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45일

로마교와 무신론자 

궁정은 사치와 방탕에 잠겼고, 백성들과 위정자들 사이에는 신임이 거의 없었다. 정부의 모든 처사는 언제나 모략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의심을 받았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반세기 이상의 기간에 걸쳐서 루이 15세가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처럼 악한 시대에 있어서도, 나태하고 경박하고 음란한 임금으로 유명하였다. 부패하고 잔악한 귀족 정치, 가난하고 무지한 하류 계급, 국가의 재정적 곤란과 백성들의 격분, 이 모든 것들은 선지자의 안목이 아닐지라도 무서운 사변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측할 수 있었다. 왕은 그의 신하들의 경고에 대하여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이대로 버티고 나가 보자. 내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되겠지”라고 언제나 대답하였다. 개혁의 필요를 아무리 역설하여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왕은 죄악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것을 혁신시킬 만한 용기도 능력도 없었다. 그의 나태하고 이기적인 대답, 곧 “재앙은 나의 죽은 뒤에”라는 말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는 프랑스의 운명을 여실히 표현한 것이었다. 

-281- 

로마교는 왕들과 지배 계급의 질투심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노예 상태로 묶어 두도록 영향을 미쳤다. 로마교는 이와 같이 하여 나라가 약화되면 백성들과 통치자들이 모두 자기의 지배 아래 들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선견적 정책에 의하여 로마교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노예 상태가 되게 하려면 그들의 심령을 차꼬로 채워야 한다는 것과 그들이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억제하려면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상태에 놓아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이 정책의 결과로 초래된 육체적 고통보다 천 배 이상 무서운 것은 도덕적 타락이었다. 성경은 박탈되었고, 고집과 이기적인 교훈으로 얽힌 백성들은 무지와 미신에 가려졌고, 악습에 빠져 버렸으므로 자제하기에 전연 부적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결과로 생긴 일은 로마교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로마교는 자기의 교리를 맹종하는 대중을 만들기는커녕 그들을 이교도와 혁명가들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로마교를 성직자의 정책이라고 멸시하였다. 그들은 성직자들을 그들을 압제하는 당파로 보았다. 그들이 알았던 유일한 신은 로마교의 하나님이었고, 그들이 알았던 유일의 종교도 로마교의 교리였다. 그들은 로마교의 탐욕과 잔인성을 바로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성경을 전연 무용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로마교가 하나님의 품성을 그릇되게 나타내고 그분의 율법을 왜곡시켜 버렸으므로 이제 사람들은 성경과 성경의 저자를 동시에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교리가 성경이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거기에 맹종하기를 요구하였다. 거기에 반응하여 볼테르 (Voltaire) 와 그의 동료들은 성경을 배척하고 무신론의 해독을 도처에 유포시켰다. 로마교는 그 쇠발굽으로 백성들을 짓밟았다. 그런데 이제는 대중이 타락하고 사나워져서 로마교의 학정에 대하여 반발을 일으켜 모든 속박을 끊어버렸다. 그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공경하여 왔던 것이 찬란하게 보이는 속임수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은 분노한 나머지 참 것과 거짓 것을 둘 다 거절하게 되었다. 그릇된 방종을 자유로 오해하여 그들은 그들이 생각한 자유 안에서 죄악의 노예가 된 것을 기뻐하였다. 

-282- 

혁명 초기에 왕의 양보로 백성측의 대표자는 귀족과 성직자들의 수를 합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그리하여 세력의 균형에 있어서 백성측이 우세하였으나, 그들은 그 힘을 지혜롭고 적당하게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이 당한 비행을 고쳐 놓기에 급급한 그들은 사회의 개조를 단행하기로 결심하였다. 분노한 대중들은 학대받아 온 분노와 잊혀지지 않는 원한에 사무친 마음으로,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비참한 상태를 개혁하는 동시에 그들을 곤경에 빠뜨린 장본인들로 생각되는 계급에 대하여 보복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압제받던 자들은 학 

정 아래서 배운 교훈을 실천하여 과거에 자기들을 압박하던 자들에게 똑같이 압제하게 되었다.  

