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26일

양심의 승리 

만일 개혁자가 단 한 가지 점에서라도 타협하였더라면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고부동한 태도는 교회를 해방하는 방편이 되었고 새롭고 더욱 좋은 하나의 기원 (紀元) 을 이루어 놓았다. 신앙 문제에 관하여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바를 꺼림이 없이 그대로 실천한 이 한 사람의 감화는 그 시대의 교회와 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후일의 모든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확고하고 충성된 태도는 마지막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와 동일한 경험을 갖게 될 모든 사람에게 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은 사람의 의견이나 사단의 위력을 훨씬 초월한다.  

얼마 후 루터는 황제의 권위에 의하여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이러한 통고가 있은 후 즉시 정죄의 선고가 내릴 것을 미리 알았다. 그의 앞길에 캄캄한 구름이 덮여 있었으나, 그는 보름스를 출발할 때 찬미와 기쁨으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는 “악마 자신이 법왕의 성채 (城砦) 를 보호하였지만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한 돌파구 (突破口) 를 만들어 주셨으므로, 사단은 주께서 자기보다 더욱 위력이 있음을 마침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D’Aubigne, b.7, ch.11) 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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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보름스를 떠난 후에, 자기의 확고한 태도가 반역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 종은 사람이 의지하여 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생사와 영욕 (榮辱) 을 물론하고 온갖 일에 가장 열심으로 폐하를 순종하는 사람인 것은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증거하실 것입니다. 현세의 모든 일에 있어서는 종의 충성에 아무런 동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얻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구원에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문제에 관하여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굴종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영적 문제에 있어서 굴종하는 것은 사실상 예배 행위이므로, 그것은 온전히 창조주에게만 돌려야 할 것입니다” (D’Aubigne, b.7, ch.11).  

보름스에서 돌아갈 때 루터에게 나타낸 일반 사람들의 존경은 그가 올 때보다 훨씬 더 지대하였다. 고귀한 성직자들이 파문당한 그 승려를 환영하고, 높은 관직에 있는 관리들이 황제의 견책을 받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는 설교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으나 사람들의 간청에 못 이겨 설교단에 올라갔다. 그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두어 두겠다고 맹세한 적이 결코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Martyn, vol.1, p.420) 라고 말하였다.  

그가 보름스를 떠나간 지 얼마 있지 아니하여 법왕교도들은 황제를 설득시켜 루터를 반대하는 포고를 내리도록 하였다. 그 포고는 루터를 가리켜, “사단이 승려의 복장을 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D’Aubigne, b.7, ch.11) 고까지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의 통행권의 기한이 만료되는 즉시로 그의 사업을 종식시킬 조처를 취하도록 명령이 하달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도 그를 보호하거나, 음식물을 주거나, 공사 (公私) 를 불문하고 말로나 행동으로 그를 응원하거나 도와주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그를 발견하는 대로 체포하여 관헌의 손에 넘겨주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옥에 가두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저서들은 없애 버리도록 되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이 포고를 위반하는 자는 모두 위에 기록한 바와 동일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고시 (告示) 되었다. 작센의 선후와 루터에게 호감을 가진 여러 제후들은 그가 출발한 후에 곧 보름스를 떠났으므로, 황제의 이 고시는 의회의 찬동을 얻었다. 법왕교도들은 개가를 불렀다. 그들은 개혁 사업의 운명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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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사업과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위급한 시기에 당신의 종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셨다. 루터의 운동에 대하여 일각도 방심하지 않고, 그를 구원하려고 결심한 진실하고 고결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로마는 루터를 죽이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그를 사자의 밥이 되지 않게 하려면 숨길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작센의 프리드리히 후에게 개혁자를 보호할 계획을 세우도록 지혜를 주셨다. 성실한 친구들의 협력 아래, 선후 (選侯) 의 계획은 실행되었다. 그리하여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루터는 원수들과 친구들로부터 숨겨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체포되어, 동행자들과 분리되었고, 급히 산림을 통과하여 인가에서 떨어져 있는 산성 바르트부르크 (Wartburg) 로 끌려갔다. 그의 체포와 은닉 (隱匿) 은 너무도 비밀리에 실행되었으므로, 프리드리히 후까지도 오랫동안 그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선후 (選侯) 자신까지도 알지 못하도록 된 것은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선후가 루터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한 그 일을 누설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선후는 개혁자가 반드시 안전히 숨겨 있을 줄만 알고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가고 드디어 겨울이 왔다. 그러나 루터는 여전히 사로잡힌 몸으로 남아 있었다. 알리안더와 그 일당은 복음의 빛이 벌써 거의 소멸되었다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반대로 개혁자는 진리의 창고에서 등에 기름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등불은 더욱더 밝히 비추어질 것이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의 조용하고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동안 싸움의 소요와 열화 (熱火) 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조용하고 평안한 처지에서 오랫동안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활동적 생애와 격렬한 투쟁 (鬪爭) 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활동하지 않고 지내기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처럼 고독한 세월을 지내는 동안에 교회의 형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는 “아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끝 날에 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 앞에 성벽이 되어 줄 것인가!” (D’Aubigne, b.9, ch.2) 라고 탄식하였다. 그리고 투쟁의 장소에서 몸을 피하여 있는 자신을 반성해 보고, 비겁한 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이 하는 일 없이 게으른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를 책망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한 사람이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의 일을 날마다 하고 있었다. 그의 붓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동안 그의 원수들은 루터를 침묵케 하였다고 기뻐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확실한 증거를 보고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소책자가 그로 말미암아 저술되어 독일 전국에 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독일어로 신약 성경을 번역함으로 자기 나라의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봉사를 하였다. 그는 거의 1년 동안 바위투성이인 그의 “밧모섬”에 머물러 있으면서, 복음을 선포함과 동시에 그 시대의 오류와 죄악을 견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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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공생애의 무대에서 물러나게 하신 것은 루터로 하여금 원수들의 분노를 피하게 하시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에게 그처럼 중대한 사업을 맡기시기 위하여 조용한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한 것만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거두어야 할 더욱 귀중한 결과가 있었다. 한적하고 격리된 산장 (山莊) 에 있으므로 루터는 세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칭찬에서 끊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성공에 흔히 따르는 자부심과 교만으로부터 구제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고난과 겸비를 통하여, 그가 갑자기 높임을 받으므로 현기증이 날 만큼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진리가 전해짐으로 자유를 경험하게 될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오류와 미신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사용하신 그 인물들을 찬탄하는 경향을 가지기 쉽다. 사단은 사람들의 사상과 애정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켜, 사람을 바라보게 함으로 도구에 불과한 사람들을 높이 우러러보도록 유혹한다. 그리고 온갖 사건의 배후에서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무시해 버리도록 한다. 이런 경우에 흔히 칭찬과 존경을 받는 그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지도를 받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탐구하지 않고, 지도자들을 바라보게 되며,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생각과 양심을 지배하고자 애쓰게 된다. 개혁 사업의 지지자들이 이와 같은 정신에 사로잡히게 되면, 개혁 사업은 방해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위험에서 개혁 사업을 보호하고자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신 것은 그 사업이 사람의 사업이 아니고 당신의 사업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 하신 것이었다. 사람들의 눈이 루터를 진리의 해석자로 주목하게 되었으므로, 그들의 눈을 진리의 영원한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하여 그를 사람들에게서 떠나 있도록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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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 — 스위스에서의 개혁 운동 

