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방문
그러나 루터는 여전히 법왕 교회의 참된 아들이었으며, 그는 그 외에 다른 생각을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로마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도보로 여행하면서 도중에 있는 수도원들에서 숙박하였다. 이탈리아에 있는 한 수도원에서 그는 너무나 부요하고 화려하고 사치한 것을 목격하고 심히 놀랐다. 그 승려들은 마치 왕후 (王侯) 들과 같은 수입으로 화려한 집에 살고, 매우 값진 의복을 입고, 진수성찬을 먹었다. 루터는 괴로울 정도로 불안한 마음으로 그 광경들을 자기의 사생활의 극기와 고난과 대조하여 보았다. 그의 마음은 번민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그는 멀리 일곱 멧부리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때 깊은 감동을 받고 땅에 엎드려서 “거룩한 성 로마여! 나는 네게 경의를 표하노라” (D’Aubigne, b.2, ch.6) 고 부르짖었다. 그는 로마 도성으로 들어가서 여러 교회를 방문하고, 신부와 승려들이 늘어놓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온갖 의식을 행하였다. 보는 것마다 그에게 놀라움과 두려움을 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는 각 계급의 승려들 가운데 죄악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주교의 입에서까지 야비한 농담을 듣게 되었고, 무서운 불경, 심지어 미사를 드리는 때에도 그런 일이 나타남을 보고 오직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승려와 시민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그들이 방탕하고 주색에 빠져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신성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까지 감행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로마에서 감행되는 모든 죄악과 파렴치한 행동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실제로 가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면 로마는 필시 그 위에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 곳은 온갖 죄악이 생겨나는 무한 지옥이다’는 말까지 있는 것이다” (D’Aubigne, b.2, ch.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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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법왕의 한 교령이 반포되었는데, 그것은 소위 빌라도의 층계라는 것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자는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 층계는 예수께서 로마인의 재판정을 나오실 때에 내려오신 층계로서 그것이 기적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루터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층계를 하나씩 하나씩 오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는 말씀이 우레처럼 들리는 듯하였다. 그는 두렵고 부끄러운 생각이 나서 급히 그 곳에서 일어나서 나왔다. 그 성경 구절이 그의 심령에 주는 능력은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그 때부터 그는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사람의 행위를 의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공로를 항상 믿어야 할 필요성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그의 눈은 열린 바 되었으며, 다시는 법왕교의 미혹으로 가려지지 아니할 것이었다. 그가 로마에서 얼굴을 돌리게 되자, 그의 마음도 또한 로마에서 떠났다. 그 후로 로마와의 간격은 점점 벌어져서 마침내 법왕 교회와 모든 관계를 끊어 버렸다.
성경 지상주의로 전향함
로마에서 귀국한 후에 루터는 비텐베르크 (Wit-tenberg)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제 그는 과거 어느 때보다 그가 사랑하는 성경 연구에 더욱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법왕의 교리와 그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 동안 주의 깊이 연구하고 충성스럽게 전파하기로 엄숙히 맹세하였다. 그 후로 그는 단순한 승려나 교수가 아니라 공인된 성경의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진리를 찾고자 주리고 목말라하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목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단연히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권위에 기초되지 않은 어떤 교리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확고하게 언명하였다. 이 말은 바로 법왕의 최상권의 기초를 공격하였다. 이 말 속에 종교개혁의 근본 원칙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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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사람의 이론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욱 존중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두려움 없이 학자들의 사변적 무신론 (思辨的 無神論) 을 공격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여 지배해 온 철학과 신학에 반대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해가 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청중들의 마음을 철학자나 신학자의 궤변에서 돌이켜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영원한 진리로 돌아오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증거한 기별은 그의 말을 열심으로 듣는 무리에게 귀중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전에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일이 결코 없었다. 구주의 사랑에 관한 기쁜 소식, 그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아 사유와 평안을 얻게 된다는 보증은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고 불멸의 소망을 고무시켜 주었다. 온 세계를 두루 비추어 줄 광명한 빛이 비텐베르크에서 밝혀졌으며 이 빛은 말세가 될수록 더욱 밝게 빛날 것이었다.
