하였고, 대제사장은 매년 한 번씩 성소의 정결을 위하여 지성소에서 특별한 속죄의 봉사를 행하였다. 죄를 뉘우치는 죄인은 날마다 그의 제물을 성막의 문으로 가지고 와서 희생 제물의 머리 위에 자기의 손을 얹고, 그의 죄를 고백함으로 그 죄는 상징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흠없는 희생제물에게로 옮겨졌다. 그런 다음에 그 짐승은 죽임을 당하였다. 사도 바울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 17:11). 하나님의 율법은 범죄자의 생명을 요구하였다. 죄인의 빼앗긴 생명을 나타내는 피, 곧 죄인의 생명을 대신하는 그 희생 제물의 피는 제사장으로 말미암아 성소로 옮겨져서 그 휘장 앞에 뿌려졌는데, 그 휘장 너머에는 그 죄인이 범한 율법을 넣어둔 법궤가 있었다. 이러한 의식을 통하여 죄는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성소에 옮겨졌다. 또 어떤 경우에는 피를 성소로 가져가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레 10:17) 고 한 지시대로 제사장이 그 고기만 먹었다. 그 의식들은 다 같이 죄가 회개한 자에게서 성소로 옮겨지는 것을 상징하였다.  

그와 같은 일은 일 년 내내 매일 진행된 사업이었다. 이스라엘의 죄는 성소로 옮겨졌는데, 그 죄를 도말하기 위하여 특별한 봉사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소와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라고 명령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또한 단을 위하여도 속죄가 이루어져야 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레 16:1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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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지성소로 들어갔다. 이 봉사로 말미암아 일 년간 매일 행한 봉사가 완결되는 것이었다. 이 속죄일에 두 마리의 염소 새끼를 성막 문으로 끌고 와서 그 둘을 제비 뽑아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 (레 16:8) 게 하였다. 그리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뽑힌 염소는 백성을 위한 속죄물로 죽임을 당해야 하였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져가서 속죄소 앞과 그 위에 뿌렸다. 또한 그 피는 휘장 앞에 있는 분향단 위에도 뿌려져야 하였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레 16:21, 22). 아사셀은 다시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오지 못하였고, 그것을 끌고 간 사람은 그 의복을 빨고 목욕한 후에야 장막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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