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34일

21 장 — 경고의 거절

5만의 재림신도

윌리엄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은 재림 교리를 전파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심판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각성시키는 그 한 가지 목적을 향하여 일해 왔다. 그들은 신자들에게 교회의 참된 희망과 깊은 그리스도인 경험의 필요성을 자각시켜 주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또한 아직까지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에게 즉시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고자 힘썼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종교 단체나 종파에 개종시키려고 시도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단체와 종파들 사이에서 그들의 조직이나 규율에 저촉됨이 없이 일하였다.”

밀러는 말하였다. “나는 기성 교파들로부터 분리된 별개의 교파를 만들거나 어떤 교파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교파에게 손해를 끼치려는 욕망이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모든 교파에게 유익을 주고자 생각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 누구나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을 즐거워할 것이며 비록 나처럼 깨닫지 못하였을지라도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기뻐하리라고 생각하고 어떤 별개의 회중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장차 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나의 동족들에게 하나님을 편안하게 뵈올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활동으로 회개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러 기성 교회에 속하였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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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업이 교회들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얼마 동안은 좋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재림교리를 배척하기로 결의하고 그 문제에 관하여 일체의 토의를 하지 못하도록 한 후부터 그들은 강단에서 그 문제를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인들이 재림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하는 일까지도 금하고, 심지어 교회의 기도회 같은 데서 그들의 소망을 말하는 일까지도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그들이 큰 시련과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교회를 사랑하였고, 거기서 떠나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가 압박을 당하고, 예언을 연구하는 그들의 권리가 박탈당한 것을 깨닫게 되자, 그들은 그 사람들의 말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여야 할 것을 느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막으려는 자들을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구성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본래 속해 있던 교회에서 떠나는 일을 정당하다고 생각하였다. 1844년 여름에 5만 명의 교인들이 여러 교회에서 나왔다.

이 무렵에 전 미국 안에 있는 대다수의 교회들에서 하나의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이미 여러 해에 걸쳐 세속적 습관과 행동을 따르는 자들의 수가 점진적이면서도 꾸준하게 증가되는 한편 참된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의 수는 감소되어 가고 있었다. 그해에 와서 그 나라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갑자기 뚜렷한 타락상이 나타났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그 사실 자체만은 일반적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어 강단과 인쇄물을 통하여 널리 논의되었다.

필라델피아의 어떤 장로교회의 회집에서 유명한 성경 주해서의 저자요 그 도시 굴지의 교회의 목사인 반즈는 말하였다. “그는 과거 20년 동안에 목회 사업에 종사하면서 지금까지 성찬식을 거행할 때마다 얼마의 새 교인을 교회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무런 각성도 회개도 볼 수 없고, 신자들에게서 어떤 은혜의 자라남도 나타나지 않고, 그들의 구원에 대하여 연구하거나 이야기하러 오는 사람도 없다. 사업의 증가와 상공업에 대한 장래가 밝아질수록 세속적 정신도 증가되어 간다. 이와 같은 경향은 각 교파에 있어서 동일하다” (Congregational Journal, May 2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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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2월에 오벌린 대학의 피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개신교회가 일반적으로 이 시대의 모든 도덕적 개혁에 전혀 냉담하고 있든지 적대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소의 예외는 있으나 이것이 일반적 경향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또한 다른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아는데, 그것은 교회에서 신앙 부흥의 감화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영적 무관심은 거의 모든 교회에 편만하고 두려울 만큼 심각하므로 전국의 종교 잡지는 그 사실을 잘 증거하고 있다. …교인들은 유행을 좇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춤과 연회로 쾌락을 즐기는 집회들 같은 데서 불경건한 자들과 손을 잡는 일이 너무도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마음 아픈 문제를 길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교회들이 개탄할 만큼 타락하고 있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들은 일일이 들어 말할 수 없으리 만큼 우리 앞에 쌓여 있다. 그들은 주님께로부터 매우 멀리 떠나 있고, 주님께서도 저들을 떠나 계신다.”

