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 14일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섭리는 루터에게 자신의 위험을 깨닫게 해주셨고, 그로 하여금 자기의 힘을 의뢰하지 않게 하시므로 무모하게 위험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가 공포에 눌리게 된 것은 즉시로 다가올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고난과 고문과 죽음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위기를 당면하여서 그것을 대항하는 데 자기의 힘이 너무도 미약한 것을 느꼈던 것이다.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진리의 사업이 패배당할까 두려워한 것이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승리를 위하여 그는 하나님과 씨름하였다. 밤중에 쓸쓸한 시냇가에서 투쟁할 때 이스라엘이 느꼈던 것과 같은 고민과 갈등이 그의 마음속에 충만하였다. 이스라엘처럼 그도 하나님을 이겼다. 완전한 절망 가운데서 그는 믿음으로 전능하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었다. 그의 마음은 그가 단독으로 의회에 출두하지 않는다는 보증으로 굳세어졌다. 그의 마음속에는 평안이 깃들었으며, 그는 고관들과 제후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높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을 기뻐하게 되었다.

루터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면서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는 투쟁을 위하여 준비하였다. 그는 대답할 계획을 생각하고, 자기의 저서들에 있는 구절들을 검토하고, 성경에서 그의 주장을 입증하고 지지할 만한 적당한 구절들을 뽑았다. 그 후에 그는 자기 앞에 펼쳐져 있는 성경 위에 왼손을 얹고,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 “비록 증거를 위하여 나의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복음을 위하여 끝까지 충성을 다하고, 나의 신앙을 거리낌 없이 고백하겠노라” (D’Aubigne, b.7, ch.8) 고 맹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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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앞에서 신앙을 고백함

그가 두 번째 의회에 섰을 때에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공포와 난처한 기색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그러면서도 극히 용감하고 의기양양하게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지상의 세도 있는 고관들 앞에 섰다. 그 때에 황실의 관리는 그에게 자기의 주장을 취소하고자 결정했는지 물어 보았다. 루터는 침착하고, 겸손하고, 아무런 격렬한 감정이 섞이지 아니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의 태도는 겸손하고 존경할 만하였다. 그러나 그는 의회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기쁨을 나타냈다.

“지극히 존엄하신 폐하여! 고귀하신 왕후 (王侯) 들과 인자하신 영주 (領主) 들이여! 오늘 본인이 여기 출정 (出廷) 하게 된 것은 어제 분부하신 명령에 따라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본인은 존엄하신 폐하와 여기 열석하신 전하 제위께서 본인이 의롭고 진실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업에 대하여 변호하는 말을 특별하신 사랑으로 들어주시기를 간원하나이다. 그리고 본인의 무지로 인하여 궁정의 관례나 예법을 범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를 탄원하는 바입니다. 본인은 승원에 묻히어 있었을 뿐이며 궁정에 나아가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D’Aubigne, b.7, ch.8).

이와 같이 말한 다음에 그는 질문에 관하여, 자기의 저서들은 모두가 동일한 부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첫째 부류는 신앙과 선행에 대하여 기록한 것으로, 이것은 그의 원수들까지도 해로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익한 것들로 취급하였다. 이런 저서들을 취소하는 것은 만인이 인정하는 진리를 부인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둘째 부류의 것은 법왕교의 부패와 나쁜 폐단을 폭로하는 저서들로 이루어졌다. 이런 저서들을 폐기 (廢棄) 하는 것은 로마의 포악을 한층 더 조장 (助長) 하여 더욱 심한 불경건을 맞이하기 위하여 문을 넓게 여는 것이 될 것이었다. 셋째 부류의 저서에서 그는 현존한 악폐 (惡幣) 를 옹호한 개인들을 공격하였다. 그런 부류의 저서에 관하여 그는 그 내용이 과격한 점이 있으며, 잘못된 점이 전연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음을 솔직히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종류의 저서들도 취소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하면, 진리의 원수들은 한층 더 완강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더욱 잔인하게 취급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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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다만 한 사람의 인간이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나의 말이 만일 악하면 그 악한 사실을 증거해 달라고 내 자신을 변호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 나는 지존하신 황제와 인자하신 왕후 (王侯) 들과 모든 고관 제위에게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로써 본인의 잘못을 지적하여 달라고 간원하는 바입니다. 그와 같이 하여 본인의 잘못을 깨닫게 되면 나의 모든 오류를 즉시 취소하겠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자진해서 저의 저서들을 불 가운데 던져 버리겠습니다.

