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03일

사단의 맹렬한 활동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유대인의 완고한 고집을 더욱 크게 해줄 따름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미워하고 학대함으로 마침내 마지막으로 주어진 자비까지도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보호의 손을 그들에게서 거두시고 사단과 그 사자들을 억제하던 능력을 그들에게서 거두시므로 그 백성은 자기들의 택한 지도자의 지배에 버려진 바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악한 충동을 제어할 능력을 줄 수 있었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였으므로 이제는 그 악한 충동들이 그들을 정복하였다. 사단은 사람의 가장 격렬하고도 비열한 정욕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이성 (理性) 을 떠나서 충동과 맹목적인 격정 (激情) 의 지배를 받았다. 그들의 잔인성은 악마와 같았다. 가정에, 백성들 사이에, 상류 계급과 하류 계급들 간에 한결같이 의심, 질투, 원한, 불화, 모반, 살육이 편만하였다.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살해하였다. 위정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다스릴 힘이 없었다.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폭군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하기 위하여 거짓 증언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거짓 고소가 그들 자신들의 생명을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사 30:11) 고 말해 왔었다. 이제는 그들의 소원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사단은 나라의 수령이 되고, 국가와 종교의 최고 권위자들은 모두 그에게 지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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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적대적인 파당의 지도자들이 때때로 불쌍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약탈하는 일에 결탁하였고, 다시 그들끼리 싸우고 무자비하게 살육하였다. 신성한 성전에서까지도 그들은 포악무도한 일을 행하였다. 예배하던 사람들이 제단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성소는 그 시체들로 더럽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흉악한 사건의 선동자들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므로 멸망될 염려가 없다는 그들의 맹목적이며 모독적인 억측을 공공연하게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세력을 더욱 확고하게 구축하기 위하여 그들은 거짓 선지자를 매수하여, 비록 성전이 로마군에게 포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고 공포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최후까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의 원수들을 무찔러 주실 것이라는 신념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거절하였으므로 이제 그들에게는 아무런 방비가 없었다. 불행한 예루살렘이여! 내분 (內紛) 으로 찢겨지고, 피차의 손으로 죽임을 당한 자녀들의 피로써 거리는 붉게 물들고 그 요새 (要塞) 는 이방인들에게 파괴되고, 용사들은 죽임을 당한 불행한 예루살렘이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언은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유대인들은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마 7:2) 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경고의 말씀이 진리임을 경험하였다.  

재난과 멸망의 전조가 되는 징조와 기사들이 나타났다. 깊은 밤중에 한 줄기의 이상한 빛이 성전과 제단 위에 나타났다. 해가 질 무렵에는 구름 위에 싸움터로 모여드는 군사들과 전차 (戰車) 들의 광경이 나타났다. 밤에 성소에서 봉사하던 제사장들이 신비한 소리를 듣고 공포에 질렸다. 땅이 진동하였고, “우리가 여기서 떠나가자”고 하는 군중의 외침이 들렸다. 20명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열 수 없는 육중하고 견고한 주춧돌에 깊이 박혀 있는 철빗장으로 굳게 닫힌 동문 (東門) 의 문짝이 아무런 인적 (人迹) 도 없이 밤중에 열렸다 (Milman, The History of the Jews, book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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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년 동안 예루살렘의 시가를 오르내리며 성도 (聖都) 에 재앙이 내릴 것을 선포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밤낮으로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는 “동편에서 한 소리가, 서편에서 한 소리가, 사방에서 한 소리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책망하는 한 소리가, 신랑과 신부를 책망하는 한 소리가, 온 백성을 책망하는 한 소리가” (Milman, The History of the Jews, book 13) 난다고 외쳤다. 그 수상한 사람은 옥에 갇히어 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온갖 능욕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그 거민들이여”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의 경고의 외침은 그 자신이 예언한 그대로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그가 죽는 순간까지 그치지 아니하였다. 

로마군의 퇴군과 그리스도인의 피난 

그리스도인은 예루살렘의 멸망 때 한 사람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미리 경고하셨으므로 그분의 말씀을 믿은 모든 사람은 그 약속의 징조에 유의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눅 21:20, 21) 라고 말씀하셨다. 로마군은 세스티우스 (Cestius) 의 지휘 아래 그 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즉각적으로 공격하기에 유리한 것처럼 보였을 때에 그들은 갑자기 그 포위를 풀고 퇴군하였다. 성 안에 포위되어 있던 사람들은 적군을 격퇴할 수 없음을 알고 항복하려던 찰나였는데, 그 때에 아무런 명백한 이유 없이 로마의 대장은 군사를 철수시켰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사건들을 조종하고 계셨다. 약속된 징조가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다. 이제 구주의 경고를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때가 절호의 기회였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로마인을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도망하는 일은 막을 수 없도록 사건들을 그렇게 조종하셨다. 세스티우스가 퇴각하는 것을 본 유대군은 예루살렘성에서 나와서 물러가는 적군을 추격하였다. 그리하여 두 군대가 교전하는 동안에 그리스도인들은 성을 빠져나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에는 그들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원수들이 지방에는 없었다. 그 성이 포위된 당시에 유대인들은 장막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으므로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방해받지 않고 도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안전한 곳, 즉 요단강 건너편 베뢰아 땅에 있는 벨라성으로 피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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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군은 세스티우스와 그의 군대를 추격하여 그들을 전멸시킬 듯한 맹렬한 세력으로 뒤에서 공격하였다. 그러므로 로마군은 후퇴하는 데 많은 곤란을 겪었다. 유대군들은 거의 아무런 손실 없이 전쟁을 끝내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외관상으로 승리한 듯한 이 일이 그들에게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이 사건이 로마인들에 대한 그들의 고집스런 반항심을 더욱 굳게 하였고 멸망 받을 운명에 놓여 있는 성을 더욱 신속히 비참한 재앙 가운데 빠지게 하였다.  

