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08일

이교적 미신이 교회에 들어옴 

그리하여 이교에서 꾸며낸 또 다른 이단설이 들어올 길이 준비되었다. 로마는 그것을 연옥으로 명명하였으며, 쉽사리 믿는 미신적인 많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였다. 이 이단설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을 받을 정도까지 이르지 아니한 영혼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형벌을 받아야 할 곳, 그리고 거기서 모든 부정한 것이 씻겨졌을 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될 고통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 긍정되었다 (부록 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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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자들의 공포심과 악행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을 로마로 가능케 하기 위하여 또 다른 날조가 필요되었다. 그것은 곧 면죄 (免罪) 에 관한 교리였다. 법왕군 (法王軍) 에 속하여 그 영토를 넓히고, 교회의 적 (適) 을 징벌하고, 법왕의 영적 최상권을 부인하는 자들을 박멸하는 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의 사유를 받고,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과 형벌에서 면죄된다고 약속되었다. 그리고 교회에 돈을 내면 죄에서 해방되고, 또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현재 죽어서 연옥의 불에 빠져 있는 사별한 영혼까지도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수단으로 로마교는 금고를 채우게 되었고,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신 이를 대표한다는 자의 호사 (豪奢) 와 악행을 지탱해 주었다 (부록 9 참조). 

성경상 의식 (儀式) 인 주의 만찬도 미사라는 우상 숭배적 제도로 대치되었다. 로마교의 사제들은 그들의 무의미한 야단스런 의식을 통하여 단순한 떡과 포도주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 (Cardinal Wiseman, The Real Presence of the Body and Blood of Our Lord Jesus Christ in the Blessed Eucharist Proved From Scripture, Lecture 8, sec.3, par.26) 로 바뀌는 것처럼 말하였다. 그들은 그와 같이 하나님을 모독 (冒瀆) 하는 참람된 언행으로 그들이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창조할 권능이 있음을 공공연하게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위협 아래서 하늘을 모독하는 끔찍한 이단을 믿노라고 고백하도록 요구받았다. 이를 거부한 많은 사람들은 화형을 받았다 (부록 10 참조).  

13세기에 법왕의 모든 도구 중에서 가장 무서운 제도 즉 종교 재판소가 설립되었다. 흑암의 왕이 법왕교의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였다. 그들의 비밀회의에서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악인들의 마음을 지배하였다. 그와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 가운데 서서 그들의 죄악적인 명령의 놀라운 것들을 기록하고 사람의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무서운 행위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였다. “큰 성 바벨론”은 “성도들의 피에 취”하였다. 여러 토막으로 잘리워진 수백만의 순교자들은 그 배교적 세력에 대하여 신원 (伸寃) 하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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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은 전세계의 독재 군주가 되었다. 왕들과 황제들은 로마 법왕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인류의 운명은 현세와 내세를 막론하고 모두 그의 관리 아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백 년 동안 로마교의 교리들은 광범위하게 그리고 절대적인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그 의식들은 엄숙히 거행되고, 그 축제일들은 널리 준수되었다. 승려들도 존경을 받고, 풍족하게 살게 되었다. 아마 이 때처럼 로마교가 위엄과 세력을 편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왕교의 대낮은 바로 세상의 한밤중이었다” (J.A.Wylie, The History of Protestan-tism, b.I, ch.4). 성경은 일반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신부들에게까지도 거의 알려지지 못하였다. 옛날의 바리새인들처럼 로마교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죄악을 폭로시켜 줄 빛을 싫어하였다. 의의 표준인 하나님의 율법이 제거되자 그들은 권세를 한량없이 부리고, 온당치 않은 행동을 거침없이 하였다. 사기, 탐욕, 방탕이 세상에 두루 퍼졌다. 사람들은 재물과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범죄라도 서슴지 않았다. 법왕과 주교들의 저택들은 극히 비열한 죄악의 장소가 되었다. 어떤 현직 법왕과 주교들은 너무나 지나치게 비인도적인 죄를 범하였으므로 세상의 통치자들도 차마 그냥 둘 수가 없어서 그들을 극악무도한 사람으로 보고 교회의 높은 지위에서 떨어뜨리고자 노력한 일까지 있었다. 수세기 동안 유럽에서는 학문, 예술, 문화의 각 방면에 있어서 아무런 진보도 볼 수 없었다. 그리스도교국은 도덕적, 지적으로 마비 상태에 빠졌다.  

