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60일

재림신앙과 일반 그리스도교회 

바울은 주님의 재림을 갑자기 맞이할 부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그는 다시 구주의 경고에 유의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살전 5:2~5) 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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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가운데 사람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움에 대하여 무지해도 좋다는 보증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이 그와 같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진리를 부인할 구실만을 찾고자 하는 자들은 그와 같은 설명에 귀를 막고 있다. 그리하여 대담한 조롱자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그리스도교의 성직에 있는 자들까지도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에 뇌동 (雷同) 하게 되었다. 백성들이 각성하여 구원의 길을 찾기 시작하자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과 진리의 중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함으로 그들의 공포감을 가라앉히고자 하였다. 충실하지 않은 파수꾼들은 대기만자 사단의 사업에 연합하여 하나님께서 평안하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시는 때에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부르짖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시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싫어하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막았다. 그들의 피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서 찾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 있는 겸손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먼저 기별을 받았다. 성경을 스스로 연구한 사람들은 예언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가 성경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나 일반 성직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에서는, 그리고 어디에서나 성경 말씀을 스스로의 힘으로 연구한 곳에서는 재림의 교리가 하나님의 권위 위에 세워진 교리임을 성경절들을 비교 검토함으로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 없는 형제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하여 그들의 신앙을 말하지 않은 자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진리를 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고 고백한 이유만으로 교회에서 제명 처분을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아니하였다. 자기의 신앙을 위하여 시련을 받는 사람들에게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사 66:5) 고 한 선지자의 말씀은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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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천사들은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경고의 결과를 주목하고 있었다. 천사들은 그 기별이 모든 교회로부터 일반적으로 거절을 당할 때에 슬픈 마음으로 물러갔다. 그러나 재림의 진리를 아직 맛보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남편, 아내, 부모, 혹은 자녀들에게 미혹되어 재림신도들의 가르침, 소위 이단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도 벌써 죄를 범하는 일인 것처럼 믿게 되었다. 천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성실하게 주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또 다른 빛이 나와서 그들을 비추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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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신도들의 시련기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소망으로 구주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날 것으로 기대했던 그 시간은 눈앞에 박두하였다. 그들은 매우 엄숙하게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간격 없는 교통을 하면서 그들 앞에 놓인 광명한 미래로 마음이 평안하였다. 그 희망과 신뢰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당시의 그 귀중한 기다림의 시간을 도무지 잊어버릴 수 없었다. 그날을 몇 주일 앞두고 그들은 대부분 세속적인 사업을 그쳤다. 진실한 신자들은 마치 죽는 사람이 임종 시에 몇 시간 동안 세상 사물을 초월하여 명상하는 것처럼 자기들의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살펴보았다. 승천 예복은 전혀 만들지 않았다 (부록 30 참조). 그러나 구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었다는 내적 증거의 필요성, 곧 그들의 심령의 순결을 나타내는 흰옷, 그리스도의 속죄하시는 피로 죄에서 깨끗하게 된 품성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지금도 그 때와 같이 스스로를 살피고, 열렬하고, 확고한 신앙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일 그들이 오늘날에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서 탄원한다면 그들은 지금 그들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기도하는 일이 너무도 적고, 충심으로 죄를 깨닫는 일이 너무 적다. 산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구주께서 풍성히 주시는 은혜를 부족하게 받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시기로 계획하셨다. 주님의 손이 예언적 기간의 계산에서 생긴 착오를 덮어 주셨다. 그리하여 재림신도들은 물론이요 가장 학식이 많은 반대파의 학자들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 학자들은 말하였다. “그대들의 예언적 기간에 대한 계산은 옳다. 무슨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밀러가 예언한 일과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회개요 그리스도의 재림은 아니다” (부록 3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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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시간은 지나갔으나 그리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진실한 신앙과 사랑으로 구주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쓰디쓴 실망을 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소위 재림을 기다리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고 계셨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은 공포 이외의 아무 다른 동기가 없었다. 그들의 신앙 고백은 그들 자신의 마음에나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기대했던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되자 그들은 실망하지 않노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리라고 믿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참 신자들의 슬픔을 조롱하는 첫째 무리에 속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과 모든 천군들은 시련을 당하였으나 충실한 자들, 실망을 당하여 고민하는 자들을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주목하셨다. 만일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리우고 있는 휘장을 걷어 버릴 수 있었다면 천사들이 굳게 선 이 무리들에게 가까이 가서 사단의 화살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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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장 — 경고의 거절 

5만의 재림신도 

윌리엄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은 재림 교리를 전파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심판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각성시키는 그 한 가지 목적을 향하여 일해 왔다. 그들은 신자들에게 교회의 참된 희망과 깊은 그리스도인 경험의 필요성을 자각시켜 주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또한 아직까지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에게 즉시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고자 힘썼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종교 단체나 종파에 개종시키려고 시도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단체와 종파들 사이에서 그들의 조직이나 규율에 저촉됨이 없이 일하였다.” 

