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맹렬한 활동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유대인의 완고한 고집을 더욱 크게 해줄 따름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미워하고 학대함으로 마침내 마지막으로 주어진 자비까지도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보호의 손을 그들에게서 거두시고 사단과 그 사자들을 억제하던 능력을 그들에게서 거두시므로 그 백성은 자기들의 택한 지도자의 지배에 버려진 바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악한 충동을 제어할 능력을 줄 수 있었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였으므로 이제는 그 악한 충동들이 그들을 정복하였다. 사단은 사람의 가장 격렬하고도 비열한 정욕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이성 (理性) 을 떠나서 충동과 맹목적인 격정 (激情) 의 지배를 받았다. 그들의 잔인성은 악마와 같았다. 가정에, 백성들 사이에, 상류 계급과 하류 계급들 간에 한결같이 의심, 질투, 원한, 불화, 모반, 살육이 편만하였다.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살해하였다. 위정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다스릴 힘이 없었다.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폭군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하기 위하여 거짓 증언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거짓 고소가 그들 자신들의 생명을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사 30:11) 고 말해 왔었다. 이제는 그들의 소원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사단은 나라의 수령이 되고, 국가와 종교의 최고 권위자들은 모두 그에게 지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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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적대적인 파당의 지도자들이 때때로 불쌍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약탈하는 일에 결탁하였고, 다시 그들끼리 싸우고 무자비하게 살육하였다. 신성한 성전에서까지도 그들은 포악무도한 일을 행하였다. 예배하던 사람들이 제단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성소는 그 시체들로 더럽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흉악한 사건의 선동자들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므로 멸망될 염려가 없다는 그들의 맹목적이며 모독적인 억측을 공공연하게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세력을 더욱 확고하게 구축하기 위하여 그들은 거짓 선지자를 매수하여, 비록 성전이 로마군에게 포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고 공포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최후까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의 원수들을 무찔러 주실 것이라는 신념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거절하였으므로 이제 그들에게는 아무런 방비가 없었다. 불행한 예루살렘이여! 내분 (內紛) 으로 찢겨지고, 피차의 손으로 죽임을 당한 자녀들의 피로써 거리는 붉게 물들고 그 요새 (要塞) 는 이방인들에게 파괴되고, 용사들은 죽임을 당한 불행한 예루살렘이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언은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유대인들은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마 7:2) 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경고의 말씀이 진리임을 경험하였다.
재난과 멸망의 전조가 되는 징조와 기사들이 나타났다. 깊은 밤중에 한 줄기의 이상한 빛이 성전과 제단 위에 나타났다. 해가 질 무렵에는 구름 위에 싸움터로 모여드는 군사들과 전차 (戰車) 들의 광경이 나타났다. 밤에 성소에서 봉사하던 제사장들이 신비한 소리를 듣고 공포에 질렸다. 땅이 진동하였고, “우리가 여기서 떠나가자”고 하는 군중의 외침이 들렸다. 20명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열 수 없는 육중하고 견고한 주춧돌에 깊이 박혀 있는 철빗장으로 굳게 닫힌 동문 (東門) 의 문짝이 아무런 인적 (人迹) 도 없이 밤중에 열렸다 (Milman, The History of the Jews, book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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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년 동안 예루살렘의 시가를 오르내리며 성도 (聖都) 에 재앙이 내릴 것을 선포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밤낮으로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는 “동편에서 한 소리가, 서편에서 한 소리가, 사방에서 한 소리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책망하는 한 소리가, 신랑과 신부를 책망하는 한 소리가, 온 백성을 책망하는 한 소리가” (Milman, The History of the Jews, book 13) 난다고 외쳤다. 그 수상한 사람은 옥에 갇히어 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온갖 능욕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그 거민들이여”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의 경고의 외침은 그 자신이 예언한 그대로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그가 죽는 순간까지 그치지 아니하였다.
