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07일

안식일의 변경과 사단의 흉계 

이교에 양보하는 정신은 하나님의 권위를 한층 더 무시하는 길을 열었다. 사단은 헌신하지 못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하여 넷째 계명에 손을 대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옛적부터 내려오는 안식일을 폐하고, 그 대신에 이교도들이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로 지켜온 그날을 축일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을 초기에는 공공연하게 시도하지 않았다. 처음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참 안식일을 지켰다.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돈독하였고, 그분의 율법의 불변성을 믿었으므로 율법의 신성성을 열렬하게 옹호하였다. 그런데 사단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대단히 교묘한 방법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요일에 집중시키기 위하여 그날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축일로 삼았다. 그날에 종교적 행사들이 행해졌지만, 그날은 다만 오락일로 여겨졌을 뿐이며, 안식일은 여전히 신성하게 준수되고 있었다.  

사단은 자기가 목적한 사업을 성취할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초림 전에 먼저 유대인으로 하여금 안식일을 가혹한 부담이 되게 하여 그날을 준수하는 일이 무거운 짐이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이와 같이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그릇된 것을 이용하여, 그것을 유대인의 제도라고 모욕하였다. 일요일을 즐거운 축일로 삼아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는 한편 그는 유대교에 대한 증오감을 보이기 위하여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이요, 우울하고 슬픈 날로 삼도록 그들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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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칙령을 내려 일요일을 로마 제국 전체의 공적인 축일로 삼았다 (부록 4 참조). 태양의 날은 이교도들이 존중하고 있는 동시에 그리스도인들도 존중하고 있었다. 이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충돌하는 이해 (利害) 를 연합시키는 것이 황제의 정책이었다. 그리스도교와 이교도가 같은 날을 지킨다면 이교도들이 명목상으로라도 그리스도교를 채택하는 일이 촉진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교회의 권세와 영광이 더할 것을 깨달은, 야망과 권력욕에 고무된 교회의 감독들이 황제에게 그렇게 하도록 촉구하였다. 그러나 많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이 어느 정도 신성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안식일을 하나님의 거룩한 날로 주장하였고, 넷째 계명에 따라 그날을 지키고 있었다. 

대기만자는 그의 일을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교 세계를 자기의 깃발 아래 모으고, 자기의 대리자, 곧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하는 거만한 대감독을 통하여 자기의 권세를 발휘하고자 결심하였다. 그는 완전히 회개하지 않은 이교도들과 야심이 가득한 감독들과 세속적 욕망을 가진 교직자들을 통하여 자기의 목적을 이루었다. 때때로 대규모 종교 회의들을 경영하여, 온 세계에서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을 소집하였다. 거의 모든 회의에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은 조금씩 가치를 저하시키는 동시에 일요일은 조금씩 높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교의 축제일은 신성한 제도인 듯이 높임을 받게 된 반면 성경상 안식일은 유대교의 유물이라는 선고를 받고, 그날을 지키는 자는 저주를 받을 자로 공포되었다.  

이리하여 이 큰 배도자는 마침내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살후 2:4) 게 스스로를 높이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대담하게도 모든 인류에게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율법의 유일한 계명을 변경하려고 시도하였다. 넷째 계명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창조주로서 계시되었으며 그런 까닭에 다른 거짓 신들과 구별되신다. 그리고 제칠일이 인류의 안식일로 거룩히 구별된 것은 한편으로 창조 사업을 기념하는 동시에, 또한 인류의 마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단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지적해 주는 계명을 특별히 공격하고자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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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휴업의 제도가 시작됨 

오늘날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으므로 그날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에 관한 성경상 증거는 전혀 없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은 그날을 그와 같이 높이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제도로써 일요일을 준수하게 된 단서는 이미 바울의 시대에 활동을 시작한 “불법의 비밀” (살후 2:7) 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 이 법왕권의 소생 (所生) 을 양자로 삼으셨는가? 성경이 인정하지 않는 이와 같은 변경에 대하여 어떠한 타당한 이유를 댈 수 있겠는가?  