밀러는 말하였다. “나는 기성 교파들로부터 분리된 별개의 교파를 만들거나 어떤 교파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교파에게 손해를 끼치려는 욕망이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모든 교파에게 유익을 주고자 생각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 누구나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을 즐거워할 것이며 비록 나처럼 깨닫지 못하였을지라도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기뻐하리라고 생각하고 어떤 별개의 회중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장차 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나의 동족들에게 하나님을 편안하게 뵈올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활동으로 회개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러 기성 교회에 속하였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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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업이 교회들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얼마 동안은 좋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재림교리를 배척하기로 결의하고 그 문제에 관하여 일체의 토의를 하지 못하도록 한 후부터 그들은 강단에서 그 문제를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인들이 재림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하는 일까지도 금하고, 심지어 교회의 기도회 같은 데서 그들의 소망을 말하는 일까지도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그들이 큰 시련과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교회를 사랑하였고, 거기서 떠나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가 압박을 당하고, 예언을 연구하는 그들의 권리가 박탈당한 것을 깨닫게 되자, 그들은 그 사람들의 말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여야 할 것을 느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막으려는 자들을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구성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본래 속해 있던 교회에서 떠나는 일을 정당하다고 생각하였다. 1844년 여름에 5만 명의 교인들이 여러 교회에서 나왔다. 

이 무렵에 전 미국 안에 있는 대다수의 교회들에서 하나의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이미 여러 해에 걸쳐 세속적 습관과 행동을 따르는 자들의 수가 점진적이면서도 꾸준하게 증가되는 한편 참된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의 수는 감소되어 가고 있었다. 그해에 와서 그 나라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갑자기 뚜렷한 타락상이 나타났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그 사실 자체만은 일반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어 강단과 인쇄물을 통하여 널리 논의되었다.  

필라델피아의 어떤 장로교회의 회집에서 유명한 성경 주해서의 저자요 그 도시 굴지의 교회의 목사인 반즈는 말하였다. “그는 과거 20년 동안에 목회 사업에 종사하면서 지금까지 성찬식을 거행할 때마다 얼마의 새 교인을 교회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무런 각성도 회개도 볼 수 없고, 신자들에게서 어떤 은혜의 자라남도 나타나지 않고, 그들의 구원에 대하여 연구하거나 이야기하러 오는 사람도 없다. 사업의 증가와 상공업에 대한 장래가 밝아질수록 세속적 정신도 증가되어 간다. 이와 같은 경향은 각 교파에 있어서 동일하다” (Congregational Journal, May 2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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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2월에 오벌린 대학의 피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개신교회가 일반적으로 이 시대의 모든 도덕적 개혁에 전혀 냉담하고 있든지 적대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소의 예외는 있으나 이것이 일반적 경향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또한 다른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아는데, 그것은 교회에서 신앙 부흥의 감화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영적 무관심은 거의 모든 교회에 편만하고 두려울 만큼 심각하므로 전국의 종교 잡지는 그 사실을 잘 증거하고 있다. …교인들은 유행을 좇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춤과 연회로 쾌락을 즐기는 집회들 같은 데서 불경건한 자들과 손을 잡는 일이 너무도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마음 아픈 문제를 길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교회들이 개탄할 만큼 타락하고 있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들은 일일이 들어 말할 수 없으리 만큼 우리 앞에 쌓여 있다. 그들은 주님께로부터 매우 멀리 떠나 있고, 주님께서도 저들을 떠나 계신다.”  

릴리져스 텔리스코프 (Religious Telescope) 잡지에서 한 저자는 증언하였다. “우리는 종교가 현재와 같이 일반적으로 타락한 일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교회는 마땅히 각성하여 이와 같이 된 원인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시온을 사랑하는 자들은 현 상태를 비운으로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으로 회개하는 자가 얼마나 적으며 죄인이 얼마나 완악하고 고집스러운지 생각할 때에 부지중에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라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태는 교회 자체에 어떤 원인이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와 교회와 개인에게 있는 영적 암흑은 하나님 편에서 은혜의 근원을 철회하심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편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빛을 등한히 하거나 거절함으로 생기는 일이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뚜렷한 실례는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세속적 사물에 열중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잊어버림으로 그들의 이해력이 둔하여지고 그들의 마음이 세속적이요 육욕적으로 바뀌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메시야의 초림에 대하여 무지하여지고, 교만과 불신으로 구주를 거절하였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축복을 알고, 거기에 참여하는 특권에서 그들을 제외시키지 않으셨다. 그러나 진리를 거절한 자들은 하늘의 선물을 받고자 하는 모든 욕망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기를 그들에게 있는 광명이 흑암으로 변하여질 때까지 하였으니 그 흑암의 상태가 얼마나 심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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