본인이 지금 명백히 진술한 것은 본인 자신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위험에 대하여 조심성 있게 헤아려 보고 생각한 연후에 진술한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본인은 오늘날 복음이 옛날과 마찬가지로 물의 (物議) 와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기쁘게 여기는 바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특성으로 볼 때 필연적인 일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고도 두려운 권고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분쟁을 멈추려고 함으로 도리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핍박하게 되고, 우리 자신에게 견딜 수 없는 위험과 현세의 불행과 영원한 멸망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할까 경계해야겠습니다. …본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많은 실례를 들 수 있습니다. 바로와 바벨론의 임금들과 이스라엘의 임금들이 그들의 나라를 외관상으로 가장 지혜롭고 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권면을 따라 노력하였을 때보다 더욱 그들 자신의 멸망을 효과적으로 초래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을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산들을 옮기실지라도 산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D’Aubigne, b.7, ch.8).

담대한 루터의 태도

루터는 독일어로 말하였다. 그는 다시 라틴어로 같은 말을 반복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너무 애를 썼기 때문에 기진맥진하였지만, 그 요구대로 다시 첫 번과 같이 열렬하고 분명하게 진술하였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 일을 지도하였다. 여러 제후들의 마음은 오류와 미신으로 어두워져 있었으므로 첫 번째 진술에서는 루터의 논증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반복하므로 그들은 루터가 역설하는 요지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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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고하게도 눈을 감아 빛을 보지 아니하고 진리를 깨닫지 않고자 작정한 자들은 루터의 힘 있는 말에 대하여 분격하였다. 그의 진술이 끝나자 의회의 대변인은 화를 내어 말하였다. “너는 주어진 질문에 대하여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분명하고 정확한 답변을 해야 한다. 너는 취소하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취소하지 않겠느냐?”

개혁자는 대답하였다. “지존하신 폐하와 고귀하신 왕후 (王侯) 제위께서 본인에게 간단하고, 명료하고, 확실한 답변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제 본인은 대답하겠습니다. 본인은 본인의 신앙을 법왕이나 의회에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둘은 누차 잘못을 범하였으며 피차간에 모순되었다는 것이 분명히 밝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증언과 가장 분명한 논리로써 본인을 설복시킬 수 없는 한, 또한 본인이 인용한 성경 구절에 대하여 본인을 설복시킬 수 없는 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인의 양심을 승복 (承服) 시킬 수 없는 한 본인은 취소할 수도 없고 취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양심을 거슬러 말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는 그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D’Aubigne, b.7, ch.8).

이와 같이 그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한 기초 위에 서 있었다. 하늘의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의 위대하고 결백한 인격, 그의 마음의 화평과 기쁨은 그가 오류의 세력을 대항하여 증언하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탁월성을 입증하였을 때 모든 사람에게 보였다.

잠시 동안 온 회중은 경탄한 나머지 조용해졌다. 첫 번째 대답에서 루터는 공손하고, 거의 굴욕적인 태도를 취하여 아주 낮은 음성으로 말하였다. 로마교도들은 그것을 그의 용기가 꺾이고 있는 증거라고 보았다. 또한 그들은 루터가 유예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의 신앙을 취소할 전조라고 보았다. 카알 자신도 그 승려의 지친 모습, 그의 허술한 의복, 그의 꾸밈없는 진술들을 보고, 반쯤 멸시하는 태도로 “이 승려가 나를 이단자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의 힘 있고 분명한 이론은 물론이요 그가 나타낸 용기와 견인불발의 태도는 장내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황제도 감격하여 “이 승려는 참으로 대단한 담력과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말한다”고 하였다. 독일의 제후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대표하여 주는 그의 태도에 대하여 일종의 자랑과 기쁨을 느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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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측의 위협

로마교도들은 패배하여 형세가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들은 성경에 의하지 않고 로마의 상투 수단인 위협으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의회의 대변인은 “만일 네가 취소하지 않는다면 황제와 모든 연방은 이처럼 완고한 이단자를 어떻게 처치할 것인지 의논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루터의 훌륭한 변호를 큰 기쁨으로 듣고 있던 루터의 친구들은 그 선언을 듣고 두려워 떨게 되었다. 그러나 루터는 아주 침착하게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나는 결코 취소할 수 없다” (D’Aubigne, b.7, ch.8) 고 말하였다.

