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에 그는 당시에 사용했던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다 아는 방법으로 진리를 전하고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진리를 말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중요성이 작기 때문에서가 아니고 오히려 그 진리의 가치가 컸기 때문이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나는 나의 말을 들어주기를 희망하였지마는 내가 처음부터 장성한 사람들을 상대로 말하지 아니한 것은 그들이 들어주지 아니할까 염려한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어린아이들에게 가기로 결심하였다. 먼저 아이들을 청중으로 모으기로 하였고, 그 청중의 수효가 많아지고 또 그들이 나의 말을 듣고 기뻐하고 흥미 있게 문제를 이해하고 설명하기까지 되면, 나는 미구에 그 다음 단계의 활동 분야가 전개될 것을 확신하였다. 그 다음에는 어른들이 참석하여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만 되면 이 일은 성공하게 된다” (L.Gaussen, Daniel the Prophet, vol.2, Preface).
그 활동은 성공하였다. 그가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어른들도 들으러 왔다. 그의 교회의 좌석들은 주의 깊게 경청하는 청중들로 만원이 되었다. 그 청중 가운데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학식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제네바를 찾아온 나그네들과 외국 사람들도 있었으므로 그들이 들은 기별은 다른 지방으로 전해졌다.
이와 같은 성공으로 용기를 얻은 가우센은 프랑스어를 말하는 교회들에게 예언서의 연구를 장려할 목적으로 그가 가르친 내용을 출판하였다. 아이들에게 들려준 교훈을 출판한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구실로 이런 종류의 책들을 흔히 등한히 여기는 어른들에게 ‘아이들도 이해하는 것을 어찌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신자들에게 예언의 지식을 가르쳐 주려고 크게 열망한다.” “오늘날 예언의 연구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그것으로 우리는 절박한 환난을 위하여 준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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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센은 프랑스어를 말하는 전도자 중 가장 유명하고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으나 얼마 후에 그는 한갓 합리주의 (合理主義) 의 교본에 불과하고 적극적 신앙이 거의 결여되어 있는 교회의 문답서를 사용하지 않고 성경을 가지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교역직에서 면직되었다. 그 후에 그는 신학교의 교사가 되었는데, 일요일에는 전도자로서 활동을 계속하여 아이들을 상대로 성경을 가르쳤다. 그가 저술한 예언에 관한 서적은 사람들의 마음에 많은 흥미를 일으켰다. 그는 교수의 위치에서 또는 인쇄물을 통하여, 혹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교사로서 여러 해 동안 계속적으로 넓은 범위에 걸쳐 큰 감화를 끼쳤다. 동시에 그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알려주는 예언의 연구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어린이 설교
재림기별은 스칸디나비아에도 전파되어 큰 흥미를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경박한 상태에서 각성하여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하였다. 그러나 국교회 (國敎會) 의 성직자들은 이 운동을 반대하였다. 그들의 영향으로 기별을 전하던 몇 사람들이 투옥당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재림기별을 전하던 사람들이 침묵하게 된 여러 곳에서 어린이들을 통하여 기적적으로 기별을 전하게 하셨다. 그들은 미성년자이므로 국법으로 처벌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운동은 주로 하층 계급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척되었는데 경고의 기별을 듣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인 장소는 대개 노동자의 비천한 가정들이었다. 그리고 그 어린이 전도자들도 주로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6세 내지 8세의 어린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생활을 통하여 그들이 구주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였는데,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나타내는 지혜와 재능에 있어서는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과 별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일단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 이상의 힘이 그들을 감동시키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 음성과 태도가 바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심판의 경고를 할 때에는 엄숙한 능력으로 하였다. 또한 그들은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부도덕과 범죄를 정죄할 뿐 아니라, 세속적인 것과 배도한 일을 꾸짖고 장차 임할 하나님의 진노에서 신속히 피하도록 준비하라고 청중들에게 엄숙히 경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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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떨었다. 회개케 하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심령에 말씀하셨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깊은 흥미를 가지고 성경연구를 다시 하게 되었고, 방탕하고 부절제한 사람들이 생활을 개혁하였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부정직한 행동을 고치는 한편 너무나 뚜렷한 업적들이 생기게 됨으로 국교회의 성직자일지라도 어찌할 수 없이 이 운동에 하나님께서 같이 하신다는 것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구주의 재림기별을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에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의 소리가 잠잠하게 되자, 당신의 사업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어린아이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일하게 하셨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당신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호성을 올리는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셨을 때 질투심이 많은 바리새인들은 그분에게 그들을 잠잠하게 하라고 요구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일이 예언의 성취이므로 만일 그들이 잠잠할 것 같으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대답하셨다. 백성들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위협에 눌려서 예루살렘의 성문에 이르자 그들이 즐겁게 외치던 소리를 그쳤다. 그 때에 그 성전 뜰에 있던 어린아이들이 바로 어른들이 멈추었던 그 노래를 부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다윗의 자손이여…호산나” (마 21:8~10) 라고 부르짖었다. 그때에 바리새인들은 매우 노하여 예수님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라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렇다 어린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본 일이 없느냐”고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초림 시에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일하셨던 것처럼 당신의 재림의 기별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도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일하셨다. 구주께서 다시 오신다는 기별이 모든 나라와 지방과 백성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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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일어난 큰 재림운동
윌리엄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에게 미국에서 경고의 기별을 전하도록 사명이 주어졌다. 그리하여 그 나라는 위대한 재림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기에서 첫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예언이 가장 직접적으로 성취되었다.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의 저서는 널리 먼 지방에까지 전해졌다. 온 세계의 어느 곳이나 선교사들이 나간 곳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전하여졌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라는 영원한 복음의 기별은 멀리, 그리고 널리 전파되었다.