로마군의 퇴군과 그리스도인의 피난
그리스도인은 예루살렘의 멸망 때 한 사람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미리 경고하셨으므로 그분의 말씀을 믿은 모든 사람은 그 약속의 징조에 유의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눅 21:20, 21) 라고 말씀하셨다. 로마군은 세스티우스 (Cestius) 의 지휘 아래 그 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즉각적으로 공격하기에 유리한 것처럼 보였을 때에 그들은 갑자기 그 포위를 풀고 퇴군하였다. 성 안에 포위되어 있던 사람들은 적군을 격퇴할 수 없음을 알고 항복하려던 찰나였는데, 그 때에 아무런 명백한 이유 없이 로마의 대장은 군사를 철수시켰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사건들을 조종하고 계셨다. 약속된 징조가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다. 이제 구주의 경고를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때가 절호의 기회였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로마인을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도망하는 일은 막을 수 없도록 사건들을 그렇게 조종하셨다. 세스티우스가 퇴각하는 것을 본 유대군은 예루살렘성에서 나와서 물러가는 적군을 추격하였다. 그리하여 두 군대가 교전하는 동안에 그리스도인들은 성을 빠져나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에는 그들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원수들이 지방에는 없었다. 그 성이 포위된 당시에 유대인들은 장막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으므로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방해받지 않고 도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안전한 곳, 즉 요단강 건너편 베뢰아 땅에 있는 벨라성으로 피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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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군은 세스티우스와 그의 군대를 추격하여 그들을 전멸시킬 듯한 맹렬한 세력으로 뒤에서 공격하였다. 그러므로 로마군은 후퇴하는 데 많은 곤란을 겪었다. 유대군들은 거의 아무런 손실 없이 전쟁을 끝내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외관상으로 승리한 듯한 이 일이 그들에게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이 사건이 로마인들에 대한 그들의 고집스런 반항심을 더욱 굳게 하였고 멸망 받을 운명에 놓여 있는 성을 더욱 신속히 비참한 재앙 가운데 빠지게 하였다.
티투스의 재차 공격과 예루살렘의 참상
예루살렘이 티투스로 말미암아 재차 포위되었을 때에 당한 재난은 실로 끔찍스러웠다. 그 도성은 유월절에 포위를 당했는데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성 안에 모여 있었다. 잘 보존하기만 하였더라면 주민들이 몇 년 동안 넉넉히 먹을 수 있었을 저장된 식량은 불목한 당파 간의 질투와 복수로 이미 없어져 버렸고 지금은 온갖 심한 기아에 빠지게 되었다. 밀 한 되의 값이 한 달란트나 되었다. 사람들은 기아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그들의 가죽 허리띠와 신발과 방패 뚜껑을 씹기까지 하였다. 많은 백성들은 들에서 자라는 식물을 뜯어오고자 밤중에 몰래 성벽을 넘어갔다. 그러나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잔인한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설혹 안전하게 돌아온 사람들이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거두어 온 것들을 도둑맞거나 빼앗기기 일쑤였다. 심지어 궁핍에 빠진 사람들이 감추어 두었을지도 모르는 조금밖에 안 되는 최후의 양식을 빼앗기 위하여 세력 있는 사람들은 가장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다. 그들 중에는 식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를 위하여 저장해 두려는 생각에서 만행을 행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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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사람들이 기근과 온역으로 죽었다. 혈연적인 애정은 사라진 듯하였다. 남편은 아내의 것을, 아내는 남편의 것을 도둑질하였다. 늙은 부모의 입에서 음식을 빼앗는 자식들도 볼 수 있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 (사 49:15) 느냐는 선지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 멸망 받을 그 도성에서 나왔다. 그것은 곧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애 4:10) 는 대답이었다. 또한 1400년 전에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예언한 경고도 이루어졌다.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를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신 28:56, 57).