그는 의원들이 협의하는 동안, 퇴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어떤 큰 위기가 다가온 것을 느끼게 되었다. 루터가 최후까지 굴복하지 않고 굳게 선 것은 여러 시대를 통하여 교회의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취소할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결정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의회에 출두하게 되었다. 그의 주장을 부인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에 대하여 다시 질문이 주어졌다. 그는 “본인은 이미 대답하였으므로 그 이상 다른 대답을 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아무리 권유하고 위협할지라도 로마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법왕측의 지도자들은 국왕과 귀족들까지도 두려워 떨게 했던 그들의 권력이 일개 비천한 승려에게 이처럼 무시당한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들은 고문으로 그의 생명을 빼앗음으로 그에게 대한 그들의 분노를 알려주고자 갈망하였다. 루터는 이러한 위험을 깨닫고 위엄 있고 침착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로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의 말에는 교만과 격렬한 감정과 허위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주위에 높은 인물들이 있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다만 그가 법왕이나 주교나 왕이나 황제보다도 더욱 초월하신 분 앞에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터의 증거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엄숙하고 힘 있게 말씀하셨으므로 친구들과 원수들이 다 같이 경탄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의회에 나타나서 나라의 중신 (重臣) 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셨다. 여러 명의 영주들이 루터의 주장을 공정하다고 기탄없이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오래지 아니하여 그 확신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자기가 받은 감명을 당장에 표시하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성경을 연구한 후에, 장차 개혁 운동의 유력한 후원자들이 된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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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서 대립된 두 파

선후 프리드리히는 루터가 회의장에 나타나는 것을 초조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그의 진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기쁨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루터의 용기와 침착성과 확고부동한 태도를 바라보고, 그를 옹호할 결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 그는 논쟁할 때 두 편을 대조하여 보고, 법왕과 왕들과 주교들의 지혜도 진리의 능력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때에 법왕교는 그 후 각 시대를 통하여 여러 나라에 영향을 끼칠 만큼 분명한 패배를 당하였다.

법왕의 사절은 루터의 진술로 말미암아 나타난 영향을 깨닫고, 전에 없이 두려워하였고, 로마의 세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그 개혁자를 멸망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자기의 독특한 웅변과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한 미천한 승려 때문에 세력 있는 법왕청의 우의와 지지를 희생하는 일은 우매하고도 위험한 일이라고 젊은 황제에게 역설하였다.

그의 말은 효과를 거두었다. 루터의 답변이 있은 다음날, 카알은 선조 (先祖) 들의 정책에 따라 가톨릭을 지지하고 옹호할 결심을 알리는 자신의 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루터가 자기의 오류에 대한 취소를 거절하였으므로, 그와 그가 가르친 이단설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조치가 취하여질 것이었다.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그릇 인도된 일개 승려가 그리스도교국의 신앙을 대항하여 일어섰다. 그런 불경건한 행위를 억제하기 위하여 나는 나의 영토와 나의 재정과 나의 친구와 나의 육체와 나의 피와 나의 영혼과 나의 생명을 희생할 것이다. 나는 먼저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의 루터를 추방하여 나라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지 않도록 포고한 후, 그와 그의 지지자들을 완고한 이단으로 규정하여 파문함으로 그들의 사업을 중단시킬 뿐 아니라 온갖 방법을 다하여 그들을 없애버리고자 한다. 나는 모든 의원들이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해 줄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D’Aubigne, b.7, ch.9). 그렇지마는 황제는 루터의 통행권은 반드시 존중히 여겨져야 할 것이며, 그에 대한 처분이 시행되기 전에 그가 안전하게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락되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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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의원들 가운데서는 전연 반대되는 두 가지 주장이 대두되었다. 사절과 법왕측의 대표자들은 루터의 통행권이 무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마치 백 년 전의 “얀 후스처럼 그의 몸을 태운 재를 라인강에 뿌려야 한다” (D’Aubigne, b.7, ch.9) 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런데 독일의 제후 (諸侯) 들은 비록 법왕당이요 루터를 대적하는 사람들이었지마는, 이와 같은 조치가 나라의 명예를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라 하여 그처럼 공중의 신의를 무시하는 일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후스가 죽은 후에 계속하여 일어난 재난들을 지적하고, 이와 같은 두려운 재난이 독일 나라와 그들의 연소한 황제에게 반복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카알 자신도 그 졸렬 (拙劣) 한 제의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비록 온 세계에서 신의와 명예가 그 그림자조차 없어졌다 할지라도, 이 두 가지는 왕후 (王侯) 와 영주들의 심중에서 피난처를 찾아야 할 것이다” (D’Aubigne, b.7, ch.9). 루터의 강경한 원수들인 법왕 측에서는 시기스문트가 후스에게 행한 것처럼 루터를 처치하도록 교회의 처사에 일임해주기를 황제에게 여전히 강청하였다. 그러나 카알 5세는 후스가 공중 앞에서 자기를 결박한 사슬을 가리키면서 황제에게 신임할 수 없는 그의 처사를 생각나게 했던 광경을 상상하고, “나는 시기스문트처럼 얼굴이 붉어지기를 원치 않는다” (Lenfant, vol.1, p.422) 고 언명하였다.

