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10일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생활 

사단은 오류와 이단과 미신의 쓰레기 아래 진리의 말씀을 묻어 버리기 위하여 법왕교의 승려와 주교들을 독려하였다. 그러나 암흑시대의 전 기간을 통하여 성경은 가장 기이한 방법으로 손상되지 않은 채로 보전되었다. 성경은 사람의 인을 맞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 사람들은 성경의 명백하고 확실한 의미를 흐려 버리기 위하여 성경 자체의 증거들을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큰 파도의 깊은 물 속에 뜬 방주처럼 그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폭풍을 헤치고 나아갔다. 마치 금과 같은 풍부한 광맥들이 땅속에 숨겨져 있을 때 그 귀중한 광석들을 파내야 하는 것처럼 성경도 열심 있고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찾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진리의 보배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모든 사람들이, 유년 시대에나 청년 시대에나 장년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연구하는 교과서로 삼고자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당신 자신의 품성에 대한 계시로 사람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리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성경의 저자되신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잘 알게 되어 있다. 성경 연구는 인류로 하여금 창조주와 더욱 밀접히 연합하게 해주고 그분의 거룩한 뜻에 관하여 더욱 명확한 지식을 얻게 해준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 있어서 중개의 역할을 해준다.  

왈덴스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지식의 근본으로 여기는 동시에 세상 사람들과 교제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신력을 넓히고 지각을 예민하게 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실생활에 관한 지식을 얻는 일의 요긴함을 알고 있었다. 어떤 청년들은 그 산간의 학교로부터 그들이 살고 있는 알프스에 비하여 공부하고 연구하고 관찰하기에 더욱 유리한 지역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도시들에 있는 교육 기관으로 파견되었다. 이렇게 파견된 청년들은 유혹을 받고, 부도덕한 일을 목격하고, 가장 교활한 이단설과 위험성이 많은 기만으로 접근하는 사단의 교활한 대리자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받은 그들의 교육은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능히 이길 만한 품성을 이루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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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느 학교로 가든지 함부로 비밀을 드러내는 그런 벗을 사귀지 아니하였다. 그들의 의복은 가장 귀중한 보물인 성경 사본 (聖經寫本) 을 감출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수고하여 필기한 성경 사본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의심을 받지 않을 만큼 주의하면서 진리를 갈망하는 자로 인정되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부분을 보여주었다. 왈덴스인의 젊은이들은 어머니의 슬하에서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훈육을 받았으므로 그들은 그들의 사업을 이해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행하였다. 참된 신앙으로 회개한 사람들이 이러한 학교 안에 생겨났으므로 이따금 믿음의 원칙이 온 학교에 보급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법왕교의 지도자들이 아무리 세밀하게 조사를 할지라도 소위 부패케 하는 이단의 근원 (根源) 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전도의 정신이다. 거듭난 마음속에 제일 먼저 생기는 충동은 다른 사람들 또한 구주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그것은 보우도봐의 그리스도인들이 품은 정신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그들의 교회 안에서 순결한 진리를 보전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신다는 것, 즉 암흑 가운데 앉아 있는 자들에게도 빛을 비추어 줄 엄숙한 책임을 맡겨주셨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힘을 가지고 로마교회가 사람들에게 메워 준 무거운 멍에를 끊어 버리고자 힘썼다. 보우도봐의 목사들은 누구나 다 선교사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성직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먼저 전도자의 경험을 쌓아야 하였다. 고향에 있는 교회의 책임을 맡기 전에 어떤 선교 지역에서 3년 동안 봉사하여야 하였다. 이러한 봉사는 무엇보다도 극기와 희생을 요구하였으며, 사람들의 마음이 시련을 겪고 있던 그런 시대에 있어서 목사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입문 (入門) 이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성직에 나아간 청년들은 그 앞길에 세속적 이익과 번영을 바라지 아니하고 고생과 위험의 생활, 때에 따라서는 순교자의 운명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이 선교사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내어 보내신 때처럼 두 사람씩 파견되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나이 많고 경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였다. 그들은 자기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교훈해 줄 책임을 진 동반자의 지도에 복종하였다. 그 동역자들은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자주 기도하고 협의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피차에 신앙을 강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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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사명의 목적이 남에게 알려지게 되면 그 사업을 망치고 말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그들의 참된 성격을 조심성 있게 숨겼다. 모든 목사들은 제각기 일종의 기술이나 직업을 가지고 표면적으로는 어떤 세속적 직업에 종사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실제로는 전도 사업을 계속하였다. 흔히 그들은 장사꾼이나 행상인의 직업을 택하였다. “그들은 그 당시에 먼 곳에 있는 시장에 가지 않으면 쉽사리 얻을 수 없는 비단과 보석과 그 밖의 물품들을 가지고 다녔는데, 선교사로서 가면 추방당할 곳이라도 행상인으로 갔으므로 환영을 받았다” (Wylie, b.1, ch.7). 그들의 마음은 황금이나 보석보다도 더 귀한 보배를 전하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언제나 열려 있었다. 그들은 세밀히 성경을 필사한 전부 혹은 일부분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를 얻을 때는 언제나 그것을 끄집어내어 그들의 고객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자 하는 흥미가 일깨워졌으며 성경의 사본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주었다.  