츠빙글리의 자라남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인물을 선택하는 데도 교회를 설립할 때와 똑같은 하나님의 계획이 나타나 보인다. 하늘의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위 있고 부요하고 백성의 지도자로 자격을 갖춘 그러한 큰 인물들을 사용하지 아니하셨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우월감 때문에 교만하고 자부심이 강하였으므로 자기 동포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거나 겸손하신 나사렛 사람과 함께 협력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무식하고, 수고하기를 좋아하는 갈릴리의 어부들에게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 4:19) 는 부르심이 주어졌다. 그 제자들은 겸손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당시에 횡행하던 거짓 교훈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은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저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킬 수 있으셨던 것이다. 그 사실은 위대한 종교개혁 당시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도적 역할을 한 개혁자들은 비천한 가문의 출신들로서, 당시에 계급의식에서 오는 교만과 미신적 감화와 성직자의 이기적 책략에서 오는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사람들이었다. 큰 공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비천한 인재를 쓰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러므로 영광은 사람들에게 돌릴 것이 아니고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기쁘신 뜻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질 것이었다. 

루터가 작센의 한 광부의 집에서 태어난 지 몇 주일 후에, 울리히 츠빙글리 (Ulrich Zwingli) 가 알프스 산중에 있는 한 목자의 오막살이에서 출생하였다. 유년 시대의 츠빙글리의 환경과 교육은 그가 장래의 사명을 위하여 준비하는 데 매우 적당하였다. 그는 웅장하고, 아름답고, 숭엄 (崇嚴) 한 천연계의 품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은 일찍부터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과 위대하심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그의 고향인 산중에서 조상들이 성취한 업적과 용감한 행위에 대한 역사는 그의 젊은 욕망을 불타게 해주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을 독실히 믿는 그의 조모 곁에서 교회의 많은 전설과 고담 (古談) 에 간혹 나타나는 귀중한 성경 말씀을 들었다. 그는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부조들과 선지자들의 위대한 업적, 팔레스틴 산촌에서 양무리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이야기한 것, 베들레헴의 아기, 갈바리의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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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와 마찬가지로 츠빙글리의 부친도 자식의 교육에 대하여 크게 유의한 나머지, 일찍부터 그를 고향에서 내어보냈다. 츠빙글리의 지능은 너무 빨리 계발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적당한 교사를 발견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는 13세 때, 당시 스위스에서 가장 우수한 학교가 있는 베른 (Bern) 으로 보내어졌다. 그런데 거기서 그의 전도유망한 앞길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이 생겼다. 그것은 승려들이 그를 승원으로 끌어들이고자 단호한 노력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도미니크회 (Dominican) 와 프란체스코 수도회 (Franciscan) 는 피차 더 큰 인기를 얻고자 경쟁하고 있었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각각 그들의 교회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화려한 의식들을 행하고, 유명한 유물 (遺物) 들과 소위 이적을 행한다는 조각한 형상들로 인기를 얻고자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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