그러나 카알은 루터가 제시해 준 진리를 고의적으로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는 “나는 선조들의 모본을 따르기로 굳게 결심하노라” (D’Aubigne, b.7, ch.9) 고 기록하였다. 그는 종래에 행하여 오던 관습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진리와 정의의 길을 따르는 데 있어서까지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그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비록 법왕교가 잔인하고 부패하였더라도 그것을 응원할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선조들이 받아들인 것보다 한 걸음 더 앞서서 빛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들이 행하지 않은 어떤 의무를 행하지도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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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부인한 카알 5세

오늘날도 그와 같이 선조들의 관습과 전통을 굳게 지키는 자들이 많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더욱 광명한 빛을 비춰주실 때에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그렇게 한다. 우리는 그러한 선조들의 처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의무와 책임은 그들의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진리의 말씀을 우리 스스로 탐구해 보지 않고 오로지 그 선조들의 모본에 의하여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을 수가 없다. 우리들의 의무와 책임은 선조들의 것보다 한층 더 중하다.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빛에 대하여도 책임이 있지만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비취고 있는 더욱 밝은 빛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요 15:22) 고 말씀하셨다. 그 같은 거룩한 능력은 루터를 통하여 독일의 황제와 제후들에게도 전하여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을 비추게 되자 성령께서는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탄원하셨다. 마치 빌라도가 천여 년 전에 자기의 자존심을 유지하고 인망을 얻기 위하여 마음의 문을 닫고 구주의 말씀을 저버린 것처럼, 벨릭스가 두려워 떨면서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행 24:25) 고 진리의 사자에게 말한 것처럼, 교만한 아그립바가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 26:28) 고 고백하면서 하늘이 보낸 기별을 배척한 것처럼, 카알 5세도 세속적 자존심과 정책상 필요에 따라 진리의 빛을 거부하기로 작정하였다.

루터에 대한 사람들의 후원

루터를 해치기 위한 계획이 세워져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자 온 시중에는 큰 흥분이 일어났다. 개혁자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로마교가 그의 부패한 형편을 폭로시키는 일에 용감한 모든 사람들에게 행한 잔인무도한 일들을 알고 있으므로 그를 희생시킬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작정하였다. 수백 명의 귀족들이 그를 보호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로마의 권력에 굴복할 의사를 표시한 황제의 포고를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사가 (私家) 의 대문들과 공적인 장소들에는 루터를 정죄하거나 그를 옹호하는 광고들이 붙게 되었다. 그중에는 솔로몬의 의미심장한 말,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이 나라여 화가 있도다” (전 10:16) 는 문구가 쓰여 있기도 하였다. 독일 전국을 통하여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루터에 대한 호감은, 만일 그에게 어떤 불공평한 처사가 이루어진다면 독일 제국의 평화는 물론이요, 그 보좌의 안전까지도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황제와 의회는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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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의 프리드리히 선후는 냉정한 태도로 개혁자에게 대한 자기의 진정한 감정을 조심성 있게 감추고 있었으나, 그는 동시에 끈기 있는 경계로 그를 지키고 그의 모든 행동과 그의 원수들의 모든 일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루터에 대한 그의 동정심을 감추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루터는 제후들과, 백작 (伯爵), 남작 (男爵) 들과, 성직자와 평신자들 중의 많은 존귀한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다. 스팔라틴 (Spalatin) 은 “박사의 작은 방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 (Martyn, vol.1, p.404) 고 기록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마치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것처럼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자기의 양심을 거스르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달게 받고자 하는 그 고결한 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터로 하여금 로마와 타협하는 일에 동의하게 하려는 매우 열렬한 운동이 일어났다. 귀족들과 선후들은 그가 이 이상 더 자기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고 교리와 의회를 대항한다면 결국은 이 나라에서 추방될 것이며,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은 호소에 대하여 루터는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공격을 받지 않고 전파될 수 없다. …그럴진대 어떻게 그와 같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 때문에 내가 어찌 주님께로부터, 또한 유일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날 수 있겠는가? 아니다. 나는 차라리 내 육체, 내 피, 내 생명을 버릴 것이다” (D’Aubigne, b.7, ch.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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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황제의 의견에 복종하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렇게 하면 그는 염려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황제와 제후들과, 아니 가장 연약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들이 나의 저서들을 시험하고 검토해 보는 데 대하여 나는 충심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순종하는 일이다. 성경 말씀으로 매여지고 얽혀져 있는 나의 양심을 깨뜨리고자 하지 말라” (D’Aubigne, b.7, ch.10).

