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발동
그 무렵에 광신 (狂信) 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일찍이 기별을 열렬하게 믿었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릇됨이 없는 지침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스스로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그들의 감정, 기분, 상상에 내어 맡기게 되었다. 또한 맹목적이요 완고한 열성을 나타내면서 그들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광신적 사상과 행동은 대부분의 재림신자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또한 그들은 진리의 사업이 비난을 받게 하였다.
사단은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반대하고 파괴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재림운동으로 말미암아 크게 감동되었으며 비록 지체하는 시기에도 무수한 죄인들이 회개하였고, 충성된 사람들은 진리를 전하는 사업에 헌신하였다. 악의 왕은 자기의 부하들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사업에 비난을 초래케 하기 위하여 신앙을 고백한 몇 사람들을 기만하여 극단으로 나가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자기의 부하들로 하여금 그들의 모든 잘못, 모든 실패, 모든 건전치 못한 행동들을 찾아내게 하여 그것들을 가장 크게 과장하여 그것이 바로 재림신도들의 믿음이 좋지 못한 증거라고 사람들 앞에 주장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재림을 믿노라고 공언하면서 사단의 세력 아래 마음이 지배되고 있는 자들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런 사람들을 전체 재림신도들의 대표자로 사람들이 인정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킴으로 그는 더욱 큰 유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사단은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이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의 잘못과 결점을 관찰하게 하고, 그것들을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는 반면에 그들의 좋은 행위는 말없이 지나쳐 버리도록 하려는 것이 그의 정신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을 하고 계시는 동안 언제나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올 때에 사단도 또한 거기 함께 참여한다. 모든 신앙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그는 그 가운데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정신이 건전치 못한 자들이 들어오게 한다. 그런 사람들이 진리의 어떤 일부를 받아들이고 신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사단은 즉시 그들을 통하여 경성치 못한 자들을 속일 수 있는 이론들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동료가 되고 예배하는 집에 같이 있고, 주님의 상에 같이 앉는다고 해서 그를 반드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단은 흔히 자기 부하로 이용할 수 있는 자들의 모양을 가장하여 가장 엄숙한 자리에 참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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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의 영과 진리의 영
악의 왕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 도성을 향하여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철두철미하게 싸움을 건다. 전반적인 교회 역사를 통하여 개혁 운동이 격렬한 장애를 만나지 않고 진행된 일이 없다. 바울의 시대에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가 교회를 세운 곳에는 어디에나 믿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이단설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만일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진리에 대한 사랑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루터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면서 자기들의 사상이나 의견을 성경의 증언보다 더 높이는 광신적인 사람들 때문에 큰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였다. 신앙과 경험이 부족하면서도 자부심이 강하고 어떤 새로운 것을 듣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새 교사들의 주장에 속아 하나님께서 루터를 통하여 세우고자 하셨던 사업을 파괴하는 사단의 부하가 되고 말았다. 또한 감화와 믿음으로 세상을 복되게 한 웨슬리 형제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도 그들이 나아가는 매 걸음마다 과격하고 불안정하고 거룩하지 않은 자들을 각종 광신자로 만드는 그런 사단의 간계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윌리엄 밀러는 사람을 광신으로 이끄는 그런 세력에 조금도 동조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루터와 같이 모든 영 (靈) 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밀러는 말하였다. “마귀는 오늘날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가진 영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대답한다. … 세상에는 많은 영들이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들을 시험해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세상에서 우리를 참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주지 않는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다. 나는 사단이 이런 난폭한 운동을 통하여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 중에는 완전히 성화 (聖化) 된 듯이 보이면서도 사람의 유전을 따르고 그런 모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진리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이 많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p.236,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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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誤謬) 의 영은 우리를 진리에서 떠나게 하고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말하리라. 사람이 오류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기는 진리를 가진 줄로 생각할 수 있으리라고. 그런 경우에는 어찌 될까? 우리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은 일치된다고 대답하는 바이다. 사람이 만일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검토해 보고 그 모든 말씀과 완전히 부합될 것 같으면 그는 그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만일 그를 인도하는 영이 하나님의 율법과 성경의 주제와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성 있게 걸어가야 한다”[The Advent Herald and Signs of the Times Reporter, vol.8, No.23 (Jan.15, 1845) ]. “나는 가끔 그리스도교계의 요란한 소리에서보다도 빛나는 눈, 눈물에 젖은 볼, 목메어 말을 이루지 못하는 음성에서 사람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경건의 증거를 본다” (Bliss, p.282).