릴리져스 텔리스코프 (Religious Telescope) 잡지에서 한 저자는 증언하였다. “우리는 종교가 현재와 같이 일반적으로 타락한 일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교회는 마땅히 각성하여 이와 같이 된 원인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시온을 사랑하는 자들은 현 상태를 비운으로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으로 회개하는 자가 얼마나 적으며 죄인이 얼마나 완악하고 고집스러운지 생각할 때에 부지중에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라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태는 교회 자체에 어떤 원인이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와 교회와 개인에게 있는 영적 암흑은 하나님 편에서 은혜의 근원을 철회하심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편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빛을 등한히 하거나 거절함으로 생기는 일이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뚜렷한 실례는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세속적 사물에 열중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잊어버림으로 그들의 이해력이 둔하여지고 그들의 마음이 세속적이요 육욕적으로 바뀌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메시야의 초림에 대하여 무지하여지고, 교만과 불신으로 구주를 거절하였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축복을 알고, 거기에 참여하는 특권에서 그들을 제외시키지 않으셨다. 그러나 진리를 거절한 자들은 하늘의 선물을 받고자 하는 모든 욕망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기를 그들에게 있는 광명이 흑암으로 변하여질 때까지 하였으니 그 흑암의 상태가 얼마나 심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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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신도의 사랑과 연합

사람이 종교의 생명인 경건한 정신은 없이 종교의 외적 형태만 갖는 것은 사단의 계책에 부합된다. 복음을 거절한 후에도 유대인들은 옛적부터 내려오는 의식들을 계속적으로 고수하기 위하여 열심을 다하였고, 그들의 민족적 특성을 엄격히 보존하여 왔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이미 그들 가운데 나타나지 아니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니엘의 예언이 명백하게 메시야의 오실 시기를 지적하였고 그분의 죽으심을 매우 솔직하게 예언하였으므로 그들은 그 예언을 감히 연구하지 못하였고, 마침내 랍비들은 메시야의 때를 계산하여 알아보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였다. 이리하여 눈멀고 완고한 상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의 은혜로운 선물을 무관심하게 대하고, 복음의 축복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하늘에서 오는 빛을 거절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한 엄숙하고 두려운 경고들에 유의하지 아니한 채 1800년의 세월을 보냈다.

원인이 있는 곳에는 결과가 따른다. 의무에 대한 각성이 자기의 성미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고의적으로 짓밟아 버리면, 마침내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해력은 둔하여지고, 양심은 무감각하여지고, 마음은 굳어지고, 심령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된다. 거룩한 진리의 기별이 배척되고 멸시받는 곳에는 교회가 흑암에 싸이게 되고, 믿음과 사랑이 식어지고, 분리와 불화가 들어오게 된다. 교인들은 그들의 관심과 정력을 세속적인 목적에 쏟게 되고, 죄인들은 더욱 완악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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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알려 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라는 요한계시록 14장의 첫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의 부패한 감화에서 떠나게 하고, 세속화되고 타락한 그들의 참 상태를 보도록 그들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주어진 기별이었다. 이 기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한 경고를 주셨는데,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였던 그 악을 교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늘로부터 온 그 기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였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성령과 권능이 반드시 그들 위에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하였을 것 같으면 교회는 사도 시대의 신자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던 당시의 연합과 믿음과 사랑의 복된 상태에 다시 한 번 도달하였을 것이다 (행 4:32, 31, 2:47).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들에게 비치는 그 빛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 같으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셨고 사도가 기록한 그대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그 연합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는 다시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엡 4:3~5) 라고 말하였다.

재림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러한 복스러운 결과를 체험하였다. 그들은 각각 다른 교파에서 나왔으나 그들의 교파적 장벽은 무너지고, 모순되는 신조들은 산산이 부서졌다. 복천년이 세상에 온다는 비성서적인 소망은 사라졌고, 재림에 대한 그릇된 견해는 교정되었다. 세속을 따르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은 없어지고, 모든 잘못은 바르게 고쳐지고, 각 사람의 마음은 따뜻한 우정으로 연합되고, 사랑과 기쁨이 그들을 지배하였다. 그 교리를 받아들인 소수의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결과가 생겼다는 사실은 만일 모든 사람이 그 교리를 받아들였을 것 같으면 그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가 생겼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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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거절한 결과

그러나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예수께서 오실 징조를 먼저 분별해야 할 목사들이 선지자들의 증언이나 때의 징조에서 그 사실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세속적 희망과 야심이 마음을 채웠으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식어졌다. 그리하여 재림의 교리가 그들에게 제시되자 그것은 다 그들의 편견과 불신을 일으킬 뿐이었다. 그 기별이 대체로 일반 평신도들에 의하여 전파되었다는 사실이 그 기별에 대하여 논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옛적에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증언은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는 질문으로 응대 받았다. 그리고 예언적 기간들에서 이끌어 낸 논증을 도저히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은 예언서의 연구를 단념케 하고, 예언서가 봉해진 책이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목사들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그 경고를 듣지 않기로 하였으며, 그밖의 사람들은 비록 진리를 깨닫기는 하였을지라도, 출교를 당할까 염려하여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였다. 교회를 시험하고 정결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분명히 드러내 주었다. 그들을 세상에 붙들어 매어 놓은 띠는 하늘을 향한 애착보다 더 강하였다. 그들은 마음을 살피는 진리의 기별에서 돌아서서 세속적 지혜의 소리를 듣는 기별을 택하였다.

