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하였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들의 진실한 태도를 관찰하였다. 그들은 다른 여객들을 위하여 영국 사람은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아니할 비천한 일들을 함으로 항상 겸손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일에 대하여 아무런 보수도 원치 아니하였고, 그것은 자기들의 교만한 마음을 위하여 유익한 것이라고 하며 그들의 사랑하는 구주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더욱 큰 일을 행하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어떠한 장애를 만날지라도 거기에 동요되지 않는 유순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만일 밀침을 당하든지, 매를 맞든지, 넘어뜨림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다시 일어나서 가 버릴 뿐이요, 한 마디의 불평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교만과 분노와 복수의 정신에서는 물론이요 공포심에서 놓여났는지의 여부를 시험해 볼 기회가 왔다. 그들이 언제든지 예배를 시작할 때에 시편을 송영하던 그대로 시편을 읽고 있을 때 바다가 거칠어지고, 큰 돛이 찢어지고, 파도는 배를 삼키려는 듯이 간판 위를 휩쓸었다. 이때에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떠들고 부르짖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 독일인들은 조용히 송영을 계속하고 있었다. 후에 나는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당신들은 무섭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또 ‘그러나 부인들과 아이들은 무서워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아니요, 우리의 부녀들과 아이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하였다” (John Whit-ehead, Life of the Rev.John Wesley, p.10).
사반나 (Savannah) 에 도착한 후, 웨슬리는 얼마 동안 그 모라비아 교도들과 함께 지냈는데, 그들의 그리스도인적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생명이 없는 형식적인 영국 교회와는 현저하게 다른 그들의 예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매우 단순하면서 엄숙한 그 예배는 모두 나로 하여금 1700년의 시간적 거리를 잊어버리게 하고 형식과 의식은 없을지라도 천막 제조자 바울과 어부 베드로가 지도하였지마는 성령과 능력이 나타났던 당시의 어떤 회집에 참석한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 (John Whitehead, Life of the Rev.John Wesley, pp.11, 12).
웨슬리의 회심 전후
영국으로 돌아오자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의 전도자의 교훈 아래 성경상 신앙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자기의 행함을 의지하던 것을 모두 버리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온전히 신뢰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런던에서 있은 모라비아 교도들의 한 집회에서 하나님의 영이 믿는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여 변화를 일으킨다는 내용으로 된 루터의 글이 낭독되었다. 그 말을 듣자 웨슬리의 마음속에는 신앙의 불이 타올랐다. 그는 말하였다. “나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때에 한 가지 확증 곧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심지어 내 자신까지도 제거해 버리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여 주신 데 대한 확증을 얻었다” (John Whitehead, Life of the Rev.John Wesley,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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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고 쓸쓸한 고투의 긴 세월, 엄격한 극기와 자책과 겸비의 긴 세월을 통하여 웨슬리는 하나님을 찾으려는 한 가지의 목적에 굳게 사로잡혀 있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기도와 금식과 자선 사업과 자기희생으로 얻으려고 애쓴 은혜가 실상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임을 깨달았다.
일단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굳게 서자 그의 온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관한 지식을 어느 곳에든지 전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불탔다. 그는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지방에서든지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나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John Whitehead, Life of the Rev.John Wesley, p.74).
그는 엄격한 극기의 생애를 계속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신앙의 근거가 아니고 결과였으며 성결의 기초가 아니고 열매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기초이며, 그 은혜는 순종으로 나타날 것이다. 웨슬리의 생애는 그가 받은 위대한 진리, 곧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새롭게 하는 능력,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생애에 이루어지는 열매 등에 관한 진리를 전하는 일에 바쳤다.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는 자기들의 소망 없는 상태에 대하여 오랫동안 심각하게 느낌으로써 그들의 사업을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그들이 대학 시절과 전도 사업을 착수한 당시에 받은 멸시와 조롱과 박해의 격렬한 시련은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군병으로서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하였다. 그들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소수의 다른 사람들은 경건치 않은 동료 학생들로부터 메소디스트 (Methodists — 규칙 준수자) 라는 모멸적인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칭호가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세력 있는 교파의 하나로 명예로운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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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와 하나님의 기적적 보호
그들은 영국 국교회의 교인으로서 그 교회의 예배 형식에 매우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더욱 높은 표준을 그들에게 제시하셨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전하라고 그들을 강권하셨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권능이 그들의 활동에 함께 하였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였다. 그리하여 그 양들을 약탈하려는 이리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새로운 교파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감리교 (Methodist Connection) 라는 명칭으로 한 조직을 가지게 되었다.