불꽃에 싸인 하나님의 성전
로마의 장군들은 유대인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여 그들의 항복을 얻어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로잡은 유대인 중 저항하는 자는 채찍으로 때리고 고문한 후에 그를 예루살렘 성벽 앞으로 끌어내어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자의 수는 날마다 몇백 명에 달하였다. 이 두려운 일은 계속되어 마침내 여호사밧 골짜기와 갈바리 언덕은 온통 십자가가 난립하여 그 사이를 걸어 다니기도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일찍이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마 27:25) 고 외치던 그 무서운 요구는 그처럼 무섭게 응답되었다.
티투스는 무슨 방법으로든지 그 비참한 광경을 빨리 끝내고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을 막아 보고자 하였다. 그는 골짜기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보고 공포로 충만하여졌다. 그는 무엇에 도취된 사람처럼 감람산 위에서 웅장한 성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돌 하나도 다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그 요새를 점령하는 작전을 벌이기 전에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기가 이 거룩한 곳을 부득이 피로써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그들이 성에서 나와서 어떤 다른 곳에서 싸웠다면 로마군은 아무도 그 성전의 신성성을 깨뜨리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요세푸스 (Josephus) 는 매우 열렬한 웅변으로 그들 자신과 그들의 도성과 그들의 예배하는 성전을 건져내기 위하여 항복하라고 간원하였다. 그러나 그 같은 간청에 대하여 그들은 심한 저주로 응수할 뿐이었다. 최후의 조정자로 그들에게 파견되어 간원하는 사람에게 그들은 도리어 창들을 던졌다. 일찍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간청을 배척했었다. 이제 그 충고와 간원은 그들로 하여금 최후의 일각까지 더욱 단호하게 저항하도록 만들 뿐이었다. 티투스가 성전을 보전하기 위하여 기울인 온갖 노력은 허지로 돌아갔다. 티투스보다 더욱 위대하신 분께서 일찍이 돌 하나도 돌 위에 첩 놓이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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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지도자들의 맹목적인 고집과 포위된 성 안에서 자행되는 가증한 범죄들은 로마군의 공포와 분노를 더욱 자극시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티투스는 강습하여 성전을 점령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할 수만 있으면 그 성전을 파멸에서 건져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그의 명령은 무시되었다. 밤이 되어 그는 자기의 천막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에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뛰어나와서 밖에 있는 군사들을 갑자기 공격하였다. 한창 서로 싸움이 벌어졌을 때에 한 군인이 불붙인 횃불을 문 안으로 던짐으로써 성전 주위의 행랑이 갑자기 불꽃에 휩싸였다. 티투스는 장군들과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그 곳으로 달려가서 불을 끄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격분한 군인들은 성전에 붙어 있는 방들에 불을 던지고 거기에 피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칼로 죽였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층층대는 피로 물들었다. 실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가봇” (Ichabod — 영광이 떠났다) 이라고 외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예루살렘의 함락
티투스는 군사들의 분노를 진정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장교 (將校) 들과 함께 몸소 성전 내부를 조사하였다. 그들은 그 성전의 장려 (壯麗) 함과 화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성소까지는 불길이 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는 그것을 구해내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는 뛰어나오면서, 불길을 막으라고 군사들을 독려하였다. 백부장 리베랄리스 (Liberalis) 는 그의 참모 장교들과 함께 그의 명령에 복종케 하려고 힘써 보았다. 그러나 로마 황제에 대한 군사들의 존경심조차도 유대인들에 대한 심한 분노, 전투의 격렬한 흥분, 그리고 탐욕스러운 약탈에의 갈망을 막을 수 없었다. 군인들은 자기들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금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타오르는 화염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도록 빛났다. 그들은 성소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보화가 감춰져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드디어 한 사병이 아무도 모르게 성소의 문의 돌쩌귀들 사이로 불붙은 횃불을 던져 넣자, 온 건물은 삽시간에 화염에 싸여 버렸다. 자욱한 연기와 불길 때문에 장교들과 군사들은 부득이 물러나오게 되었고, 마침내 그 훌륭한 건물은 파멸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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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로마군에게 그처럼 소름끼치는 광경이 되었다면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더욱 그러했겠는가! 