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002일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역사적 고찰 

이때로부터 천년쯤 전에 시인 다윗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집을 당신의 처소로 삼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총을 찬양하였다.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시 76:2). 그분께서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 (시 78:68, 69) 다. 그 첫 성전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번영하였던 시대에 지은 것이었다. 다윗왕은 이 목적을 위하여 많은 보화를 준비하고 또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것을 설계하였다 (대상 28:12, 19 참조).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이 그 사업을 완성시켰다. 이 성전은 일찍이 이 세상에 있었던 건축물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둘째 번 성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7).  

이 성전은 첫 성전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된 후 사로잡혀 갔던 사람들이 황폐된 고국으로 돌아와서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약 500년 전에 다시 건축한 것이었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일찍이 솔로몬이 지은 훌륭한 성전을 본 노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새 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 그것이 처음 성전보다 못한 것을 보고 울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감정을 선지자는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학 2:3; 스 3:12) 고 강력하게 표현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지은 성전의 영광이 이전에 있던 성전의 영광보다 더욱 클 것이라는 허락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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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둘째 성전은 그 웅장하고 화려한 점에 있어서 처음 성전과 비교가 안 되었다. 그리고 그 처음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던 신성한 표적들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지도 못했다. 그 성전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어떤 초자연적 권능의 표시도 없었다. 새로 건축된 성소를 가득 채울 영광의 구름도 없었다. 그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사를 불도 내려오지 않았다. 지성소의 그룹들 사이에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의 빛 (쉐키나) 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 곳에서 법궤와 속죄소와 증거의 두 돌판도 볼 수 없었다. 제사장들에게 여호와의 뜻을 알리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오지도 않았다.  

여러 세기 동안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하여 주신 허락이 어느 곳에서 성취되었는지 보이기 위하여 헛된 노력을 해왔다. 교만과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은 선지자의 말씀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둘째 성전은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으로가 아니라,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분,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심으로 존귀하게 되었다. 나사렛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던 때는 참으로 “만국의 사모하는” 분께서 당신의 성전에 오신 때였다. 다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으로 둘째 성전의 영광은 첫 성전의 영광을 능가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신 그분을 배척하였다. 그 겸손한 선생이 그날 황금 문을 통하여 나오심으로 그 영광은 성전에서 영원히 떠나 버리고 말았다.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마 23:38) 고 하신 구주의 말씀은 이미 성취되었다.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언 

제자들은 성전의 멸망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무서워하고 이상히 여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깨닫기를 원했다. 40여 년 동안 재물과 노력과 건축상의 기술이 이 성전의 장려 (壯麗) 함을 높이기 위하여 아낌없이 소비되었다. 헤롯 대왕은 로마의 부 (富) 와 유대의 보물을 그 성전을 위하여 물 쓰듯이 썼으며 당시의 천하를 지배하던 로마의 황제까지도 예물을 보내어 그 일을 도왔다.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거대한 대리석들이 로마로부터 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수송되어 그 전 (殿) 의 일부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것들에 그들의 선생님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막 13:1).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 24:2) 고 엄숙하고도, 깜짝 놀라게 하는 대답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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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그리스도께서 전 세계적인 제국의 보좌를 빼앗으시고, 완고한 유대인들을 벌하시고, 유대 국가로부터 로마의 멍에를 꺾어 버리시고자 세속적 영광으로 오실 사건과 관련시켰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당신께서 두 번째로 오시리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루살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재림을 회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람산 위에서 예수님 주위에 둘러앉아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 24:3) 라고 물었다.  

자비롭게도 그 제자들에게 미래가 가리워졌다. 그 때에 그들이 구속주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실 것과 그 도시와 성전이 멸망당하게 될 두 가지의 무서운 사실을 완전히 깨달았었더라면, 그들은 두려움에 눌려 압도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세상의 종말이 있기 전에 일어날 큰 사건들의 윤곽만을 보여 주셨다. 그분의 말씀이 당시에는 완전히 이해되지 못하였으나 당신의 백성들이 그 때 주어진 교훈을 필요로 하게 될 때에 밝혀지게 될 것이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예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의 전조 (前兆) 를 보여 주는 동시에 마지막 큰 날의 두려운 사건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에게 배역한 이스라엘에게 내릴 심판, 특히 메시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일로 인하여 그들에게 내릴 보응의 징벌을 선포하셨다. 두려운 사건이 절정에 이르기 전에 먼저 분명한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 무서워하던 시간은 갑자기 또한 신속히 이를 것이다.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고 경고하셨다. 곧 우상 숭배하는 로마의 군기 (軍旗) 가 예루살렘 성벽 밖 수 마일까지 미치는 거룩한 땅 (聖地) 에 세워질 때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도망하여 안전을 얻어야 할 것이었다. 경고하는 징조가 보일 때에 도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지체 없이 서둘러야 할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물론이요, 온 유대 땅에서도 도망하라는 신호에 즉시 순종해야 할 것이었다. 그 때 지붕 위에 있던 사람은, 아무리 값진 보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건지기 위해 내려가서 집 안으로 들어가지 말 것이었다. 밭과 포도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더운 날에 일하기 위하여 벗어둔 겉옷을 가지러 되돌아감으로 시간을 써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멸망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한 순간도 지체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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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이 다스리던 당시의 예루살렘은 매우 아름답게 단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탑과 성벽과 보루 (堡壘) 들을 세웠고, 더욱이 지세까지도 좋았으므로 그 성이야말로 함락시킬 수 없는 성과 같았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예루살렘의 멸망을 공공연하게 예언하는 것은 마치 노아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취급되었던 것처럼 정신 빠진 경고자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5) 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은 그 죄로 인하여 이미 진노의 선고를 받았으며, 그 완고한 불신으로 멸망의 운명을 확정지었다.  

죄악의 소굴이 된 예루살렘 

주님께서는 선지자 미가를 통하여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지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미 3:9~11) 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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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부패하고 독선적인 예루살렘의 거민들의 형편을 여실히 묘사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가르침을 엄격히 지키노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모든 원칙들을 범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순결과 성결이 그들의 불의를 드러내 주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증오하였다. 또 그들은 자기들의 죄의 결과로 이르러 온 모든 재난의 원인이 그분에게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무죄를 알고서도 그들의 나라의 안전을 위하여 그분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요 11:48) 고 말하였다. 그리스도를 희생시키면 그들은 다시 한 번 더 강하고 단결된 나라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추론하였으며,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온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 대제사장의 결정에 찬동하였다. 

그와 같이 하여 유대의 지도자들은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 (미 3:10) 였다. 그들은 구주께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신 까닭에 그분을 죽였으면서도 자신들을 하나님의 은총 받는 백성으로 간주하고, 주님께서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건져주시라고 기대하리만큼 독선적이었다. 이러므로 선지자는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미 3:12) 고 예언하였다.  

예루살렘의 운명이 그리스도 자신의 입으로 선고된 후 거의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 성과 그 백성에 대한 형벌을 미루어 오셨다. 당신의 복음을 거절하고 당신의 아들을 죽인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놀라웠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의 비유는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잘 설명해 준다.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눅 13:7) 고 하는 명령은 이미 하달되었지마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일을 잠깐 동안 지체하였다. 유대인 가운데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품성과 사업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일찍이 그들의 부모가 거절한 빛을 받아서 실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그 동료들의 전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고자 하셨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분의 생애는 물론이요,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예언이 어떻게 성취된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어야 했다. 그 자녀들이 부모의 죄 때문에 형벌을 선고받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들에게 주어진 빛은 물론이요, 그들 자신들이 받은 빛까지도 거절하므로 부모의 죄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악의 잔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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