또 다른 권고를 받고 그는 말하였다. “나는 나의 통행권을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 나는 나의 몸과 나의 생명을 황제의 손에 맡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맡길 수 없다. 결단코 맡길 수 없다” (D’Aubigne, b.7, ch.10). 그는 의회의 결정에 쾌히 순종하기로 뜻을 나타냈으나 의회가 성경에 의거하여 결정한다는 조건 하에서였다. 그는 계속하여 “비록 법왕이 백만의 의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에 관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법왕이 가진 것과 동일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Martyn, vol.1, p.410) 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친구와 원수들은 이 이상 화해를 위하여 노력할지라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양심의 승리

만일 개혁자가 단 한 가지 점에서라도 타협하였더라면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고부동한 태도는 교회를 해방하는 방편이 되었고 새롭고 더욱 좋은 하나의 기원 (紀元) 을 이루어 놓았다. 신앙 문제에 관하여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바를 꺼림이 없이 그대로 실천한 이 한 사람의 감화는 그 시대의 교회와 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후일의 모든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확고하고 충성된 태도는 마지막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와 동일한 경험을 갖게 될 모든 사람에게 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은 사람의 의견이나 사단의 위력을 훨씬 초월한다.

얼마 후 루터는 황제의 권위에 의하여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이러한 통고가 있은 후 즉시 정죄의 선고가 내릴 것을 미리 알았다. 그의 앞길에 캄캄한 구름이 덮여 있었으나, 그는 보름스를 출발할 때 찬미와 기쁨으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는 “악마 자신이 법왕의 성채 (城砦) 를 보호하였지만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한 돌파구 (突破口) 를 만들어 주셨으므로, 사단은 주께서 자기보다 더욱 위력이 있음을 마침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D’Aubigne, b.7, ch.11) 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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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보름스를 떠난 후에, 자기의 확고한 태도가 반역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 종은 사람이 의지하여 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생사와 영욕 (榮辱) 을 물론하고 온갖 일에 가장 열심으로 폐하를 순종하는 사람인 것은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증거하실 것입니다. 현세의 모든 일에 있어서는 종의 충성에 아무런 동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얻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구원에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문제에 관하여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굴종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영적 문제에 있어서 굴종하는 것은 사실상 예배 행위이므로, 그것은 온전히 창조주에게만 돌려야 할 것입니다” (D’Aubigne, b.7, ch.11).

보름스에서 돌아갈 때 루터에게 나타낸 일반 사람들의 존경은 그가 올 때보다 훨씬 더 지대하였다. 고귀한 성직자들이 파문당한 그 승려를 환영하고, 높은 관직에 있는 관리들이 황제의 견책을 받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는 설교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으나 사람들의 간청에 못 이겨 설교단에 올라갔다. 그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두어 두겠다고 맹세한 적이 결코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Martyn, vol.1, p.420) 라고 말하였다.