그러나 암흑과 광명은 조화될 수 없다. 진리와 오류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다. 그 중의 하나를 지지하고 옹호하기 위하여서는 다른 하나를 공격하고 넘어뜨려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고 친히 말씀하셨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얼마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인도하시지 아니하시고, 나를 앞으로 나가도록 떠미신다. 그분께서는 나로 하여금 넋을 잃게 하신다.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나는 평안히 살기를 갈망하지만 소동과 개혁의 와중에 던져져 있다” (D’Aubigne, b.5, ch.2). 그는 이 때 투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도록 강요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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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품으로 삼았다. 소위 환전대 (換錢臺) 라는 것이 제단 곁에 생기고 거기서 매매하는 자들의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당의 건축 자금을 모금한다는 명목 아래 면죄부가 법왕의 권위에 의하여 공공연하게 발매되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당이 죄의 값으로 건설되고, 그 모퉁이의 주춧돌이 불의의 값으로 놓이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세력 확장을 위하여 취하여진 이와 같은 수단들이 오히려 그 세력과 영광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다주는 큰 원인이 되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가장 결정적이고 성공적인 법왕교의 원수들이 일어나서 법왕의 보좌를 흔들고, 그 머리 위에 있는 삼층 면류관을 요동하게 하는 투쟁을 일으켰다.
추악한 사죄권의 발매
독일에서 면죄부를 팔도록 택함을 받은 테첼 (Tetze1) 이라는 사람은 사회적으로나 하나님의 율법상으로 볼 때 가장 누추한 죄를 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연히 자기의 죄에 따라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었으나 법왕의 재정을 확보해 주고 그의 무모한 계획을 성취시킬 자로 선택되어 형벌을 면하게 되었다. 그는 파렴치하게도 전혀 근거 없는 말을 하며, 무지하고 어리석고 미신적인 백성들에게 기괴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속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은 당시에 야심적인 로마 지도자들의 권세와 재물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법왕권의 통제 아래 사장 (死藏) 되어 있었고, 그들이 가지도록 용납되지 않았다 (John C.Gieseler, A Compendium of Ecclesiastical History, per.4, sec.1, par.5 참조).
테첼이 성에 도착하자 그보다 먼저 간 한 사자는 “하나님과 성부의 은혜가 너희 문에 있을지어다” (D’Aubigne, b.3, ch.1) 고 선포하였다. 사람들은 참람된 그 사기꾼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을 친히 맞이하는 것처럼 환영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증한 매매가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다. 테첼은 강단에 올라가 사죄권을 하나님의 가장 귀중한 선물이라고 격찬하였다. 그는 그 사죄권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사는 자에게는 그 후에 범하는 죄까지도 회개할 필요 없이 사유된다고 주장하였다 (D’Aubigne, b.3, ch.1).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중들에게 “이 사죄권은 현재 살아 있는 자뿐 아니라 이미 죽은 자도 구원할 효능이 있으며, 돈이 궤 밑에 떨어져 소리를 내는 그 즉시 위하여 속전을 낸 그 사람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가게 된다”고 보증하였다 (K.R.Hagenbach, History of the Reformation, vol, p.96.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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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시몬이 돈으로 사도들에게서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사려고 할 때, 베드로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행 8:20) 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테첼의 선물을 많은 열성적인 무리들이 사게 되었다. 금과 은은 그의 금고로 흘러 들어갔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구원은 회개와 믿음과 죄를 대항하여 싸우는 끈덕진 노력으로 얻는 구원보다 더욱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면죄부의 교리는 로마교 안에 있는 경건하고 학식 있는 사람들로부터 반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성 (理性) 과 계시 (啓示), 어느 편으로 보나 크게 배치되는 그와 같은 주장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어떤 주교도 그 부정한 매매에 대하여 반대하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혼란하고 불안해 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무슨 방법을 쓰시지는 아니하실지 물었다.