6세기에 법왕권은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그의 권좌는 로마에 위치하게 되었고, 로마의 감독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공포되었다. 이교는 그의 지위를 법왕에게 넘겨주었다. 곧 용이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 (계 13:2) 를 주었다 (부록 5 참조). 이리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1260년간의 법왕권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단 7:25; 계 13:5~7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절개를 버리고 법왕교의 의식과 예배를 받아들이든지, 지하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대 (拷問臺) 와 화형 (火刑) 과 참형 (斬刑) 집행자의 칼에 생명을 빼앗기든지, 그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 (눅 21:16, 17)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박해는 전에 없이 한층 더 격렬하게 충성된 사람들에게 임하였으므로 세상은 하나의 큰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수백 년간 그리스도교회는 인가가 없는 궁벽한 곳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선지자는 이 일에 대하여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 12:6) 고 예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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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誤謬) 와 미신이 퍼짐 

로마교회가 권세를 잡게 되므로 이른바 암흑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권세가 더해 갈 적마다 암흑은 더욱 짙어졌다. 믿음은 진정한 기초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로마 법왕에게로 옮기어 갔다. 사람들은 죄의 사유와 영원한 구원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의뢰하는 대신에 법왕과 법왕에게서 권세를 받은 신부나 주교에게 구하게 되었다. 법왕은 세상에 있는 그들의 중보자이며, 그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법왕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치에 서 있으므로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은 배웠다. 그러므로 그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심신에 엄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서 오류가 많고 잔인한 사람들, 아니 그보다도 그들을 통하여 자기의 권력을 행사하는 암흑의 임금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죄는 신성 (神聖) 이라는 가면을 쓰게 되었다. 그런즉 성경이 금지를 당하고, 사람이 자기를 지극히 높은 자라고 할 때 우리는 거짓과 속임과 불법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 사람의 법과 전설이 높임을 받을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함으로 생기는 타락이 나타났다.  

이때는 그리스도교회가 위기에 놓인 시대였다. 충성된 기수 (旗手) 는 참으로 적었다. 진리를 증거하는 사람들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마는 오류와 미신이 완전히 승리하고 진정한 종교는 세상에서 제거될 것처럼 보였다. 복음은 잊혀진 바 되었고 종교의 형식은 증가되었으며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혹한 요구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그들은 법왕을 그들의 중보자로 우러러보고, 죄를 속하기 위하여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그분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먼 길의 순례 여행, 고행, 유물 예배 (遺物禮拜), 교회당과 제단과 수도원의 건립 (建立), 많은 돈의 헌납 (獻納), 그와 유사한 그 밖의 일들을 행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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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나님께서 사람처럼 사소한 일로 진노하시고, 예물이나 고행으로 그 진노를 거두시는 분이시기나 한 것처럼. 

비행 (非行) 은 온 사회에 퍼지되 심지어 로마교회의 지도자들에게까지도 파급되었지만 그 교회의 세력은 꾸준히 증가되는 듯하였다. 8세기의 말엽에 법왕교도들은 초대의 교회에서도 로마의 감독들은 현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신령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의 확실성을 공고히 하고 그것을 더욱 권위 있게 하기 위하여 무슨 방법이 사용되어야만 하였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로 말미암아 이러한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암시가 이미 주어져 있었다. 승려들은 고서 (古書) 들을 위조하였다. 초기부터 법왕은 전반적인 최상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세우기 위하여 그 당시까지 전혀 듣지 못한 종교 회의의 결의문들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진리를 배반한 교회는 이 기만을 즐겨 받아들였다 (부록 6 참조).  

