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66일

하나님의 보호와 신자들의 희망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성령께서는 받은 빛을 부인하지 않고 재림운동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과 여전히 함께 하셨다. 히브리서에는 이러한 위기에 처하여 시련 중에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권면과 경고의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 10: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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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권고의 말씀이 마지막 때의 교회에 주어진 것이 분명한 이유는 그 말씀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가리킨 말이기 때문이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런데 이 말씀에는 지체하는 일, 곧 주님께서 지체하시는 듯이 보이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 분명히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한 교훈은 특별히 그 당시의 재림신자들의 경험에 적용된다. 여기에 지적된 사람들은 믿음의 파선 (破船) 을 당하는 위험에 처하였다. 그들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경험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앞길도 분별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저들을 인도해 주셨는지에 대하여 의심하는 시험을 당하였다. 그와 같은 때에 있어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매우 적절한 말씀이었다. “밤중 소리”의 빛이 그들의 앞길을 환하게 비추어주고, 그들이 예언의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재림이 가까움을 알리는 징조들이 신속히 성취되고 있음을 볼 때에 그들은 재림이 바로 눈앞에 이른 것을 알고 빛을 따랐다. 그러나 이제 그 기대는 헛되어 실망으로 주저앉은 그들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만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조롱하는 세상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속았다. 너희들은 신앙을 버리고 재림운동이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라.”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그들의 믿음을 버리고 그 기별에 주어졌던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게 되면 그들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것이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한 바울의 말로 그들은 용기를 얻고 확고 부동하게 섰다. 그들의 유일의 안전책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빛을 간직하고, 하나님의 허락을 굳게 붙잡고,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함으로 더욱 많은 빛을 받기 위하여 오래 참아 기다리고 깨어 있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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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장 — 하나님의 성소 

1844년과 성소 문제 

성경에서 어떤 말씀보다 재림신앙의 기초가 되고 중요한 기둥이 되어온 것은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단 8:14) 고 한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실 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숙한 말씀이 되어 왔다. 이 예언은 무수한 사람들의 입술에서 믿음의 표어처럼 되풀이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성경 구절에 예언된 사건에 그들의 영광스러운 기대와 희망을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예언적 기간이 1844년 가을로 마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림신자들 역시 다른 일반 그리스도인들처럼 성소가 이 세상 혹은 세상의 어떤 지역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성소의 정결이란 마지막 큰 날에 이 세상이 불로 정결하여지는 것을 말하고, 그 일은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1844년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으로 돌아오실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지정된 시기가 지나갔으나 주님께서는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착오가 없으므로 그들의 예언 해석에 반드시 잘못이 있을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경솔하게도 1844년에 이천삼백 주야가 끝난다는 사실을 부인함으로 이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둘렀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자 한 유일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기대한 시기에 오시지 아니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만일 이 예언의 기간이 1844년에 끝났으면 그리스도께서 당연히 성소를 정결하게 하시고자 곧, 이 세상을 불로 정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돌아오셨을 것인데 그분께서 재림하시지 아니한 것을 보면 그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아니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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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론을 받아들임으로 그들은 일찍이 그들이 산출한 2300주야에 대한 예언의 기간을 부인하게 되었다. 이천삼백 주야는 기원전 457년 가을에 효력이 나타난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예루살렘 중건 (重建)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계산하면 다니엘서 9장 25절로 27절까지 예언된 모든 사건들의 설명은 완전히 들어맞는다. 이천삼백 년의 첫 부분인 483년, 곧 69주일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의 시대까지 미칠 것이었다. 그런데 기원후 27년에 그리스도께서 침례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그 예언은 분명히 성취되었다. 또한 70주일의 중간에 메시야는 끊어질 것이었다. 과연 그리스도께서 침례 받으신 후 3년 반 만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때는 서기 31년 봄이었다. 70주 곧 490년은 특별히 유대인에게 속한 것이었다. 그 기간의 끝에 유대 민족이 제자들을 핍박함으로 마침내 그리스도를 거절하게 되었고, 그 때로부터 사도들은 이방인에게로 가게 되었는데, 그 때가 서기 34년이었다. 이로써 2300년의 첫째 부분인 490년이 지나갔으므로 1810년이 남게 된다. 서기 34년에서 1810년을 연장하면 1844년이 된다. 천사는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하였다. 그 예언 중에 밝히 기록된 모든 사건은 지정된 때에 의심할 여지없이 다 성취되었다. 