대혁명이 일어남 

불행한 프랑스는 자신이 심은 씨앗을 피로써 거두었다. 프랑스가 로마교의 지배하에 복종한 결과는 두려운 것이었다. 프랑스가 로마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의 초기에 최초의 화형주를 세웠던 그 곳에 프랑스의 혁명당들은 최초의 단두대를 세웠다. 16세기에 개신교의 신앙을 가진 최초의 순교자들이 화형을 받았던 바로 그 장소에서 18세기에는 최초의 희생자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는 자기 나라를 치료해 줄 복음을 배척하였기 때문에 무신론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열었다. 하나님의 율법의 제재를 무시해 버릴 때 인간의 법률은 인간의 정욕이라는 강력한 물결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히 입증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반란과 무정부 상태로 휩쓸려 들어갔다. 성경에 대한 투쟁은 세계 역사에서 공포 시대라는 뚜렷한 한 시대를 초래하였다. 사람의 가정과 마음에서 평화와 행복이 사라졌다. 안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늘의 승리자가 내일에는 혐의를 받고 정죄를 받았다. 포악과 음란이 극도에 달하였다.  

-283- 

왕과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흥분하고 미쳐서 날뛰는 군중들의 잔악무도한 행동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수하고자 갈망하는 그들은 왕을 처형함으로 한층 더 자극되었다. 그리고 왕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자들도 오래지 않아서 왕의 뒤를 이어 단두대로 끌려갔다. 혁명을 반대하는 것으로 혐의를 받은 자들은 다 살육되었다. 감옥들은 만원이 되었는데 한 때는 20만 명 이상의 검거자들이 수용되었다. 국내의 각 도시에 무서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혁명주의자들의 한 당이 다른 당과 싸우므로 프랑스는 드디어 하나의 커다란 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서로 싸우는 군중들의 분노와 격정은 온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파리에서는 소동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시민들은 여러 당파로 나누어져서 피차에 서로 물고 뜯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였다.” 온 나라가 이와 같은 참상을 당한 외에도 구라파의 열강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황폐케 하는 전쟁에 휘말려 들었다. “나라는 거의 파멸 상태에 이르렀고, 군인들은 급료의 지불이 지연됨으로 소동하였고, 파리 시민들은 굶어 죽어갔으며, 각 지방들은 비적들로 말미암아 황폐되었고, 문화는 무정부 상태와 백성들의 방종으로 거의 사라질 지경까지 되었다.” 

백성들은 로마교가 반복해서 가르쳐준 잔인과 고문의 본을 너무도 잘 받았다. 보응의 날은 드디어 오고 말았다. 옥에 갇히고 화형주에 달리는 사람들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래 전에 죽임을 당하고 추방되었다. 그러나 이제 가혹한 로마교는 과거에 유혈 행위를 즐기도록 가르쳐 주었던 사람들의 무서운 세력을 느끼게 되었다. “프랑스의 로마교 성직자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서 실천해 온 박해가 이제는 그들 자신들에게 매우 혹독하게 보복되어 왔다. 단두대는 신부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일찍이 위그노 신도들로 채워졌던 갤리선과 감옥들이 이제는 그들을 핍박하던 자들로 채워졌다. 걸상에 붙들어 매어진 채로 노를 젓는 형벌을 당하고 있는 로마교의 성직자들은 일찍이 자기들의 교회가 소위 이단이라고 부르는 온유한 사람들에게 그처럼 임의로 과했던 그 형벌을 이제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부록 23 참조).  

-284- 

극악무도한 학살 

“모든 법 중에서 가장 흉악한 법이 어떤 법정보다 가장 흉악한 법정에서 적용되고, 극형을 받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이웃 사람에게 인사하거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없고, 도처에 밀정들이 잠복해 있고, 매일 단두대가 아침부터 장시간에 걸쳐 힘든 일을 하고, 노예선들이 차고 넘치는 것처럼 감옥들이 넘치고, 하수구의 도랑들이 피로 물들어 세느 (Seine)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그런 시대가 왔다. …처형될 희생자들을 실은 마차들이 날마다 파리 시의 도로를 지나 그 운명의 심판정으로 가고 있는 동안에 최고 의원들이 보낸 각 지방의 총독들은 실로 수도 파리에서조차 볼 수 없는 잔인무도한 일을 행하고 있었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단두대의 칼날은 그들이 살육할 분량에 비하면 너무도 느렸다.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죄수들은 풀을 베듯 포도탄 (葡萄彈) 에 의하여 쓰러졌다. 사람이 가득히 탄 거룻배의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몰살시키기도 하였다. 리용은 황무지로 변했다. 아라에서는 죄수들을 신속히 죽이지 아니하고 천천히 죽이므로 그들을 더욱 괴롭게 하였다. 소뮈르로부터 바다에 이르는 노아르 강변에서는 나체로 된 시체들을 둘씩 둘씩 흉측스럽게 포옹하게 해놓고, 까마귀와 독수리들의 큰 무리들에게 뜯어 먹히게 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무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 지긋지긋한 정치 아래 살육을 당한 17세가량의 소년 소녀들의 수는 수백 명 단위로 세어야 하였다. 자코뱅 당원들은 젖먹이들을 그 어머니들의 젖가슴에서 떼어내어 창 끝에 꽂아 가지고 이 창에서 던지면 저 창으로 받아 꽂기까지 한 적도 있다 (부록 24 참조). 10년의 짧은 세월에 실로 무수한 사람들이 살육되었다. 