그 전도자들은 국교로부터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심한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국교 자체에서 개혁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일어나게 하셨다. 그것이 전혀 외부로부터 왔었더라면 그것은 그것을 매우 필요로 하는 내부에까지 침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흥을 주장하는 전도자들은 교인들이었으므로, 기회만 얻으면 교회의 내부에서 일을 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문들을 통하여 진리가 들어가게 되었다. 어떤 성직자들은 도덕적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서 자기들의 교구에서 열렬한 전도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형식주의로 마비되었던 교회들이 생기를 되찾았다.
웨슬리의 시대에 있어서는 각 시대의 교회 역사가가 실증하는 바와 같이 각각 같지 않은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들이 맡은 직무를 감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들은 모든 점에 있어서 일치되지는 않았으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을 받고 있었으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목적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와의 견해 차이는 한 때 서로 분리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온유를 배웠으므로 상호간의 인내와 사랑으로 화목해졌다. 오류와 불법이 도처에 충만하고, 죄인들이 멸망으로 빠져가고 있는 동안 그들은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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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들은 험한 길을 걸었다. 세력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대적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얼마 후에는 많은 성직자들이 분명한 적의를 나타내었고, 순결한 믿음과 그 믿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교회의 문들을 닫아 버렸다. 강단 위에서 그들을 비난하는 성직자들의 행동은 암흑과 무지와 불법을 자아내는 요소가 되었다. 여러 번 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이적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격노한 폭도의 무리가 그를 습격하여 피할 길이 없는 듯이 보였을 때 사람의 모양을 한 천사가 그의 곁에 나타났다. 그러자 폭도들은 물러가고, 그리스도의 종은 그 위험한 장소에서 무사히 피해 갔다.
격노한 폭도들에게서 건짐을 받은 경우들 중의 한 가지에 대하여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미끄러지기 쉬운 비탈길을 통하여 걸어 내려가고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아래로 떨어뜨리고자 애를 썼다. 만일 내가 일단 넘어졌을 것 같으면, 아마도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비틀거리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완전히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나의 칼라와 옷을 붙잡고 넘어뜨리려고 애를 썼으나 그들은 결국 단단히 붙들 수 없었다. 오직 한 사람이 나의 호주머니 뚜껑을 단단히 붙잡았는데 그 부분만 그의 손에 뜯겨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른 쪽 호주머니에는 은행 수표가 들어 있었는데, 주머니 뚜껑의 절반만이 찢어지고 말았다. …바로 내 뒤에 있던 건장한 사람이 큰 참나무 몽둥이로 나를 여러 차례 때렸다. 그가 만일 그것으로 나의 뒤통수를 때렸던들 나는 그만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때릴 때마다 그 몽둥이는 빗나갔다. 나는 그 때에 좌로나 우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었다. 또 한 사람이 군중을 헤치고 달려와서 주먹으로 나를 후려쳤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겨우 나의 머리를 조금 스쳤을 뿐이었다. 그는 ‘이 사람의 머리칼이 어찌 이렇게도 부드러울까’라고 말하였다. …바로 처음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그 시가의 깡패 두목들이며,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시끄러운 사태가 생길 때에 돈을 받고 싸우는 일을 지금껏 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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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준비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부드러운 방법을 사용하시는지! 2년 전에는 한 개의 벽돌 조각이 나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후 1년이 지나서는 돌이 나의 양미간을 맞혔다. 지난달에는 한 번 매를 맞고 오늘 저녁에는 성에 들어오면서 한 번, 나가면서 한 번, 두 번을 맞았으나 모두 아무런 일이 없었다. 한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서 나의 가슴을 쳤고, 또 다른 사람은 피가 쏟아지리 만큼 힘 있게 나의 입을 쳤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것에 대하여서도 다만 볏짚으로 나를 치는 정도 이상의 아픔은 느끼지 않았다” (John Wesley, Works, Vol.3, pp.297, 298).
초대 메소디스트들의 고투
초창기의 메소디스트 교인들은 전도자들과 일반 신도들을 막론하고 국교인들과 혹은 국교인들의 무고로 말미암아 격분한 불신자들로부터 조롱과 박해를 받고 그것을 견디었다. 그들은 법정에도 이끌려 나갔는데, 당시의 법정은 유명무실하여 정당한 재판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박해자들의 폭행으로 자주 고통을 당하였다. 폭도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기구와 물품들을 파괴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약탈하였고, 남녀들과 어린이들을 잔인하게 취급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메소디스트들의 집을 파괴하고 약탈하려는 자는 어느 때 어느 곳으로 모이라는 광고를 공공연하게 써 붙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공공연하게 국가의 법률과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아니하였다. 메소디스트들은 죄인들을 멸망의 길에서 성결의 길로 돌이키고자 힘을 썼기 때문에 이처럼 철저한 박해를 받았다.