온 성이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 전체는 하나의 활화산 (活火山) 처럼 불타고 있었다. 건물들은 굉음과 함께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넘어져 불구덩이 속으로 삼켜지고 말았다. 백향목 지붕은 불붙은 종잇장들과 같았고, 도금한 첨탑 (尖塔) 들은 새빨간 쇠꼬챙이처럼 빛났고, 탑루 (塔樓) 는 높은 불과 연기 기둥이 되어 버렸다. 가까이 있는 산들은 불빛에 비취어 환하게 드러났고, 그 멸망의 과정을 공포에 질린 채 염려하면서 주시하고 있는 낙담한 무리들이 불빛에 드러났다. 그리고 성벽 위에와 성 중 높은 곳들은 사람들로 번잡을 이루었는데 그 중에는 절망적인 고민으로 새파랗게 질린 사람들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무익한 복수심으로 얼굴을 찌푸린 사람들도 있었다. 뛰어다니는 로마 병정들의 함성, 불에 타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애처로운 부르짖음이 불붙는 소리와 건물의 재목들이 무너져 내려앉는 큰 소리와 뒤섞여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합하여 산울림이 되어 돌아왔다가는 다시 돌아갔다. 성벽 위에도 비명과 통곡의 소리가 뒤섞였으며, 주려서 거의 죽게 된 사람들도 그들의 남은 기운을 다하여 고민과 비탄의 부르짖음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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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의 살육은 성 밖의 그것보다도 더욱 비참하였다. 남자나, 여자나, 늙은이나 젊은이, 폭도나 제사장, 싸우는 자나 자비를 구하는 자나 무차별하게 학살을 당하였다. 죽임을 당한 자들의 수효는 죽이는 자들의 수효보다 훨씬 더 많았다. 로마 군인들은 도륙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주검의 무더기를 기어 올라가야 했다 (Milman, The History of the Jews, book 16).
성전이 파괴된 후에 온 성은 곧 로마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하던 그들의 보루 (堡壘) 를 내어버리고 달아났으므로 티투스가 거기 이르렀을 때에는 오직 적막뿐이었다. 그는 그 보루들을 보고 놀랐으며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자기에게 주셨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아무리 강력한 적군일지라도 능히 이와 같이 거대한 보루들을 대항하여 점령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도성과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그 거룩한 성전의 터는 “밭같이 경작함을 당하였다” (렘 26:18). 그 성의 포위와 뒤이은 학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들은 수백만에 달하였고, 남은 자들은 포로가 되어 갔거나 종으로 팔려 가게 되었으며, 승리자의 개선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로마로 끌려가서 원형극장에서 짐승의 밥이 되기도 하고, 혹은 유랑의 백성이 되어 사방으로 유리하는 자가 되기도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찰 차꼬를 스스로 만들었고, 그들이 마실 복수의 잔을 스스로 채웠다. 그들이 국가적으로 당한 완전한 멸망이나, 그들의 방황하는 처지에서 받은 저주는 그들 자신의 손으로 뿌린 것을 거두는 데 불과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호 13:9, 14:1) 고 말하였다. 그들이 당한 고난을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징벌로 흔히들 이야기한다. 대기만자는 이와 같이 하여 자기가 행한 일을 숨기려고 애쓴다. 하나님의 자비를 완강하게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떠나가게 하였으며 사단은 그들을 마음대로 주관하도록 허락받았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에 나타난 무섭고 잔혹한 모든 사건들은 자신을 사단의 지배에 맡기는 자들에게 사단이 얼마나 무서운 마력 (魔力) 을 휘두르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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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평안과 안전에 대하여 그리스도께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을 사단의 지배에 완전히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억제하시는 능력이다. 불순종하고 배은망덕한 자일지라도 악한 자의 잔인하고 사악한 세력을 막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에 대하여 감사하여야 할 큰 이유가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그와 같은 견제 (牽制) 는 제거된다. 하나님께서는 범죄에 대한 판결을 집행하시는 분으로 죄인 앞에 서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거절하는 자들을 버려 두시사 그들 스스로 심은 것을 거두게 하신다. 모든 진리의 빛을 거절한 것, 모든 경고를 멸시하고 유의하지 아니한 것, 온갖 정욕에 빠진 것,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 등은 틀림없이 뿌린 대로 수확하게 될 씨이다. 하나님의 신은 완고하게 거절하는 죄인에게서 마침내 떠나신다. 그렇게 될 때, 영혼의 악한 정욕을 제어할 능력이 없어지고 사단의 원한과 적의 (敵意) 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은혜를 소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자비의 호소를 거스르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두렵고도 엄숙한 경고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와 죄인이 받을 분명한 형벌에 대하여 이보다 더 결정적인 증언을 주신 때는 일찍이 없었다.