이 모든 일은 사단이 소원하던 일로서 그는 그 일을 여러 시대에 걸쳐서 계획하고 이루고자 노력하여 왔던 것이다. 그의 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기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의 단호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저주와 불행을 가져다주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파괴하고 욕되게 함으로 그분의 자비와 인애의 거룩하신 목적을 방해하여 하늘에 슬픔을 가져다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기만적인 술책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잘못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처럼 느끼게 하고, 자기가 가져온 모든 비참한 일들을 창조주의 계획의 결과처럼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단은 자기의 잔인한 세력에 의하여 타락하고 야수적으로 된 사람들이 자유를 얻을 때 그는 과격하고 흉악한 일을 하도록 그들을 충동한다. 그리고는 폭군들과 압제자들은 그 포악무도한 방종의 모습을 지적하면서 자유가 가져온 결과가 어떠함을 보라고 한다. 

-285- 

그런데 사단은 한 가지 가면이 폭로되면 다시 다른 가면을 거기에다 씌우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첫 번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로마교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사단은 로마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도록 사람들을 이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로 하여금 모든 종교가 거짓이며 성경은 신화 (神話) 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끔 충동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걷잡을 수 없는 죄악의 구덩이로 빠져 들어갔다. 

종교의 부인 (否認) 과 그 두려운 결과 

프랑스 국민들이 이와 같이 치명적인 잘못을 범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 안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위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다면 네 평안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악인에게 평강이 없다”,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사 48:18, 22; 잠 1:33).  

무신론자들과 불신자들과 배교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반대하고 부인한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의 결과는 인류의 복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각 나라의 역사에서 배우게 되어 있다.  

사단이 로마교를 통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하였을 때에도 그는 그의 일을 감추었다. 그러므로 그는 부패와 불행이 바로 범죄의 결과인 것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그의 일을 아주 교묘하게 가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세력은 성령의 역사와 너무나 반대되었기 때문에 그의 목적이 완전히 성취되는 일이 방지되었다. 사람들은 원인에서 결과를 찾고자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당하는 불행의 원인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당시에 하나님의 율법은 국민 의회에서 공공연하게 배척되었다. 그리하여 그 후에 계속된 공포 시대를 통하여 원인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깨닫게 되었다. 

-286- 

프랑스가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부인하고 성경을 거절하였을 때 악인들과 악령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계획하여 오던 그대로 하나님의 율법으로 제재를 받지 아니하는 나라를 세운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악한 일에 대한 심판이 속히 이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 (전 8:11) 게 되었다. 그러나 공평하고 의로운 율법을 범하게 되면 불행과 파멸이 피할 수 없이 따라오게 된다. 비록 즉시 형벌을 당하지 않을지라도 사람의 악행은 반드시 파멸을 가져오고야 만다. 여러 세기 동안의 배신과 죄악이 심판 날의 진노를 쌓아두었다. 그리하여 그 죄악의 분량이 차면 하나님을 멸시한 자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업신여긴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음을 늦어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잔인한 사단의 세력을 억제하고 무너뜨리던 하나님의 영이 거의 떠나가고 사람의 불행만을 즐겨 온 사단이 하고자 하는 대로 방치된다. 이러한 반역을 선택한 자들은 글로써 도저히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죄악이 땅에 충만하여질 때까지 그 반역으로 말미암아 생긴 결실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황폐된 지방과 폐허가 된 도시들로부터 무서운 부르짖음, 곧 가장 쓰라린 고통의 부르짖음이 들렸다. 프랑스는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종교, 법률, 사회적 질서, 가정제도, 국가, 교회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한 불의한 손에 의하여 타도되었다. 현인의 말은 진실하였다. “악한 자는 그 악을 인하여 넘어지리라”, “죄인이 백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리라” (잠 11:5; 전 8:12, 13).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잠 1:29, 31).  

Posted i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