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29일

10 장 — 독일에서의 개혁 운동의 발전 

루터의 실종 (失踪) 과 인심의 동요 

루터의 이해할 수 없는 실종은 독일 전역을 경악시켰다. 어디를 가든지 그에 대한 의문이 화제에 올랐다. 기괴한 소문들이 퍼져 나갔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살해되었다고 믿었다. 표면에 나선 친구들뿐 아니라 지금까지 개혁 운동에 공공연하게 가담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까지도 크게 슬퍼하여 탄식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하여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맹세로써 스스로를 속박시켰다. 

로마교의 지도자들은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이 어느 정도 악화되었는지를 알고 크게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루터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처음에는 기뻐하였지마는, 이제는 사람들의 분노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루터의 원수들은 루터가 그들 가운데서 아무리 대담한 행동을 하였을 때에라도 그가 종적을 감추게 된 지금처럼 곤란을 당하지 않았다. 격분한 나머지 용감한 개혁자를 죽여 버리려고까지 꾀하던 그들도 그 개혁자가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어 있는 지금에는 큰 공포를 느끼었다.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횃불을 켜 가지고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루터를 찾아내어, 그를 찾고 있는 나라에 돌려주는 일이다” (D’Aubigne, b.9, ch.1) 고 말하기까지 되었다. 황제의 칙령도 그 위력이 땅에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법왕의 사절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황제의 칙령에보다는 루터의 운명에 더욱 강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노하였다.  

그가 포로의 몸으로 있을지라도 안전하게 있다는 소식을 듣자, 사람들의 염려는 진정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열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그의 저서는 전보다 더욱 큰 열심으로 읽혀졌다. 그처럼 두려운 공격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여 온 그 영웅 편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수는 날로 증가되어 가고 있었다. 개혁 운동은 점차로 세력을 얻어 가고 있었다. 루터가 뿌린 씨는 각 곳에서 싹이 났다. 그가 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이 그가 없는 동안에 완성되었다. 다른 동역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가 없어진 지금에 새로운 책임감을 느꼈다. 그들은 새로운 신앙과 열심으로 이미 시작된 고귀한 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그들의 온 힘을 다하여 추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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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단도 결코 가만히 서서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이제 온갖 개혁 사업에서 시험해 본 것을 사용하고자 하였다. 그는 참된 개혁 사업 대신으로 거짓 것을 일으켜서 사람들을 속이고 멸망시키고자 했다. 마치 그리스도교회의 제1세기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났던 것처럼 16세기에도 허다한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났다.  

종교계에 일어난 동요로 깊은 감동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루터가 미약하게 시작한 개혁 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임명을 받았노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루터가 이루어 놓은 바로 그 사업을 헐어 버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과 행위의 완전한 표준이 된다는 개혁 사업의 바로 기초가 되는 위대한 원칙을 부인하고, 그러한 과오 없는 지도 원칙 대신에 그들의 변하기 쉽고 확실성이 없는 감정과 생각을 따랐다. 그리고 이처럼 오류와 기만을 드러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해 버리는 행동에 의하여 사단이 마음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거짓 선지자들의 방해 운동 

이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은 자기가 천사 가브리엘의 가르침을 받았노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와 연합한 한 학생은 공부하던 것도 내버리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노라고 주장하였다. 원래부터 광신적 경향을 가진 여러 사람들은 그들과 연합하였다. 이와 같은 광신자들의 행동은 큰 물의를 일으켰다. 루터의 설교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각 곳에서 개혁의 필요를 크게 자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직한 몇 사람들이 그 새로운 선지자들의 속임에 미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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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운동의 지도자들은 비텐베르크로 가서 멜란히톤과 그의 동지들에게 자기들의 주장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는 백성을 가르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주님과 친밀한 담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도요 선지자들이다. 그러므로 루터 박사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D’Aubigne, b.9, ch.7).  

개혁자들은 놀라고 당황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처음으로 당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멜란히톤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 사람들에게는 실로 비상한 신들이 역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슨 신들인가?…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할까 주의하는 한편 사단의 영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D’Au-bigne, b.9, ch.7).  

새 교리의 열매는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사람들은 성경을 등한히 여기거나 완전히 버리도록 지도되었다. 학교들은 혼란 가운데 빠졌다. 학생들은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공부를 팽개치고, 대학들을 버리고 나오게 되었다. 개혁 사업을 부흥시키고 지도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은 그 사업을 파멸로 인도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이었다. 법왕당들은 이제 신임을 다시 얻게 되었으므로, 매우 기뻐서,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싸우면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된다” (D’Aubigne, b.9, ch.7) 고 부르짖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에서 일의 전후 사정을 듣고 크게 염려하였다. “나는 사단이 이와 같은 재난을 가져올 것을 미리부터 예기하고 있었다” (D’Au-bigne, b.9, ch.7) 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의 진상을 깨닫고, 그것이 진리의 사업을 위협할 위험을 보았다. 법왕과 황제의 반대도 그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보다 더 크지 않았다. 소위 개혁 사업의 동지라고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서 가장 악한 원수가 일어났다. 그에게 그처럼 큰 기쁨과 위로를 가져다주었던 바로 그 진리가 교회 안에서 투쟁을 일으키고 혼란을 빚어내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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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사업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성령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었지만, 사사로운 마음으로 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얻은 위치를 의도적으로 취한 것이 아니었고, 그처럼 갑작스런 변화를 거의 예상한 적도 없었다. 그는 다만 무한하신 하나님의 손에 사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사업의 결과 때문에 간혹 떨었다. 그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가르친 교리는 그 자체가 복음이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그 교리가 단 한 사람이라도, 비록 아무리 비천한 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손해를 주었다면 나는 그것을 취소하겠다.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나는 열 번이라도 죽겠다” (D’Aubigne, b.9, ch.7). 