티투스의 재차 공격과 예루살렘의 참상 

예루살렘이 티투스로 말미암아 재차 포위되었을 때에 당한 재난은 실로 끔찍스러웠다. 그 도성은 유월절에 포위를 당했는데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성 안에 모여 있었다. 잘 보존하기만 하였더라면 주민들이 몇 년 동안 넉넉히 먹을 수 있었을 저장된 식량은 불목한 당파 간의 질투와 복수로 이미 없어져 버렸고 지금은 온갖 심한 기아에 빠지게 되었다. 밀 한 되의 값이 한 달란트나 되었다. 사람들은 기아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그들의 가죽 허리띠와 신발과 방패 뚜껑을 씹기까지 하였다. 많은 백성들은 들에서 자라는 식물을 뜯어오고자 밤중에 몰래 성벽을 넘어갔다. 그러나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잔인한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설혹 안전하게 돌아온 사람들이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거두어 온 것들을 도둑맞거나 빼앗기기 일쑤였다. 심지어 궁핍에 빠진 사람들이 감추어 두었을지도 모르는 조금밖에 안 되는 최후의 양식을 빼앗기 위하여 세력 있는 사람들은 가장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다. 그들 중에는 식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를 위하여 저장해 두려는 생각에서 만행을 행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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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사람들이 기근과 온역으로 죽었다. 혈연적인 애정은 사라진 듯하였다. 남편은 아내의 것을, 아내는 남편의 것을 도둑질하였다. 늙은 부모의 입에서 음식을 빼앗는 자식들도 볼 수 있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 (사 49:15) 느냐는 선지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 멸망 받을 그 도성에서 나왔다. 그것은 곧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애 4:10) 는 대답이었다. 또한 1400년 전에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예언한 경고도 이루어졌다.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신 28:56, 57). 

불꽃에 싸인 하나님의 성전 

로마의 장군들은 유대인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여 그들의 항복을 얻어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로잡은 유대인 중 저항하는 자는 채찍으로 때리고 고문한 후에 그를 예루살렘 성벽 앞으로 끌어내어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자의 수는 날마다 몇백 명에 달하였다. 이 두려운 일은 계속되어 마침내 여호사밧 골짜기와 갈바리 언덕은 온통 십자가가 난립하여 그 사이를 걸어 다니기도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일찍이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마 27:25) 고 외치던 그 무서운 요구는 그처럼 무섭게 응답되었다.  

티투스는 무슨 방법으로든지 그 비참한 광경을 빨리 끝내고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을 막아 보고자 하였다. 그는 골짜기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보고 공포로 충만하여졌다. 그는 무엇에 도취된 사람처럼 감람산 위에서 웅장한 성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돌 하나도 다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그 요새를 점령하는 작전을 벌이기 전에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기가 이 거룩한 곳을 부득이 피로써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그들이 성에서 나와서 어떤 다른 곳에서 싸웠다면 로마군은 아무도 그 성전의 신성성을 깨뜨리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요세푸스 (Josephus) 는 매우 열렬한 웅변으로 그들 자신과 그들의 도성과 그들의 예배하는 성전을 건져내기 위하여 항복하라고 간원하였다. 그러나 그 같은 간청에 대하여 그들은 심한 저주로 응수할 뿐이었다. 최후의 조정자로 그들에게 파견되어 간원하는 사람에게 그들은 도리어 창들을 던졌다. 일찍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간청을 배척했었다. 이제 그 충고와 간원은 그들로 하여금 최후의 일각까지 더욱 단호하게 저항하도록 만들 뿐이었다. 티투스가 성전을 보전하기 위하여 기울인 온갖 노력은 허지로 돌아갔다. 티투스보다 더욱 위대하신 분께서 일찍이 돌 하나도 돌 위에 첩 놓이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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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지도자들의 맹목적인 고집과 포위된 성 안에서 자행되는 가증한 범죄들은 로마군의 공포와 분노를 더욱 자극시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티투스는 강습하여 성전을 점령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할 수만 있으면 그 성전을 파멸에서 건져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그의 명령은 무시되었다. 밤이 되어 그는 자기의 천막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에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뛰어나와서 밖에 있는 군사들을 갑자기 공격하였다. 한창 서로 싸움이 벌어졌을 때에 한 군인이 불붙인 횃불을 문 안으로 던짐으로써 성전 주위의 행랑이 갑자기 불꽃에 휩싸였다. 티투스는 장군들과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그 곳으로 달려가서 불을 끄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격분한 군인들은 성전에 붙어 있는 방들에 불을 던지고 거기에 피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칼로 죽였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층층대는 피로 물들었다. 실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가봇” (Ichabod — 영광이 떠났다) 이라고 외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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