1844년 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으로 지적해 주는 듯이 보였던 예언의 증거는 백성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 기별은 이 주 (州) 에서 저 주로 전파됨에 따라 어디서나 큰 흥미를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그 예언적 기간에 대한 논증 (論證) 이 정확함을 확신하여 자기들의 교만한 의견들을 버리고 기꺼이 그 진리를 받아들였다. 어떤 목사들은 그들의 종파적 견해와 감정을 버리고, 봉급도 교회도 다 버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전파하는 일에 연합하였다. 그러나 성직자들 중에서 기별을 받은 사람은 비교적 소수였으므로 기별을 전하는 일은 주로 평신도들에게 맡겨졌다. 농부들은 그들의 농장을, 직공은 그들의 도구들을, 상인은 그들의 상품을,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직무를 버리고 이 일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성취되어야 할 일의 분량에 비하면, 일꾼의 수효는 너무 적었다. 불경건한 교회와 죄악 중에서 자고 있는 이 세상 형편은 참된 파수꾼의 직분을 행하는 사람들의 짐을 무겁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을 회개시켜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환난과 궁핍과 고난을 참았다. 사단의 반대를 받을지라도 그 사업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고, 무수한 사람들이 재림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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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서 엄숙한 증거의 소리가 들렸고, 죄인들을 경고하고, 세상 사람들과 교인들에게 다 같이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는 경고가 주어졌다. 전도자들은 그리스도의 선구자 (先驅者) 침례 요한처럼 나무뿌리에 도끼를 놓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권고하였다. 그들의 감동적인 호소는 일반 강단에서 전해지는 평화와 안전을 보증하는 설교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복음을 전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성경 말씀의 증언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졌고,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신앙인이라고 공언하던 사람들이 거짓된 안일 상태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타락, 속화 (俗化), 불신, 자존심, 이기심들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세상에 두었던 애정을 하늘에 두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으며, 그들은 부드럽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기별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죄인들은 울면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하였다. 부정직한 생애를 하여 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입힌 손해를 보상하고자 열망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하였다. 부모의 마음은 그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은 그 부모에게로 돌아갔다. 자존심과 장벽은 없어졌다.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였고, 가족들은 모두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따금 가장 열렬하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나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탄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확증을 얻기 위하여, 또한 그들의 친척과 이웃 사람들을 회개시키고자 밤을 새우면서 기도의 씨름을 하였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재림신도의 회집에 모여 왔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 동기에서 각기 재림에 대한 교리를 듣고자 갈망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그들의 신앙의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반대의 정신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셨다. 때때로 사용되는 도구는 연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당신의 진리에 권능을 더하셨다. 그런 집회에서는 천사들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으며, 신자들이 날마다 많이 증가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속히 재림하실 것에 대한 증거가 반복 설명될 때에 많은 군중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그 엄숙한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과 땅이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님의 권능을 청년과 중년과 노년들이 모두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입으로 찬송하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그 기쁜 소리는 조용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런 회집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감명 깊은 광경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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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운동에 대한 무고 (誣告)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분명한 날짜를 선포하게 되자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들로부터 가장 무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들에 이르기까지 각 계층의 많은 사람들의 큰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벧후 3:3, 4) 고 한 예언의 말씀이 여기에서 성취되었다. 구주를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재림의 교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일정한 날을 정하는 일을 반대할 뿐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그들의 마음을 다 아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의로써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듣고 싶어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불충실한 종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가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심사에 통과될 수 없을 것을 알므로 주님을 만나기를 두려워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초림 시의 유대인들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증언들을 듣지 아니할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조소하였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기뻐 날뛰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소위 그리스도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분의 나타나심을 원하지도 아니한다고 조롱하였다.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은 재림신앙을 거절하는 자들이 가장 흔히 제기한 논증이었다. 그 성경절은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성경절을 명백하고 조리 있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이를 그릇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반대자들임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마지막으로 작별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가서 잊을 수 없는 담화를 나누실 때에 하신 말씀이었다. 제자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마 24:3) 라고 물었다. 그 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의 징조를 말씀하시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 24:33) 고 하셨다. 구주께서 하신 한 가지 말씀이 다른 말씀을 없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비록 그분께서 오시는 날과 시를 아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날과 시가 가까이 이른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요구를 받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그분의 경고를 멸시하고 그분의 재림이 가까움을 알기를 거절하거나 게을리하게 되면 홍수가 다가오는 것에 무관심했던 노아 당시의 사람들처럼 그 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또한 그같은 장 (章) 에 충성된 종과 충성되지 않은 종을 대조하여 말씀하시고, 심중에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한 종에게 파멸의 선고를 내린 비유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오심을 대망하고 깨어 있는 자와 그 일을 거부하는 자를 구별하여 각각 어떻게 갚아 주실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2, 46)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 3:3) 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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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신앙과 일반 그리스도교회