청년들의 놀랄 만한 활동 

이러한 선교사들의 활동이 초기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산기슭에 있는 평원과 골짜기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범위를 넘어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에까지 나아갔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바와 같이 여로 (旅路) 에 더러워진 초라한 옷을 입고 맨발로 큰 도시들을 지나다녔고, 멀리 떨어진 지방까지도 빼놓지 않고 침투하여 들어갔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귀중한 종자를 뿌렸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교회가 생기고, 순교자들의 피가 진리를 증거하였다. 여호와의 큰 날에 신실한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풍부한 수확이 나타날 것이다. 은밀하고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교국들을 통하여 사람들의 가정과 심령 속으로 영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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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덴스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을 취급하신 기록과 현재의 책임이나 의무에 대한 계시일 뿐만 아니라 장래에 있을 위험과 영광을 나타내주는 기록이었다. 그들은 만물의 마지막이 머지않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기도와 눈물로써 성경을 연구할 때, 그들은 그 귀중한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고, 구원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줄 책임을 깊이 느꼈다. 그리고 구원의 계획이 거룩한 말씀 속에 분명히 나타난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위로와 소망과 평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빛이 그들의 이해력에 비추어져서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줄 때 그들은 그 빛을 로마교의 오류의 암흑에 묻혀 있는 자들에게 비추어 주고자 열망하게 되었다.  

그들은 법왕과 신부들의 지도 아래 있는 무리들이 그들의 육체를 고통스럽게 함으로 심중의 죄를 용서받고자 애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자기들의 선행을 의지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들의 죄 많은 상태와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자신들을 보고 심신 (心身) 을 괴롭게 하였으나 마음의 평안은 얻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양심적인 사람들은 로마교의 교리에 얽매이게 되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친구와 친척들을 버리고 수도원에서 생애를 보내었다. 자주 반복되는 금식, 잔혹한 태장, 밤중의 기도, 쓸쓸하고 차갑고 습기찬 돌 위에 몸을 굽힌 채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먼 길의 순례 여행, 굴욕적인 고행, 무서운 고통을 통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양심의 평안을 얻으려고 헛되이 노력하였다. 그들은 죄의식으로 압박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시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감으로 번뇌하고 고민하였으며 마침내 기력이 쇠잔하기까지 되었으나 한 줄기의 빛이나 희망조차 없이 무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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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진리의 발견 

왈덴스인들은 이처럼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는 평안의 기쁨을 알려 주고,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자 갈망하였다. 그들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과를 속할 수 있다고 하는 교리가 거짓에 기초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람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타락한 인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추천할 만한 어떤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람의 희생 제물로 돌아가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기초가 된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람의 의존은 마치 포도나무의 가지가 그 줄기에 붙어 있고 사람의 지체가 몸에 붙어 있는 것처럼 참으로 사실이며, 그분과의 연결은 그처럼 밀접해야 한다. 

법왕과 신부들의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품성, 심지어 그리스도의 품성까지도 가혹하고 음울하고 가까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구주께서는 타락한 인류에게 신부나 성자들의 중보가 필요하리 만큼 동정심이 전혀 없으신 분처럼 표현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들은 이처럼 방황하는 영혼들에 대하여 자비의 팔을 펴시고 자기들의 죄와 근심과 염려의 짐을 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당신께로 오라고 부르고 계시는 사랑과 동정이 많으신 구주를 소개하고자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사단이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볼 수 없도록 쌓아놓은 장애물을 제거하여 버림으로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용서와 평안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보우도봐의 선교사들은 열심으로 뜻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복음의 귀중한 진리를 밝히 나타내 주었다. 그들은 매우 조심성 있게 손으로 베낀 성경을 내어 놓았다. 하나님을 마치 보복만 하시는 분으로 알고 엄격한 심판을 기다리면서 죄짐에 눌려 있는 양심적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었다. 떨리는 입술과 눈물 어린 눈으로, 때로는 무릎을 꿇고, 그들은 동포들에게 죄인의 유일한 소망을 나타내 주는 하나님의 귀중한 약속을 읽어 주었다. 이리하여 진리의 빛은 암흑에 싸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고, 어두운 구름은 사라져 버리고, 마침내 치료하는 광선을 가진 의의 태양이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게 되었다. 때로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되풀이해서 읽어 주었는데, 그 이유는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올바르게 들었는지 확인할 뜻으로 반복해서 읽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다시 읽어주기를 간청한 성경 구절들은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라는 말씀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 15) 고 한 부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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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와 그 기쁨 

많은 사람이 로마교의 주장이 그릇된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죄인을 위하여 사람이나 천사의 중보가 참으로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참 빛이 그들의 마음에 비취게 되자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그리스도는 나의 제사장이시요, 그분의 피는 나의 제물이요, 그분의 제단은 나의 참회실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자기 자신들을 온전히 맡기고 “믿음이 없은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 11:6 구역),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 는 말씀을 되풀이하였다.  