현대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
예루살렘의 징벌에 대한 주님의 예언은 아직도 하나 더 성취되어야 한다. 예루살렘의 파멸은 장차 올 것과 비교하면 아주 희미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택함을 받은 도성의 멸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르고 그분의 율법을 짓밟는 세상의 운명을 볼 수 있다. 죄악으로 점철된 몇천 년간의 처참한 인류의 기록은 암담한 것뿐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 아프고 기절할 정도이다. 또한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른 결과는 두려운 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계시에는 이보다 더욱 암담한 일이 나타나 있다. 과거의 기록, 곧 소란, 투쟁, 혁명,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 (사 9:5) 등에 관한 오랫동안의 역사도 하나님의 억제하시는 신이 악한 자를 떠나고 인간의 욕망과 사단의 분노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날에 있을 두려움과 비교해 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날에는 사단의 통치의 결과가 숨김없이 완전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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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의 때와 같이 그 때에도 하나님의 백성 곧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 (사 4:3) 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충성된 백성을 모으시기 위하여 다시 오시겠다고 밝히 말씀하셨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의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 24:30, 31). 그 때에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은 그분의 입의 기운으로 죽임을 당하고 그분의 강림하시는 영광으로 멸망당할 것이다 (살후 2:8). 옛날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불의로 말미암아 넘어진다. 죄의 생애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과 조화되지 못하고, 그들의 본성이 악으로 타락되어 버렸으므로 예수님의 강림하시는 영광이 그들에게는 소멸시키는 불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교훈을 등한히 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제자들에게 경고하시고 그 멸망이 가까워 오는 데 대한 징조를 알려 주심으로 그들이 도망할 수 있도록 하신 것처럼, 그분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멸망을 경고하시고 그날이 가까워 옴을 알려 주는 징조를 주셔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날에 임할 진노를 피할 수 있도록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곤고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눅 21:25; 마 24:29; 막 13:24~26; 계 6:12~17). 그분의 강림의 전조를 보는 사람들은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마 24:33) 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막 13:35) 고 경고하신다. 그 경고에 유의하는 사람들은 어둠 가운데 버려둠을 받지 않을 것이요, 알지 못하는 때에 그날이 그들에게 임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깨어 있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르게 될 것이다 (살전 5: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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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상은 일찍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관한 경고에 대하여 취한 태도와 마찬가지의 태도로 현대의 기별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때가 이르리니, 여호와의 날이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생각지 아니한 중에 이를 것이다. 일상생활이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향락에 도취되고, 사업과 장사와 돈 버는 일에 몰두하고, 종교인들은 세속적 발전과 문화를 찬양하고, 백성들은 거짓된 안전 속에 속아 있을 그 때에, 마치 도둑이 문들을 단속하지 아니한 집으로 숨어 들어오는 것처럼 부주의하고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갑작스런 멸망이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단코 피하지 못” (살전 5:2, 3)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