존 웨슬리는 자기와 자기의 동료들을 비난하는 데 대하여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허위요, 오류요, 광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것들이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교리이며, 퀘이커주의요 광신이며 법왕교라고 한다. 그 모든 구실들은 이미 그 뿌리까지 모두 뽑힌 것이다. 이 교리의 모든 부분은 우리 자신들의 교회가 해석하는 성경의 분명한 교리이다. 그러므로 만일 성경이 참된 것이라면 그 교리가 허위나 오류일 수는 없다.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의 교리가 너무 엄격하여 하늘로 가는 길을 지나치게 좁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근본적인 반대 이론이며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공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많은 반대 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 주님과 그분의 사도들이 만든 이상으로 하늘가는 길을 좁게 만들었는가? 과연 그들의 교리가 성경의 가르침보다도 더욱 엄격한가? 몇 구절의 명백한 성경절들을 생각해 보자.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람이 무슨 망령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로 인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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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들의 교리가 이보다 더욱 엄격할 것 같으면, 그들은 책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대들의 양심에 비추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또한 누가 능히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지 않고 그 엄격함을 조금이라도 늦추어 놓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를 맡은 어떤 청지기라도 그 거룩한 위탁물의 어떤 부분을 변경할 것 같으면 그를 충실한 청지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청지기는 하나도 감할 수가 없고 약화시킬 수도 없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그대들의 기호에 맞도록 성경의 표준을 낮출 수는 없다. 그대들은 반드시 그 표준에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할 것뿐이다’라고 선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이 사람들은 사랑이 없다’고 평가하는 참된 이유이다. 과연 그들은 사랑이 없는가? 그렇다면 어떤 점에 있어서 그러한가? 그들이 주린 사람들을 먹이지 않고 헐벗은 사람들을 입히지 않는가? ‘그것은 전혀 문제로 삼을 것이 없다.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은 아무런 부족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판단력에 있어서 너무나 냉정하다. 그들은 그들의 방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John Wesley, Works, Vol.3, pp.152, 153).
웨슬리 시대 직전에 영국에 나타난 영적 쇠퇴는 대체로 율법 무용론의 교리가 빚어 낸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도덕률을 폐지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벗어났고, “선을 행해야 할 책임감”에서도 해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율법의 영원성을 인정하면서도 목사들이 사람들에게 율법을 순종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무용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택한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과 덕성을 실천하게 되고, 이와 반대로 영원히 버림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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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다른 사람들은 “택함을 받은 자들은 은혜를 받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은총을 박탈당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이 범하는 악행은 참된 범죄가 아니며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으로 여길 것도 아니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거나 회개로써 그런 죄를 끊어버릴 필요도 없다” (Mclintock and Strong, Encyclopedia, art. “Antinomians”) 고 하는 매우 두려운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종의 가장 비열한 죄, 곧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큰 위반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만일 택함을 입은 자가 범한 것일 때에는 “하나님께서 죄로 간주하지 아니하신다”고 역설하였다. 왜냐하면 “택함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거나 율법에 금지된 것은 어떤 것이나 행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본질적이요 뚜렷한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괴상한 교리는 본질적으로 후세의 일반 교육자와 신학자의 가르침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의의 표준인 하나님의 율법이 결코 불변 (不變) 의 것이 아니라 도덕의 표준이 사회 자체의 현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항상 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모든 사상은 다 사단의 정신에서 온 것이며, 그는 죄 없는 하늘의 거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율법의 정당한 제재를 없애 버리기 위한 그의 사업을 착수하였던 것이다.