개혁 사업의 위기와 루터의 결심 

그런데 개혁 사업의 중심지인 비텐베르크는 바야흐로 광신과 불법의 세력 아래 들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두려운 사태는 루터의 교훈의 결과가 아니었지만 독일 전국에서 그의 원수들은 그 책임을 그에게 돌리고 있었다. 마음의 고통을 안고 그는 “이 위대한 개혁 사업의 결과가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D’Aubigne, b.9, ch.7) 라고 이따금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그리고 그가 기도로써 다시 하나님과 씨름했을 때 평안한 마음을 얻었다. “이 사업은 나의 사업이 아니고 당신의 사업입니다. 당신은 미신과 광신으로 이 사업이 더럽혀지도록 허락하셔서는 안 됩니다”라고 그는 기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당하여 투쟁에서 물러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비텐베르크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위험한 여행을 떠났다. 그는 황제로부터 파문을 선고 받고 있었다. 원수들은 마음대로 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었고, 친구들은 그를 도와주거나 보호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정부는 그의 동지들에게 특별히 엄중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복음 사업이 위기에 빠진 것을 알고, 대담하게 주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진리를 위한 싸움에 출전하였다.  

루터는 선후 (選侯) 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르트부르크를 떠나는 이유를 밝힌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하여, 내가 비텐베르크에 나가는 것은 군주 (君主) 와 선후들보다 더욱 높으신 이의 보호를 받고 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주십시오. 나는 전하의 지지를 간청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전하의 보호를 바라는 것은 더욱 아니며 오히려 전하를 보호해 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만일 전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면 나는 비텐베르크로 나가지 않겠습니다. 이 사업은 검으로 진전될 사업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의 도움과 협력 없이 홀로 그 사업을 하셔야 합니다. 가장 큰 신앙을 가진 사람은 가장 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D’Aubigne, b.9, c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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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텐베르크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 기록한 두 번째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전하의 비위를 거스르고 온 세상의 분노를 받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텐베르크의 주민은 나의 양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들도 나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그들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나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겠습니까? 그 외에, 나는 독일에서 어떤 무서운 소요가 일어나서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멸하실까 두려워합니다” (D’Aubigne, b.9, ch.7).  

극히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그러면서도 단호하고 확고한 태도로 그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폭력으로 세워진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너뜨리고 파괴해야 한다. 나는 미신적이거나 불신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신앙의 근본 요소는 자유이다” (-D’Aubigne, b.9, ch.8).  

비텐베르크에서의 활동 

루터가 돌아와서 설교를 한다는 말이 비텐베르크에 즉시 퍼졌다. 그리하여 군중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는 강단에 올라가서 매우 지혜롭고 부드럽게 교훈하고, 권면하고, 훈계하였다. 어떤 사람들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미사를 폐지하고자 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미사는 부당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대하십니다. 그것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나는 온 세계에서 복음이 가르친 성만찬 예식을 미사 대신으로 행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폭력으로 폐지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그 일을 행할 것이지 우리가 행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도공 (陶工) 이 진흙을 가지고 마음대로 무엇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가 지배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말할 권리를 가졌으나 행할 권리는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다만 말로 전하는 것뿐이며, 그 밖의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만일 내가 폭력을 사용하였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찡그린 얼굴, 형식, 억지로 따라 하는 일, 인위적인 제도, 위선뿐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성실한 마음도, 믿음도, 사랑도 없을 것입니다. 그 세 가지가 결핍되면 모든 것이 결핍됩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쓸데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와 온 세상이 연합하여 발휘하는 힘보다 더욱 큰 힘을 당신의 말씀만으로도 발휘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으시는데, 사람의 마음이 그분에게 붙잡히게 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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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교하고, 토의하고, 저술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강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의 자발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을 보십시오. 나는 법왕과 면죄부와 법왕당을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그러나 폭력이나 폭동으로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설교하고, 저술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내가 전한 그 말씀이 법왕교를 전복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선후 (選侯) 나 황제일지라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다하였습니다. 만일 내가 폭력에 호소하고자 했다면, 온 독일은 피로써 홍수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였겠습니까? 육체와 영혼을 모두 파멸과 폐허 속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만이 온 세상에 전해지도록 하였을 뿐입니다” (D’Aubigne, b.9, ch.8). 

루터는 1주일 동안 날마다 열성 있는 그 청중들을 향하여 설교를 계속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광신적인 흥분을 가라앉혔다. 복음의 위력이 미혹에 빠진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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