로마교의 권세 아래 있는 세계의 상태는 선지자 호세아의 말이 분명히 성취된 사실을 실증하였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 버리리라”,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호 4:6, 1, 2).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결과는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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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 — 왈덴스 

언론의 자유와 문서 배포에 대한 탄압 

법왕교가 장기간에 걸쳐서 최상권을 잡고 있는 동안 이 세상은 암흑으로 덮여 있었지만, 진리의 빛은 아주 소멸되지 아니하였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증인들,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이심을 확실히 믿고, 성경을 인생의 유일한 지침으로 삼고, 참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키는 증인들이 있었다. 세상이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은혜를 입었는지에 대하여 후세의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단자로 낙인이 찍히고, 그들의 동기는 비난을 받고, 그들의 품성은 중상을 받고, 그들의 저서들은 압수당하고 오전 (誤傳) 되고 삭제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굳게 서서 오는 세대를 위한 신성한 유업으로써 그들의 순결한 믿음을 대대로 물려가며 간직하였다. 

로마교가 최상권을 쥐고 있던 암흑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당한 역사는 모두 하늘에 기록되어 있지만 사람의 손으로 기록된 것은 너무도 적다. 그들을 박해한 자들의 비난 이외에는 그 사적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 없다. 법왕교의 교리와 명령에 반대하는 자들의 흔적과 영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로마교의 정책이었다. 로마교는 이단적인 것은 사람이든지 서적이든지 간에 박멸하고자 하였다. 법왕교의 교리의 권위에 대하여 의혹이나 의문을 품는 사람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생명을 빼앗기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로마교는 또한 그들의 교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행한 잔인한 행동에 대한 모든 기록을 말살해 버리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법왕이 주최한 종교 회의들은 이러한 종류의 기사를 포함한 서적들을 다 태워 버리도록 결의하였다. 인쇄 기계가 발명되기 전에는 서적들의 수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그 형태도 보존하기에 극히 불편하였으므로 로마교도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방해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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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의 관할 아래 있는 교회는 언제까지든지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지낼 수 없었다. 법왕권은 권세를 쥐자마자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억누르고자 마수를 뻗쳤다. 그리고 교회들은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그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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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있던 초기 그리스도교회 

영국에는 매우 일찍부터 순수한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렸다. 최초의 수세기 동안에 영국인들이 받아들인 복음은 로마교의 배교로 부패되지 않은 복음이었다. 영국의 최초의 교회들이 로마로부터 받은 유일의 선물은 멀리 떨어진 해안에까지 미친 이교 황제들의 박해뿐이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국에서의 핍박을 피하여 스코틀랜드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진리는 마침내 아일랜드에까지 퍼져갔는데, 그 나라들은 모두 이 진리를 환영하였다.  

색슨족이 영국을 침략하게 되자, 이교도들이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정복자들은 그들이 정복한 피정복민에게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산과 광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은 한동안 가려졌으나, 계속 타고 있었다. 일세기 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나라에까지 퍼져간 빛은 스코틀랜드에서 밝히 빛났다. 아일랜드로부터 경건한 콜룸바 (Columba) 와 그의 동역자들이 와서 각처에 흩어져 있는 신도들을 적막한 아이오나 섬으로 모았다. 그리하여 그 섬은 그들의 선교 사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전도자들 중에 성경상 안식일을 준수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진리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아이오나 섬에 한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그 곳에서부터 스코틀랜드와 영국은 물론이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에까지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로마는 영국을 주시하고, 그것을 자기의 패권 아래 넣으려고 결심하였다. 6세기에 법왕교의 선교사들은 이교도인 색슨족을 개종시키고자 하였다. 그들은 교만한 야만인들의 환심을 사서 수천 명을 로마교의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갈 때 법왕교의 승려들과 개종자들은 순수한 그리스도인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양자 간에는 현저한 대조가 나타났다. 전자는 법왕교의 미신과 허세와 교만을 나타내는 반면에 후자는 단순하고 겸손하며, 품성과 신조와 행동 등이 모두 성경과 부합됨을 보여 주었다. 법왕의 사절들은 이 그리스도교회들에게 법왕의 최상권을 인정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온유한 태도로, 그들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기를 열망하고 있지만 법왕이 교회에서 최상권을 가질 자격이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피차에 대하는 것과 같은 겸손으로 그에게 대할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사절들은 로마의 법왕에게 충성을 표시하게 하고자 계속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거만한 사절들의 태도에 놀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주를 인정할 수 없노라고 확고하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법왕교의 정체는 나타났다. 로마교의 지도자는 “너희가 평화를 가져오는 형제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희는 필경 전쟁을 가져오는 원수를 맞이하고야 말 것이다. 너희가 색슨족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는 일에 우리와 연합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결국 그들에게서 죽음의 매를 맞고야 말 것이다” (J.H.Merle D’Aubigne, History of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b.17, ch.2) 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근거 없는 위협이 아니었다. 전쟁과 음모와 기만 등의 온갖 수단이 성경상 신앙을 가진 그 증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마침내 영국의 교회들은 파괴되거나 법왕권에 굴복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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