그가 보름스를 떠나간 지 얼마 있지 아니하여 법왕교도들은 황제를 설득시켜 루터를 반대하는 포고를 내리도록 하였다. 그 포고는 루터를 가리켜, “사단이 승려의 복장을 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D’Aubigne, b.7, ch.11) 고까지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의 통행권의 기한이 만료되는 즉시로 그의 사업을 종식시킬 조처를 취하도록 명령이 하달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도 그를 보호하거나, 음식물을 주거나, 공사 (公私) 를 불문하고 말로나 행동으로 그를 응원하거나 도와주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그를 발견하는 대로 체포하여 관헌의 손에 넘겨주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옥에 가두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저서들은 없애 버리도록 되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이 포고를 위반하는 자는 모두 위에 기록한 바와 동일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고시 (告示) 되었다. 작센의 선후와 루터에게 호감을 가진 여러 제후들은 그가 출발한 후에 곧 보름스를 떠났으므로, 황제의 이 고시는 의회의 찬동을 얻었다. 법왕교도들은 개가를 불렀다. 그들은 개혁 사업의 운명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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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사업과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위급한 시기에 당신의 종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셨다. 루터의 운동에 대하여 일각도 방심하지 않고, 그를 구원하려고 결심한 진실하고 고결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로마는 루터를 죽이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그를 사자의 밥이 되지 않게 하려면 숨길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작센의 프리드리히 후에게 개혁자를 보호할 계획을 세우도록 지혜를 주셨다. 성실한 친구들의 협력 아래, 선후 (選侯) 의 계획은 실행되었다. 그리하여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루터는 원수들과 친구들로부터 숨겨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체포되어, 동행자들과 분리되었고, 급히 산림을 통과하여 인가에서 떨어져 있는 산성 바르트부르크 (Wartburg) 로 끌려갔다. 그의 체포와 은닉 (隱匿) 은 너무도 비밀리에 실행되었으므로, 프리드리히 후까지도 오랫동안 그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선후 (選侯) 자신까지도 알지 못하도록 된 것은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선후가 루터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한 그 일을 누설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선후는 개혁자가 반드시 안전히 숨겨 있을 줄만 알고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가고 드디어 겨울이 왔다. 그러나 루터는 여전히 사로잡힌 몸으로 남아 있었다. 알리안더와 그 일당은 복음의 빛이 벌써 거의 소멸되었다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반대로 개혁자는 진리의 창고에서 등에 기름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등불은 더욱더 밝히 비추어질 것이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의 조용하고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동안 싸움의 소요와 열화 (熱火) 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조용하고 평안한 처지에서 오랫동안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활동적 생애와 격렬한 투쟁 (鬪爭) 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활동하지 않고 지내기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처럼 고독한 세월을 지내는 동안에 교회의 형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는 “아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끝 날에 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 앞에 성벽이 되어 줄 것인가!” (D’Aubigne, b.9, ch.2) 라고 탄식하였다. 그리고 투쟁의 장소에서 몸을 피하여 있는 자신을 반성해 보고, 비겁한 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이 하는 일 없이 게으른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를 책망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한 사람이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의 일을 날마다 하고 있었다. 그의 붓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동안 그의 원수들은 루터를 침묵케 하였다고 기뻐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확실한 증거를 보고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소책자가 그로 말미암아 저술되어 독일 전국에 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독일어로 신약 성경을 번역함으로 자기 나라의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봉사를 하였다. 그는 거의 1년 동안 바위투성이인 그의 “밧모섬”에 머물러 있으면서, 복음을 선포함과 동시에 그 시대의 오류와 죄악을 견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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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공생애의 무대에서 물러나게 하신 것은 루터로 하여금 원수들의 분노를 피하게 하시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에게 그처럼 중대한 사업을 맡기시기 위하여 조용한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한 것만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거두어야 할 더욱 귀중한 결과가 있었다. 한적하고 격리된 산장 (山莊) 에 있으므로 루터는 세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칭찬에서 끊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성공에 흔히 따르는 자부심과 교만으로부터 구제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고난과 겸비를 통하여, 그가 갑자기 높임을 받으므로 현기증이 날 만큼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진리가 전해짐으로 자유를 경험하게 될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오류와 미신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사용하신 그 인물들을 찬탄하는 경향을 가지기 쉽다. 사단은 사람들의 사상과 애정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켜, 사람을 바라보게 함으로 도구에 불과한 사람들을 높이 우러러보도록 유혹한다. 그리고 온갖 사건의 배후에서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무시해 버리도록 한다. 이런 경우에 흔히 칭찬과 존경을 받는 그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지도를 받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탐구하지 않고, 지도자들을 바라보게 되며,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생각과 양심을 지배하고자 애쓰게 된다. 개혁 사업의 지지자들이 이와 같은 정신에 사로잡히게 되면, 개혁 사업은 방해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위험에서 개혁 사업을 보호하고자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신 것은 그 사업이 사람의 사업이 아니고 당신의 사업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 하신 것이었다. 사람들의 눈이 루터를 진리의 해석자로 주목하게 되었으므로, 그들의 눈을 진리의 영원한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하여 그를 사람들에게서 떠나 있도록 옮기셨다.

각 시대의 대쟁투 pp. 157-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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