루터는 여전히 법왕교의 충실한 한 사람이었으나 사죄권 발매자의 망령되고 참람된 행위를 보게 되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시무하는 교회의 신자들 가운데도 사죄권을 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루터에게 와서 여러 가지 죄를 고백하고 사면을 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생애로 들어가려는 희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면죄부를 샀으므로 면죄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터는 단연히 이를 물리치고 그들이 회개하여 생애의 변화를 일으키지 아니하면 그 죄로 인하여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였다. 난처한 지경에 빠진 그들은 테첼에게로 가서 그들의 참회 청문승 (懺悔聽聞僧) 인 루터가 그들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돈을 도로 돌려 달라고 담대히 요구하였다. 그러자 그 승려는 격노하였다. 그는 가장 무서운 저주를 하고, 거리 모퉁이에 불을 피우고, “나는 이 신성한 면죄부를 반대하는 모든 이단자를 화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법왕으로부터 받았다”고 소리질렀다 (D’Aubigne, b.3, c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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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개조의 논제를 공개함
이제 루터는 진리의 투사로서 자기의 사업에 담대히 착수하였다. 그는 강단에서 소리 높여 열렬하고도 엄숙하게 경고하였다. 그는 청중에게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밝혀 주는 동시에 사람이 자력으로 죄악을 추호라도 경감시키거나 제거할 수 없고, 그 형벌을 면할 수도 없다고 가르쳤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 밖에는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고 다만 값없이 받는 선물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죄권을 사지 말고 믿음으로 십자가의 구주를 쳐다보라고 권면하였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굴욕과 고난으로 헛되이 노력한 자기의 쓰라린 경험을 말하고, 자신을 보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평안과 기쁨을 얻었다는 사실을 청중들에게 보증하였다.
테첼이 속죄부의 매매와 불경한 언동을 계속하고 있었으므로, 루터는 거기에 대하여 한층 더 효과적인 항의 (抗議) 를 하려고 결심하였다. 마침 기회가 왔다. 비텐베르크 성 교회에는 여러 가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특정한 축제일들에는 그것들을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그리고 그날에 교회에 와서 참회하는 자는 죄의 용서를 완전히 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 축일에는 수많은 사람이 그 곳으로 모여들었다. 때마침 그 축제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제성제 (諸聖祭) 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전날에 루터는 회당으로 모여드는 군중들과 함께 가서 면죄부의 교리에 항의하는 95개조의 논제를 기록한 종이를 그 성전의 출입문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그는 그 논제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튿날 대학에서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하겠노라고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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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논제는 일반의 주의를 끌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읽고 또 읽은 다음에 그것을 사방에 전하였다. 대학 안에와 온 성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이 논제로 말미암아 죄를 사유해 주고 죄의 형벌을 면하게 해주는 권세가 법왕이나 어떤 다른 사람에게도 위임된 적이 결코 없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러한 계획은 미신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금전을 사취하려는 사기적 술책, 곧 사단이 그 거짓된 일을 의뢰하는 모든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취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교회 안에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보배이며, 그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은 믿음과 회개로써 그것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진다는 것이 또한 분명히 밝혀졌다.
루터의 논제는 토론을 요구하였으나 아무도 거기에 응하는 자가 없었다. 그가 제시한 문제들은 수일 내에 온 독일에 퍼지고, 몇 주일 안에 각 그리스도교국들에 전파되었다. 교회 안에서 퍼져가고 있는 무서운 죄악을 보고 탄식하면서도 그 기세를 꺾을 방법을 알지 못하던 많은 경건한 로마교도들은 큰 기쁨으로 이 논제들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이 그 속에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법왕청에서 흘러나오는 타락의 조류를 막기 위하여 주님께서 자비하게도 당신의 손을 펴시는 줄로 알았다. 왕후 (王侯) 들과 지방 장관들은 한 번 결정한 일이면 아무도 탄원할 수 없는 그 교만한 권력을 쳐부수게 된 것을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