구주의 사랑의 보증은 이와 같이 가련하고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심령들이 깨달을 수 없으리 만큼 풍성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그들에게 그처럼 큰 안도감을 가져다주고 그처럼 넘쳐흐르는 밝은 빛을 받게 되었으므로 마치 천국으로 옮겨진 듯이 생각되었다. 그들의 손은 신뢰하는 태도로 그리스도의 손에 붙잡혀 있었고, 그들의 발은 만세 반석 위에 서 있었다.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구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감옥이나 화형주도 달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읽혀졌다. 어떤 때에는 오직 한 사람에게, 또 어떤 때에는 빛과 진리를 사모하는 적은 무리에게 읽혀졌다. 때로는 밤을 새워가면서 성경을 읽어 주었다. 듣는 사람들은 너무나 감탄하고 놀랐기 때문에 구원의 기별을 깨달을 때까지 자비의 사자들이 낭독하는 일을 중단하지 못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종종 하나님께서 나의 예물을 받아 주실까, 과연 내게 대하여 미소를 지으실까, 그분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실까 하는 말들을 하였다. 그러면 그 대답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는 말씀을 읽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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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믿음의 손으로 약속을 붙잡고, 기쁨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되었다. “이제는 먼 길의 순례가 쓸데없다. 이 이상 더 거룩한 성전을 찾아서 고통스러운 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죄 많고 불결한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겠다. 그분께서는 통회하는 사람의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실 것이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아아! 그분께서는 나의 죄, 나의 죄까지도 사하여 주신다.”  

거룩한 기쁨의 물결이 마음을 채우고, 찬미와 감사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된다. 기쁨으로 충만해진 그들은 진리와 생명의 길 되신 예수님을 찾은 새로운 체험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받은바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말하는 이상하고도 엄숙한 힘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으며, 듣는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후에 진리의 사자는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겸손한 태도와 그의 성실성과 그의 열성과 깊은 인상을 남겨 주는 호감은 자주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에 너무나 경탄하게 되고 다음에는 기쁨으로 감격하여져서 압도당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자기들의 집으로 가자고 강권하게 되면, 그 진리의 사자는 잃어버린 양떼를 찾아가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혹시 천사가 아니었던가 하고 의심하기도 하였다.  

많은 경우에 사자는 한 번 보이고는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그는 다른 나라로 갔거나, 어떤 미지의 감옥에서 고생을 하고 있거나 자기가 진리를 증거한 그 곳에서 이미 백골만을 남겨놓은 신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남겨 놓고 간 말씀은 멸절될 수 없었다. 그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역사하고 있었다. 그 복된 결과는 오직 심판의 날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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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대응책 

왈덴스인 선교사들이 사단의 왕국을 공격하고 있었으므로 암흑의 세력도 일어나서 크게 경성하게 되었다. 죄악의 왕자는 진리를 진척시키려는 모든 활동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의 대리자들의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법왕교의 지도자들은 이런 검소한 행상인들의 활동이 그들의 사업에 위험의 전조가 되는 것을 깨달았다. 진리의 빛이 아무런 장애 없이 비추어지도록 허용된다면 그것이 백성들을 에워싸고 있는 오류의 짙은 구름을 헤쳐 버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만 이끌게 할 것이므로 마침내 로마교의 최상권은 무너질 것이었다.  

초대 교회의 신조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이 백성들이 로마교의 배도를 언제나 입증하였으므로 그들의 가장 심한 미움과 박해를 일으켰다. 특히 성경을 버리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로마교가 용납할 수 없는 범법이었다. 그리하여 로마교는 그들을 이 지상에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였다. 이에 산간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토벌하기 위하여 무서운 십자군이 파견되었다. 또한 종교 재판관들이 그들과 함께 파견되어 죄 없는 아벨이 잔인한 가인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광경이 자주자주 되풀이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비옥한 땅은 거듭거듭 황폐되었으며, 그들이 살던 집과 예배당은 자취조차 없어졌으므로 한 때 곡식이 무르익었던 밭들과 흠 없고 부지런한 백성들이 살던 곳은 거친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마치 굶주린 맹수가 피 맛을 보고 더욱 사나워지는 것처럼 법왕 교도들의 분노는 그들의 희생물들의 고난으로 더욱 격렬해졌다. 순결한 믿음의 증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추격당하고, 골짜기에서도 숨을 곳을 찾지 못하여 깊은 산림 속과 절벽 위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인권을 박탈당한 그 사람들의 도덕적 품성에는 아무런 책잡을 것이 없었다. 그들의 원수들까지도 그들을 온유하고 조용하고 경건한 백성들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의 큰 죄목은 법왕의 뜻대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죄의 대가로 사람이나 악마가 고안해 낼 수 있는 온갖 굴욕과 모욕과 가혹한 형벌이 그들에게 과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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