바울은 주님의 재림을 갑자기 맞이할 부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그는 다시 구주의 경고에 유의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살전 5:2~5) 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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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가운데 사람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움에 대하여 무지해도 좋다는 보증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이 그와 같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진리를 부인할 구실만을 찾고자 하는 자들은 그와 같은 설명에 귀를 막고 있다. 그리하여 대담한 조롱자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그리스도교의 성직에 있는 자들까지도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에 뇌동 (雷同) 하게 되었다. 백성들이 각성하여 구원의 길을 찾기 시작하자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과 진리의 중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함으로 그들의 공포감을 가라앉히고자 하였다. 충실하지 않은 파수꾼들은 대기만자 사단의 사업에 연합하여 하나님께서 평안하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시는 때에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부르짖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시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싫어하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막았다. 그들의 피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서 찾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 있는 겸손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먼저 기별을 받았다. 성경을 스스로 연구한 사람들은 예언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가 성경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나 일반 성직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에서는, 그리고 어디에서나 성경 말씀을 스스로의 힘으로 연구한 곳에서는 재림의 교리가 하나님의 권위 위에 세워진 교리임을 성경절들을 비교 검토함으로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 없는 형제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하여 그들의 신앙을 말하지 않은 자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진리를 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고 고백한 이유만으로 교회에서 제명 처분을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아니하였다. 자기의 신앙을 위하여 시련을 받는 사람들에게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사 66:5) 고 한 선지자의 말씀은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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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천사들은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경고의 결과를 주목하고 있었다. 천사들은 그 기별이 모든 교회로부터 일반적으로 거절을 당할 때에 슬픈 마음으로 물러갔다. 그러나 재림의 진리를 아직 맛보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남편, 아내, 부모, 혹은 자녀들에게 미혹되어 재림신도들의 가르침, 소위 이단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도 벌써 죄를 범하는 일인 것처럼 믿게 되었다. 천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성실하게 주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또 다른 빛이 나와서 그들을 비추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재림신도들의 시련기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소망으로 구주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날 것으로 기대했던 그 시간은 눈앞에 박두하였다. 그들은 매우 엄숙하게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간격 없는 교통을 하면서 그들 앞에 놓인 광명한 미래로 마음이 평안하였다. 그 희망과 신뢰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당시의 그 귀중한 기다림의 시간을 도무지 잊어버릴 수 없었다. 그날을 몇 주일 앞두고 그들은 대부분 세속적인 사업을 그쳤다. 진실한 신자들은 마치 죽는 사람이 임종 시에 몇 시간 동안 세상 사물을 초월하여 명상하는 것처럼 자기들의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살펴보았다. 승천 예복은 전혀 만들지 않았다 (부록 30 참조). 그러나 구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었다는 내적 증거의 필요성, 곧 그들의 심령의 순결을 나타내는 흰옷, 그리스도의 속죄하시는 피로 죄에서 깨끗하게 된 품성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지금도 그 때와 같이 스스로를 살피고, 열렬하고, 확고한 신앙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일 그들이 오늘날에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서 탄원한다면 그들은 지금 그들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기도하는 일이 너무도 적고, 충심으로 죄를 깨닫는 일이 너무 적다. 산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구주께서 풍성히 주시는 은혜를 부족하게 받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시기로 계획하셨다. 주님의 손이 예언적 기간의 계산에서 생긴 착오를 덮어 주셨다. 그리하여 재림신도들은 물론이요 가장 학식이 많은 반대파의 학자들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 학자들은 말하였다. “그대들의 예언적 기간에 대한 계산은 옳다. 무슨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밀러가 예언한 일과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회개요 그리스도의 재림은 아니다” (부록 3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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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시간은 지나갔으나 그리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진실한 신앙과 사랑으로 구주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쓰디쓴 실망을 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소위 재림을 기다리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고 계셨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은 공포 이외의 아무 다른 동기가 없었다. 그들의 신앙 고백은 그들 자신의 마음에나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기대했던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되자 그들은 실망하지 않노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리라고 믿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참 신자들의 슬픔을 조롱하는 첫째 무리에 속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과 모든 천군들은 시련을 당하였으나 충실한 자들, 실망을 당하여 고민하는 자들을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주목하셨다. 만일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리우고 있는 휘장을 걷어 버릴 수 있었다면 천사들이 굳게 선 이 무리들에게 가까이 가서 사단의 화살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pp. 365-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