잘못 알게 된 성소 문제 

이 계산에 의하면, 1844년에 이루어진 성소의 정결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지 밝히 알 수 없는 것 외에는 모든 점이 다 명백하고 잘 조화되었다. 그런데 1844년에 이천삼백 주야에 관한 예언의 기간이 끝난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되면 모든 문제는 혼란에 빠지고 이미 예언의 성취로 확인된 증거까지도 무시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큰 재림운동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셨으며 그분의 권능과 영광이 이 운동에 같이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운동이 거짓된 광신 소동으로 조롱과 모욕을 받고 암흑과 실망으로 끝을 맺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의심과 불확실한 상태에 묻혀 있게 버려두지 아니하실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천삼백 주야의 예언의 기간에 대한 계산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기초로 한 재림 운동의 확실성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그와 반면에 성경과 하나님의 성령의 증거로 지지된 신앙적 근거와 체험을 버리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예언 연구에 있어서 건전한 해석 원칙을 적용했다고 믿고 이미 얻은바 진리를 굳게 잡고 계속하여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열렬한 기도로써 그들의 견해를 다시 검토해보고 그들의 잘못을 발견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였다. 그들이 예언의 기간을 계산하는 일에 아무런 착오가 없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들은 성소 문제를 한층 더 세밀하게 연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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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세운 성막 

그들은 그들의 연구를 통하여 성경에는 이 세상이 곧 성소라고 하는 일반적 견해를 지지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에는 성소 문제에 관한 설명, 곧 그 본질과 위치와 봉사 등에 관한 설명이 너무도 충분하고 명백하게 성경 기자들로 말미암아 증가되어 있으므로 그 문제는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성소에 대하여 히브리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히 9:1~5).  

바울이 여기 말한 성소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하실 곳으로 이 세상에 지은 성막이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출 25:8) 지으라는 말은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 산에 있을 때에 받은 명령이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를 여행하고 있었으므로 성소는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할 수 있게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장엄하고 화려한 구조물이었다. 그 벽은 금으로 두껍게 싼 견고한 판목으로 만들어 은받침 위에 세웠다. 그 지붕은 장막, 곧 포장들로 되었는데, 겉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고 안의 천장은 그룹의 형상을 아름답게 수놓아 짠 베로 만들었다. 번제단이 있는 바깥 뜰 이외에, 성막은 화려한 휘장으로 칸을 막아, 앞칸을 성소, 뒤칸을 지성소라고 부르는 두 칸으로 되어 있었다. 성소로 들어가는 입구도 그와 같은 휘장으로 가리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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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남쪽에 촛대가 있었는데, 그 일곱 등대에 주야로 불을 켜서 성소를 밝혔다. 또 북쪽에는 떡을 진설하는 상이 있었다.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은 휘장 앞에는 금향단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매일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도와 함께 향연이 하나님 앞으로 상달되고 있었다.  

지성소에는 값진 목재로 제조하고 그 안팎을 금으로 싼 법궤가 있었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비가 들어 있었다. 그 법궤 위에는 법궤의 뚜껑이 되는 속죄소가 있고, 순금으로 정교하게 만든 두 그룹이 마주 서 있었다. 이 지성소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그룹 사이의 영광의 구름 가운데 나타나셨다.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자, 솔로몬의 성전이 성막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 건축은 영구적이고 그 규모도 굉장하였으나 각 부분은 성막과 같은 비례로 지었고, 그 안에는 같은 기구들을 두었다. 그리하여 성소는 다니엘의 시대에 한 번 파괴된 일 외에 서기 70년에 로마군에게 파괴되기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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