첫째 천사의 경고를 거절함으로 그들은 그들의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길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한 악을 교정하여 줄 수 있는 은혜로운 사자를 배척하고 더욱 큰 열성을 가지고 세상과의 친교를 구하였다. 1844년에 교회 안에 존재했던 세속화와 배교와 영적 죽음 등의 무서운 상태에 대한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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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첫째 천사의 뒤를 이어 둘째 천사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계 14:8) 라고 선포한다. 바벨론이라는 말은 바벨 (Babel) 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혼잡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 말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 모양의 허위적이요 배교적인 종교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요한계시록 17장에는 바벨론이 여인으로 표상되었는데, 성경상으로 여인은 교회를 상징하되, 정숙 (貞淑) 한 여인은 순결한 교회를, 음란한 여인은 배교한 교회를 상징한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신성하고 영속적인 특성이 결혼의 연합으로 대표되어 있다. 주님께서는 엄숙한 언약으로 친히 당신의 백성과 결합하셨는데, 그분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약속하셨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께만 봉사할 것을 맹세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호 2:19),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렘 3:14) 고 말씀하셨다. 또한 사도 바울도 신약에서 그와 동일한 표상을 사용하여,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고 말하였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애정을 버리고 세속적 사물에 대한 사랑으로 그 마음을 채우므로 그리스도께 성실하지 못한 것은 결혼 서약을 깨뜨리는 것으로 비유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간 죄와 그들이 거절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구로 묘사되어 있다.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네가…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였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느니라” (겔 16:8, 13~15,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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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도 그와 유사한 말로 하나님의 은혜보다 세상과 짝하려는 이름만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사도 야고보는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붉은 빛 옷을 입은 여자

요한계시록 17장의 여자 (바벨론) 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선지자는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고 말한다. 또한 바벨론은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계 17:4~6, 18) 고 선포되어 있다. 그리스도교국의 모든 왕들에 대하여 여러 세기 동안 전제적 세력을 휘둘러온 세력은 로마이다. 그 자주빛과 붉은 빛이며, 금과 보석과 진주는 거만한 로마 법왕에 의하여 취해진 존귀와 일반 임금들보다 뛰어난 위세를 여실히 묘사해 준다. 또한 “성도들의…피에 취한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리스도교를 매우 잔혹하게 박해한 로마교 이외에는 그런 세력으로 인정받을 만한 세력이 없다. 바벨론은 또한 “땅의 임금들”로 더불어 불법적 관계를 맺는 데 대하여 비난을 받고 있다. 일찍이 유대교는 주님을 떠나 이교도로 더불어 동맹을 맺음으로 음녀가 되었는데, 로마교도 그와 마찬가지로 세속적 권력의 지지를 받기 위하여 스스로 타락함으로 그와 동일한 죄의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바벨론은 “음녀들…의 어미”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면 그 음녀의 딸들은 그 음녀의 교리와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그 음녀의 모본을 따라 세상과의 불법적 인연을 맺기 위하여 하나님의 진리와 그분께서 인정하시는 바를 희생하는 그러한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선포하는 요한계시록 14장의 기별은 전에는 순결하였으나 그 후에 타락한 종교 단체들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 기별은 심판의 경고 다음에 주어지는 기별이므로 그것은 분명히 말세에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로마교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로마교는 이미 여러 세기 동안 무너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한계시록 18장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호소를 듣고 있다. 이 성경절에 의하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 가운데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대부분이 어떠한 종교 단체에 속해 있는가?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개신교의 신앙을 가진 여러 종류의 교회에 속하여 있다. 그 교회들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그들이 하나님과 진리를 위하여 고상한 기초 위에 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까지도 복음의 원칙을 받아들임으로 얻는 은혜로운 결과에 대하여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14, 15) 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을 저주와 멸망으로 인도한 그 욕망, 곧 불경건한 자들의 습관을 본받고 그들과 사귀고자 한 그 욕망 때문에 무너졌다. 그것에 대하여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라고 기록되어 있다.

각 시대의 대쟁투 pp. 37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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