밤중 소리
종교 개혁 시대에 원수들은 광신자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악에 대한 책임을 광신자들을 가장 열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이와 같은 일은 재림운동을 반대하는 자들을 통하여 다시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극단자들과 광신자들의 그릇된 점들을 과장하거나 변조 (變造)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전혀 근거도 없는 좋지 못한 말들을 만들어서 전하였다. 그 사람들은 편견과 증오로 자극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문 앞에 이르렀다는 기별에 불안해졌다. 그들은 재림의 기별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나 하고 두려워하였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림신도들과 그들의 믿음을 대항하여 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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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나 루터의 시대에 교회 안에 광신자와 기만자가 있었다고 하여 그들의 사업을 정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소수의 광신자가 재림신도들 가운데 들어와서 활동하였다고 하여 그 운동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잠에서 깨어나서 열심으로 회개하고 개혁하게 하라. 그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의 진리를 배우기 위하여 성경을 탐구하게 하라. 그들을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게 하라. 그리하면 사단이 여전히 깨어 활동하고 있는 증거가 여실히 나타날 것이다. 사단은 할 수 있는 온갖 기만 수단을 다하여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자기의 권세 아래 있는 모든 타락한 천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광신과 분열이 일어난 것은 재림기별이 전파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난 것은 1844년 여름, 곧 재림신자들이 그들의 참된 입장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방황하던 그 때였다. 첫째 천사의 기별과 “밤중 소리”의 선포는 신자들 사이의 광신과 알력을 직접적으로 진압하는 일을 하였다. 이 엄숙한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 마음을 일치하였으며, 그들이 장차 뵈옵기를 기대하는 예수님과 그들 상호간에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여졌다. 하나의 믿음, 하나의 복된 소망은 그들을 어떤 인간의 감화를 받는 것보다 훌륭하게 만들어 주었고, 사단의 공격에 대한 방패가 되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 1844년 여름, 곧 재림신자들이 처음에 2300주야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때로부터 그 다음에 다시 연장된 것으로 깨닫게 된 때까지의 중간 기간에 이 기별은 성경 말씀 그대로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말로 전파되었다.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은 2300주야의 기점 (起點) 이 되는 예루살렘을 회복하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이 효력을 발생한 것이 기원전 457년 가을이며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 해 초가 아닌 사실이 판명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457년 가을부터 계산하면 2300주야는 바로 1844년 가을에 마치게 된다 (부록 2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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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운동으로 발전함
구약 시대의 표상적 의식 (表象的儀式) 을 검토해 보면 “성소가 정결하여지는 것”으로 표상된 사건은 가을에 일어날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표상들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유의해 봄으로 매우 명백해졌다.
유월절 양을 잡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17) 고 말한다. 유월절에 여호와 앞에 흔들어 드린 처음 익은 곡식단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표상하였다. 바울은 주님의 부활과 그분의 백성들의 부활을 말하면서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 (고전 15:23) 라고 한다. 추수하기 전에 거두어 요제 (搖祭) 로 드려진 처음 익은 곡식단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부활의 때에 하나님의 창고에 들어가게 될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추수에 있어서 처음 익은 곡식이시다. 이 표상은 사건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 시기에 있어서도 성취되었다. 유대력의 첫째 달 14일, 곧 1500년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유월절 양을 잡아오던 바로 그 달 그날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잔치를 잡수신 후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당신의 죽음을 기념하는 그 의식을 제정하셨다. 바로 그날 밤에 그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위하여 악한 자들의 손에 붙잡히셨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요제의 곡식단이 표상한 실체 (實體) 로서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고전 15:20), 곧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 (빌 3:21) 실 분으로서, 또한 모든 의인들의 모본으로 부활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재림에 관한 표상도 그 상징적 봉사가 지적한 시기가 되면 성취되고야 말 것이었다. 모세의 규례에 있어서 성소를 정결케 하는 대속죄일은 유대력으로 7월 10일이었는데, 그날에 제사장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그들의 죄를 성소에서 제하여 버린 후에 나와서 백성들을 위하여 복을 빌었다 (레 16:9~34 참조). 그와 같이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나타나사 죄와 죄인들을 멸하여 버린 후에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영생으로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7월 10일, 곧 성소를 정결케 하는 대속죄일은 1844년 10월 22일에 해당되었으므로 그날이 주님의 재림의 날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2300주야가 그 해 가을에 마쳐진다고 이미 말한 증거와 일치되므로 그 결론은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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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의 비유에는 기다리는 시기와 조는 일이 있은 후에 신랑이 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 역시 이미 열거한 예언과 표상에 의한 증거와 일치되었다. 그들은 그 확실성에 대하여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마침내 무수한 신자들이 “밤중 소리”를 외치게 되었다.
이 운동은 조수와 같이 각 곳으로 퍼져갔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그것은 멀리 떨어진 벽촌에 이르기까지 퍼져 가서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완전히 깨우쳤다. 떠오르는 햇빛 앞에 사라지는 이른 아침의 서리와 같이 광신자들도 그와 같은 선포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신자들은 그들의 의심과 의혹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으며, 희망과 용기로 마음에 활기가 넘쳤다. 이 운동은 흔히 경험하는 바와 같이 흥분적인 것에만 의존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통제력이 없음으로 생기는 극단적인 일은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옛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견책의 기별을 받았을 때 즉시 마음을 겸비하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간 일들과 유사한 성격의 것이었다. 거기에는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구별해 주는 특징들이 있었다. 거기에는 열광적인 기쁨은 별로 없고, 오히려 마음을 깊이 살피고, 죄를 고백하고, 세상을 버리는 일들이 있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는 그들의 번민하는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부담이었다. 그들은 끈기 있는 기도와 확고한 헌신을 주께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