사람의 성격을 변경할 수 없도록 고정시켰다는 하나님의 선고에 대한 교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상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웨슬리는 그와 같은 율법 무용론자들의 그릇된 의견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율법 무용론으로 이끌어가는 교리는 성경과 배치된 것임을 증명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 (딛 2:11; 딤전 2:3~6).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성령은 값없이 주어졌다. “참 빛”, 곧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 (요 1:9) 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생명의 선물을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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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율법과 복음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의문의 율법과 함께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하여 웨슬리는 말하였다. “십계명이 포함되어 있고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견고하여진 도덕적 율법은 주님께서 결코 폐지하지 아니하셨다. 그분께서 오신 것은 그 율법의 어떤 부분을 삭제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이 율법은 결코 폐할 수 없는 것이며, ‘충실한 증거자로서 하늘에 굳게 설 것’이다. …그 율법은 태초부터 있었는데, 그것은 ‘석판에 새기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인류의 자녀들이 창조자의 손에서 나올 때 그들의 마음에 모두 새겨졌다. 그리고 한 때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문자로 기록되기까지 하였지마는 오늘날에는 죄로 말미암아 그것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러나 선악에 대한 의식이 다소나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그 율법은 완전히 폐지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율법의 모든 부분은 각 시대의 온 인류가 지켜야 할 의무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간과 장소와 환경에 따라 좌우될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본성과 사람의 본성, 그리고 그 상호간의 변경될 수 없는 관계에 의하여 좌우되어야 한다.”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함이로다.’ 그 말의 뜻은 의심할 여지없이 다음과 같다. 나는 사람의 온갖 곡해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것을 완전케 하러 왔다. 그 속에 있는 모든 애매하고 분명치 않은 점들을 완전히 천명하러 왔다. 그 모든 부분의 진정하고 완전한 의미를 선포하고,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각 조목의 범위, 곧 그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각 항목에 들어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순결과 영적 성질 등을 나타내기 위하여 왔다” (Wes-ley’s Sermon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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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는 율법과 복음의 완전한 조화를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율법은 끊임없이 복음을 위한 길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로 가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복음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여 율법을 더욱 정확히 성취시키도록 한다. 예컨대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성결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모든 요구에 대하여 부족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마는 이처럼 사랑을 주고, 겸손하고 성결케 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보게 된다. 우리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을 붙들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다. 곧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또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큰 원수 가운데는 ‘율법을 기탄없이 공격하고’, ‘율법을 악한 것으로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깨뜨리도록 (율법에 대한 의무를 폐기하는 것) 가르치되, 율법의 가장 큰 조항이나 가장 작은 조항뿐 아니라 율법 전체를 온전히 깨뜨리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허망한 일 가운데도 가장 놀라운 일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율법을 전복하면서도 그것을 높이는 줄로 믿고, 그분의 교훈을 폐하여 버리면서도 그분의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는 줄로 여기는 일이다. ‘주여 평안하니이까’라고 말하면서 입을 맞춘 유다와 같이 행동한 그들이 예수님을 과연 높이고 있는가.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네가 입맞춤으로써 인자를 파느냐’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의 보혈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분의 면류관을 벗기는 일과 그분의 복음 사업을 발전시키는 체 하면서 그분의 율법의 어느 부분을 삭제해 버리는 일은 입맞춤으로 그분을 배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믿음을 전하는 자로서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순종하여야 할 어떤 적은 부분이라도 제해 버리려는 태도를 취하거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을 조금이라도 약하게 하거나 무효로 만드는 자는 유다에게 한 정죄의 비난을 면할 수 없다” (Wesley’s Sermon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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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면 율법의 모든 목적을 다하는 것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그것을 전연 부인한다. 복음은 소위 율법의 첫째 목적, 곧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아직도 음부의 구덩이에서 그냥 잠자고 있는 자들을 깨우는 일을 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죄를 깨닫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속량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진정으로 느끼지 아니한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건강한 자, 혹은 스스로 건강한 줄로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의원을 부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대들은 먼저 그들에게 그들이 병든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그대들의 수고에 대하여 그들은 감사히 여기지 아니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가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아직 그 마음을 깨뜨리지 아니한 자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Wesley’s Sermon 35).
웨슬리의 위대한 공적
웨슬리는 그의 주님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한편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업을 충실히 감당하였으므로 영광스러운 결과를 보게 되었다. 그는 나이 80세가 넘은 만년에 가서, 곧 반세기 이상의 봉사의 생애를 통하여 50만명 이상의 영혼들을 신자로 얻었다. 그리고 그의 봉사를 통하여 타락과 멸망의 구덩이에서 고상하고 순결한 생애로 들어간 무리들과 그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더욱 깊고 풍부한 체험을 얻은 사람들의 수는 구속받은 가족이 하나님의 나라에 모일 그 때에 가서야 비로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의 생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교훈을 준다.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종의 신앙과 겸손, 불굴의 열성, 극기, 헌신은 오늘날의 교회에 그대로 반영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각 시대의 대쟁투 pp. 255-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