참된 기초 위에서 일을 하던 소수의 신실한 건축가들은 거짓 교리가 자기들의 일을 방해하기 때문에 혼란과 어려움을 느꼈다. 마치 느헤미야 당시에 예루살렘 성을 쌓던 사람들처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느 4:10) 고 말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공사의 진행을 방해하기 위하여 자행되는 박해, 기만, 불법, 그 밖에 사단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온갖 장애물과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피곤하여져서, 충성된 건축가들이었던 자들 중 더러는 낙담해 버렸다. 그들은 마침내 생명의 안전과 재산의 보호를 위하여 참된 기초에서 물러갔다. 그러나 원수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 (느 4:14) 라고 용감하게 외치면서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괴이한 무류설 (無謬設)  

진리를 미워하고 반대하는 동일한 정신이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원수들을 충동시켜 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경계와 충성이 요구되어 왔다. 그리스도께서 최초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말세에 사는 그분의 제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막 13:37) 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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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은 점점 더 짙어지는 듯이 보였다. 우상 숭배는 더욱더 보편화되었다. 우상 앞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렸다. 가장 불합리하고 미신적인 풍습들이 널리 보급되었다. 사람들의 정신은 완전히 미신에 사로잡혀서 이성 (理性) 은 그 기능을 잃은 듯하였다. 신부와 주교 자신들이 향락을 즐기고, 육욕적이며 타락에 빠져 있었으므로 그들을 지도자로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무지와 악덕에 빠지지 않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법왕의 참람된 행위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11세기에 법왕 그레고리우스 7세 (Gregory Ⅶ) 는 로마교회가 완전하다고 선포하였다. 그의 주장 중의 하나는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한 번도 그릇된 일을 한 적이 없고, 또 장래에도 잘못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지지해 주는 성경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거만한 법왕은 또한 황제들을 폐위시킬 권세가 자기에게 있노라고 주장하고, 자기가 선포한 선고는 아무도 이를 폐기 (廢棄) 할 수 없지만 자기에게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결정을 변경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부록 7 참조).  

절대 무류 (絶對無謬) 를 주장하는 법왕의 포악한 특성을 보여준 현저한 실례는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 (Heinrich Ⅳ) 에게 행한 조치였다. 하인리히는 법왕의 권위를 감히 무시하였기 때문에 파문 (破門) 을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폐위의 선고까지 받았다. 하인리히 4세는 법왕의 명령에 의하여 자기를 배반하도록 촉구 받은 자기의 제후 (諸侯) 들의 배척과 협박에 두려움을 느끼고 법왕과 화해해야 할 필요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법왕 앞에 나아가 용서를 구하고자 황후와 충실한 한 시종을 데리고 한겨울에 험한 알프스 산을 넘어갔다. 그리하여 당시 그레고리우스 법왕이 유하고 있는 성에 도착하자 호위병 하나 없이 궁전의 외원 (外苑) 에 이끌려 나가,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몸에는 변변치 못한 옷을 입은 채 맨발로 추위에 떨면서 법왕의 면회가 허락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일 동안의 금식과 자복이 있은 후에야 법왕은 그를 사면하였다. 그것도 왕권을 나타내는 휘장 (徽章) 을 달거나 왕의 권리를 행사하게 될 때에는 먼저 법왕의 윤허 (允許) 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에 그레고리우스는 의기양양하여 군주들의 교만을 꺾어 주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자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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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만 불손한 법왕의 태도를 마음 문 밖에 서서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그리스도, 제자들에게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7) 고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태도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대조적인가!  

세기가 지나갈수록 그릇된 교리가 로마로부터 끊임없이 나왔다. 법왕권이 확립되기 전에 이미 이교의 철학자들의 가르침이 주목을 받았으며, 교회 내에 영향을 미쳐왔다. 개종했노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의 이교적 철학설을 주장하며 스스로 그것을 계속 연구할 뿐만 아니라 이교도들과 접촉하는 수단이 된다는 구실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것을 강요하는 자가 있었다. 이리하여 심각한 오류가 그리스도교 신앙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은 본래 불사 불멸 (不死不滅) 의 본성을 가졌으므로 죽은 후에도 의식 (意識) 이 있다는 설은 그와 같은 오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로마교회가 확립한 성도의 중보, 동정녀 마리아 숭배 같은 것이 다 이러한 교리를 기초로 생겼다. 또한 일찍부터 법왕교 신앙에 통합된 교리로서 끝끝내 믿지 않는 자는 영원토록 고통을 당할 것이란 이단설도 역시 이와 같은 교리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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